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버지의
영혼 구원을 놓고 기도해주십시오
이 글은 공개해도 좋다는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 망설이다 보내드리며
기도를 요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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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통의 전화
강원도 설악에 있었다. 7, 8월 여러 집회와 수련회 일정이 끝나고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처가 가족들과 동행한 휴가.
수요일 오전. 바닷가로 가는 차 안에서 전화를 받았다. 전화의 주인공은 서울에 계신 아버지였다.
"전화 받기 괜찮으냐?"
"예, 아버지. 지금 강원도에 있어요."
"그래, 그럼 서울에 올라오면 이야기하자."
아버지가 나에게 먼저 전화를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었고, 또 음색이 평소와 달랐기 때문에 나는 그 전화가 예사로운 내용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급히 말했다.
"아녜요, 아버지. 지금 괜찮아요."
"그……래, 그런데 좋은 내용이 아니라서 말이다."
"말씀하세요, 아버지."
아버지는 무척 힘겹게 말씀을 꺼내셨다.
"내가 증권을 하지 않았니? 너한테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제 더 이상 해결할 수가 없어서 너에게 전화했다. 너는 모르겠지만 늬 동생들한테는 이미 손을 뻗친 적이 있어서 말도 못하고 말야."
아버지의 목소리를 통하여 드문드문, 침착하게 말씀하려 애쓰는 모습이 느껴졌다.
돈이 필요하구나
아버지는 30년 이상을 은행에 근무하셨다. 첫 직장이 마지막 직장인 셈인데 매우 충실하게 은행에 근무하셨다. 그러던 중 IMF로 인한 감원 바람에 아버지도 명예퇴직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신앙이 없으시며, 물질적 욕심이 강하신 분이다. 술을 무척 좋아하고 외아들로 성장해서인지 고집도 무척 세다. 그런 영향을 나는 어려서부터 받아오며 자라오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와 같은 연결고리를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끊게 되었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영혼 구원을 놓고 아내와 함께 10년여를 기도하던 중이었다.
아버지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무엇인가 부탁을 한 것은 내 40년 삶 가운데 처음 있는 일이었다. 돈을 꽤 버는 익스프레스를 하는 남동생, 요즘은 경기가 안 좋다고 한다. 그리고 여동생과 누이에게 역시 손을 벌릴 상황은 아버지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액수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버지가 나에게 무엇인가 도움을 요청한다. 이것은 그동안 아버지의 영혼구원을 놓고 기도해 온 나를 통하여 주님께서 무엇인가 역사하실 시작이 아닌가 싶었다.
"아버지, 그러니까 돈이 필요한 건가요?"
"그래."
"얼마나 되는데요?"
"그게 말이다. 좀 많아서 말야."
"말씀하세요. 아버지."
카드를 사용하여 이쪽 저쪽으로 막던 중 도저히 처리할 수 없을 지경까지 갔다 한다. 다음 달에는 천만원 정도를 해결해야 하고, 다음달에는 삼백만원 가량이 또 해결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천삼백만원.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주님의 강한 역사하심을 느꼈다. 나에게 그만한 돈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 과정을 통하여 주님께서 계획하신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마음을 주셨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아닌 큰아들인 나에게 전화를 해야겠다는, 아니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주신 하나님. 그분의 음성에 집중했다.
"아버지 일단 알았어요.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 주일 예배 후에 아버지한테 갈테니까 그 때 이야기 해요."
"알았다. 그런데……"
"네, 아버지."
"에미한테도 그리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럼요. 아버지. 마음 편하게 하고 계세요."
수요 예배에 참석하고
바닷가에 도착하는 차안에서도 입에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기도가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천삼백만원.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역사하실 때 약한 부분을 통해 역사하신다. 그래서 기가 막힌 하나님이시다. 아버지에게는 물질적인 부분이 가장 약한 부분이었다. 바닷물 속에 있을 때에도 그리고 돌아오는 차안에서도 나는 하나님의 인도함을 구하며 그분의 뜻을 구하며 기도하고 있었다.
