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표 집시음악은 정통 집시음악의 강한 느낌 대신 가요・뉴에이지・팝 등 대중적인 맛을 더했다. 그는 “집시음악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변방의 음악 아니냐고 하는데 음악 평론가도 집시나 재즈를 구분하지 못해요. 이름만 생소할 뿐 특이한 음악은 아니에요”라고 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클래식 기타를 배워온 박주원은 20대 초 집시음악에 매료됐다.
“우연히 뉴에이지 뮤지션 야니의 공연을 보게 됐어요. 그의 세션맨이었던 페루 출신 기타리스트가 집시 장르를 연주하는 걸 보고 ‘이거다’라고 생각했어요.”
평소 팝과 클래식적인 감성이 섞인 음악을 하고 싶었던 터라 집시 장르의 선율은 그의 심장을 뛰게 했다.
박주원은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네 손가락으로만 기타를 연주한다. 일명 ‘신들린 핑거링’이라고 불리는 박주원 특유의 역동적인 주법이다.
쉴 틈 없이 강렬한 리듬을 뿜어내는 그의 연주는 구슬픈 정서가 그대로 전달되는 느낌이다. “연주에 한이 서려 있다는 평을 자주 듣는다”는 그는 “어릴 적 경험이 은연중에 녹아드는 것 같다”고 했다.
어릴 때 아버지 사업이 흔들려 가세가 기울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어머니는 살림이 어려움에도 그에게 악기를 배우게 했다. 고생하는 어머니를 보면서도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기타밖에 없어 속상했다고 한다.
“‘집시음악은 리듬이 다이내믹하고, 멜로디와 연주는 화려하고 강렬해요. 신나면서도 그 안에 슬픈 감정이 녹아 있어 춤을 출 수는 없는 양면성이 내재되어 있죠. 듣는 사람도 연주하는 저도 묘한 여운이 남는 것 같습니다.”
임재범·이소라 등 유명 뮤지션 앨범에 세션맨으로 참여
박주원은 2009년 1집을 발표하기 전에도 연주자로 이름을 떨치던 뮤지션이었다. 2004년 가수 임재범의 공연에서 세션 활동을 시작해 여러 가수들의 음반 작업에 참여했다. 임재범・이소라・성시경・김범수・신승훈・ 조규찬 등 인기 가수들의 앨범 재킷에서 그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세션 활동을 하는 연주자들이 자신의 음반을 내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션맨 활동을 하면 할수록 클래식 기타에 대한 갈증이 깊어졌고 솔로 음반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틈틈이 떠오르는 악상을 휴대전화에 녹음해놓은 걸 세어보니 70~80곡 되더군요. 그중 다이내믹한 리듬과 확실한 멜로디가 있는 음악을 추려 앨범을 냈어요.”
그의 앨범엔 기타 연주곡 외에 객원 보컬이 참여해 ‘노래’가 가미된 곡도 있다. ‘방랑자’는 최백호가 난생처음 남의 음반에 자신의 목소리를 빌려준 곡이다. 박주원의 기타와 최백호의 목소리는 묘하게 잘 어우러진다.
“최백호 선생님한테 노래를 부탁하는데, 외람된 건 아닌지 겁부터 났었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음악도 안 들어보시고 흔쾌히 하겠다고 하셨어요. 녹음할 때도 4시간 동안 쉬지 않고 ‘재밌다’고 하시면서 노래하셨어요(웃음).”
박주원은 2013년 세계적인 음악 마켓인 싱가포르 ‘뮤직매터스’ 쇼케이스에 참가해 각국의 음악 관계자들과 현지 음악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는가 하면, 지난 5월 카자흐스탄 국제교류센터에서 주최한 ‘한류문화교류 재즈공연’에선 국내 뮤지션으론 유일하게 초청돼 극찬을 받았다.
또 객석을 압도하는 핑거링 연주로, 연주자로서는 드물게 2000석에 달하는 대형 공연을 매진시키고 있다. 그가 기타로 대중과 소통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데뷔 초엔 기타 연주로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주위의 반응보다 중요한 건 완벽한 준비라는 걸 많은 공연을 통해 깨달았어요.”
그는 곡을 만들 때보다 연주할 때가 더 행복하다며, 공연 일정이 정해지면 한 달 전부터 손에서 저절로 리듬이 나올 때까지 연습한다고 했다.
그가 음악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음악이 말보다 앞서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음악에 대한 배경, 리듬, 테크닉 등을 설명하는 건 마치 말로 음악을 포장하는 것 같거든요. 같은 음악이라도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 있고요. 앞으로도 제 나이에 맞는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마흔이 넘어 1집을 들었을 때 20대의 풋풋한 감성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듣는 사람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음악이기를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