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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齒牙布施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安住堅固自在地中하야 能以牙齒로 施諸衆生호대 猶如往昔華齒王菩薩과 六牙象王菩薩과 及餘無量諸菩薩等하야 菩薩摩訶薩이 施牙齒時에 其心淸淨하야 希有難得이 如優曇華니 所謂無盡心施와 大信心施와 步步成就無量捨心施와 調伏諸根心施와 一切悉捨心施와 一切智願心施와 安樂衆生心施와 大施와 極施와 勝施와 最勝施와 輟身要用호대 無所嫌恨心施라 菩薩이 爾時에 以諸善根으로 如是廻向하나니 所謂願一切衆生이 得銛白牙齒하야 成最勝塔하야 受天人供하며 願一切衆生이 得齊平牙齒하야 如佛相好하야 無有疎缺하며 願一切衆生이 得調伏心하야 善趣菩薩波羅蜜行하며 願一切衆生이 口善淸淨하고 牙齒鮮白하야 分明顯現하며 願一切衆生이 得可億念莊嚴牙齒하야 其口淸淨하야 無可惡相하며 願一切衆生이 牙齒成就호대 具滿四十하야 常出種種希有妙香하며 願一切衆生이 意善調伏하야 牙齒鮮潔이 如白蓮華하고 文理廻旋하야 卍字成就하며 願一切衆生이 口脣鮮淨하고 牙齒潔白하야 放無量光하야 周遍照耀하며 願一切衆生이 牙齒堅利하야 食無完粒호대 無所味着하야 爲上福田하며 願一切衆生이 於牙齒間에 常放光明하야 授諸菩薩第一記莂이니라 是爲菩薩摩訶薩의 施牙齒時에 善根廻向이니 爲令衆生으로 具一切智하야 於諸法中에 智慧淸淨故니라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견고하고 자재한 땅에 편안히 있으면서 능히 치아로써 모든 중생에게 보시하되, 마치 옛날의 화치왕(華齒王)보살과 육아상왕(六牙象王)보살과 다른 무량한 많은 보살들과 같이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치아를 보시할 적에 마음이 청정하여 희유하고 만나기 어려움이 우담발화와 같으니라. 이른바 다함없는 마음으로 보시하며, 큰 신심으로 보시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성취하는 한량없이 버리는 마음으로 보시하며, 여러 근(根)을 조복하는 마음으로 보시하며, 모든 것을 다 버리는 마음으로 보시하며, 일체 지혜를 원하는 마음으로 보시하며, 중생을 안락케 하려는 마음으로 보시하며, 크게 보시하며, 지극히 보시하며, 훌륭하게 보시하며, 가장 훌륭하게 보시하며, 몸에 필요한 것을 내 놓으면서도 싫어하거나 한탄이 없는 마음으로 보시하느니라.
보살이 그때에 모든 선근으로 이렇게 회향하느니라. 이른바 ‘원컨대 일체중생이 예리하고 흰 치아를 얻어 가장 수승한 탑을 이루고 천상인간의 공양을 받아지이다.’라고 하느니라.
‘원컨대 일체중생이 가지런한 치아를 얻어 부처님의 잘생긴 모양과 같이 성글거나 결함이 없어지이다.’라고 하느니라.
‘원컨대 일체중생이 조복하는 마음을 얻어 보살의 바라밀행에 잘 나아가지이다.’라고 하느니라.
‘원컨대 일체 중생이 입이 청정하고 치아가 깨끗하여 분명하게 나타나지이다.’라고 하느니라.
‘원컨대 일체중생이 기억할 수 있는 장엄한 치아를 얻어 그 입이 청정하여 나쁜 모양이 없어지이다.’라고 하느니라.
‘원컨대 일체중생이 치아가 성취되어 마흔 개를 갖추고 항상 여러 가지 희유한 향기가 나게 하여지이다.’라고 하느니라.
‘원컨대 일체중생이 뜻이 조복되고 치아가 청결하여 백련화와 같으며 무늬가 오른쪽으로 돌아 만(卍)자를 성취하게 하여지이다.’라고 하느니라.
‘원컨대 일체중생이 입술이 청정하고 치아가 깨끗하여 한량없는 광명을 놓아 두루 찬란하게 비치어지이다.’라고 하느니라.
‘원컨대 일체중생이 치아가 견고하고 예리하여, 먹을 적에 온전한 알갱이가 없고 맛에 집착함도 없어, 상품의 복전이 되어지이다.’라고 하느니라.
