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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트럼프의 예루살렘 선언과 갈등 폭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2월 6일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선언하고 미국대사관을 이전하겠다고 약속했고, 마침내 2018년 5월 14일 주이스라엘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했다. 이스라엘이 건국된 1948년 5월 14일을 유대인들은 건국기념일로 지키며, 이로 인해 고향 땅에서 밀려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15일을 나크바(재앙의 날)로 기념하는데, 정확히 70주년을 맞아 트럼프가 이런 충격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다.
팔레스타인과 예루살렘 문제는 지난 60년간 해결되지 못한 정치적, 외교적 난제였다. 예루살렘은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모두의 성지이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이 자신들의 수도로 주장하는 곳이다. 1947년부터 국제법상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 지역이다. 1967년 3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의 지배를 받고 있으나 유엔은 이를 불법으로 규정한다. 이스라엘의 강경파인 네탄야후 총리는 예루살렘은 나눠질 수 없는 이스라엘의 수도(Jerusalem is Israel's undivided capital)라고 강조하지만, 현실적으로 팔레스타인 사람이 주로 거주하는 동예루살렘과 유대인들의 서예루살렘으로 나뉜 상태이고, 미국을 포함한 대다수 국가는 실질적인 수도 텔아비브에 대사관을 두고 있었다.
현재까지 국제사회는 양측의 예루살렘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을 포함해 이스라엘의 평화와 서안(웨스트뱅크)과 가자 중심의 팔레스타인 독립을 내용으로 하는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해왔다. 심지어 이스라엘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온 미국 정부조차도 공식적으로는 양측의 중재자 이미지를 지켜왔다. 친이스라엘 성향이 강한 미국 의회에서 1995년에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자는 법안(The Jerusalem Embassy Act of 1995)이 통과된 바 있지만, 어떤 대통령도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그런데 트럼프는 평화를 위한 양측의 합의나 이스라엘의 어떤 양보도 없이, 엄청난 선물을 이스라엘에 일방적으로 던져주었고, 이는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아랍권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다. 트럼프의 결정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을 정당화하고, 예루살렘 전체가 자신들의 수도이며 이스라엘은 유대인 국가라는 네탄야후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으로, 이후 이스라엘은 더욱 대담하게 서안지구 내 정착촌을 건설하고 있다. 네탄야후가 예루살렘에 집착하는 것은 종교적 정치적 이유도 있지만, 예루살렘이 지대가 높은 산악지형이라 방어가 용이한 점, 서안의 내부로 깊이 들어간 위치로 인해 요르단 강과 지하수를 통제해 정착촌에는 물을 공급하고 나머지 팔레스타인 지역은 고사시키려는 지정학적 전략과 연관 짓는 주장도 있다.
가자지구 주민은 지난 2018년 3월 30일부터 이스라엘의 점령 정책에 항의하는 ‘위대한 귀환 행진’이라는 시위를 벌였는데, 미국대사관 개관식이 열린 5월 14일에만 2,700명 넘게 다치고, 60명이 이스라엘군의 총탄에 숨졌다. 거기에는 청소년과 어린이 6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중 14살 소녀 위살 셰이크 칼릴(Wisal Sheikh Khalil)은 태어나서 한 번도 가자지구를 떠나지 못했던 절망적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 했고, 11살 남동생 모하메드는 이스라엘군의 총알이 누나의 머리를 관통하는 것을 옆에서 보았다. 6월 1일에는 부상한 시위대를 치료해온 의료봉사자인 라잔 안-나자르(Razan Ashrafal-Najjar)라는 여성이 의료진 표시가 된 하얀 유니폼을 입은 채 이스라엘군의 총탄에 맞아 숨져서 충격을 주었다. 3월 30일 이후 현재까지 최소 122명의 팔레스타인 사람이 숨졌다. 21세기에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민간인들이 시위를 한다는 이유로,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총기로 조준사격 당해 살해되는 비참한 현실이다.
