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롭지만 따뜻한 수채화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 독-라울 따뷔랭 / 장 자끄 상뼤 글, 그림/ 열린책들
장 자끄 상빼는 1932년 프랑스 보르도에서 태어난 데생 화가다.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좀머씨 이야기>다. 그는 소년 시절 악단에서 연주하는 것을 꿈꾸며 재즈 음악가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1960년 르네 고시니와 함께 『꼬마 니꼴라』가 대성공을 거두었고 1962년에 작품집 『쉬운 일은 아무것도 없다』가 나올 무렵에는 그는 이미 프랑스에서 데생의 1인자가 되었다. 산뜻한 그림, 익살스런 유머, 간결한 글로 사랑을 받고 있는 장 자끄 상뻬는 92년 11월 초판이 발간돼 48쇄까지, 99년 신판이 10쇄까지 나오는 등 총 80만부가 팔린 『좀머씨 이야기』까지 전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작가다.
저자의 기본적인 관심은 끊임없는 고독에 있다. 정치나 성을 소재로 하지 않았지만 그의 독자층은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다양하다. 유머스러운 상징이 그림 곳곳에 숨어있어 그것을 포착해내는 재미 또한 그림책을 읽는 재미가 크다. 주요 작품으로는 『랑베르씨』, 『얼굴 빨개지는 아이』, 『가벼운 일탈』, 『아침 일찍』, 『사치와 평온과 쾌락』, 『뉴욕 스케치』, 『여름 휴가』, 『속 깊은 이성 친구』, 『풀리지 않는 몇 개의 신지』, 『라울 따뷔랭』, 『까트린 이야기』가 있다.
전문분야에서 최고가 되기는 쉽지 않다. 장 자크 상빼는 라울 따뷔랭을 통해 혼자만의 비밀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고독한 한 인간의 성장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라울 따뷔랭은 자전거에 정통한 사람이다. 자전거에 관한 모든 지식을 가진 라울 따뷔랭. 자전거 변속이나 클립, 베어링, 체인. 톱니바퀴, 튜브, 공기 타이어 등 그는 자전거만 봐도 어디가 망가진 것인지 척척 알아낸다. 가장 고치기 어려운 난이도 높은 고장까지 척척 고치는 만물박사다. 이렇게 되기까지 그의 어린 시절을 살펴보자.
라울 따뷔랭은 세발 자전거나 보조바퀴가 달린 자전거는 다른 아이들처럼 잘 탔다. 친구들이 보조 바퀴를 떼고 균형의 기쁨을 만끽하면서 타는 모습을 보자 라울도 따라했다. 아뿔사!!! “라울 따뷔랭 자신은 원심력과 만유 인력, 그리고 중력의 법칙과 같은 신비로운 힘들을 다루는 데 지독한 어려움을 겪었다.” (p.25) 누구나 탈 수 있다고 생각한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사실에 라울은 당황스러워한다. 그렇지만 라울이 잘하는 게 있다. 물구나무서서 걷거나 자유자재로 앞뒤 공중 돌기를 잘한다는 사실이다. 이건 자전거를 타는 것 보다 어렵다. 친구들은 이런 라울을 보고 감탄한다.
라울은 혼자서 아무리 자전거 타기를 연습해도 남는 건 상처와 반창고 투성이인 다리다. 라울은 이때부터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게 아니고 끌고 다닌다. 아무리 불굴의 의지로 자전거 타기를 극복하려해도 균형을 유지하는 법을 터득하지 못한다.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라울. 라울은 학업을 마치고 성인이 된다. 라울은 포르똥 영감 가게에서 견습생으로 취직한다. 라울은 유머감각이 뛰어나 사람들은 종종 웃겼다. 그는 사람들을 웃기며 생활한다. 라울에게도 사랑하는 여인이 생겼다. 포르똥 영감님 댁 따님인 조시안이다. 드디어 때가 왔다.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을 그녀에게 말했다. 따뷔랭은 자신이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사실을 용기내서 고백했지만 조시안에게 이해받지 못한다. 조시안은 자신을 놀렸다고 도리어 화를 내고 나가버린다. 둘의 인연은 여기까지.
“저어, 조시안,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요...., ”
“괜찮고 말고요. 라울.”
