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의 재발견] 여인들의 얼레빗… 마음속 애환까지 빗다
반달모양의 빗살이 굵고 성긴 얼레빗 ‘가장 대중적’ ‘아름다움’은 우리의 일상생활 구석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 예쁜 것’은 비단 ‘풀꽃’만은 아닌 듯하다. 사물을 꿰뚫어보는 심미안을 갖춘 우리 선조들은 소박하고 절제하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고스란히 보여주는 작품들을 남겨놓았다. 때로는 화폭, 때로는 도자기, 때로는 자그마한 한옥의 구들방 한편에서 발견할 수 있는 우리 고유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풍성하고 윤기 나는 머리카락은 젊음과 건강과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나아가 다양한 머리 모양은 미(美)와 신분(身分)과 위세(威勢) 등을 표출하는 하나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래서 머리카락을 가꾸고 머리 모양을 단장하기 위해 예로부터 다양한 방법과 도구가 개발되었다. 그럼 지금 우리 손엔 어떤 머리빗이 들려 있는지 들여다보자. 대부분 어디에서나 살 수 있는 값싼 플라스틱 빗이 들려 있지 않은가? 간혹 누구나 알 만한 명품 브랜드의 제품이 윤택한 머릿결 관리는 물론 탈모 예방 등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여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끌기도 하지만 우리 전통과는 거리가 멀다. 옛 문헌을 찾아보면 우리 민족은 고대부터 검고 윤택한 머릿결을 잘 가꾸기로 유명하여 중국으로 수출까지 한 기록이 남아 있다. 그렇다면 우리 선조들은 과연 어떤 빗에 어떤 마음을 담아 빗질을 하였던 것일까?
일찌감치 빗질의 중요성을 안 우리 민족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단정한 차림새, 즉 ‘의관정제(衣冠整齊)’를 매우 중요시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이미 고조선 시대부터 발달된 두발문화가 형성되었다. 이에 따라 머리빗처럼 머리 모양을 가꾸는 데 필요한 수발(鬚髮) 용구와 방법도 이른 시기부터 발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고구려 고분벽화나 출토된 빗 유물들에서 그 자취를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길고 윤택한 머리카락을 관리하기 위해 유두일(流頭日)에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거나(東流頭沐浴·동류두목욕), 머리카락에 동백기름이나 아주까리기름 등을 바르고 정성스러운 빗질로 머릿결을 가꾸는 등의 오랜 풍습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건강하고 윤기 나는 머릿결을 가꾸기 위해 우리 조상들이 사용하던 머리빗은 어떻게 생겼을까? 기억을 더듬어보면 조선시대 풍속화나 근대 회화작품, 또는 문헌자료 속에 묘사된 머리빗이 어렴풋이 떠오를 것이다. 또는 옛이야기 등을 통해 보름달처럼 둥근 거울, 반달 같은 머리빗이라는 표현도 기억날 수 있다. 바로 그 반달 같은 머리빗이 ‘얼레빗’이다. 이 밖에도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 아이들 머리에 생긴 이와 서캐를 잡기 위해 사용한 촘촘한 빗날의 ‘참빗’이 있다. ‘얼레빗’과 ‘참빗’, 이 두 가지 모두가 우리 민족의 전통 빗이다.
그중 ‘얼레빗’은 빗살이 굵고 성긴 것으로 가장 대중적인 빗이다. 한자어로 빗은 ‘소(梳)’라고 쓰고 얼레빗은 ‘목소(木梳)’라고 하며, 얼레빗을 만드는 장인은 ‘목소장(木梳匠)’이라고 했다. 얼레빗이 주로 나무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형태가 주로 반달과 같은 반월형(半月形)이었기 때문에 ‘반달빗’, 또는 한자로 ‘월소(月梳)’ ‘반월소(半月梳)’라고도 했다. 반면 ‘참빗’은 얼레빗보다 빗살이 가늘고 촘촘한 대나무 빗을 말하고 한자어로는 ‘진소(眞梳)’, 혹은 ‘죽소(竹梳)’라고 했다.
