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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원고 담길을 따라 핀 메리골드. (사진: 이태훈 제공) |
어쩐 일인지 사람들은 잊고 싶어 한다. 굳이 진실을 밝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무관심과 우매한 자들의 악행과 권력자들의 악랄함, 그 속에서 슬픔을 공감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끔찍한 현실은 또 다른 고통이다. 나는 차가운 바다에 수장된 예쁜 학생들과 남은 가족들의 아픔을 오래 가슴에 담아두기로 한다.
단원고 앞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어보고 싶었다. 단원고 아이들이 떡볶이를 먹으며 즐겁게 수다를 떨던 그 분식집에서 그 아이들이 먹었을 떡볶이를 나도 먹어보고 싶었다. 옆 테이블의 소녀들이 떡볶이를 먹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런데, 매우 작은 소리로 소곤거린다. 그 모양이 아프다. 소녀는 시끄러워야 소녀인 것이다. 남은 아이들마저 소녀답게 살 수 없고 일찍 철이 들었다. 어른이 되어야 하는 이 아픔과 슬픔이 나는 아직도 무척 혼란스럽고 고통스럽다. ‘얘들아! 분식집에서는 마음껏 떠들고 마음껏 웃으렴.’ 속으로 그렇게 얘기해보지만, 미안한 마음뿐이다.
단원고에 남아 있는 학생들과 유가족, 실종자 가족들이 소망하는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은 무엇일까. 친구와 자식을 잃은 이들에게 그 행복마저 안겨주지 못하는 우리 모두는 유죄다.
2015.04.11. D+361. 이 교실이 내 학급이었다면
단원고의 교실 사진 한 장에 또다시 마음이 무너진다. 이 교실이 내 교실이었다면, 이 교실에 있어야 할 아이들이 우리 반 학생들이었다면, 나는 편안히 먹고 잘 수 있을까. 나는 즐겁게 봄꽃놀이 갈 수 있을까. 나는 고상하게 중립을 얘기할 수 있을까. 나는 교사로서 아무 문제 없이 살 수 있을까.
‘우는 자와 함께 울라.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에게 정의를 베풀라.’
저들의 고통의 백 분의 일이라도 나눠지고, 저들의 눈물의 백 분의 일이라도 책임지며, 저들의 억울함의 백 분의 일이라도 풀어주는 삶. 이 고통의 시대를 사는 교사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아니 그냥 한 인간으로서 마땅한 도리를 다하는 당연한 삶을 살고 싶다. 그러니 조금 더 아파하자. 조금만이라도 더 분노하고 행동하자. 더 간절하게 더 진실하게 더 깊이 기도하자. 하나라도 더 책임지자.
2015.04.13. D+363. 저는 안산에서 왔습니다
희망하는 학생들과 세월호 아픔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학생들은 따뜻한 마음과 깊은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감사하게도 모든 학생이 한마음이었다. 안산이 아닌 지역에 사는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도 4월의 봄은 안타깝고 아프고 슬프다.
‘저는 안산에서 왔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한 학생의 글이 마음에 들어왔다. 짧은 한 문장에 담긴 수많은 메시지들이 말을 걸어왔다.
“아주 힘들었겠구나” 했더니 눈물을 쏟는다. “그동안 네 마음을 얘기할 기회가 없었지?” 물었더니 눈물을 훔치며 고개만 끄덕인다.
다른 학생들에게도 물었다. “얘들아, 너희의 아프고 힘들고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표현해 본 적이 있니?” 답은 뻔했다. 누가 이 아이들을 이리 아프게 했을까. 누가 이 아이들의 눈과 귀와 입을 막고 ‘가만히 있으라’ 하는가. 많은 친구들을 잃고도 여전히 ‘가만히 있으라’ 하는 어른으로 살아야 하는 이 시절이 아프다. 한 아이가 쓴 한 줄 소망이 나를 울린다.
“유가족들이- 봄처럼, 봄꽃을 보는 우리들처럼 활짝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소망의 봄이 빨리 오기를 기도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학생들의 이 바람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뿐. 나의 기도가 아프니 하나님 마음은 오죽하실까. 아이들과의 나눔이 끝나고 며칠 후 한 학생이 시 한 편을 적어왔다.
