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북정맥 4구간
*스무고개-물편고개-금자봉-꽃조개고개-일월산-홍동산-덕숭산-나본들고개-가야산-석문봉-일락산-용현산-상왕산-무르티고개-간대산-성현고개(76.6㎞, 2017.6.3.~4.)
토요일 오후 3시 사당에서 출발한 버스는 6시 반이 넘어서 청양군 화성면의 스무고개에 도착했다. 노랗게 피어 있는 금계국 위로 옅은 산그림자가 길게 깔려 있었다. 한 시간 남짓 걷을 때쯤 저만치 오서산의 왼쪽 어깨 위로 뉘엿뉘엿 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산길에는 어느새 땅거미가 내려앉고, 소란스럽게 재잘거리던 나무들은 무거운 침묵 속에 잠겼다. 빛이 빠져나간 숲에는 빠르게 먹물 같은 어둠이 스며들었다. 들판의 해거름과 달리 산속의 어둠은 머뭇거림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엄습했다.
12킬로 지점인 신풍고개에서 오서산 대장님이 맥주, 막걸리에다 치킨과 편육을 잔뜩 펼쳐 놓고 기다린다. 저녁을 걸러 허기를 느꼈던 탓에 실컷 배를 채웠다. 달빛 아래 낮게 흐르는 정맥길은 축사와 집들에 침식당해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게 뭉개져 있었다. 홍성군 장곡면과 홍동면 일대 10여 킬로 포장도로를 걸었는데, 축사에서 나오는 악취가 온 동네에 진동했다. 인근 주민이 참아내야 하는 생활상의 고통도 여간한 문제가 아니지만, 대기오염 측면에서도 가축분뇨의 보관과 반출, 처리 방법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절실해 보였다.
새벽 1시 반쯤, 홍성군의 홍성읍 학계리와 구항면 마온리를 연결하는 꽃조개고개에 도착했다. 인근 식당에서 주문한 콩나물국밥으로 서둘러 새벽 식사를 때우고, 만해 한용운 동상을 지나 남산 쪽으로 올라갔다. 하우고개에는 1905년 을사조약 당시 이곳 호서지방의 첫 의병주둔을 기념하는 홍주의병주둔유지비가 서 있다.
살포쟁이고개를 지나 일월산에 올랐다. 동쪽으로 들어앉은 홍성군의 야경이 큰 도시 못지않게 휘황찬란하다. 금북의 산들 중 드물게 큰 바위들이 많고, 멀리 조망도 트였다. 새벽 4시 반, 북쪽으로 홍동산과 그 너머 덕숭산, 가야산이 모습을 불끈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오른쪽 들판 한가운데 솟아 있는 용봉산이 검붉은 기운에 감싸이자 홍성의 산들은 시나브로 뾰족한 지붕을 만들어 하늘과의 경계를 서둘렀다. 산들의 어깻죽지를 타고 내려온 새벽안개가 불빛 꺼져가는 마을들을 희부옇게 덮고 있었다. 산마루의 선연하던 어둠과 빛의 경계는 도시에서 전율처럼 저릿저릿 번져 나갔다. 백월산으로도 불리는 일월산은 홍성읍에서 서쪽 방향으로 4㎞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홍성의 진산이다.
까치고개에서 랜턴을 끄고 홍동산에 올랐다. 용봉산 산중턱에서 검은 기운을 밀어내고 벌겋게 해가 솟았다. 동쪽의 넓은 산이라는데, 예전에 큰 산불이 났는지 키 작은 잡풀들만 무성하고, 능선을 따라 고사목 몇 그루가 을씨년스레 버티고 서 있다. 아침 안개는 멀리 비산비야(非山非野)의 야트막한 구릉 사이를 샛강처럼 흐르고, 턱진 여울목 같은 마을들 위에서 희미하게 부서져 나아갔다.
