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연해주 문화답사(발해의꿈) 원문보기 글쓴이: 행복발전소소장(위종만)
경기민예총 연해주 문화답사 1주년 기념전 「백만송이 설루(雪淚)!」
전시회를 준비하며 글: 조충현
백만송이 장미는 심수봉의 지고지순한 사랑의 염원이나 무명의 화가가 여배우에게 보내는 알라 푸카체바의 연가도 아니다. 적어도 우리에게 백만송이 장미는 유럽 북동부의 한 약소국이 처한 비참한 현실에 대한 암시이자 저항곡이어야 한다.“마라는 딸에게 인생을 주었지만 행복을 주는 것을 잊었어”
마라는 라트비아라는 딸을 낳았지만 강성국민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행복을 주지는 않았다는 은유가 원곡 백만송이 장미의 가사말이다. 여신 마라가 처음부터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1981년 이 노래를 부른 아이자 쿠클레와 리가 크레이크베르가는 조국의 현실을 전설의 힘을 빌어 표현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백만송이 장미는 얼마나 많을 양일까? 그 헤아릴 수 없음을 눈송이에 비유하고 싶다. 백만송이 설루(雪淚)! 강제이주 고려인들의 삶과 문화를 둘러보러 간 2009년 10월 말. 연해주의 첫 밤을 보내고 눈을 뜨니 대지는 온통 백설의 향연이었다. 우리에게는 너무 생소한 10월의 첫 눈. 대륙의 겨울이란 이런 것인가? 검소한 우수리스크 거리를 무람없이 휘젓는 눈들을 손으로 받아보았다. 차가운 장갑 위에서 버티던 눈송이들은 이내 한 방울 물로 남았다. 설루. 하늘을 덮은 눈들은 백만송이는 더 되어 보였다.
7일간의 여정은 아쉬움을 남기기에 더 없이 맞춤한 시간이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 온 우리들의 머리에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170,000명 고려인들의 눈물, 굶어죽은 아이들, 얼어죽은 사람들. 재이주의 먼 여정, 최, 박, 김 등 성을 잃지 않은 사람들. 여전히 무참한 중앙 아시아의 고려인들. 무엇보다 추위를 빙자해 본토인의 책망을 잊으려 마셨던 보드카. 마지막으로 머리에 내리던 눈, 가슴에 녹은 눈물.
아쉬움 속에 미련스레 추억만을 만지작거리기 1년. 고려인들의 삶은 회복되어야 한다는 원론적 의미 앞에 우리는 다시 섰다. 회복은 관심과 드러냄에서 출발한다는 점도 동의했다. 그림들은 지난 1년간 지워지지 않던 기억들의 형상이다. 형상은 현실이 되고 역사가 되어 치유를 시작할 것이다. 그것이 마라가 주지 않은 행복을 우리가 직접 찾아 나서는 이유다. 백만송이 장미, 그리고 雪淚. 이제는 작고 가엾은 것들을 위한 노래와 눈물로 불리어 지기를 바라자.
- 문 의 : 김 신 (010-3315-1749) , 위종만 (010-7286-8841) - 연해주 문화답사(발해의꿈) 카페참조 : http://cafe.daum.net/thedreamofbalha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