2. 봉쇄된 가자지구: 지붕 없는 감옥
이스라엘과 미국의 우파는 이러한 충돌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운동에 대해, 테러 조직 하마스가 조직적으로 가자 주민들을 인간방패나 총알받이로 내세우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전문가들 의견은 다르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점령 정책과 서안에서의 정착촌 확대, 그리고 지붕 없는 감옥이라 불리는 가자에서의 봉쇄 정책을 끝없는 갈등의 원인으로 지적한다.
가자에서 부패한 이미지의 파타를 누르고 선거에서 승리한 하마스가 2007년 실권을 잡자, 하마스를 테러 조직으로 비난해온 이스라엘은 11년째 가자지구 경계선을 봉쇄하고 외부 접근과 인적 물적 교류를 차단해왔다. 가자지구의 동쪽과 북쪽은 이스라엘이 설치한 8m 높이의 장벽으로 막혔고, 지중해로 통하는 서쪽의 해안은 이스라엘군이 조업을 하거나 나갈 수 있는 수역을 단 6마일(약 9.5km)로 통제하고 있으며, 이집트와 통하는 남쪽 국경도 봉쇄되어 있다. 길이 40㎞, 폭 10㎞에 불과한 좁은 땅에 190만 명이 11년째 갇혀 있는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이 관리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지붕 없는 감옥이라 칭해진다.
노르웨이 난민위원회(NCR)에 따르면 가자지구는 지하수의 98%는 오염돼 식수가 부족하고, 매일 최대 22시간 동안의 단전을 겪어 하루 2-4시간 이상 전기를 쓸 수 없다. 어린이들은 영양실조로 발육 부진을 겪고, 46%의 어린이들은 심각한 빈혈을 경험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엑스레이 같은 진단용 장비조차 군사용으로 사용될 수 있다며 수입을 막아,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이들도 많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올해 가자의 1인당 국민소득은 1,826달러(약 197만 원)로 세계 최빈국 수준이다. 2,659달러였던 1994년에 비해서도 심각하게 하락했다. 실업률은 44%, 그중 청년 실업률은 60%를 넘는다. 인구의 80%가 UNRWA(국제연합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 등 국제기구의 원조로 연명하고 있는데, 이마저도 미국이 자금 지원을 절반 이하로 삭감했다.
유엔은 “이러한 봉쇄조치가 완화되지 않으면 2020년 이전에 사람이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 가자지구에서는 경제적인 기회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고, 인간다운 삶의 기반이 무너지며, 끊임없이 갈등과 폭력이 지속되고 있다. 190만 명 중 30만 명이 심리적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며, 50%의 어린이들이 삶의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어 일종의 집단적 학대와 트라우마 증상을 보이고 있다. 무슬림에서 죄악으로 여기는 자살도 급증해 2016년 자살자가 전년의 세 배에 달했다. 한 예로, 5월 20일 출산을 앞둔 아내를 위해 진료는커녕 기저귀와 우유도 사줄 수 없는 현실에 절망한 가자지구의 22세 청년 파티 하르브(Fathi Harb)는 분신을 해 3일 만에 사망했다.
극심한 절망은 인구의 66% 달하는 25세 미만의 젊은이들을 자발적 투쟁에 뛰어들게 했다. 26세 아흐메드 아부 타윌은 5월 15일 중동 매체 〈미들이스트아이(MEE)〉와 인터뷰에서 “8살 때 시위에서 동네 형이 이스라엘군의 총에 맞는 걸 봤다. 18년이 흘렀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고립된 환경에서 우리가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시위뿐이다”라고 밝히며, “위험하지만 시위만이 내 삶을 바꿀 최선이라고 믿는다. 그들(이스라엘)은 우리의 꿈을 말살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봉쇄 정책으로 절망한 이들이 시위에 뛰어들거나 무장투쟁에 나서면, 이스라엘은 다시 그들을 테러리스트라 규정하고 공격한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의 사리 바시(Sari Bashi)는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기고문을 통해 “이스라엘 정부는 모든 시위대를 하마스의 요원으로 취급하고 치명적인 무력을 사용한다”고 비판했다.