숙소에 도착하고 식사를 할 때 장인어른께서 말씀하셨다.
"근처에 설악영락교회가 있는데 오늘 수요일이니까 예배를 그곳에서 드리면 어떠니?"
영락교회에서 관리과장으로 근무하셨던 아버님의 뜻에 따라, 처남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함께 영락설악교회로 갔다. 아내와 아이들은 숙소에서 쉬도록 한 채.
아버님의 인도에 따라 찾아갔지만 길을 잘못 들어 예배 시간 10여분이 지나서야 교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미 목사님께서 설교를 시작하고 계셨다. 우리 셋은 조용히 자리를 찾아 앉았다. 본당은 공사중이어서 옆의 교육관에서 예배를 드리는 중이었다. 약 10여명의 성도들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는 성경부분은 시편 40편이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여호와를 의지하고 교만한 자와 거짓에 치우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도소이다 내가 들어 말하고자 하나 주의 앞에 베풀 수도 없고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주께서 나의 귀를 통하여 들리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치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내가 대회 중에서 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내 입술을 닫지 아니할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가 주의 의를 내 심중에 숨기지 아니하고 주의 성실과 구원을 선포하였으며 내가 주의 인자와 진리를 대회 중에서 은휘치 아니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 그치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 무수한 재앙이 나를 둘러싸고 나의 죄악이 내게 미치므로 우러러 볼 수도 없으며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 마음이 사라졌음이니이다 여호와여 은총을 베푸사 나를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나의 영혼을 찾아 멸하려 하는 자로 다 수치와 낭패를 당케 하시며 나의 해를 기뻐하는 자로 다 물러가 욕을 당케 하소서 나를 향하여 하하 하는 자로 자기 수치를 인하여 놀라게 하소서 무릇 주를 찾는 자는 다 주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는 항상 말하기를 여호와는 광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건지시는 자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시편 40:1-17)
설교의 앞 부분은 듣지 못했지만 용서와 축복에 대한 말씀이었던 것 같다. 들은 부분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친구가 둘이 있었다. 한 친구가 사업에 실패하여 다른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 친구는 사업체를 세 개나 가지고 있었다. 도움을 주려면 당장이라도 줄 수 있었지만 이렇게 말했다.
"네가 먼저 바뀌어야 돼. 문제는 상황이 아니라 너에게 있거든. 앞으로 5년 동안 이렇게 하렴. 그 첫 번째는 술을 끊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5년 동안 주어진 직업에 충실하여 작은 보수에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교회에 나가야 하는 거야. 그것이 된다면 나는 내 사업체 중 하나를 너에게 주겠어."
목사님을 통한 이 내용은 나에게 전해지는 하나님의 강한 음성이었다. 마치 아버지가 앞으로 행해야 할 일을 말씀해주시는 것처럼 정확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먼저 술에 관한 것.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술에 관한한 남이 따르지 못할 정도였다. 지나치게 술을 많이 마시던 기억, 요즘도 술을 옆에 끼고 드시는 그 모습, 그리고 저녁이면 항시 발그스레한 얼굴로 귀가하는 모습. 나의 기억에 지워지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그래서그런지 나 역시 술을 무척 좋아했었다. 누나도 여동생도 그랬다. 그런데 술을 마신 후면 꼭 울거나 싸우거나 둘 중 하나였다. 즐겁게 마시지도 못하는 술. 그러나 끊기는 더 어려웠다.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 나 역시 그런 생활을 계속 했었다. 진정한 회복은 주님을 만나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한다.
둘째는 물질에 관한 것이었다. 물질관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 작은 물질에도 감사하고 남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것인데, 아버지는 평생을 물질에 집착하며 살아오고 있었다. 주식 투자와 경마 등을 통하여 일확천금도 꿈꾸며 말이다. 아버지는 퇴직 후 친구분이 경영하는 작은 직장에 나가고 계신다. 보수는 은행에서의 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고 감사한 생활이 아쉬운 나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 부분을 짚어주셨다.
