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오랜만이네요?”
그녀의 얼굴에는 생기가 있었다.
나는 율리아 몰래 슬그머니 가방에서 초콜릿을 하나 꺼내어 그녀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녀의 온 얼굴 가득 웃음이 피어올랐다.
늘 우리가 앉는 자리에 글라라와 안젤라가 깊숙이 앉아 있었다.
“뭐야, 언니! 왜 이리 늦었어?”
콧소리가 적당히 들어가 매력이 한껏 느껴지는 안젤라의 말이었다.
내가 이곳에 살면서 단 하나 하고 있는 모임이었다.
이곳의 성당에 다니면서 만들어진 모임이니 벌써 다섯 해는 된 것 같다.
성당의 기도모임인 ‘레지오’에서 같은 팀원으로 만나 종교보다는 삶을 나누기위하여 만든 모임이다.
글라라와 안젤라는 청소년 교도소에 교관으로 남편들이 일하고 있다.
그녀들을 통하여 청소년 비행으로 교도소에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데레사네는 정형외과를 하고 있다.
회사에 다니며 마지막 학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율리아의 남편은 나와 같은 성씨이고 환경이 비슷하여 이곳에 도착하기 전까지 목소리에 힘 올리며 얘기 했었다.
“데레사는 왜 아직도 야?”
지난달에 내가 너무 바빠서 모임 일을 그냥 넘어 갔었다.
그러니 결국 두 달만의 모임이었다.
신탄진에 두루 살 때에는 집집마다 돌아가며 밥도 해먹고 살면서 고달픈 이야기나 자랑할 종류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살았다.
서로의 형편들을 일일이 다 알고 있으니 무엇보다 좋았다.
나이는 안젤라가 서른넷이고 율리아가 그 다음, 글라라가 그 다음 그리고 띄어서 데레사가 서른아홉이고 내가 제일 나이가 많은 편이다.
그래도 아이들이 비슷하기 때문에 서로 교육에 관한 정보도 교환하고 유익한 편이었다.
엇비슷한 동네에 살다가 안젤라의 남편이 ‘산내’쪽으로 발령이 나서 먼저 이사를 가게 되었고 글라라네가 유성 쪽에 아파트를 분양받아 이사하게 되었다.
데레사네는 신탄진에서 정형외과를 했었는데 병원을 월평동 쪽으로 이전하였다.
우리가 세 번째 모임 했을 때였다.
대전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거리가 뚝뚝 떨어진 셈이다.
그만 모일까도 생각을 했었지만 그렇게 쉽게 모임을 흩을 수 없었다.
나이도 그렇고 생활수준도 그렇고 편차(偏差)야 났지만 우리에게는 무언가 끈끈한 정(情)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모임장소는 형편껏 정해졌었지만 데레사가 ‘비만 크리닉’의 실장으로 병원에 들어앉고부터는 월평동에 있는 지금의 로즈(Rose)레스토랑에서 늘 만났다.
이 레스토랑은 지난여름부터 글라라의 오빠가 재혼을 하고 인수하였다.
이곳에 들어서면서 내게 초콜릿을 받은 언니는 글라라의 올케였다.
언니가 쟁반 가득 빵을 들고 왔다.
우린 각자 취향대로 먹고픈 것을 시켰다.
“언니, 상당히 예뻐졌다! 전보다 표정도 밝아지고.”
우린 모두 언니의 돌아서가는 뒷모습에 시선을 모았다.
글라라의 오빠는 내 나이 정도 되었을 것이다.
중학생인 남매 둘을 두었다.
그녀의 첫 번째 올케는 그녀의 동창이었다고 했다.
바람이 나서 자신의 오빠와 조카들을 버리고 갔던 그 동창을 그녀는 치를 떨며 말했었다.
조카들이 너 댓살 되었을 때였고 갈 곳 없는 조카 둘을 그녀가 결혼하고 몇 년간 키웠다고 말했다.
근래에 오빠가 재혼하던 무렵 우리가 만나면 그 문제가 중심화제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녀는 지금의 올케를 탐탁지 않게 표현했었다.
“그 여자, 엄마랑 우리 있는 앞에서 있는 성깔 다 부렸어요. 오빠는 그 여자와 결혼하면 쥐여살 것이 분명해. 거기다가 중학생 아들을 혼자서 키우고 있대 요!”
우린 그 즈음에 글라라의 편에서 뒷받침 말을 했었다.
그런데 그녀의 오빠는 그녀가 ‘그 여자’라고 표현했던 사람과 재혼을 한 것이다.
겨우 통화가 된 데레사가 왔다.
좀 말라 보였다.
“땅을 잘못 샀나봐!”
한창 값이 올라서 재미가 짭짤할 것 같아 투자를 했는데 은행대출도 안된다며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뭐야, 복 마담 또 나온 거야?”
우린 글라라와 데레사를 번갈아 보면서 웃었다.
분양받아서 이사했던 글라라네 아파트가 갑자기 값이 오르고 글라라는 그 아파트를 팔았다.
당연히 그 차액은 많았다.
그녀는 오피스텔에 살면서 짓고 있는 아파트를 샀다.
이 과정 덕분에 그녀는 ‘복 마담’이 된 것이다.
‘제2수도권’ 정치공략으로 유성 쪽에 건설 중인 아파트들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되었었다.
최근에 부동산 억제 정책으로 얼음판이 되었지만 말이다.
“그 땅 2005년 중반이나 되어야 사용할 수 있대! 난 그저 P(프리미엄)나 좀 챙기려고 시도를 했었는데 앞으로 들어갈 돈도 없고 중도금을 내지 못하면 계약금을 받지 못한대. 꽤 주었는데 계약금 말이야.”
데레사 얼굴 가득 달린 근심에 마음이 아팠다.
우린 지난해만 하여도 만났을 적에 한 남자와 평생을 사는 것이 지겹니 어쩌니 하면서 삶의 자미난 일을 궁금해 했었다.
“연말인데 나이트들 안 갈 거야?”
분위기를 좀 바꾸고 싶었다.
내 말에 글라라가 쑥스럽게 웃더니 며칠 전에 다녀왔다고 했다.
모두 눈이 똥그래졌다.
그녀는 오빠에 대한 후유증으로 정상적인 삶을 약간만 벗어나도 못 견뎌하고 흥분부터 했기 때문이다.
“부킹이 들어 왔는데 남자들이 징그럽게 나한테만 신경을 쓰잖아요. 남편동료 부인들과 갔는데...”
그녀의 외모를 본다면 남자들이 호감을 가졌으리라.
우린 모두 그녀의 말에 관심을 모으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바쁘다고 벌써들 일어났을 터인데 시간이 오후 세시가 넘어가는데도 꼼짝 않고 있었다.
한 해의 마무리를 해야 하는 순간이 점점 다가옴도 아쉬웠지만 우리 또한 점점 아줌마의 제 굴레로 되어가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