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성 프란치스코의 전기 모음
2009년 12월 출간 | 작은 형제회 한국 관구 옮기고 엮음 | 프란치스코 출판사
예수 그리스도 다음으로 사랑받는 성인, 청빈과 절제의 미덕을 생활화하며, 자신의 존재 이유는
오로지 주님을 찬양함에 있다고 믿었던 작은 형제회의 창시자.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성 프란치스코는 어떤 의미일까요?
적어도 저에게, 그의 삶은 휴식과 묵상, 그리고 삶에의 관조로 다가왔습니다.
사람들이 전기나 위인전을 읽는 이유는, 위대한 인물의 삶이 궁금해서이기도 하고,
또한 그 삶을 통해 깨달은 바를 나의 삶에 반영코자 하는 덧없는 욕망에서 기인하기도 합니다.
때때로 이러한 욕망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누구도 타인의 삶을 살수는 없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 성 프란치스코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심으로 시작하여 불꽃같은 삶을 살다가 주님의 품으로 떠난 그의 삶은, 언뜻 보면
세속의 뭇 위인들의 삶과는 달리 드라마틱한 요소가 다소 부족합니다.
기승전결적 구조가 약하다는 얘기이지요.
그러나 그의 삶은, 다른 위인들의 삶과는 다른 그 무엇이 있습니다.
바로 처음부터 끝까지 뜨거웠으며, 그 여운이 어느 누구의 삶보다 길게 우리의
가슴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삶이 충분히 아름답고 존경받아 마땅한 이유는, 그가 단순히 자신의 삶에 대한
관조와 수행에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깨달음과 마음의 평화를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주변의 많은 이들에게 전달하려 애썼기 때문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형제들이 말로 평화를 전할 때에는 형제들의 마음에 한층 더 그러한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어떤 사람도 여러분들로 인해 분노하지 않고 또 불미스러운 이야기가
생기지 않도록 합시다. 오히려 그들을 여러분의 온화한 모습으로써 평화와 자비와
화목으로 이끌도록 하십시오. 왜냐하면 바로 이것 때문에 우리가 불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낫게 하고, 비뚤어진 사람을 고치고, 길을 잃은 사람들을
데려오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 눈에 악마의 자녀로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것입니다.“
타인을 향한 그의 사랑의 근원은 말할 것도 없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랑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가르침은,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서
방탕한 삶을 살아가고 있던 한 청년의 헛되고 헛되었던 삶을, 하루아침에 복된 삶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그가 그토록 한 순간에 회심할 수 있었던 것이, 단순히 그에게 들려온 주님의 목소리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는 주님의 목소리에 주목한 것이 아니라, 그 목소리
안에 담겨있는 진리에 주목했습니다.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는 그 진리가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그저 단어 몇 개의 나열로 그 진리를 서술하고 싶은 용기도, 포부도, 지식도 없습니다.
그저 프란치스코 성인이 느낀 그 분의 본질, 즉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싶을 뿐입니다.
이 책 [성 프란치스코의 전기 모음]은 지난 2001년 출간된 바 있는 동명의 책이
절판된 이후, 프란치스코 성인과 그의 초기 형제회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자료인
[비트리의 야고보의 증언], [자노 조르다노의 연대기], 그리고 [엘리아 형제의 회람 편지]를
부록으로 하여 지난 2009년에 재출간된 책입니다.
범람하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관련 서적 중에서도, 이 책은 저와 같은 평신도들이 가장
부담 없이, 그리고 가장 수월하게 접할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몇몇 부분에서 문맥상의 오류와 다소 거친 번역이 눈에 띄긴 합니다만, 이 책이
우리들에게 주는 묵직한 메시지와 가치를 생각하면 충분히 눈감고 넘어가 줄 수 있는 수준입니다.
삶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보다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라는 질문이 더욱 필요한
요즘이 아닐까 싶습니다.
깊어가는 겨울밤, 프란치스코 성인께서 살아가셨던 그 때 그 시절로의 여행을
떠나보시는 건 어떨까요?
어쩌면 그 여정 속에서, 어떤 삶을 살 것인가라는 생의 본질적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800여년전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삶과 가르침은 800년 뒤인
오늘날까지 우리들 가슴 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텍스트입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렇습니다.
그리고 당신께도 그러하기를 기원합니다.
첫댓글 어떤 사람도 여러분들로 인해 분노하지 않고 또 불미스러운 이야기가 생기지 않도록 합시다. 오히려 그들을 여러분의 온화한 모습으로써 평화와 자비와 화목으로 이끌도록 하십시오. 왜냐하면 바로 이것 때문에 우리가 불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위의 글 중에서.... 아멘입니다.
소명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올린 글이었습니다...
잘 보고 있습니다. 댓글은 좋은 거겠지요. 헌데 어떤 땐 댓글마저 부담스러워하시는 듯 하여 일부러 올리지 않았죠^^. 저는 지난 두 달 사이 기독교 관련 책을 여러 권 읽었지요. 그 가운데에는 어느 신부님이 추천하신 책도 4권. 프랑스의 프랑수아 바리용 신부(가톨릭)의 저작입니다. 구균하 신부님이 바리용 신부님을 잘 아시더군요. 구 신부님을 아시기에 몇 자 적어 봤습니다.
댓글이 부담스럽다니오. 오히려 감사할 따름입니다. 생각을 공유하며 살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입니다. 평화가 깃드시길 기원합니다. ^^
다행입니다. 여기 게시판에 첫 인사하셨을 때도 같은 말씀을 하셨죠. 물론 잘 기억합니다. 어쨌든 당연한 말씀이면서도 하게 되는군요. 인터넷을 상당히 좋아하고 신뢰합니다. 그러면서도 얼마나 "생각을 공유"하게 하는지 회의도 깊습니다. 사람들은 그만큼 변화하기 힘든 존재들이니까요. 바리용 신부의 책을 읽고서 제일 먼저 드는 생각도 그렇더군요. "이 분은 참 정직하시구나". 어제는 이미 절판된 책을 구하려고 수유리의 출판사를 찾아갔지요. 수녀님들과 신자(가톨릭)들이 운영하는 작은 곳. 한 수녀께서 물으시더군요. "꽤 오래 전 책인데 일부러 여기까지 구하러 오신 이유라도?" 대답은 얼버무렸습니다만 '친구' 만나러 간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