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이튿날 영화 한 편을 봤습니다.
“가족 모두가 볼 만한 영화가 있냐?”
아이들이 신이 났습니다. 여기 저기 알아 보더니 한 편을 골랐습니다.
“눈물을 펑펑 쏟는다는데요?”
“그래?”
“아빠가 좋아하는 신현준 나오는데!”
신현준이란 배우는 신앙이 좋은 청년입니다. 길죽한 코 때문에 아직도 코가 자라고 있다는 농담을 듣는 분입니다. ‘맨발의 기붕이’로 나온 배우입니다.
영화 제목은 ‘마지막 선물’입니다.
이른 아침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별로 인기 없는 영화라 그런지 영화관은 헐렁했습니다. 네 식구가 나란히 앉았습니다. 아이들이야 영화 보는 일이 생활의 일부분이지만 저는 몇 년 만에 영화관을 찾은 것 같습니다.
참 이해되지 않는 게 이것입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 피곤합니다. 쾅쾅거리는 소리가 영화를 본 다음에도 한참 동안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눈알이 해롱거려서 한동안 심호흡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다릅니다. 피곤하니까 영화를 보러 갑니다. 영화를 보면 피곤이 풀린답니다. 참 희한합니다. 세대 차이입니다.
영화 스토리는 뻔합니다.
소녀가 있는데 아빠가 둘입니다. 길러준 아빠는 아주 착하고 성실한 경찰관입니다. 낳아준 아빠는 못돼 먹은 깡패입니다. 두 아빠는 어려서부터 친구 사이입니다. 길러준 아빠인 경찰관이 낳아준 아빠인 깡패와 함께 살면서 어떻게 하든지 선도해 보려고 하지만 막무가내입니다. 배신과 배반을 물마시듯 합니다. 낳아준 아빠는 처음엔 자기 딸인 줄 몰랐다가 어떤 기회에 핏줄임을 알게 됩니다.
그때부터 깡패의 마음이 움직입니다. 아무 것 도 해 준 게 없는 자신의 처지가 처량합니다. 딸은 불치의 병으로 사그라져갈 형편입니다. 수술비가 문제입니다. 낳아준 아빠가 결심합니다. 멀리했던 깡패들과 연결해서 돈을 마련합니다. 이게 마지막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그에게는 비극이 찾아듭니다. 수술비는 마련했지만 연결된 깡패들에 의해 테러를 당합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온통 병원에 있는 딸에게 가 있습니다. 상처 난 배를 움켜쥐고 병원으로 달려갑니다. 딸에게 간을 이식시켜 주기 위해서입니다. 아무 것도 해 주지 못한 딸에게 마지막으로 뭔가를 주고 싶어서입니다. 드디어 딸에게 간을 이식해 주고 그는 숨을 거둡니다. 자신은 죽고 딸은 살렸습니다. 그는 미소를 머금고 눈을 감습니다.
영화를 보던 아내의 손이 눈으로 갑니다. 아이들의 손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그냥 눈물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영화는 매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은 사랑이지만 그 위대한 사랑은 미안함에서 출발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미안함을 품고 있는 사람입니다. 누군가에 대해서 미안하다면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깡패 아빠가 딸을 느끼는 순간 한없는 미안함 속에 빠집니다. 그리고 그의 악한 마음이 무너집니다. 다 녹아져 버립니다.
오늘 가슴에 미안함을 품습니다. 인생이란 생각해 보면 모두에게 미안한 것뿐입니다. 행복의 입구에는 오늘도 미안함이 살고 있습니다. 사랑을 품은 사람의 입 속에도 미안함이 살고 있습니다.
아! 오늘의 힘은 미안함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