‘원컨대 일체중생이 치아 사이에서 항상 광명이 나서 보살의 제일 수기를 받아지이다.’라고 하느니라.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치아를 보시할 때에 선근으로 회향하는 것이니라. 중생들로 하여금 일체 지혜를 갖추어 모든 법 가운데 지혜를 청정하게 하려는 연고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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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아보시(齒牙布施): 치아를 보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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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 마하살이
안주견고자재지중(安住堅固自在地中)하야 :견고하고 자재한 경지에 안주 했을 때에
능이아치(能以牙齒)로: 능히 치아로써
시제중생(施諸衆生)호대: 모든 중생에게 보시하되
유여왕석화치왕보살(猶如往昔華齒王菩薩)과: 예컨대 지난 날 화치왕보살과
육아상왕보살(六牙象王菩薩)과: 육아상왕보살과
급여무량제보살등(及餘無量諸菩薩等)하야 : 그리고 나머지 모든 무량 보살등과 같이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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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이
시아치시(施牙齒時)에 : 치아를 보시할 때의
기심청정(其心淸淨)하야: 그 마음이 청정해서
희유난득(希有難得)이 : 희유해서 얻기 어려운 것이
여우담화(如優曇華)니: 우담화와 같다. 우담화 꽃 만나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웬 우담화 꽃이 그렇게 흔한지 모르겠다. 금방 굶어죽는 것도 아닌데 그런 것으로써 사기를 치면 안된다. 가끔 우담화가 피었다고 신문에 나고 종단적으로 사람들이 몰려가고 법회를 열고 상당히 책임 있는 사람이 가서 법문도 한다. 거기에 정치적인 어떤 힘을 가해서 힘 있는 사람이 한 번 다녀가고 하면 신도들이 많이 온다. 그 속이 뻔하지 않은가? 제발 그런 일이라도 안해야 된다. 희유해서 얻기 어려운 것이 우담화 꽃을 보는 것과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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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무진심시(所謂無盡心施)와 : 소위 다함이 없는 마음의 보시와
대신심시(大信心施)와 : 크게 믿는 마음의 보시와
보보성취무량사심시(步步成就無量捨心施)와 : 걸음걸음 마다 성취하는 한량없는 보시하는 마음의 보시와 버리는 마음의 보시와
조복제근심시(調伏諸根心施)와 : 제근을 조복받는 마음의 보시와
일체실사심시(一切悉捨心施)와: 일체를 다 버리는 마음의 보시와
일체지원심시(一切智願心施)와 : 일체 지혜와 원력 얻기의 마음보시와
안락중생심시(安樂衆生心施)와: 중생을 안락하게 하는 마음의 보시와
대시(大施)와 : 큰 보시와
극시(極施)와 : 지극한 보시와
승시(勝施)와 : 수승한 보시와
최승시(最勝施)와 : 가장 수승한 보시와
철신요용(輟身要用)호대 : 몸의 필요한 것을 내놓으면서, 철신은 온몸에 있는, 요용은 필요로 하는 것들이다. 몸에 필요한 것을 다 내놓되
무소혐한심시(無所嫌恨心施)라: 조금도 마음에 싫어함이 없는 마음의 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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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이
이시(爾時)에
이제선근(以諸善根)으로: 모든 선근으로써
여시회향(如是廻向)하나니: 이와 같이 회향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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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원일체중생(所謂願一切衆生)이 :소위 일체중생이
득섬백아치(得銛白牙齒)하야: 섬백아취, 아주 예리하다. 예리할 섬(銛)자다. 예리하고 흰 치아를 얻어서
성최승탑(成最勝塔)하야 : 최승탑을 이루고 이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아주 날카로운 이빨을 얻어서, 날카롭고 흰 이빨을 얻어서 가장 수승한 탑을 이루어서
수천인공(受天人供)하며 : 중생들이 천인의 공양을 받기를 원한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는데 그런 사연이 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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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일체중생(願一切衆生)이 : 일체중생이
득제평아치(得齊平牙齒)하야: 가지런하고 평탄하고 고르게 생긴 치아를 얻어서
여불상호(如佛相好)하야 :부처님의 상호와 같아서. 부처님의 치아는 고르고 40개나 된다.