이스라엘이 강경 정책을 펴기 위해, 팔레스타인의 분열과 테러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예를 들어 노암 촘스키는 《숙명의 트라이앵글》에서 이스라엘의 강경파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온건화되어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을 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 강경책을 써서 상대를 극렬화하는 정책을 썼다고 설명한다. 이를테면 1982년 레바논을 침공하여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학살을 조장하여 갈등을 증폭시키고(이 결과로 강경무장단체 헤즈볼라 결성), 심지어 1987년 이스라엘 정보부는 팔레스타인 사회를 분열시키기 위해 종교적 색채가 강한 무슬림 형제단을 이끄는 야신의 하마스 창설을 지원했다는 주장도 있다. 현재 PLO의 후신인 파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부패와 무능의 이미지로 인기가 없고, 임기가 끝났음에도 선거 없이 계속 집권하고 있는 아바스 역시 말로 때우는 것 외에 별다른 지도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3. 국제사회의 반응과 중동의 국제정세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문제는 국제기구에서의 갈등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2011년 10월 31일 유네스코(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가 193개 회원국 중 107개국의 찬성으로 팔레스타인을 정회원국으로 공식 승인하자, 유네스코 최대 자금 출연국인 미국은 분담금을 내지 않겠다고 했다. 2012년 11월 유엔 총회에서 팔레스타인은 ‘비회원 옵서버 국가’ 지위를 획득했는데, 표결권 없는 ‘비회원 옵서버 단체’에서 ‘비회원 옵서버 국가’로 격상된 것이다. 193개 회원국 중 찬성 138개국, 반대 9개국, 기권 41개국으로 세계 주요 국가 중에 이스라엘, 미국, 캐나다 외에는 반대가 없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통과되었다. 2011년 11월 이후 분담금을 내지 않던 미국은 2017년 10월 12일, 반(反)이스라엘 편향성(이스라엘을 ‘점령국’으로 규정하는 반복된 유네스코 결의안 등)을 이유로 유네스코에 탈퇴를 통보했다. 2017년 12월 6일 트럼프의 예루살렘 선언 직후 12월 21일의 유엔 총회에서는 트럼프의 선언에 반대하는 결의안이 압도적 표차로 통과되었다.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더욱 구속력을 가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안이 무산되자 거부권이 없고 과반의 지지만으로 통과 가능한 유엔 총회에서 결의안을 채택한 것이다. 193개 회원국 중 128개국이 찬성했고, 반대는 단 9개국, 기권 35개국, 불참 21개국이었다.
금년 5월 14일 다수의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하자 이슬람권 57개국 모임인 ‘이슬람협력기구’(OIC)는 5월 18일 터키에서 긴급 정상회의를 열어 국제사회에 팔레스타인인의 보호를 촉구하고 예루살렘의 지위 변경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특히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은 팔레스타인의 참상을 나치와 홀로코스트에 비유하는 등 이스라엘을 강하게 비난했다. 역사적으로 터키는 이스라엘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실질적인 조치보다는 최근 이슬람화 정책으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해온 그가, 선거를 앞두고 지지자 결집을 위해 이 문제를 활용한다는 지적도 있다. 무엇보다 이슬람권 내에서 수니파와 시아파를 대표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간 이견이 있어 이슬람권의 공동대응에 한계가 있다. 사우디의 권력을 장악한 빈살만 왕세자는 최근 극비리에 이스라엘을 방문했다는 설이 있는데, 친미·친이스라엘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6월 1일에는 유엔 안보리에서 중동 국가들을 대표해 쿠웨이트가 이스라엘의 무력 사용을 비난하는 동시에 팔레스타인 민간인 보호를 요청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제출했으나, 역시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해 무산되었다. 미국의 유엔대사인 니키 헤일리는 이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 노력을 훼손하는 결의안으로 팔레스타인 쪽에 심각하게 치우친 내용”이라 반대하면서 “여기 있는 어떤 국가도 이스라엘처럼 자제력을 가지고 행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끔찍한 사태의 일차적인 책임은 테러리스트 그룹 ‘하마스’에 있다”고 이스라엘을 옹호했다. 안보리 결의안 실패 후 6월 13일에는 다시 유엔 총회에서 가자지구 사태와 관련 이스라엘군의 실탄 진압을 비판하는 결의안이 제출되었고, 찬성 120표, 반대 8표, 기권 45표로 통과되었다. 통과 전에 헤일리 대사가 하마스의 폭력 행위를 규탄하는 문구를 추가한 수정안을 냈으나 채택되지 않았다.