세 번째는 결혼 후 10년 동안 아내와 내가 기도하고 있는 것 중 일순위인 교회에 나가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아버지는 이유 없이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을 욕하곤 하셨다. 나와 내 아내에게 들으라는 듯이. 그럴 때 우리 부부는 더욱 인내하며 마음속으로 전심을 다해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형태로든지 아버지는 도전을 받고 계시며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서 결국 만나주실 것이라는 기대를 포기하지 않았다.
가슴이 뛰고 있었다. 고동치고 있었다. 확실한 하나님의 뜻하심이며 인도하심이었다. 나의 아버지가 후반전 인생을 사셔야 할 방향을 하나님께서는 너무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었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예배 후 목사님과 대화할 시간이 주어졌다.
"목사님, 오늘 아침에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내심 우려되었던 면이 있었는데, 오늘 목사님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모두 정리되었습니다. 나중에 귀한 간증이 될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그리고 목사님께 감사 드립니다."
아버지 성경 읽어야 돼요
감사한 마음을 담고 숙소에 돌아왔다. 시간은 10시 가까이 되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말씀을 해 놓고도 걱정이 많이 되셨는지 또 술을 드신 모양이었다.
"아버지, 아버지의 말을 듣고 사실 걱정된 것이 있어요. 하지만 아버지, 제가 아버지에게 그동안 편지를 쓰며 아버지하고 엄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 얘기했죠?"
"응, 그래."
"아버지, 이번의 일은 그동안 아버지를 놓고 기도해온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뜻이란 것을 알았어요. 오늘 수요일 예배를 설악영락교회에 가서 드렸거든요. 아버지는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어요. 그래서 그런데 아버지 제 말대로 하셨으면 좋겠어요."
아버지는 잠자코 듣고 계셨다.
"아버지, 집에 성경 없죠? 내일 서점에 가서 성경을 사서 시편 40편을 읽으세요. 그리고 제가 갈 때까지 매일 잠깐이라도 기도하세요. 아버지도 어릴 때는 교회에 나간 적 있다 그랬죠? 꼭 그렇게 하세요. 네? 아버지."
"어디라 그랬지? 시편 어디라고?"
아버지는 내 말을 듣고 계셨다. 아니,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의 마음을 열어 놓고 계셨다.
"시편 40편이예요. 아버지."
나는 목이 메이는 것을 억지로 참아내며 말을 이었다.
"아버지,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 아버지의 어려운 점은 이제 인간적인 방법으로 절대 해결되지 않아요. 저에게 그만한 돈도 없어요.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실 거예요. 아버지. 꼭 읽어야 돼요. 저도 기도 많이 할게요."
"알았다. 알았어."
눈물 범벅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동이었다. 아버지가 성경을 읽는 모습이 연상되니 그저 눈물부터 흘러나왔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숙소 앞 의자에서 기도했다.
아버지, 걱정할 것 없어요
서울로 돌아오는 때까지 사흘을 아버지께 매일 전화를 드렸다. 성경을 읽으라는 말과 마음 편히 가지시라는 말은 빼놓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계속 술을 드시는 것 같았다. 별반 다를 바 없이 속상해 하시고 있었다.
주일 예배 후 아버지 집에 갔다. 아버지는 그 날도 밖에 나갔다가 약간의 약주를 하신 듯한 얼굴로 돌아오셨다. 아버지를 따라 안방으로 건너갔다. 나는 더욱 밝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아버지, 괜찮아요. 아버지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사실 문제가 아녜요."
아버지는 손짓으로 방문을 닫으라고 하셨다. 나는 아내에게 아무도 가까이 오지 말라고 조용히 말했다. 아버지는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나는 좋은 동역자인 아내에게는 이미 귀띔을 해두었다.
