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스크’로 아이스크림을 샀다.
황지은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 분명히 안다고 생각했는데 모를 때가 있다. 자주 사용하지 않거나 어설프게 익힌 것은 시간이 지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잊게 된다. 반면, 충분히 익숙해지도록 반복한 것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매일 드나드는 아파트 출입문 비밀번호는 머리로는 얼른 생각나지 않아도 손이 스스로 알아 움직여 문을 여는 것을 본다.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도 넘어지지 않는 것처럼 자동차를 운전한 세월이 오래였다면 한동안 쉬었어도 몸이 기억하여 생각보다 쉽게 차를 몰게 된다. 몸에 밸 정도로 학습되면 기술이 되고 기술은 나이가 들어서 뇌 기능이 약해져도 몸이 기억할 것 같다.
얼마 전에 집에서 가까운 지하철역 인근에 ‘롯데리아’ 가게가 새로 단장해 오픈했다. 산뜻하게 꾸민 매장 안으로 들어가니 입구에는 ‘키오스크(무인단말기)‘가 설치되어 있고 종업원은 한 명만 있었다. 나름 키오스크를 이용한 경험이 많다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기계 앞으로 다가가 주문하려 했다. 그런데 잘 되지않는다. 거듭 시도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는 동안 뒤에서 여러 사람이 차례를 기다리니 민망하다. 아이스크림 하나만 사려던 참이었는데 도움받기도 머쓱해서 그냥 나왔다.
몇 년 전, 남편이 서울 큰 병원에서 수술받은 적이 있다. 그 무렵 코로나가 창궐한 시기라 입원실에는 보호자 한 명만 허용했다. 병원 입구에는 길쭉한 모양으로 처음 보는 ‘키오스크‘가 설치되었다. 기계 화면에 환자 정보를 입력해야 출입할 수 있었다. 보호자 식사도 키오스크를 통해 주문했다. 처음에는 낯설고 서툴렀지만 익숙해지니 무척 편리했다. 식사 나오기 한 시간 전까지는 주문한 것을 변경하거나 취소할 수 있었다. 매점에서도 키오스크를 이용하여 필요한 물건을 샀다. 코로나로 비대면이 일상임에도 전국에서 환자가 찾아들었다. 개인을 위한 안내나 친절은 기대할 수 없었다.
노약자는 보호자를 대동해야 한다. 혼자 오는 노인은 간병인이나 병원에 함께 가주는 아르바이트생을 구해서 동행하기도 한다. 한 노부부가 키오스크 앞에서 난처해하기에 도와준 적이 있다. 사용법을 배웠지만 실제로 하려니 안된다면서 고마워했다. 통원 치료를 다닐 때도 키오스크를 이용했다. 진료안내서에 있는 큐알 코드를 기계에 대어 번호표를 받고 필요한 검사를 했다. 결과가 나오면 의사를 만난다. 신용카드를 미리 등록하여 결제도 키오스크를 통해서 했다. 복잡한 수납 창구를 거치지 않아 시간이 절약되었다. 집에서 새벽에 나와 서울행 KTX 첫 열차를 타고 가면, 병원 일을 다 보고 대전에 와서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자동화 시대에 반나절 생활권을 실감했다.
이렇듯 키오스크를 이용한 경험으로 잘 안다고 생각했었다. 이후 한동안 사용을 하지 않으니 잊게 되고 간단한 주문조차 하지 못하였다. 서울 병원 키오스크 앞에서 당황하던 노부부가 떠 올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디저트 종류는 기계 화면 오른쪽에 작은 화살표를 터치해야 나오는데 맨 위에서만 찾은 것이 실수였다. 기계마다 화면 위치와 표시 방법이 다르고 작동법이 제각각이니 고령자나 초보자를 위한 음성 서비스 기능이 있으면 편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오스크가 이제 카페, 편의점 웬만한 곳은 다 설치되어 예사롭다. 음식점에서는 식탁에 앉은 채 메뉴 화면을 보며 주문하고 카드로 결제까지 하니 편리하다. 앞으로 또 어떤 발명품이 나와서 낯설게 할까. 지금까지는 그런대로 시대 흐름에 맞추어 지내고 있으나 나이가 들수록 점차 이론과 실제는 다를 것이다. 알고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고 모르는 것이나 할 수 없는 것이 늘어날 것이다. 최신 의술로는 고칠 수 없는 환자를 냉동했다가 치료 방법이 개발된 이후 소생시켜 치료할 수 있다고 하지만 ’천지개벽‘한 세상에 어떻게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공상까지 해본다. 치매에 걸린 노인도 몸에 밴 습관은 그대로 나온다고 한다. 가르치던 사람은 지도하려 들고, 지시하던 사람은 옆 사람을 부하 다루듯 하고, 상소리 잘하는 사람은 말을 욕부터 시작하는 것을 나도 익히 보았다. 반복해서 익숙한 것은 몸이 기억한다니 좋은 습관을 길러야겠다.
어머니가 치매에 걸려 마지막 무렵에는 딸인 나도 몰라보시던 때의 충격이 잊히지 않는다. 내게도 그 유전자가 있을 수 있다. 관심 가거나 좋아하는 것을 반복하면 몸이 기억할까. 글쓰기를 하니 보람도 있고 예방에 도움이 될 것 같다. 한계를 느낄 때도 있어 포기하고 편하게 지내고 싶기도 하다. 그런 마음을 이겨내고 글쓰기를 반복해서 습관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어설픈 표현이라도 진심을 드러내면 좋은 글이 아닐까. 막연하였던 글쓰기가 노후 대비라 생각하니 목적이 생긴다. 목적이 있는 삶은 보람으로 쌓여 새로운 중심으로 흔들리지 않기를 소망한다.
이제는 키오스크에서 아이스크림 주문을 순식간에 할 수 있다. 거의 매일같이 사 먹은 결과이다. 익숙하니 손이 생각보다 앞서는 것을 본다. 요즘은 나는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자유로이 사 먹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