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머니 다섯 명과 함께 안동찜닭집에 갔다. 교육을 받을 때만이라도 맛있는 것으로 몸보신을 해야 한다던 사람들이다. 나이들어가는 여자들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밤에 밥도 못 먹고 이집 저집을 돌아다닐 아주머니들, 그들은 자칭 교육전문가들이었다. 세상 어느 허름한 골목길을 돌아온 사람들일까. 신산스러운 삶의 짓눌림이 그들의 표정을 통해 드러났다. 두 사람은 도시락을 싸오고 다른 사람들은 우루루 안동찜닭집으로 몰려간 것이다. 향도를 선 한 선생이 이리저리 사람들을 꽁꽁 언 거리로 몰고 간다. 이 골목이 아닌게벼. 그렇게 세 번이나 골목길을 옮겨다니고서야 안동찜닭집을 찾았다.
뭐 안동찜닭을 한 번 먹은 것이 무슨 자랑이라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안동이란 이름이 가진 그 고풍스러운 한국적 이미지가 찜닭을 만나 새로운 맛으로 탄생되었다는 감동을 맛보려고 한 것 때문이다. 촌사람은 촌사람이다. 그저 안동찜닭이란 간판만 수없이 봤을 뿐 안동찜닭을 먹어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치킨점을 했던 사람이라 닭에 대해 별다르게 새로운 느낌이 들진 않았지만 새삼스럽게 닭에 대한 소설을 썼던 기억도 났다. 그리고 닭이 지닌 그 많은 뉘앙스 중에서 한국적인 이미지의 안동찜닭이란 이름과 맛을 다시금 곰곰히 음미하면서 뚝배기 같은 곳에 잘 양념이 된 채 나온 그 매콤하면서도 그윽한 한국적 찜닭의 맛에 빠져들었다. 손에 야만적으로 양념을 묻혀가면서 처음 보는 아주머니들과 낄낄 거리면서 청일점 꽃이 되어 안동찜닭을 이빨사이에 닭살이 끼도록 힘차게 뜯어먹었다.
맛이 닭 속에 깊이 배여 있다는 것이 이런 맛이로군. 어떤 양념을 했는지 달콤하면서도 씹히는 맛이 쫄깃할 뿐만 아니라 그곳에 넣은 메밀 사리가 국물맛의 그윽한 느낌과 함께 입 속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아주머니 선생들은 주로 대학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탄력을 잃어가는 여자들의 얼굴, 무언가 아직 신인으로서의 티를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 역력했다. 조각조각 찜통 속에서 양념과 함께 깊이 한더어리가 되었던 맛을 이로 뜯어냈다. 뼈에 붙은 고기를 뜯어내는 맛이라니, 고기가 많지는 않았지만 조금 부족하다 싶을 때 수저를 놓는 게 제일 나을 듯 싶었다. 고기를 먹고 난 후 남은 국물에 밥을 비벼 나왔는데 그 맛 또한 매콤하고 달콤한 것이 혓바닥에 착착 달라붙었다.
문제는 안동이란 이름에 걸 맞는 프랜차이즈의 이미지였다. 대체 무얼로 안동이란 이름의 이미지를 살렸을까. 나는 가만히 닭맛을 보면서 기름기가 없고 담백하면서도 그윽하게 다른 양념과 어울리는 그 맛을 음미했다. 넓은 탁배기가 꼭 항아리 뚜껑을 엎어놓은 것 같은 그래서 전통 한옥의 마루에 앉아서 시원한 담장 너머의 구름이라도 바라보면서 맛난 식사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하지만 그 핵심은 시원한 동치미 국물에 있었다. 아주머니 선생들을 의식하지 않았어도 손으로 그 복복자가 새겨진 사발을 들고 고추가 띄워진 시원한 국물을 마셨을 것이지만, 전통적인 동치미 국물의 맛은 매콤하게 찜닭을 먹고 난 후의 그 느끼함을 완전히 씻어주었다.
얼떨결에 따라가 먹은 안동찜닭, 하회마을을 휘돌아가는 그 물길과 하회탈의 익살스러운 표정, 그리고 한옥의 고풍스러운 느낌이 아득하게 전해오는 것 같은 맛깔스러움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짧은 점심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안동찜닭을 먹느라 점심시간이 지난 줄도 모르고 맛깔쓰러운 맛의 뒤끝을 갈무리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강연장에 도착했을 때 벌써 한자 선생은 당도해 있었고 그는 안동에서 온 훈장처럼 장문의 한문을 줄줄 읽어나가면서 고사성어와 한문문장을 소개하고 있었다. 건물의 직선적인 처마선이 갑자기 둥글게 바뀌면서 어디선가 거문고 소리라도 들려올 것 같은 오후의 풍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