아버지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리고는 말씀을 꺼내셨다.
"미안하다. 내가 어떻게 해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방법이 없어서 너에게 전화를 했어."
"아녜요. 아버지, 부자지간에 미안한 것이 어디 있어요.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아버지는 명예 퇴직 하신 지 3년 가량 되었다. 그런 후 증권에 손을 대셨고, 경마권에도 투자를 하셨다. 그러나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당신에게 따르지 않는 물질적 복의 운이 없음을 한탄하며 속상할 때는 술로 위로 받기를 원했다. 자연적으로 퇴직금은 모두 사라졌고, 그뿐만 아니라 내 동생들에게까지도 손을 벌리셨던 것이다. 현금서비스로 막던 중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은 천삼백여만원. 어떻게 보면 큰 돈이고 또 어떻게 생각해 보면 그다지 큰 것도 아니었다. 이 정도 금액에 아버지가 어깨를 늘어뜨리고 이렇게 힘들어하시는 모습은 정말 안타까웠다. 그러나 그 과정은 얼마나 힘드셨을까. 작년 8월부터 일 년 동안이 가장 힘들었다고 하셨다. 누구에게 말도 하지 못하고 엄마에게는 거짓말을 해야 하고 신경질만 늘어가고.
"너무 힘이 들어서 작년 여름에는 죽어버리려고도 했었어."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눈물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돈 때문에 죽는다고요? 그런 미련한 짓이 어디 있어요? 이 말이 입술까지 몰라왔다.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이 시간 아버지와 저 정말 오랜만에 진지한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 함께 하시는 거지요? 우리 아버지 만나주셔요. 꼭 역사해 주세요.'
오죽했으면 그러셨을까, 얼마나 힘드셨으면 자살까지 생각하셨을까. 가슴 저 밑에서부터 끄윽거리며 올라오는 이 자맥질. 나는 눈물을 삼키며 비교적 천천히 말을 꺼냈다.
"아버지, 잘 참았어요. 그 돈이 뭔데요. 아버지, 걱정할 것 없어요. 그 카드빚 저한테 다 넘겨주세요. 제가 알아서 할테니까요. 그리고 아버지, 오늘 밤부터 편안히 주무시면 돼요. 술을 안 드시면 더 좋지만 혹시 드신다면 기분 좋게 드세요. 그리고 마음 편하게 지내세요. 아셨죠? 아버지."
"그래, 하지만 미안해서 그렇지."
아버지는 주머니에서 카드와 명세표를 꺼내셨다. 나는 대강 훑어보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사실 이번 일은 그냥 단순한 일이 아녜요. 전화로도 말씀드렸지만 저희 부부는 아버지와 엄마를 놓고 10년을 기도해왔어요. 그 때 아버지학교에서 제가 보낸 편지 아버지 알지요?"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 때 내용처럼 아버지와 엄마를 위해 우리 부부는 지금까지 기도해 왔고, 또 기도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번 일은 하나님께서 아버지에게 무엇인가 알려주시려고 깨우쳐주시려고 아버지가 저에게 전화를 하도록 하신 거예요. 아버지, 저 40년 살면서 아버지가 저에게 무언가 부탁하는 전화는 처음이잖아요. 저는 사실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아버지가 나에게 무슨 부탁을 한다. 지금껏 아버지 고민은 말씀 안하시고 왔는데, 이제 정말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시는 때가 왔구나 하고 말예요. 그래서 전 기뻐요, 아버지."
나는 설악영락교회에서의 예배와 받은 말씀들을 상세히 말씀 드렸다.