무유소결(無有疎缺)하며 : 성글거나 빠지거나 삐뚤어지거나 하는 것이 없기를 원하며.
치아를 보시하면서 또 중생이 화두다. 중생이 이랬으면, 치아와 관계될 때는 치아에 대해서 중생들이 이렇게 좋은 일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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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일체중생(願一切衆生)이 : 일체중생이
득조복심(得調伏心)하야 : 조복심을 얻어서
선취보살바라밀행(善趣菩薩波羅蜜行)하며: 보살바라밀행에 잘 나아가기를 원하며
원일체중생(願一切衆生)이 : 일체중생이
구선청정(口善淸淨)하고 : 입은 아주 훌륭하고 청정하고
아치선백(牙齒鮮白)하야 : 치아는 하얗고 희어서 분명하게 두드러지고.
치아가 삐뚤어지거나 색깔이 누렇거나 검거나 하는 것도 참 그렇다. 나도 그 중의 하나지만 선백, 얼마나 좋은 말인가. 깨끗하고 희다는 말이다. 그래서
분명현현(分明顯現)하며: 분명 현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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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일체중생(願一切衆生)이 : 일체중생이
득가억념장엄아치(得可億念莊嚴牙齒)하야: 가히 장엄된 아치를 억념해서
기구청정(其口淸淨)하야 : 그 입이 청정해서. 치아도 아주 선천적으로 장엄이 잘 되어 있으면 하는 보살의 원이다. 요즘 아이들이 하듯이 치아를 고른다고 철을 박아서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선천적으로 중생들이 그렇게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하는 보살의 비원이다.
그 입이 청정해서
무가악상(無可惡相)하며: 가히 나쁜 모습은 하나도 없기를 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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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일체중생(願一切衆生)이 : 일체중생이
아치성취(牙齒成就)호대 : 아치가 성취하되
구만사십(具滿四十)하야: 40개를 갖추어 만족해서 다 갖추어서. 여러분들 치아 몇 개인지 한번 살펴보시기 바란다. 나는 아무리 세어 보아도 40개는 고사하고 30개가 겨우 될까말까다.
부처님 치아가 40개라고 그렇게 일찍이 알려져 있다.
상출종종희유묘향(常出種種希有妙香)하며 :항상 가지가지 희유한 묘한 향이 나오기를 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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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일체중생(願一切衆生)이 : 일체중생이
의선조복(意善調伏)하야: 좋은 마음으로 조복해서
아치선결(牙齒鮮潔)이 : 아치가 아주 곱고 깨끗한 것이
여백연화(如白蓮華)하고: 흰 연꽃과 같고
문리회선(文理廻旋)하야 : 치아에 무늬가 있다면 그 무늬가
만자성취(卍字成就)하며: 만자처럼 성취하기를 원하며. 이 만자가 좌만이다. 내 책에 보니 거의 좌만으로 되어있다. 좌만도 있는 만자이지만 우만이 가장 바람직한 만자다. 시계방향인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경전에는 좌만, 우만 그러는데 오른쪽으로 돌아가야 맞다. 이것은 왼쪽으로 돌아간다. 문양이 치아에도 문양이 돌아가게 되어 있는데 만자처럼 성취하기를 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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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일체중생(願一切衆生)이 : 일체중생이
구순선정(口脣鮮淨)하고: 입과 입술이 곱고 깨끗하고
아치결백(牙齒潔白)하야 : 아치가 결백하여 치아가 아주 맑고 희어서
방무량광(放無量光)하야 : 한량없는 광명을 놓아서
주변조요(周遍照耀)하며: 주변 조요하기를 원하며, 두루두루 치아에서 광명을 놓아서 주변을 조요하는 것이다. 치약을 선전할 때 치아에서 뽀독뽀독 소리가 나고 빛이 착 비치는 장면들이 나온다. 요즘 컴퓨터 그래픽으로 하면 못하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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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일체중생(願一切衆生)이 : 일체중생이
아치견리(牙齒堅利)하야 : 아치가 견고하고 날카로와서
식무완립(食無完粒)호대: 음식을 먹는데 있어서 완전한 낱알이 없게 한다. 다 부수는 것이다.