이렇게 보면 팔레스타인에 동정적인 아랍 국가들이 많고, 세계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비난 여론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유엔의 구조를 보면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미국이 실질적인 효력을 행사하는 안보리에서 이스라엘에 비판적인 결의안에 모조리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엔 총회의 결의안 통과는 사실상 상징적인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122명이 시위 중 사망하고, 국제 여론이 비난으로 들끓어도, 미국의 확고한 지지를 등에 업은 이스라엘에 실질적인 압력은 가해지지 않았다. 이것이 국제사회의 현실이다.
4. 미국의 일방적 친이스라엘 정책
과거 미국의 중동 정책의 주요 목표는 냉전기 소련의 영향을 막고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는 것, 석유 자원을 장악하고 안정적인 공급을 유지하는 것, 그리고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지지하는 것이었다. 특히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해 미국이 중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왔다. 어떤 면에서 중동의 역사는 이스라엘에 위협을 끼치는 국가들이 하나씩 제거되거나 교체되는 과정으로 보인다.
2007년 미국의 진보적 매체인 〈데모크라시 나우〉(Democracy Now)에 NATO 사령관 등을 역임하고 퇴역한 4성 장군 웨슬리 클락이 출연해 충격적인 사실을 공개한 적이 있다. 9·11테러 발생 후 10일 정도 후인 9월 20일경, 그가 펜타곤(국방성)에 방문해 국방장관 럼즈펠드와 폴 월포위츠 국방부 차관을 방문하고, 아래층의 합동참모본부에서 과거 자신과 일했던 장성들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는 것이다. 내용은 그중 한 명이 ‘이라크를 침공하기로 결정을 내렸다’라고 알려주기에 왜 공격하냐고 묻자 자신도 모르겠다며 어리둥절해 했다는 것이다. 몇 주 후, 그가 다시 펜타곤을 방문해 같은 장성에게 이라크를 정말 공격하느냐고 묻자, 그는 ‘그때보다 상황이 더 나쁘다’며 럼즈펠드에게 받은 메모를 가리켰다고 한다. 그 내용은 미국이 5년간 7개의 중동 국가를 제거하기로 결정했는데, 이라크부터 시작해, 시리아, 레바논, 리비아, 소말리아, 수단, 그리고 마지막은 이란이었다는 것이다.
정황상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당시 부시 정부의 외교 정책을 좌우한 네오콘일 텐데, 그들은 유대계이거나 확고한 친이스라엘 정책으로 유명한 인사들로서 주요 목표가 이스라엘의 적들을 제거하는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이 사실이 매우 놀라운 이유는 2001년 9·11 이후 2003년 이라크 전쟁이 개시되기까지, 전쟁에 대한 격렬한 찬반 여론이 있었는데 이미 국방부 내부에서는 9·11 직후 이라크 침공을 결정하고 심지어 7개의 국가를 제거하는 장기 계획까지 세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후 상황을 보면 이라크와 리비아 정권은 확실히 제거되었고, 러시아가 아니었다면 시리아도 무너졌을 가능성이 크다. 중요성이 적은 레바논, 소말리아, 수단을 제외하고, 아직 정권이 유지되어 이스라엘을 위협할 수 있는 세력은 이란뿐인데, 미국과 이스라엘의 강경파는 이란에 대한 공격을 오래전부터 거론해왔다. 트럼프는 오바마가 안보리 상임이사국과 독일을 포함한 다자 협상으로 만들어낸 이란과의 합의를 결국 파기했다.
