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1974년, 평생 정토, 말년 출가하여 극락 간 사천 백운암 혜타 스님
年代: 佛紀 二千五百十八年 甲寅 (1974)
泗川 白雲庵 比丘尼 慧陀 (1904~1974) 碑文
경남 사천시 사천읍 토촌길 181-15
智冠, 『韓國高僧碑文總集』 - 조선조·근대편, 1224쪽
백운암 혜타(慧陀) 비구니 행적 비
사천읍 비구니 혜타 스님은 백운암을 크게 발전시키고 불법을 널리 펴서 사람들을 많이 이끄신 스님이다. 스님의 속성은 김이요, 본은 경주니 서기 1904년 대한 광무 8년 갑진 8월 24일 함경남도 영흥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김상진金尙鎭이요, 어머니는 평양 염廉 씨다.
7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13살에 함경남도 문천군 덕원면 당모리 강유진康有鎭에게 시집갔다가 24살에 남편과 따로 살면서 기독교 신자로 종사하기 여러 해이었다. 33살에 어머니 상사를 만났는데, 탁발하는 스님의 권고로 49재를 베풀어 천도하고 그 인연으로 불교에 귀의하였다.
37살에 안변군 석왕사에서 한암漢巖 스님에게 보살계를 받았으며, 미타행彌陀行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불교에 귀의한 뒤부터 10년 동안 고향에서 해월사海月寺 망경암 望京庵, 도창사道昌寺, 재성암再醒庵 같은 법당들을 혼자서 다시 짓는 시주가 되었고, 문평면文坪面에 있는 집을 석왕사에 헌납하여 포교당을 만들었다. 반년 동안에 지은 불사는 부처님 3분, 가사 100벌, 탱화 6축을 조성하였고, 백운암에서 여러 번 석암昔巖 스님을 청하여 보살계 법회를 열어 여러 사람에게 신심을 일깨워 주었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 와서 있으면서 호국역경원護國譯經院과 경국사慶國寺를 다니면서 아미따경을 읽고 정토에 전심傳心하였다. 1951년 가을에 경상남도 사천군으로 이사하였고, 1955년에는 불교정화운동에 참여하여 상대방 관리와 대결하며 조계사 대웅전을 고수하는 데 공로가 있었다.
1958년 사천읍 백운암을 설립한 이 거사의 간청으로 백운암에 들어가 있으면서 전당 7채를 더 짓고, 토지 1,800평과 임야 7반보反步(1반보=300평)를 사들이고, 전기를 끌어오고, 통행하는 길을 넓히고, 상수도를 마련하는 등 절을 발전시키는 데 힘썼다. 또 이웃 사람들에게 불교를 포교하는 정토사상을 일러주어 수백 명의 신도를 얻었는데, 지금 백운암 신도회장 아무개 씨는 본래 기독교인데 스님의 교화를 받고 불교로 돌아온 사람 중의 한 분이다.
1971년 4월에 68세 늙은 몸으로 중이 되어 경기도 의정부시 회룡사回龍寺 주지 도준道準 비구니의 상좌가 되었으니 수계사는 석암昔巖 스님이다. 70살에 양산군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구족계를 받고, 1974년 4월 8일에 사바를 떠나니 나이는 71이요, 법랍은 34라.
맏딸과 둘째 딸도 비구니가 되었다. 나는 이 스님을 모르는데 봉선사奉先寺 운경 雲鏡 스님의 부탁을 받고 이 스님의 막내딸 강상 품화康上品華가 기록한 행적에 따라 이 글을 적는다.
서기 1974년 6월 ○일
운허 용하耘虛龍夏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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