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니가 그 날 전화했던 저녁, 그 날은 너무 편히 잠을 잘 수 있었어. 그동안 계속 잠을 설쳤거든. 그런데 그 날은 너무도 편안하게 잠이 오더구나. 아침에 일어났을 때 그렇게 머리가 개운한 것은 참 오랜만이었다. 희한하다고 생각했지. 오후가 되어서 또 머리가 아파 왔지만 말이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다. 아버지 스스로 무엇인가 신비한 힘을 인정하시며, 그래서 주님을 알아가는 과정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라는 믿음이 들었다.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기도를
"아버지, 시편 40편은 읽으셨어요?"
"아니, 집에 성경도 없고, 그 날 받아 적었는데 어딘지도 가물가물하고 생각이 잘 안 나더구나. 그리고 서점에 갔었어. 성경을 사서 읽어보려고, 그런데 제일 작은 게 25,000원이나 하잖니? 너무 비싸서 살 수가 없었어."
나는 눈물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성경을 사기 위해 서점에 가신 것은 무척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사는데 25,000원이 비싸서 못 샀다는 생각은 나를 안타깝게 하기에 충분했다. 나의 아버지가 얼마나 물질에 얽매여 살고 계셨는가를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 잘 하셨어요. 그러면 제가 성경을 가지고 왔으니까 한 번 읽어보세요."
아버지는 성경을 받으시고 내가 펼쳐드린 부분을 읽으려 하셨다. 그러나,
"눈이 침침해서 볼 수가 없구나."
"그래요, 아버지. 그러면 제가 읽을게요."
나는 시편 40편을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목이 메어왔다. 아버지께 성경을 읽어 드린다. 그 감격적인 순간. 아버지가 성경을 접하고 계신다. 이것마저도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였다. 축복이었다.
나는 시편 40편을 다 읽고 약간의 설명을 덧붙였다.
"보세요, 아버지. 1절, 2절요,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그리고 17절요,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건지시는 자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버지에게 주신 말씀예요. 말씀을 붙잡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주세요. 그리고 아버지, 이제 아버지 인생도 후반전에 접어들었는데 새롭게 사셔야 하지 않겠어요? 언제까지나 돈과 물질에 연연해 살면 지금보다 나아질 게 없잖아요."
"나는 이미 틀렸다."
"아녜요, 아버지. 제가 나온 <아버지학교>에는 아버지보다 더 연세 많은 분들도 오시구요. 그곳에서 많은 것을 깨달아요. 그리고 너무 열심히 후반전 인생을 살고 계세요. 아버지, 아버지도 <아버지학교>에 가시면 좋겠어요."
"글쎄다. 아직 내가 뭐가 뭔지 몰라서 말야."
"그래요, 아버지. 하지만 <아버지학교>에 꼭 가시게 될 거예요. 거기에만 다녀오면 시각이 바뀌거든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버지를 분명히 축복하실 거예요. 물질적인 부분도 다 풀어주실거구요."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니?"
나는 아버지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아버지가 불쌍해지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제가 아버지 위해서 기도 한 번 하고 싶은데, 해도 될까요?"
아버지는 가만히 계셨다. 이윽고,
"그래라, 그럼."
나는 아버지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상한 심령을 치료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이 시간 아버지와 기도하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속에 가진 슬픔과 괴로움, 하나님 만져주시고 위로해주시옵소서. 이 과정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습니다. 주님 도와주셔서 우리 아버지 예수님 만나고 새롭게 후반전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그러할진대 꼭 <아버지학교>에 가실 수 있도록 하나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목이 메이고 눈물이 흘렀다. 아버지의 손은 생각했던 것보다 말랐고, 피부는 보기보다 더 까매 있었다.
얼마 안되네, 뭐!
집에 돌아오는 차안에서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때문에 운전하기조차 어려웠다. 아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심중으로 통하는 지,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 도착해 잠든 두 딸아이를 눕히고 아내와 마주 앉았다.
"아버지가 물질적 어려움을 겪고 계셔. 내가 해결해야 할 것 같아. 그런데 분명한 건 이 번 일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기회라는 거야. 이번에 하나님께서 아버지를 만나주실 게 틀림 없어."
