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의 길
큰 매장을 경영했다는 것이 구김살로 살생부 명단에 올랐다. ‘지주와 자본가를 처단하라’는 현수막이 걸리고 죽창을 든 청년들이 밤낮 거리를 헤맸다. 불안에 떠는 가족이 산속이나 숲속으로 피해 다니다가 배를 구해 야반도주 남쪽으로 내달았다. 시꺼먼 것이 곧 뒤따라와 덮치기라도 할 듯 무서워 엎드렸다. 어서 달려라 달려 속으로 외쳤다. 삼팔선을 넘었단 말을 듣고서야 후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살았구나.
함경도 명천을 떠나 망망대해를 몇 며칠 떠내려왔다. 사방 넘실대는 물로 가득하다. 명태나 오징어잡이 배가 많다던데 하나 보이지 않는다. 밤낮으로 잠길 듯 하늘과 별을 보며 내달렸다. 포항에서 하루 머물고 곧바로 부산항으로 들어갔다. 전쟁이 일기 전 삼팔선도 왕래가 끊어져 막히자 바닷길로 탈출했다.
함경도 장진호에서 갑작스러운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유엔군 미군이 갇혀 포위된 채 나팔 소리를 들으며 눈밭을 나뒹굴었다. 많은 사상자를 내며 퇴로를 만들어 겨우 천신만고 끝에 흥남 부두에 닿았다. 10만 군인과 전투물자를 싣고 떠나려 하자 부두를 가득 메운 피난민 인파로 득실댔다. 배에 엉겨붙어 죽자 살자 매달렸다.
10만 난민을 넘치게 실은 수송 군함이 거제도로 향했다. 겨울 추위와 굶주림을 갑판에서 견뎌냈다. 파도에 흔들리는 어지럽고 비좁은 자리에 질척거리는 온갖 쓰레기와 배설물로 아수라장이고 아비규환이다. 그런 가운데 김치1, 2의 너덧 신생아도 태어났다니 모진 목숨이다. 지옥도 그런 생지옥이 있겠나. 탈북이 이다지도 어려울까.
휴전선 철조망으로 동물 교통로도 막혔다. 남한에는 호랑이와 곰, 늑대, 여우, 담비 등이 사라졌다. 촘촘히 지뢰를 매설해 사람도 얼씬 못한다. 경비가 삼엄하다. 바다도 경비 군함과 투시 보안 장비로 철통같다. 하는 수 없이 북쪽을 향해 백두산을 넘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출하는 수밖에 없다.
어쩌다 배로 동쪽 바다를 떠내려 일본에 머물다 들어온 일가족이 있다. 그 무서운 한강 하류를 헤엄쳐 내려온 사람도 있다. 전방에서 근무하다 철조망을 지나 내리 달려온 군인도 있었다. 가지각색 죽음을 무릅쓰고 자유를 찾아온 천로역정이다. 그 깊은 산속 험한 백두산을 넘는데 경비대를 피해 돌다가 맞닥뜨리자 달래어 같이 넘어온 일도 있다.
김일성 친인척이 들어와 살았다. 미그 전투기를 몰고 와 환영받은 조종사도 있다. 외국 공관에 근무하다가 남한으로 들어온 고위 외교관도 있었다. 살해하라는 지령의 간첩을 내려보내 늘 불안에 떨어야 했다. 아파트 현관에서 아깝게 피살당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살아도 산 게 아니다. 그 불안은 병으로 이어져 고심하며 지내다 건강한 나이에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다.
여름에는 헤엄치고 겨울은 얼음 위를 걸어 만주로 달음질쳐야 했다. 개구리나 개헤엄을 할 줄 알아야 비스듬히 떠내리다 건너간다. 자칫 휩쓸리면 소용돌이에 감겨 헤어나지 못한다. 붙들리면 혼쭐난다. 수용소로 끌려가 숱하게 얻어맞아 시달리다가 죽거나 골병이 든다. 풀려나면 죽음을 무릅쓰고 또 탈북하게 되니 얼마나 힘들면 자꾸 그리할까.
죽기 살기로 넘어가려 안간힘을 쓴다. 하얀 눈으로 덮인 겨울은 쉬워 보여도 시선이 따갑다. 숨을 곳이 드러나 마땅치 않다. 초병에게 돈을 주고 넘기도 하지만 험난한 일이다. 중국 땅으로 들어가 본들 쉽나. 붙들리면 북으로 떠넘긴다. 그때 쇠줄로 묶어 줄줄이 끌고 간다니 동물 취급이다. 얼마나 어렵게 넘었는데.