빗질을 할 때는 얼레빗으로 긴 머리채를 대강 빗어 가지런히 한 다음 참빗으로 곱게 빗어 내렸다. 옛말에 빗질을 하루에 1000번 하면 중풍도 예방되고 머리도 세지 않는다고 해서 여인들뿐 아니라 남자들도 빗질을 중요시했다. 또 《동의보감(東醫寶鑑)》에도 빗질을 많이 하면 눈이 밝아지고 풍을 예방한다고 나와 있다. 이는 옛날부터 정성스러운 빗질은 두피에 자극을 주어 건강 증진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몸과 마음을 함께 단장하던 도구, 얼레빗
현존하는 얼레빗 유물과 얼레빗에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는 얼레빗이 단순히 머리를 빗는 용도로만 쓰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말해준다. 먼저 얼레빗의 재료를 살펴보면 나무로 만든 것이 대부분이지만 대모(玳瑁·거북이 등껍질)나 뿔(角·소뿔)·뼈(骨·소뼈)와 같은 값비싼 재료로 만들거나 칠(漆·옻칠)·화각(畵角)·옥(玉)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것들도 꽤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통일신라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빗을 만드는 재료와 장식의 종류를 제한하였다는 기록이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있다. 또 값비싼 재료로 화려하게 장식한 장식용 빗도 남아 있다. 이러한 점들로 보아 전통 빗이 단순히 머리카락을 빗는 일상용구에 그치지 않고 신분과 위세의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한편 옛말에 ‘가난하여 빈 몸으로 시집가는 처녀도 허리춤에 빗 하나는 넣어간다’ ‘얼레빗 참빗 품고 가도 제 복이 있으면 잘 산다’고 하였다. 이는 빗이 필수적인 혼수품이었고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머리를 빗고 몸단장에 소홀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빗은 허혼(許婚)과 정조(貞操)의 상징이기도 했다. 청혼 때 남자가 준 빗을 여자가 받으면 결혼을 승낙하는 의미였고, 그 빗을 잃으면 정조를 포기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래서 남편을 잃은 부인은 남편의 관(棺)에 자신이 쓰던 빗을 넣는 것으로 수절을 다짐하기도 했다.
또 직접적으로 빗이 언급된 개인 문집(文集)들이 꽤 남아 있는데, 그중 한 예로 황진이(黃眞伊)는 ‘영반월(詠半月)’이라는 자신의 시조에 “하늘의 반달은 직녀가 던져놓은 얼레빗”이라고 표현하였다. 곧 하늘의 반달을 반달처럼 생긴 얼레빗의 생김새에 비유하여 임을 기다리는 여인의 마음을 묘사한 것이다. 이렇듯 얼레빗이 전통적으로 여성들의 필수 애장품으로서 그들의 애환을 같이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자주 보이는 문구 중 ‘아침에 일어나 소세(梳洗)하고…’ ‘소세는 하였는가?’ ‘오랫동안 소세도 아니 하고…’ 등의 표현에서 ‘소세’는 단순히 ‘머리를 빗어 정갈히 하다’는 의미에서 확장되어 ‘외적으로는 매무새를 정리하고, 내적으로는 몸과 마음을 단정히 가다듬는다’는 의미인 점으로 보아 우리 선조가 머리 빗는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즉 얼레빗은 한국인의 전통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생활필수품이기도 하였지만 나아가 그 내면에 우리의 정신문화까지도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세월 속으로 사라져간 얼레빗의 기억
조선시대까지는 목소장(木梳匠)과 죽소장(竹梳匠)이 전문적으로 빗을 제작하였다. 그러나 1895년(고종 32)에 단발령(斷髮令)이 내려지고 생활양식이 서구화되면서 파마머리 등 두발 양식이 급변함에 따라 전통 빗의 수요가 급감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까지도 곳곳에 빗을 만드는 ‘빗장이’들과 ‘빗장수’들이 활동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1960년대 들어 국내에서 플라스틱 빗이 생산되면서 전통 얼레빗의 수요는 단절되었다. 이에 따라 현재는 조선시대 빗은 일부 개인 소장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박물관에 가서나 볼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현존하는 얼레빗 유물들을 살펴보면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반달빗 외에도 다양한 종류와 크기의 얼레빗이 있다. ‘반달빗’은 반원형으로 폭은 10~11㎝, 높이는 5~6㎝ 정도이며, 빗살의 성글기는 크기와 용도에 따라 조금 차이가 있으나 남녀노소 구분 없이 사용된 가장 일반적인 빗이다. 귀 밑에 흩어져 있는 머리카락(귀밑털·살쩍)을 단정히 빗어 넘길 때 사용하는 ‘면빗’은 ‘반달빗’보다 가늘고 촘촘하며, 폭도 좁고 크기도 작다.