"아버님이 해결해야 할 돈이 얼마나 되는데?"
"약 천삼백만원 정도야."
"얼마 안 되네!"
나는 대뜸 말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도리어 의아했다. 얼마 안되다니? 우리집으로 보아서는 큰 돈임에 틀림 없다. 그리고 시아버지가 증권에 실패해 그렇게 되었는데 아무 문제 없다는 며느리의 이 말.
"여보, 나는 몇 억 정도 되는지 알았어. 사실 그 정도 금액은 큰 거 아니잖아?"
나는 아내의 이 말이 또한 고마웠다. 아내는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나 통장을 하나 가지고 나에게 내밀었다.
"어쩐지 내가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 돈 같지가 않더라구, 있던 돈이야. 이것 주님께서 주시는 것 아니겠어?"
통장을 열어 본 순간, 나는 너무도 놀랐다. 통장에 있는 돈은 약 천삼백만원 가량의 돈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생활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 이 정도의 돈이 있는 줄도 나는 몰랐거니와, 더욱이 아내가 이 돈을 모으면서도 내 것 같지가 않더라는 마음이 들었다는 것을 볼 때 결국, 주님께서 예비토록 하신 것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내는 통장과 도장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여보, 정말 감사하네. 빚 안 지고 해결할 수 있으니 말야. 그리고 이 정도 돈을 들여서 아버님이 예수님을 영접한다면 이거 너무 싼 거 아냐?"
이렇게까지 말하는 아내가 너무 사랑스러웠고 고마웠다. 영적인 눈으로 보았을 때는 사실 예수님 영접 이외에 우리에게 무엇이 더 가치 있는 일이겠는가?
아내와 나는 같이 기도했다. 분명히 아버지에게 역사하실 하나님의 때가 왔다는 믿음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아버지학교>에 아버지는 가실 것이며 그 곳에서 또한 놀라운 역사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들었다.
<아버지학교>에 등록하고
이틀이 흘렀다. 나는 아버지의 카드를 모두 해결했다. 그리고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아버지, 다 처리했어요."
"뭐라고? 아니, 그걸 어떻게 한꺼번에 할 수가 있니?"
"아버지, 뭐라고 했어요. 걱정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빚 안 지고 하나님께서 다 해결해주신다고 했잖아요."
그러나 아버지는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동안의 일을 아버지가 깨닫게 되고, 그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느끼실 때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그러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아버지 마음만 추스르면 되거든요. 아버지 일전에 <아버지학교> 얘기 했었잖아요? 아버지, 이번에 <강동 7기 아버지학교>가 시작되던데 참여하시면 어때요?"
"그래? 언제인데?"
나는 상세히 설명을 드렸다. 그리고 모든 절차와 등록은 내가 다 해놓겠다고 말씀 드렸다.
"그런데 내 직장이 6시에 끝나지 않니? 토요일도 말야."
"아버지, 하여튼 참여하고자 하는 마음만 우선 있으면 되거든요. 약간 늦는다 하더라도 말예요."
"그래? 그럼 해 보자. 알았다."
나의 눈에는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내 아버지가 <아버지학교>에 등록을 한다. 그리고 그곳에 가신다. 5주 동안 나와 꼭 같은 모습으로 강의를 듣고 간증을 들으며 영상을 보고 나눔의 시간을 가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만남 가운데 아버지는 변화되실 것이 틀림없다. 자녀인 나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아버지의 살아 온 인생을 다시금 생각해 보는 좋은 기회가 되길 소망한다. 나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맛보고 후반전 인생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시길 무엇보다 소망하는 것이다.
기어이 <아버지학교>에서 예수님을 영접하는 역사가 있기를 기도한다.
나는 다음날 바로 아버지를 <강동7기 아버지학교>에 등록해 드렸다. 그리고 아침 저녁으로 기도하였다. 아내에게도 집중적으로 기도하기를 권면했다.