겨우 은신해 사는 탈북자는 먼저 자리 잡은 사람의 도움으로 이곳저곳으로 가 노동이나 농촌 남자에게 시집가 아이 낳고 억눌려 살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사창가로 다니며 노리개로 막막하게 지난다. 또는 인신매매에 끌려 여기저기 팔려 다니며 노예처럼 보낸다. 그렇게 숨죽이는 탈북자 수가 수십만 명쯤이라니 어쩜 좋나.
그러다 한국 가는 길을 찾은 사람은 다행이다. 지참금이 있어야 한다.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뿌려야 술술 풀린다. 머나먼 남쪽으로 내려간다. 군경의 눈을 피해 중국 국경을 넘어 라오스로 들어가고 태국에 머물다가 천만다행히 국내로 들어올 수 있다. 이때 메콩강과 밀림을 건너고 여러 산을 헤쳐 넘어 오르는 일이 진기를 다 뺀다. 다시 붙들리거나 강물에 실종되는 일이 생긴다. 자유 한국 땅 아니 천국으로 가는 길이 이리 멀고 걸리는 게 많나.
이 길을 안내하는 사람이 있다. 곳곳에 브로커가 있어 맡은 일 함으로 겨우겨우 위태롭게 지나갈 수 있다. 그중 목사 한 분은 1천 명 넘게 탈북을 이끌었다니 대단하다. 돕다가 여의치 못하면 북한과 중국, 공산권 라오스, 캄보디아 군경에 체포되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사기꾼으로 몰리기도 한다. 또 그런 사람도 있으리라. 만주에서 중원을 지나 아세안을 거쳐 한국으로 오는 게 그들이 뚫은 루트다.
인민군 여군이 탈북해서 그 아들을 데려오려 애쓴다. 여러 해 못 본 아들이 장성했을 텐데 보고파 견딜 수 없는 엄마다. 간신히 연락이 닿아 오라 일렀다. 강만 건너면 브로커를 만날 수 있게 가르쳐줬다. 오다가 그만 잡혀 수용소에 갇혔다. 심한 고문으로 허리가 부러지고 머리가 깨지며 가슴을 맞아 숨을 고르게 쉴 수 없게 됐다.
할머니가 야단이다. 잘 있는 아이를 이 모양으로 만들었나. 다 붙들려 가게 됐다. 집안이 망했다. 왜 들쑤셔 낭패를 만나게 하나 모두 너 때문이다. 원망으로 말하자. 딸이 마지막 인사말로 흐느끼며 외친다.
“그건 그 나라 탓입니다. 어머님 우릴 낳아 길러줘서 고맙습니다. 그동안 아들과 함께 행복했습니다.”
‘비욘드 유토피아’ 영상이 쟁쟁 울리며 가슴을 파고든다.
첫댓글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나라가 이렇게 어지러운 것도 북한,
진정 화합 할 방안은 없는지
전공의 이제 보았어요
정말 큰일 이 예요 정치 판이 어떻게 될는지
답답합니다
늘 건강하셔서 좋은 글 많이 남기세요
북한에서 오래전에 탈북해서 지내시는분을 만난적이 있는데...너무 살기좋은 곳 이라고 지금 죽어도 여한없다셨어요.
정작,
그분들이 가지는 고마움을 저를 포함한 국민들은 느끼기나 할까요.
극과극 강대강....너무너무 지칩니다. 마음편한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ㅠ
탈북자들이 인천에서 시내로 들어오면서
그 많은 차량과 사람 건물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놀랍니다.
여기가 서울 맞나 눈이 휘둥그레진답니다.
박 회장님 성도님 우린 천국에 삽니다.
동서독의 분계선이 무너지는 현장에 있었는데 벌써 35년이란 세월이 지났습니다.
시댁외가가 동독이어서 그 많은 친지들이 주말마다 몰려와서 곤혹을 치렀는데....
더 나은 세상을 향하여, 자유를 향하여, 철조망을 뚫던 그들의 희망은 과연 이뤄졌을까요?
잘못된 희망은 불행의 넋일지도 모릅니다. 어느 친지는 아직도 동독의 시대로 되돌아 가고 싶어합니다.
자유를 찾아 체코를 경유하여 어렵게 어렵게 이곳까지 온 친구(교사였음)는 암으로 딸 하나 남기고,
민주주의의 책임하의 자유를 견디지 못해 되돌아간 남편을 원망하면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국가란 조직안에서 지켜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고, 직장에서 돈의 댓가를 치르야 하고,
가정에서는 가족의 일원으로써 지켜야 할 질서가 있는데, 이 모든 것을 수용한 후에 얻어지는 것이 자유입니다.
공산주의의 합동체제는 각 개인이 지켜야 할 의무와 책임에서 얻어지는 자유와 창의적인 기능을 마비시켰습니다.
어느 나라의 "알라신이 다 알아서 해 주신다" 라는 잘못된 믿음 때문에 집 밖은 쓰레기장이 된 것처럼 말입니다.
억박자 된 계념이 섞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