친구들아
너희를 생각하면 내 몸은 바다로 빠진다.
가슴 위로 입 위로 코 속으로 목구멍 속으로 물이 들어온다. 폐까지.
너희가 그랬던 것처럼
어항 안에서 몸부림치는 나의 말은 너희에게 가지 못한다.
늘 내리는 비는 너희를 위해 운다.
지저귀는 새 소리도 듣지 못해
맑은 하늘 맑은 공기를 느끼지 못하는 너희를 위해 우리는 운다.
수면 위로 흐르는 적막
아무리 외쳐도 우리 서로 알아듣지 못해
마지막 한 모금의 숨을 다해 말을 건넨다.
미안해...
- 2015.04.16. Remember 0416. 홍이슬
어른으로, 교사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미안한 날들이다.
2015.04.16. D+366. 이웃 학교 아이들
우리 학생들에게도 준 적 없는 꽃 한 송이 사 들고 이웃 학생들에게 인사하러 가는 길. 우리 반 학생들과 같은 나이이지만, 우리 반 아이들은 고교 3학년이 되었고, 이웃 학교 아이들은 올해도 2학년이다.
세월은 잘도 흘러가는데, 어떤 세월은 멈춰버려 흐를 줄 모른다. 세월은 쏜 화살처럼 빠른데, 어떤 세월은 잠겨버려 움직일 줄 모른다. 세월은 잡히지 않아 속상한데, 어떤 세월은 잡아 올리기 싫어 안달이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지만, 진실은 세월을 거슬러 마침내 승리할 것이다.
고양에 사는 내가 안산에 살던 아이들을 만나러 광화문 광장에 간다, 지금.
내 하나님께서 공의와 사랑으로 그곳에 계시니 나도 그곳에서 우는 자와 함께 울어야겠다.
광화문 광장의 분향소를 눈앞에 두고 경찰 벽에 막혀 갈 수가 없다. 교복 입은 예쁜 학생들과 어린 청춘들과 평범한 아주머니와 아저씨. 광화문에서 우리는 그저 아이들에게 꽃 한 송이 주고 싶을 뿐인데, 미안하다고 인사 한번 하고 싶을 뿐인데 갈 수가 없다. 막막하고 먹먹한 밤이다.
2015.11.11. D+575. 얘들아, 수능 보러 가자!
“단원고 2학년 아이들아! 아니 3학년 학생들! 너희도 내일 수능을 봐야지?!” 내일은 수능일이다. 하늘나라에서 시험을 볼 아이들도 있고, 씩씩하게 시험장에 가서 친구들 몫까지 최선을 다해 시험을 치룰 학생들도 있다. 그리고 그들의 부모님과 가족들까지. 모두를 응원한다.
‘하나님, 남아 있는 우리의 책임은 무엇인가요?’
2016.11.19. D+949. 광화문 광장에서
피켓을 만들어 광화문 광장에 나갔다. 한쪽에는 ‘길라임 OUT’ 다른 쪽에는 세월호 관련 내용이다. ‘길라임 OUT’이라고 쓰인 면을 들고 걸으면 사람들이 보고 웃고 외치고 사진도 찍으셨다. 그러면 얼른 뒷면을 돌려 보여드렸다. 그리고 외쳤다.
“기억해주세요, 세월호!”
▲ 단원고 교실 (시진: 이태훈 제공) |
행진이 끝나고 광화문 빈 거리에 세월호 유가족 버스가 지나갔다. 얼른 다시 피켓을 펴들고 버스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외쳤다.
“어머니! 아버지! 힘내세요! 사랑합니다! 힘내셔야 합니다! 기억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도 모르게 여러 외침들이 터졌다. 창밖으로 어머니 아버지가 손을 흔들어 주셨다. 그리고 웃어 주셨다. 그 손과 미소를 보는데 울컥했다. 버스가 지나가고 한참 동안을 멍하니 서 있었다. 너무 아팠고 죄송했다. 교사로 사는 나에게 세월호의 아이들과 그 부모님은 절대 남이 아니다.