이가 시원찮으면 깰 수가 없다. 견과류를 먹어도 다 깰 수가 없다. 그런데 그런 일이 없도록 해서
무소미착(無所味着)하야: 미착하는 바가 없어서
위상복전(爲上福田)하며 : 아주 높은 복전이 되기를 원하며 별별 이야기가 다 있다. 치아를 보시하고 그러한 것들을 세세히 살핀다. 그래서 중생들에게 그러한 공덕이 돌아가기를 회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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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일체중생(願一切衆生)이 : 일체중생이
어아치간(於牙齒間)에 : 아치 사이에
상방광명(常放光明)하야 : 항상 광명을 놓아서
수제보살제일기별(授諸菩薩第一記莂)이니라 : 모든 보살 제일 기별 주기를 원하느니라. 우리가 ‘수기’라고 할 때 바로 이 기별을 말한다. 수기는 기별을 준다는 뜻이다.
기별은 오직 불교에만 있는 낱말이다. 초(艸)두 밑에 이별 별(別)자를 쓰는 이 별자는 유교에서는 없는 글자이고 이 글자를 안쓴다. 기별은 스님들이 잘 아시는 대로 ‘다음 생에 이러이러한 공덕을 닦아서 언제쯤 성불할 것이다 ’라고 하는 내용을 말한다.
수기라고 할 때, 받을 수(受) 기록할 기(記)자, 또 줄 수(授)자 기록할 기(記)자를 쓰는데 이 별자를 만나기가 쉽지가 않다. 제일기별하면 부처님이 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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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보살마하살(是爲菩薩摩訶薩)의: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시아치시(施牙齒時)에 : 치아를 보시할 때의
선근회향(善根廻向)이니: 선근회향이니
위령중생(爲令衆生)으로 : 중생으로 하여금
구일체지(具一切智)하야 : 일체지를 구족해서
어제법중(於諸法中)에 : 모든 법 가운데
지혜청정고(智慧淸淨故)니라: 지혜가 청정하게 하는 까닭이다.
요즘은 컴퓨터로 글자를 올려놓고 글자가 몇 번 등장했나 하고 체크하면 숫자가 착 나와버린다. 1분도 안걸린다. 세상이 그런 세상이다. 그렇게 조사해봤을 때, 화엄경에서 제일 빈번하게 등장하는 낱말은 중생이다. 부처 불(佛)자보다 중생이라는 글자가 훨씬 많다.
가장 이상적인 불교인 대승불교의 화두는 중생이라는 사실이다. 고통받는 중생이 불교의 화두다. 중생이 모두 잘 살았으면 하는 착한 마음을 쓰고, 인과를 잘 믿고 수순하는 중생들이 되어서 세상이 평화로워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어제 학인들 설법대회를 하는 것을 내가 빠뜨리지 않고 다 봤는데 신선하고 학인답기는 하였는데 정말 시급하게 그동안 불교에서 배운 ‘이 이치가 아 놀랍다 이건 정말 놀랍다 세속에서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이치다’ 하고 가슴에 사무치는 것이 있어서 그것을 전해주려는 것이 안보였다.
우리가 만약에 누구에게 불법을 한 10분이나 20분이나 이렇게 소개한다 하면 가장 전해주고 싶은 불법의 이치가 무엇일까? 평소에 자는 사람 두드려 깨워가지고 물어도 ‘나는 이거다’ 라고 그렇게 정해져 있는 불법이 혹시 있는가?
누가 있으면 좀 말해보기 바란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그걸 소개하고 싶어요? 천상천하 유아독존? 아 그것도 좋은 거지. 절에 가서 기도하면 소원성취한다 이건 없을까?”
(어린애들에게 하는 소리입니다.)
“그래도 대중적으로는 그게 제일 많이 쓰이는데?”
대중적으로는 절에 가서 기도하면은 불보살에게 기도하면은 소원성취 한다.
“그 다음 혹 다른 주제 없어요?”
예를 들어서 어제 같은 경우 자기가 한 10분이나 20분 동안에 불법을 전하는데 가장 내가 애착하고 내가 정말 시급하게 가슴에 사무치는 게 있어서 그걸 딱 전해주고자 하는 것이 안보였다.
‘이런 이치를 전해줘야 되는데 제일 시급하게 그동안 몇 년이라도 배운 불교안에서 가장 세상 사람들에게 시급하게 전해주고 싶은 이치인데’ 하는 것이 있어야 될 것이다.
나는 인과의 이치를 주로 이야기 한다.
인과만 제대로 파악하고 수순할 줄 알고 또 인과의 이치를 창조할 줄도 안다면 그 속에서 모든 것이 다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인과의 이치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제일 유익하다.