이제 이스라엘에게 중동에서 위협이 될 수 있는 세력은 이란이 유일하다. 네탄야후 같은 강경파는 이란이 가자지구의 하마스나, 레바논의 헤즈볼라 등을 지원한다는 점과 이란의 핵개발 의혹을 제기하며 이란에 대한 공격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불법으로 핵무기를 개발해 핵무장 국가가 된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해서는 핵실험도 아닌 핵개발에 대한 ‘의구심’만으로 선제공격을 하겠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친이스라엘 인사들은, 이스라엘이 불법으로 핵개발을 했던 것은 아랍의 위협으로 인한 자위적 차원이라고 주장했으면서, 이란의 핵개발은 이스라엘 공격용이자 테러 조직에 전달할 우려가 있다고 공격한다. 결국 이스라엘 강경파는 자신에게 마지막 남은 위협인 이란을 고립·약화시키거나 최종적으로 붕괴시키고자 하는 게 아닌지 추측된다. 하지만 면적이 이라크의 세 배에 달하고 군사적으로도 강력한 이란과 전쟁이 일어난다면, ISIS의 등장이나 시리아 사태 못지않은 대재앙이 일어날 것이다.
미국은 전체 해외 원조의 5분의 1을 이스라엘에 안겨주는 등 경제적, 군사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그 뒤에는 AIPAC(미국이스라엘공공정책위원회)으로 대표되는 유대계 로비가 미국의 정치와 여론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세대주의와 시오니즘을 믿는 보수 기독교인들의 무비판적인 지지가 있다. 태극기 집회에 태극기, 성조기, 이스라엘 국기가 등장한 것이 상징하듯,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가 아닌 근본주의, 문자주의, 인종주의적 해석에 빠진 기독교인들은 팔레스타인의 비극에 간접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5. 팔레스타인에 평화의 희망은 있는가
팔레스타인의 현실, 이스라엘의 점령 정책, 중동의 상황, 미국의 친이스라엘 정책 등을 보면, 과연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평화의 희망은 있는가’ 고통스러운 질문을 던지게 된다. 과거 오슬로합의 등 2국가 해법에 기반한 평화협상이 시도되었지만, 이제 2국가 해법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늘어나고 있다. 네탄야후로 대표되는 이스라엘 강경파는 팔레스타인 내부의 과격파를 문제 삼고 분열시키는 동시에, 평화협상을 거부하고 팔레스타인 독립을 무한정 지연시키면서 서안에 지속적으로 정착촌을 확대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하거나 쫓아내, 결국 장기적인 고사 정책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비난과 압력을 막아주고, 중동에서 이란 외에는 실질적으로 이스라엘에 위협이 되는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중동의 미국-이스라엘 패권은 공고해지고 있다. 일종의 ‘이스라엘에 의한 평화’(팍스 이스라엘리카)가 중동에 임하는 것인데, 이는 아랍인들과 팔레스타인인들의 피와 눈물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닌가 질문하게 된다.
영국의 〈가디언〉은 가자 주민이 다른 세상으로부터 버려졌다는 자포자기의 심경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결국 팔레스타인인들은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고립되고 고사되어 사라져갈 지도 모른다. 정의와 평화를 바라는 이들이 관심을 갖지 않으면, 오늘 팔레스타인인들이 겪는 역사는 2차 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가까운 인류 역사의 수치로 기억될 것이다.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이들은 그들의 피와 부르짖음에 책임이 있다.
이인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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