내가 광장에 나오는 이유의 8할은 세월호 아이들과 유가족, 실종자 가족 때문이다. ‘길라임’ 때문만은 아니다. 자기 능력이 안 되니 비선 실세가 필요했겠고, 돈을 좋아하니 뇌물도 받은 것이고, 정당성이 없으니 매국적 외교도 했지 싶다. 백 번, 천 번, 만 번, 억지로 이해하려 하면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세월호의 아이들과 희생자, 그 유가족을 이렇게 험하게 대하는 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 인간이 아니지 싶다. 이건 악마다. 아이들을 구하지 않았고, 7시간 동안 뭔 짓을 했는지 제대로 해명도 못 하고, 구조한다며 유해 공기를 집어넣었다. 심지어 유가족을 괴롭게 하고, ‘시체팔이’ 소리를 듣게 하였다. 진실을 밝히려 하지 않고, 인양 작업은 안중에도 없다. 세월호 유가족들께서 진실을 밝히 알게 되고, 구조하지 않은 자들에 대한 책임을 묻고, 그래서 그 억울한 마음이 씻기고 아픈 눈물을 다 쏟을 때까지, 나는 내 방식의 외침을 멈추지 않으려 한다.
이 외침에 있어 나에게는 분명한 배후세력이 있다. 하나, 인간이길 포기하고 싶지 않은 양심. 둘, 교사로서 학생을 지켜내는 책임의식. 셋,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다.
▲ 광화문 광장에서 (사진: 이태훈 제공) |
2016.11.28. D+958. 세월이 흘러도 그대로인 세월호
왜 세월호가 침몰했는지
왜 아이들을 구하지 않았(못했)는지
왜 세월호는 아직도 인양을 안(못)하는지
왜 대통령의 7시간을 말하지 못(안)하는지
왜 세월호 유가족을 시체팔이라 폄하했는지
왜 그동안 세월호 관련 보도를 못하게 했는지
왜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주지 않고 내팽개쳤는지
왜 지금껏 유가족들을 죄인처럼 살아가게 하는지
‘왜’라는 수많은 물음, 그 어느 것 하나에도 온전하게 답해주는 이가 없다.
차가운 바다에 잠긴 아이들이 내 자녀였고, 내 학교 학생이었다면 내가 겪어야 했던 아픔이고 억울함이다. 대통령에게만 따져 묻고 싶은 게 아니다. 우리네 평범한 이웃들에게도 묻고 싶다. 왜 그런 막말을 함부로 내뱉었는지! 왜 그런 막말에 힘주어 항변하지 못했는지! ‘가만히 있으라’ ‘이제 그만 해라’ ‘장사 안된다’ ‘보상받지 않았느냐’ ‘시체팔이 그만해라’ ‘그냥 교통사고 아니냐’ 그리고 최고의 막말 ‘지겹다’까지. 대통령의 7시간이 떳떳하지 못하듯 우리의 지난 1,000일도 결코 떳떳할 수 없다.
진실을 밝히지 않고, 밝히려 하지도 않고, 밝히려는 어떤 진정한 노력조차 하지 않는 이 악하디악한 절대악에 분노한다. 그리고 진실을 온전히 인양하는 날, 그때 다시 제대로 아파하고 회개하고 위로하자.
일기 나눔을 마치며
2014년과 2015년 4월에 학생들과 함께 기도모임을 했었다. 기도하기 전에 항상 이 말씀을 함께 읽었다.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 (신명기 10:18-19)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에게 정의를 행하고 사랑하라고 명령하시는 이런 하나님이 참 좋다. 이제 내가 그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도록 정의와 사랑에 풍성한 교사, 그리스도인, 인간이 되고자 애쓰고 싶다. 그러기 위해 더 아파하고 더 기도하고 더 외치고 더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세월호. 바다에 잠기고 세월이 흘렀다 하여 망각의 바다에 다시 잠기게 할 수는 없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