수덕고개를 지나 아침 7시 20분쯤 덕숭산 정상에 올랐다. 수덕산이라고도 하는데, 아름다운 계곡과 각양각색의 기암괴석이 많아 예로부터 호서의 금강산이라 불려 왔다고 한다. 남쪽 산기슭에는 오래된 목조건물인 수덕사 대웅전이 있고, 동쪽으로는 덕산온천이 있다. 계단을 올라오는 여인을 훔쳐 보다 얼이 빠졌는지 길을 벗어난지도 모르고 수덕사 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암자의 스님한테 길을 물어 다시 능선에 올라탔다.
나본들고개에는 중부지부 황금산 지부장님과 알라딘 대장님, 지니님, 새벽누리님이 지원을 나와 있었다. 닭죽을 두 그릇이나 먹고, 맥주도 여러 잔 들이켰더니 밤새 달려왔던 피로가 다 풀리는 것 같았다. 새벽누리님은 이후 같이 산행을 하고, 알라딘님과 지니님은 한티고개, 용현산에도 수박과 맥주를 짊어지고 지원을 나오셨다. 여름철에 이런 지원을 받는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뒷산은 산이름만 봐서는 별로 어렵지 않게 생각되었는데, 오서산 대장님 말대로 실제로 오를 때는 땀깨나 흘렸다. 뒷산에서 내려가면 천주교 박해가 있었던 한티고개가 나온다. 천주교제당 옆 정자에서 수박과 맥주를 또 지원받았다.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 아라메 순례길을 넘어 해미읍성으로 끌려가 처형당했다고 지부장님이 설명했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던지 가야산으로 향하는 선두조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왼쪽 드넓은 평야에 서산시가 성글게 들어앉고, 그 너머 태안군의 들판과 바다는 하늘과 섞여 지평선의 끝까지 달음질쳤다. 11시 40분쯤 길을 헤맨 끝에 바위를 타고 올라 가야산 정상인 가야봉에 올랐다. 석문봉 쪽에서 오는 등산객들이 많았는데, 우리처럼 뒷산에서 가야봉을 오르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가야산은 예산군 덕산면과 서산시 운산면, 해미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금북정맥의 서해 쪽 산줄기 가운데 가장 웅장하다. 바닷길이 내륙 깊숙이 들어가는 가야산 주변은 내포문화의 중심지다. 홍성, 예산, 당진, 서산 등을 일컫는 내포는 지세가 산모퉁이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큰 길목이 아니어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난리 때에도 적군이 쳐들어오지 못했다고 한다. 암봉인 석문봉에는 사진을 찍기 어려울 정도로 등산객이 많았는데, 남쪽으로 가야봉, 북서쪽으로 일락산이 훤히 보이고, 해미 쪽으로는 서해바다가 희미하게 펼쳐졌다.
석문봉까지 울퉁불퉁 오르내리던 금북의 산길은 다시 완만하게 이어졌다. 잠잠하던 무릎은 50㎞가 넘어가는 내리막 돌길에서 어김없이 아우성이다. 무릎보호대가 땀에 절어 무릎 뒤쪽 살갗이 짓물러졌다. 트인 풍경에 묻혔던 잠이 갑자기 쏟아진다. 연방 흘러내리는 눈을 추켜올리며 한참을 걸어가자 일락산, 용현산이 나왔다. 알라딘 대장님이 개심사에서부터 짊어지고 온 맥주와 수박을 잔뜩 펼쳐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알라딘, 지니 부부는 주말 하루 내내 우리 팀을 지원해 주셨는데, 너무 미안하고 황송한 일이다.
조금 더 북쪽으로 걸으면 상왕산이다. 산불에 타들어간 능선에는 여기저기 검은 숯덩이가 나뒹글고 있었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뿌리 때문인지, 시커멓게 탄 나무들은 천형처럼 하늘에 목을 매달고 있다. 꼿꼿이 서 있는 저 죽음들은 눕지도 못하는 것일까. 맞은편 비탈에는 타다 만 나무들이 할머니 곱은 손가락 같은 이파리들을 바람에 말리고 있었다. 그을린 흙을 뚫고 새살 돋듯 풀들은 연두 잎을 틔운다.
