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바리
군바리란 말은 군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사전에 적혀 있다. 그래서 군인들은 이 말을 들으면 모욕감을 느낀다는 소리가 요즘 여러 차례 지면에 보도되었다. 어떤 이는 제복에 대한 사회 일각의 편견과 비하가 작용하고 있다는 말까지 한다.
그래서 어느 국방부 장관은 ‘군바리’를 포함해 ‘개목걸이(인식표)’, ‘병아리(신병)’ 등 비속어를 사용하는 장병에게 강등, 근신, 휴가 제한, 영창 등 징계 처분을 내리고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그러면 이 군바리란 말은 어디서 온 것일까? 이 말의 어원에 대한 의론이 세간에서 분분하다.
‘남의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인 일본어 ‘시다바리’가 우리나라에서 하수인의 의미로 쓰이면서, 군인과 시다바리를 합성했다는 얘기가 나오는가 하면, 또 몸이 작고 다리가 짧은 애완견을 통칭하는 ‘발바리’와 결합해 ‘나라 지키는 개’라는 의미로 군바리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고도 한다.
일본인을 쪽바리, 독한 사람을 악바리, 착한 사람을 순바리라 하는데, 여기에서 군인을 비하한 말인 군바리가 생겼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바리는 ‘무리’라는 뜻의 일본어 ‘바라(輩·ばら)’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하는 이도 있다.
6‧25 전쟁 중 한때 우리 군이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리자, 다급해진 우리 군이 적군의 진군을 늦추기 위해 바리게이트를 설치해야 했는데, 당시의 상황이 굉장히 열악하여 장비는 물론 시간도 부족하였다. 이에 궁여지책으로 이미 죽은 전우들을 바리게이트로 만들어서 적의 진군을 늦췄는데, 그 군인 바리게이트에서 군바리란 말이 나왔다고도 한다.
또 군바리는 제주도의 해녀인 비바리의 바리를 본떠서 만들어진 것이란 말까지 있다.
그야말로 각양각색으로 그럴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설들은 양자 간의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설득력이 약하다. 군바리의 ‘바리’는 그 말이 생성된 시대적 배경과 언어의 형태론적인 면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이 말은 6‧25 전쟁을 기점으로 하여 생겨난 말이다. 전쟁 때이니만큼 어디를 가나 군인들이 북적댔고, 군인들이 떼를 지어 행군하는 모습이나 한데 모여 다니는 광경은 일상으로 보는 것이었다. 이때 군바리란 말이 생겼고, 군인들은 주로 집단으로 다녔으므로 ‘군바리들’이란 복수어로 많이 썼다. 그때는 군인을 낮추어 부르는 개념이 전혀 없었다. 지금과 같은 비하의 뜻이 들어간 것은 그 후의 일이다. 이런 뜻이 생긴 것은 군대에 가면, 돈도 없고 고생하는 처지가 되니, 일반 사람들의 의식 속에 그런 뜻이 덧붙여진 것이다. 군인을 미워하거나 단순히 얕잡아 이르는 말이 아니었다. 여러 가지로 어려운 처지에 처해 있는 그들의 사정을 애틋하게 여기는 일반 사람들이나 군인 자신들의 정서가 거기에 배어 있었다. 어떤 분이 ‘군바리’ 란 단어는 군사정권 등 역사적으로 좋지 않은 기억이 군인을 통틀어 얕잡아 부르는 언어생활로 이어진 것이라 했는데 그 연원은 그렇지 않다. 고생하는 일반 군인들의 숨소리가 젖어 있는 말이지, 일부 고급 정치군인들을 비꼬기 위해 생긴 말이 아니었다.
그러면 군바리란 말이 생긴 어원적 바탕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것은 ‘군화발’이란 어근을 바탕으로 하여 생긴 말이다. 이 군화발에 명사를 만드는 접사 ‘이’가 붙은 말이 ‘군화발이’인데 여기서 군화의 ‘화’가 생략되어 군발이가 되었다. 이 군발이가 소리나는 대로 적혀져 군바리가 된 것이다. 6‧25 전쟁 당시에 군용 트럭을 지칭하는 말 중에 육바리, 사바리란 말이 통용되었는데, 육바리는 바퀴가 여섯 개 달린 ‘육발’의 트럭이고, 사바리는 바퀴가 네 개 달린 ‘사발’의 트럭을 가리켰다. 육바리, 사바리에 대한 노래가 생겨 어린이들 사이에 동요처럼 불려지기도 했다. 육바리, 사바리의 ‘바리’는 ‘발’에 명사화 접사 ‘이’가 붙어서 된 말이다. 육발이와 사발이가 변한 말이다. 군화바리도 이 말과 같이 ‘발’에 군화를 신고 다닌다는 군인의 특성에 연유하여 생긴 말이다. 다시 말하면, 군바리는 군인을 가리키는 하나의 제유법(提喩法)이 적용되어 생긴 말이다. 사물의 한 부분으로 전체나 그와 관련되는 모든 것을 나타내는 표현 방법이 제유법이다. 감투가 벼슬을 나타내는 따위가 그러한 예다. 감투가 벼슬을 대유(代喩)한 것처럼 ‘군(화)발이’는 군인을 대유한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말에 ‘발’이 어근인 ‘발이’가 제유법으로 이루어진 말이 많은데, 그 몇 개를 보이면 다음과 같다.
솥발이(한 배에서 난 세 마리의 강아지),
몽둥발이(딸려 붙었던 것이 다 떨어지고 몸뚱이만 남은 물건),
쩔뚝발이 뚝발이 절둑발이 쩔름발이 절름발이 짤름발이 잘름발이 자춤발이
쥐엄발이(발끝이 오그러져서 디디어도 잘 펴지지 않는 발이나 그런 사람)
쪽발이(발통이 두 조각으로 쪼개져 된 물건), 삼발이, 육발이(발가락이 여섯인 발) 사족발이(네 굽이 흰 말)
딸깍발이(신이 없어서 마른날에도 나막신만 신는다는 뜻으로 가난한 선비를 이르는 말) 앙가발이(다리가 짧고 굽은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
이를 보면 ‘발이(바리)’가 붙어서 어떤 사람이나 동물, 물건을 나타내는 것이 우리말에 얼마나 널리 쓰이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이런 ‘발이’가 ‘바리’로 굳어져 쓰이고 있는 것이 ‘군바리’란 말이다. 이것은 일본 사람을 낮잡아 부르는 ‘쪽발이’가 일반 사람들에게 쪽바리로 인식되어 쓰이는 것과 같다.
그런데 ‘쪽발이’라는 말 역시 일본인들이 발에 신고 다니는 물건과 관련된 말이다. 나무로 만들어 신는 케다나 슬리퍼처럼 신고 다니는 조리 그리고 전통 버선인 타비의 모양이 다 두 쪽으로 쪼개져, 엄지발가락과 둘째 발가락 사이에 그것을 끼워 신도록 되어 있다. 어떤 물건을 쪼갰을 때의 한 부분을 가리키는 ‘쪽’과 ‘발’이 어우러져 생긴 말이 쪽발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일 것은, 작은 강아지를 가리키는 발바리는 ‘발이’와 관련된 말이 아니고 ‘발발’ 즉 ‘몸을 바닥에 대고 작은 동작으로 기는 모양’을 나타내는 부사에 ‘이’가 붙어 이루어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