“그게, 말씀드리기가 워낙 어려운 거라서요. 그렇지만, 이 말씀은 오직 당신께만 드리고 싶습니다.” “어서 말씀하세요. 라울”. “세상에서 고백하기가 너무나 어려운 것들이 있지요.” (...) “좋습니다. 저..... 저는.....자전거를 탈 줄 모릅니다.”그러자 매사에 농담을 하는 버릇이 있는 따뷔랭이 자신을 놀리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 조시안은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마치 허친슨 안장의 용수철이 튕겨 나가듯,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 (p.42)
조시안은 빌롱그와 결혼하고 라울은 자신의 부상을 치료해준 간호사 마들렌과 결혼한다. 마들렌에겐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지 않는다. 라울에게 어느 날 에르베 피구뉴라는 사진사가 찾아온다. 그는 광장 시장 아케이드에서 사진관을 차려 사람들의 인물 사진들을 찍어준다. 따뷔랭과 피구뉴는 친구가 된다. 둘은 여러 가지 얘기도 하고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토론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피구뉴가 <따뷔랭> 타는 모습을 찍자고 제의를 하는데, 자전거를 타지 못함에도 따뷔랭은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따뷔랭과 피구뉴는 친구가 되었다. 여섯 시경이면 예술가 양반은 수두룩한 주머니마다 메모지며 필름 통 따위로 가득 채우고 기술자 양반 집에 도착했다. 그들은 잡담을 즐기기도 하고, 때로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논의하기도 하였다. 따뷔랭은 이러한 우정에 가슴이 뿌듯했다. 어쨌거나, 자신의 삶은 만족할 만한 것이라고 내심 흡족해하기도 했다. 마들렌은 매력적인 아내였고 그에게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 두 아이를 안겨 주었으며, 직업적으로도 인정을 받았고, 벗 에르베 피구뉴도 더없이 멋진 친구로 그 역시 대단한 명성을 누리게 되었다. (...) 피구뉴가 기술자 양반에게 <따뷔랭>타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자고 제의를 했던 것이다.” (p.57)
따뷔랭과 피구뉴의 우정은 돈독해졌다. 피구뉴는 자신의 상처들을 하나둘 꺼낸다. 사진사로 흑역사를 말한다. 사진을 찍을 때 순간을 포착하지 못한 실수들. 중요한 순간을 놓쳐버린 어처구니 없는 상황들을 그는 말한다. 그러나 따뷔랭은 말하지 못한다. 고민만 끙끙하다 결국 그는 자신의 비밀을 친구 피구뉴에게 털어놓는다.
상뻬의 그림은 수채화로 쓱쓱 그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의 작품엔 곳곳에 유머가 숨겨져 있다. 사람들의 몸짓, 얼굴 표정, 손 동작, 옷차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과 타지 못하는 라울의 대비, 아이 라울에서 청소년-성인-노년기에 이르기 까지 변화하는 과정들을 촘촘히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풍자적인 문장과 그림을 연결해보는 것도 작품을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다.
저자는 불행한 유년기를 보낸 사람이다. 사생아로 태어난 쌍뻬는 양부와 살며 ‘너무 멍하다’는 이유로 14살 때 학교에서 제적돼 학업을 그만뒀고 치약 판매 세일즈맨, 와인 중개업 등의 일자리를 전전했다. 1950년에 “일자리를 주고 먹여주고 재워주는 곳은 이곳뿐”이라며 군에 입대했지만 문서 위조 혐의로 구금당하고 보초를 서면서 그림을 그리다 쫓겨났다. 그제야 비로소 상뻬는 파리로 향했다. 그해 어느 날 마침내 한 잡지사가 그의 그림을 받아주면서 작가의 삶이 시작됐다. 그의 인생은 고독 그 자체다. 그가 그린 <좀머씨 이야기>를 봐도 그렇다.
그렇지만 그의 수채화엔 인간의 삶에 대한 따뜻함이 바탕색처럼 칠해져 있다. 한 평생 삶을 관찰하며 지낸 작가답게 유머러스한 시선은 작품을 압도하는 매력을 풍긴다. 또한,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행복을 중요한 가치로 두고 있다. 태어나서 자라고 생활하는 과정이 우리네 삶을 대변해주고 있다. 소소한 일상을 담아낸 작가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낸다.
<서평-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