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패밀리맨인가, 비지니스맨인가? 이 영화의 제목은 우리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져준다. 우리 삶에 주어진 그 가능성의 다른 모습은 어떠할까? 만약 내가 그 때 또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의 진화형이자 1946년 프랑크 카프라의 크리스마스 고전영화 <멋진 인생>의 또 다른 버전이라 할만하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 역시 크리스마스 시즌 영화이다. 크리스마스에 보면 좋지만 굳이 그러지 않더라도 가정의 달을 맞아서 봐도 좋겠다. 아이들과 같이 보기에는 15세 이상 관람가이다.
성공 가도를 달리는 잭 캠벨(니콜라스 케이지 역)은 젊은 시절 사귀던 여자 친구를 떠나 영국 은행에 인턴 과정으로 떠난다. 떠나는 그를 공항에 마중 나온 사랑하는 연인 케이트 레놀즈(티아 레오니 역)는 느낌이 안좋다며 떠나지 말 것을 종용한다. 그리고 13년 후 잭 캠벨은 벤쳐 기업 사장으로 승승장구 하고 있다. 펜트 하우스 같은 그의 집, 페라리 차, 운전수, 그리고 언제든 만나고 헤어지는 하룻밤 애인들까지... 뭐든 못할 게 없는 뉴욕의 갑부이자 멋진 남자, 비지니스맨이다. 그런 그가 크리스마스 이브날 마트에서 마주친 한 흑인 부랑자로 인해 그는 삶의 이면을 엿본다. 로또에 당첨됐다며 당장 돈으로 바꿔 줄 것을 캐셔에게 요구한 흑인 부랑자 캐쉬(돈 치들 역). 주인은 당장 꺼지라고 말하자 그는 권총을 꺼내든다. 잭은 기지를 발휘해 그의 로또를 현금으로 사고 그를 구원하려한다(!). 부랑자 흑인 캐쉬는 하나님의 천사의 현현이며, 아쉬울 것이 없다는 잭의 대답으로 인해 그의 인생은 하룻밤 사이 장자의 나비의 꿈처럼 그렇게 바뀐다. 그가 눈을 뜬 곳은 뉴욕 외곽의 조용한 마을의 가정집. 아내와 두 아이, 그리고 개까지 어리둥절 황당하기 그지없는 그는 비지니스맨이 아닌 패밀리맨의 인생을 살게 된다. 그 사실을 못받아들이는 그에게 현실은 냉혹하다. 그러나 서서히 자신의 일상에 익숙해질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엉망진창인 일상과 자신의 비지니스맨이라는 정체성의 갭을 줄여가고 드디어 새로운 성공을 향해 달릴 즈음... 천사의 현현이었던 흑인 부랑자가 준 자전거 따르릉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그는 한 마트에서 캐셔로 일하는 흑인 캐쉬를 다시 만난다. 이제 그의 '엿보기'는 끝이 났다는 것이다. 그럴 수 없다는 이제는 패밀리맨이 되었다는 가족이 있다는 그의 항의와 요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잠들지 않으려던 그는 다음날 아침 자신이 잠들었던 이전의 펜트 하우스 자신의 침대에서 크리스마스의 아침을 맞이한다.
엿보기... 우리의 인생의 다른 면을 잠시 엿볼 수 있다면 어떨까? 영화는 그러한 장면을 우리에게 펼쳐준다. 그러면서... 성공이란 무엇인지, 완벽한 삶, 위대한 삶, 행복한 삶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보도록 부추긴다. 감독은 똑똑하다. 브렛 레트너 감독, <러시 아워1,2,3>으로부터 <엑스맨: 최후의 전쟁>, <허큘리스>까지. 그는 전형적인 대중영화 감독이자 액션 영화감독이지만 또한 영화기획자이며 드라마류의 영화도 많이 감독했다. 그는 관객들과 밀고 당기기를 적절하게 하면서 우리 삶에 있어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일러주는 교사 같다. 그 가르침은 우리의 일상 속에 존재하는 '갭'을 통합해내는 시선이자 해석력이다. 13년만에 처음이라는 아내 케이트를 통해서 말하는 남편 잭의 "신선한 눈빛", 친구 어니 벤더가 자신이 바람피려 할 때 자신에게 조언했다며 다시 조언해주는 한 마디. "인생이 준 최고의 선물을 잊지 말아라!" 잭 캠벨이 다시 성공가도를 달리게 되어 뉴욕에 어리어리한 집을 아내에게 보여줄 때 아내의 하는 말은 화룡점정이다. "I love you", "우리"가 함께 있는 것이 익숙했던 행복한 우리집, 아이들이 좋아하는 학교보다 가치있다고. "우리"를 위해서라면... 당신의 말대로 할게요! 감독의 밀고 당기기에 방점을 찍는 부분이다. "우리". 그렇다. 성공은 그저 물질적인 풍요함, 좋은 집, 도시에서의 생활만이라고 할만한 이분법적인 분류가 아닌 '우리로 함께하기에 행복한 삶'... 그것은 어쩌면 유진 피터슨이 말한 일상의 "엉망진창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는 결코 창조성에 참여할 수 없다"(<목회자의 소명> 240쪽)라는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딸아이가 "돌아올 줄 알았어요"라고 말할 때 그 가슴 뭉클함이란... 그가 엿보았던 우리의 삶... 그것은 그의 일중심적 사고, 성취지향적인 도시적 삶만을 성공이라고 말하는 가치,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삶만을 추구하는 현대적 삶에 물음표를 던지는 감독의 의중인 셈이다. 그래서 우리 삶을 '신선한 눈빛'으로 다시 보도록 한다. "낯설게 보기"!
내게 주어진 삶은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딤전4:4). 그저 현실에 만족하고 안주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감독의 얘기가 잘못 오해되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염려하면서 봤다. 그러나 감독은 그 외줄타기를, 밀당게임을 적절하게 잘 해낸다. 그리고는 줄을 놓치 않고 끝까지 우리를 설득한다. 그래서 그 마지막 장면에서 처음 장면의 역전이 생길 때 그래 그렇게 떠나버렸던 남자와는 달리 여자는 순순히 파리로 떠나지 않고 머물며 밤새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그 공간 속에 "우리는 같이 있지!" 라는 임마누엘의 은혜가 임한다. "아하~!"하는 실존적 깨달음에 이른다. 그 돈오점수의 순간, 진리로 인한 자유의 순간. 그래, 우리라는 가치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 삶에 대한 건강한 해석이며, 주체적인 비전이고, 가장 나 다움을 회복하는 귀한 공동체적 좁은 길이다. 그 길로의 회귀, 회복, 각성을 이 영화는 기분 좋게 깨우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