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아그배 ; 장미과에 속하는 낙엽 관목, 꽃말은 ‘산뜻한 미소’이다.
사랑의 빗물 환하여 나 괜찮습니다
- 김선우
그대 만나러 가는 길에
풀여치 있어 풀여치와 놀았습니다
분홍빛 몽돌 어여뻐 몽돌과 놀았습니다
보랏빛 자디잔 꽃마리 어여뻐
사랑한다 말했습니다 그대 만나러 가는 길에
흰 사슴 마시고 숨결 흘려놓은 샘물 마셨습니다
샘물 달고 달아 낮별 뜨며 놀았습니다
새 뿔 올린 사향노루 너무 예뻐서
슬퍼진 내가 비파를 탔습니다 그대 만나러 가는 길에
잡아주고 싶은 새들의 가녀린 발목 종종거리며 뛰고
하늬바람 채집하는 나비 떼 외로워서
멍석을 펴고 함께 놀았습니다 껍질 벗는 자작나무
진물 환한 상처가 뜨거워서
가락을 함께 놀았습니다 회화나무 명자나무와 놀고
해당화 패랭이꽃 도라지 작약과 놀고
꽃아그배 아래 낮달과 놀았습니다
달과 꽃의 숨구멍에서 흘러나온 빛들 어여뻐
아주 잊듯 한참을 놀았습니다 그대 잃은 지 오래인
그대 만나러 가는 길
내가 만나 논 것들 모두 그대였습니다
내 고단함을 염려하는 그대 목소리 듣습니다
나, 괜찮습니다
그대여, 나 괜찮습니다
― 시집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문학과지성사, 2007)
김선우 시인, 요즘 어찌 지내시는지..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은 터득하셨는지.. 나를 잊지 말라는 꽃마리
의 속삭임은 들으셨는지.. 산뜻한 미소를 보내는 꽃아그배 환한 벙긋거림에 인사는 하셨는지.. 글감옥 한 해가
두 해로 번져가는 경자 유월 끝자락에 그대 염려하는 마음말들은 들으시는지.. 사랑의 빗물 환하여 그대 괜찮
을 거라고, 그럴 거라고 믿어도 괜찮을는지.. 믿음을 다독거리며 지치지 않을 즈음엔 소식이 찾아올는지..
내가 그대를 만나러 가는 길에는 모든 것들이 온통 그대로 가득 차고 넘쳐서. 눈길 가 닿는 곳마다 그대가 지천으로 피어납니다. 하여 풀밭에 통통 튀어 오르는 풀여치와 만나서 함께 놀았지요. 분홍빛 몽돌과 같이 놀다 보랏빛 꽃마리, 흰 사슴, 샘물, 낮별, 사향노루, 새, 나비떼와 어울려 놀았습니다. 숲에 이르러 자작나무, 회화나무, 명자나무, 해당화, 패랭이꽃, 도라지, 작약, 꽃아그배, 낮달과도 어울려 신나게 놀았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울리는 것들 속에서 그대를 더 진하게 느끼게 됩니다. 이 많은 자연 속에 스미어 있는 그대의 숨결. 그대의 체온을 느껴보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대는 내가 만나는 모든 것이 모여 이루는 지구입니다. 우주입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예쁜 이름들이 널려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과 어울릴 줄 알아야 하지요. 그래야 그대를 만날 수 있으니까요. 그러고 보면 그대는 내가 그대를 만나러 가다 만나는 모든 것들의 종합이고 완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생은 작은 만남의 총체인 셈. 내가 만나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채워 가면 끝내 그대를 만나게 되겠지요. 그러니 그대여 나의 고단함을 염려치 마세요. 나는 괜찮습니다. 나 괜찮습니다.
김완하 시인ㆍ한남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꽃마리 ; 꽃따지 잣냉이라고도 불리며, 꽃말은 ‘나를 잊지 마세요’ 또는 ‘나의 행복’이다.
이 시를 읽는 초반에는 꿈같은 풍성함을 만나게 된다. 마치 꽃동산에 도착한 아이처럼 한바탕 신이 난 모습이다. 풀여치가 있으며 풀여치와 놀고 몽돌이 있으며 몽돌과 논다. 샘물과 사향노루마저 이 흥겨운 마음에 동참하는 듯하다. 그런데, 중반쯤부터는 몰래 숨겼던 마음을 조금씩 들키고 만다. 너무 예쁜 것을 보니 오히려 슬퍼지고, 함께 다니는 나비 떼를 보니 외로워지고, 자작나무 껍질을 보니 잊었던 상처가 보인다.
화자가 즐거웠던 것도 슬펐던 것도 모두 다 ‘그대’ 때문이다. 화자에게 ‘그대’란 없어서 슬픈 사람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서 기쁜 사람이다. 아마도 네가 잠든 곳으로 가는 길이어서 기뻤을 것이고, 반대로 네가 잠든 곳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슬펐을 것이다. 시인은 작품 말미에 놀라운 반전을 숨겨 두었다. 화자가 만난 모든 풀여치, 몽돌, 노루, 나비, 나무는 다 또 다른 ‘그대’였다는 것. 그렇게 떠난 ‘그대’는 사방 천지에서 다시 돌아왔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적어도 이 시는 그렇게 믿고 있다. 그 믿음이 참 가없고 부럽다. 우리에게도 떠났던 고운 사람, 만물이 되어 안겨온다면 참 좋겠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사랑을 만나러 가는 길. 그 길 역시 사랑이 되어버린다. 사랑하고 있는데 세상 그 어떤 게 예쁘지 않을까. 시인은 깨닫는다. 사랑을 향해 가는 길에서 만난 풀여치와 조그만 몽돌과 사슴이 마시고 간 샘물까지도 사랑이 된다는 걸. 그리고 결국 그 길까지도 사랑이었다는 걸. 사랑은 시인의 고단함을 걱정하지만 사랑에 빠진 시인은 그래도 행복하다.
허연 시인
사향노루 ; 천연기념물 제216호, 수컷은 길이 5cm 정도 되는 송곳니가 입 밖으로 길게 나와 있으며, 배에 사향주머
니를 가지고 있다.
첫댓글 오랫만에 멋진글~올려주셨네요 고맙습니다 즈런나모님
가이아님..!
잘 지내시죠.. 건강도 여전하시겠지요..
김선우 시인님..!
요즘 어찌 지내시는지..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은 터득하셨는지..
나를 잊지 말라는 꽃마리의 속삭임은 들으셨는지..
산뜻한 미소를 보내는 꽃아그배 환한 벙긋거림에 인사는 하셨는지..
글감옥 한 해가 두 해로 번져가는 경자 유월 끝자락에 그대 염려하는 마음말들은 들으시는지..
사랑의 빗물 환하여 그대 괜찮을 거라고, 그럴 거라고 믿어도 괜찮을는지..
믿음을 다독거리며 지치지 않을 즈음엔 소식이 찾아올는지..
@gaiA 가이아님.. 고마워요..
리라님께 직접 소식 듣고 싶은 욕심이었지만
가이아님의 자상함(?)에 제 애틋함(?)을 묻어둡니다..
그 자상함과 책임감과 배려심과 건강함에 박수와 응원을 보냅니다.. ㅎㅎ..
@즈런나모 댓글이 시네요 .멋집니다~~
@백만송이
그렇게 봐주시니 쑥스럽군요..
하여간 좋게 봐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백만송이님께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라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