제일 유익한 불교의 이치가 인과다.
인과는 비단 불교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불교의 전매특허처럼 쓰이고, 선인선과 악인악과(善因善果 惡因惡果) 라고 해서 초발심자경문에서부터 화엄경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전부가 인과로 짜여져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세상에도 ‘콩심은 데 콩나고 팥심은 데 팥난다’라는 말이 있다. 그것이 인과다.
또 성경에는 ‘뿌린 대로 거두리라’ ‘심은 대로 거두리라’ 라는 말이 있다. 그것이 다 인과의 이치다. 기독교에서는 불교처럼 집중적으로 인과를 이야기 안하는데 그러면 하나님이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과를 초월하고 전지전능해야지, 그렇지 않고 모든 것이 인과대로 돌아가면 하나님이 할 일이 없다. 그래서 집중적으로 인과이야기를 안한다.
*
나는 항상 아파트 빈 벽이 아깝다. 그 높은 데 간판이 좀 좋은가.
거기에 ‘콩심은 데 콩나고 팥 심은 데 팥난다’ 이 구절만 전국에 한 수십만 구절을 써붙여놓아도 우리 국민이 상당히 교화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콩심은 데 콩나고 팥 심은 데 팥난다
그것은 불교 말도 아니고 기독교 말도 아니고 특별히 유교 말도 아니다.
우리 조상 전래의 가르침이다.
그것을 부연해석 하면 별별 이야기가 다 나올 수가 있다.
‘네가 좋은 학교 가려면 공부 잘해라. 이것이 콩심은 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나는 것 아니냐’ 등등 그 말을 가지고 다 설명할 수가 있다.
굳이 불교라는 말을 거론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그래서 빈 아파트 벽을 제일 아까워하는데, 그 빈 아파트 벽에 ‘뿌린 대로 거두리라’ 라고 써도 좋다. 기독교 용어지만 이치는 같으니까 상관없다.
그런 것을 가득 채우고 싶은 내 소원이 언제나 이루어질지 모르겠다.
불교는 너무 유식하다.
선인선과 악인악과(善因善果 惡因惡果) 그걸 누가 알아들을라나 모르겠다.
그래도 그런 걸 딱 써 붙여 놓고 어른들로부터 설명을 듣도록 해야 한다.
착한 일 하면 착한 과보가 맺히고 악한 일 하면 악한 과보가 맺힌다.
그래서 악한 과보가 벌어지면 ‘봐라 내가 그럴 줄 알았다’라고도 할 수 있다.
국민들을 계도(啓導)하는 데는 인과의 이치가 제일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외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참나, 일심사상(一心思想)의 위대성은 두 말할 나위 없지만 그것은 그렇게 급한 것이 아니다. 당장에 우리가 생활하는 데 이롭고 우리가 세상을 조금 더 정화하고 세상을 좀더 바로 잡는 데는 인과(因果)로써 깨우쳐 주는 것이 제일 급하다고 본다. 그 이치는 누구라도 금방 알아듣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개인의 욕심이 그 사이에 개재되면 변형을 시킨다.
기도를 잘해서 부처님하고 그렇게 친해 놓고는 그 친한 것은 잊어버리고 다른 것을 기다리고 있다. 불보살에게 기도하는 것은 불보살에게 끝없는 신심의 증장이다. 신심의 증장이 사실은 최고다. 그런데 그것 말고 우리는 다른 것을 기다린다.
내가 여러 번 말씀 드린 기억도 나는데 관세음보살에게 기도하면 공부 못하는 아이들도 좋은 학교에 합격된다고 한다면 수험생 아이하고 같이 와서 해야 기도해야 할 것이 아닌가?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말고 어머니와 같이 와서 기도해야 될 것이 아닌가. 왜 그걸 안하는가?
그러면 지금 믿는 것인가 안 믿는 것인가? 이런 것을 우리가 좀 냉정하게 분석해 들어가기로 하면 상당히 난처한 일도 많겠지만 또 그 인과의 이치가 사실은 분명해진다.
그런 인연으로라도 불보살에게 기도 열심히 하면 신심이 증장한다. 그것이 최고의 가치다. 신심의 증장은 불법가운데 제일가는 재산이 된다. 기도하는 불교가 참 좋은 불교이기는 한데 그런 이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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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교의 화두는 중생"..
혜명화 님!! 더운데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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