또 남성들이 상투를 틀 때 사용하는 작은 빗인 ‘상투빗’은 폭이 좁고 빗살이 깊은 것이 특징이다. 남성 전용의 ‘상투빗’이 있다면 여성 전용으로는 ‘가르마빗’이 있다. ‘가르마빗’은 말 그대로 여자들이 쪽머리를 할 때 가르마를 타기 좋게 한쪽 끝을 길고 뾰족하게 만든 빗으로 여성용이기 때문에 대부분 장식이 화려하다. 이 밖에 빗살이 양쪽에 달려 있는 ‘음양소’라는 빗도 있다. 빗살의 간격이 한쪽은 성글고, 한쪽은 촘촘하여 얼레빗과 참빗의 두 기능을 겸하기 때문에 평상시에 간단히 머리카락을 손질할 때 사용되기도 하고, 여행 갈 때 휴대용으로 갖고 다니기도 하였다. 얼레빗은 작고 단순해 보이지만 얼레빗을 만들 수 있는 재료는 매우 까다로운 조건을 필요로 한다. 나무의 색감과 무ㅤㄴㅢㅅ결도 아름다워야 하지만 빗살이 부러지기 쉽기 때문에 단단하면서도 탄력이 있어야 한다. 또 가공이 쉬우면서도 가공 후 변형도 작어야 되고 무엇보다 표면이 매끈해서 머리칼이 뜯기지 않아야 한다. 전통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느릅나무·단풍나무·대추나무·도장나무·박달나무·소나무가 빗의 소재가 되었다. 특히 고흥지방의 유자나무, 제주도의 해송·피나무·가문비나무 등도 쓰였는데, 제주도의 해송과 유자나무로 만든 얼레빗을 쓰면 병을 고쳐주고 귀신을 쫓는다 하여 인기가 있었다.
한편 얼레빗을 만드는 데는 일반 목공도구 외에 특별한 도구들이 필요하다. 특히 빗살을 켜기 위해 톱날이 이중으로 된 ‘살잽이톱’과 빗살을 다듬을 때 사용하는 ‘살밀이줄’이 필수적인데 수요 단절에 따라 도구의 생산도 중단되었다.
이처럼 특별한 재료와 도구, 기술이 필요한 얼레빗은 현대의 싸구려 플라스틱 빗에 밀려 완전히 사라진 듯 보였다. 그러나 최근 다행스럽게도 한 장인에 의해 그 맥이 이어지게 되었다. 2010년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42호 공주 목소장 기능보유자로 지정된 이상근 목소장(57)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가업을 통해 익힌 기술로 30여 년간 전통 얼레빗을 만들어왔다. 근래 들어 구하기 쉽고 독성이 없는 대추나무와 배나무·자두나무·복숭아나무·살구나무 등 유실수로 만든 그의 얼레빗이 두피나 머리카락에도 좋다고 알려지면서 우리 것에 대한 관심 고조와 웰빙을 추구하는 사회 분위기를 타고 점차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천천히 삶을 누리는 방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요즘, 오랜 세월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얼레빗으로 꼼꼼히 머리를 빗으며 혜안이 높았던 조상들의 삶의 여유를 닮아보는 것도 좋겠다.
▲최영숙 =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및 경기도 문화재전문위원. 홍익대와 서울대, 동덕여대에서 공예사를 강의하고 있다. 2013년 12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펴낸 우리공예 디자인리소스북 《한눈에 보는 한지》의 주 저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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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화타 윤경재 원문보기 글쓴이: 화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