가물어서일까, 드넓은 서산한우목장 초지에는 소 한 마리 없고, 늦가을처럼 풀들은 탈색되었다. 오후 4시가 넘어 66킬로 지점 무르티고개에 도착해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휴게소 야외 수돗물에 발을 씻고 싶었으나 물은 찔끔찔끔 짜듯이 나온다. 계속되는 가뭄에 논밭은 물론이고 생활용수도 부족한 모양이다. 산행한답시고 까맣게 타들어가는 농촌 옆을 지나가는 것도 참으로 황송한 일이다. 일정을 단축해서 10킬로만 더 진행하기로 하고 5시쯤 다시 출발했다. 간대산을 넘어 이름 없는 산들이 지루하게 이어지고, 낮은 산에는 어김없이 잡목이 우거졌다. 저녁 7시 40분쯤 홍성교도소 서산지소가 있는 성현고개에 도착했다. 시간이 늦어 길거리에서 간단히 맥주를 마시고 버스에 올랐다. 소청님 사모님이 보내준 유부초밥과 계란 프라이로 버스에서 저녁을 때웠다.
첫댓글 겁나게 자세히썼유.
함께 걸음하여 즐거웠습니다.
무릎부상 치료잘하시고 다음에
어느산길에서 뵙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지원 감사하구유. 글타고 앞에서 그렇게 사정없이 내빼면 나 같은 사람을 어쩐대유? ㅋ 갑장님, 만나서 겁나 반가웠어유. 또 봐유~~~
산이도와 상관없이 거리에 무릅이
말썽을 부리려 조짐을 보였구려...
짧게나마 얼굴볼수 있어 좋았고
담 금북 졸업구간 에서도 짧게나마
얼굴볼수 있을거 같네~~
욕봤소~~
중부지부 지원 땜시 편하게 구간을 마쳤구만. 울 지부장님 얼굴도 보고 여러모로 유쾌하고 즐거운 산행이 되었다네. 거듭 감사하네. ㅎ 담 주에 또 뵙기를~~~
글고 보면 엉아는 복 받았슈~
이야기속에 나온다는 그 분들~ 셋이나
갑장으로 맞이하시고~~ㅎㅎ
그렇지? 받은 복만큼 베풀어야 헐 것인디 쩝 ㅎ
엉아님 산행기는 몰입이 됩니다요!
산행도 무릎 땜시 조심스럽고,
후기도 심혈을 기울어 엮어지기에
힘들어 갔지요?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의미있는 구간 이였지요!기억에 뚜렷하게
자리하겠지요~~
갑장 삼총사 보기 좋고,수고 하셨습니다^-^
발목은 좀 어떠신가? 울 총무님이 고생하셨지...금산은 잘 가셨는가? 같이 못 가서 미안. 나나님이랑 즐겁게 올라오셔라~~~
얼마전에 홍성이 고향이신 분들이 그러더군요.
전국에서 제일 축산 밀도가 높다고....
지자체에서도 대책이 없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더위에 또 한구간 마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지원하신 중부지부 회원님들도 수고하셨습니다.
한 구간 한 구간 마치는 것이 꼭 오래 묵은 숙제를 하는 것 같습니다. 악취 문제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홍성 주민들의 숙제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항상 챙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금북정맥 4구간 산행하시느라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즐겁고 안전한 산행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대장님, 감사합니다. 이번 금산 모임 챙기시느라 애쓰셨습니다. 앞으로 자주 뵐 것 같습니다. ㅎ
흥!배신때리고 물좋은곳에 가시고..치!
득..
ㅋ 긍께유, ㅋㅋ 배신에 대한 대가는 받아야 겄지유? 으짜까유...ㅎ
댓가?뭔지 알지유?ㅎㅎ
옆에 109총무님이 사랑도ㅋㅋ하네요
오케이어유 ㅋ
깔끔한 사진들에서 정감을 느껴 봅니다.
6차팀도 해가 서산으로 기울듯
막바지 추억으로 걷는시간만 조금 남았네요.
남은거리 소중한 걸음 되시길. 옹
졸업하고 나니 기분이 쫌 어떠신지요. 홀가분과 서운함 그리고 그리움이 더하겠지요. 걸었던 그 길들이 많이 생각날 듯합니다. ㅎ 항상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