제 아버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아버지가 <아버지학교>에 등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감사하고 감격했다. <아버지학교> 홈페이지에 아버지를 위한 기도 요청을 드렸다. 많은 분들의 격려 전화와 기도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다음은 게시판에 올렸던 나의 기도 요청 글이다.
'저의 아버지가 <강동 7기 아버지학교>에 등록하셨습니다. 감사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으며, 결혼 10년 동안 아버지를 놓고 기도했던 아내와 저의 간구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것임을 믿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아버지 어머니와 살지 못했던 저, 그러나 이제는 아버지를 끌어안고 기도할 수 있는 때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줄 믿습니다
지난 8월 중순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40년 만에 처음으로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9월 28일 강동 7기 첫 날,
그 날은 제 할아버지의 제사가 있습니다. 저는 제사를 지내지 않지만 아버지는 외아들이시며 제사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려 할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직 믿음이 없으십니다
그러나 지난 8월 중순부터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역사하고 계십니다
제가 서부 2기 때 아버지에게 편지를 드렸을 때 묵묵부답이셨던 아버지
이번에는 제가 답장을 드리길 원합니다
형제님들 기도해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저와 제 아내의 눈물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실 것이며
저의 아버지와 어머니 뿐만이 아니라 그리고 누이, 남동생, 여동생의 가족들도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간구드려주십시오
이미 기도하고 계신 성은모 형제님, 이철희 목사님, 이종성 목사님 등등
많은 분들의 중보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김성묵 장로님!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가슴이 벅차 오르고 잠시라도 눈물이 마르질 않습니다
특히 저희 학교의 많은 학부모 아버지들이 <아버지학교>를 통해 회복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가정의 회복은 학교의 회복인 줄 압니다 교육의 회복인 줄 압니다
무엇보다 제 아버지에게 허락하신 <아버지학교>의 은혜를 가슴 깊이 새길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기도로 도와주십시오
강동7기 스탭 형제님들!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아버지에 대한 자세한 기도 제목은 준비 모임 때 말씀드리겠습니다
무엇보다 저의 아버지가 이 과정을 통해서 주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기도로 합력해주십시오
새로운 삶의 길로 주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거듭 나실 수 있도록 기도해주십시오
저의 아버지 함자는 최원근(1941. 4. 6생)입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미리 예비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눈물로 기도하는 심정으로
부탁드립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
아버지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한 영혼을 귀하게 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기어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길 소망하며 마음을 모아주십시오.
<강동7기 아버지학교>를 통하여 저의 아버지의 묵었던 찌끼가 말끔히 씻어지며 회복되는 역사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분명 저의 아버지를 강한 팔로 붙들어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저의 아버지를 축복하시기로 작정하신 줄 믿습니다.
아울러 <강동 7기 아버지학교>의 전스탭과 이 땅과, 전 세계의 <아버지학교>에서 헌신하고 있는 스탭 아버지들과 가족들을 위하여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
"주님 제가 아버지입니다.'
지금 가는 길이다
오늘은 강동7기 <아버지학교> 첫 날.
할아버지의 기일(忌日)이며, 아버지가 처음으로 <아버지학교>에 가시는 날이다. 아버지가 <아버지학교>에 참석한다는 그 자체가 나에게는 감격이었고 감사였다. 고집 세고 독단적이었던 아버지의 마음이 누그러져 참여하게 된 것은 세월이 주는 영향만은 아닐 것이다. 하나님께서 강하게 역사하신다는 것. 그것을 붙잡고 있었다. 사실 그렇다. 인간의 마음을 누가 움직일 수 있겠는가. 자기 자신마저도 조절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마음 아닌가. 성령께서 주시는 감화와 감동이 없다면 이 세상은 아집의 수렁이요 독단의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아내가 두 딸을 데리고 나를 태우러 학교에 왔다. 이것저것을 준비하니 벌써 시간은 오후 4시를 넘고 있었다. 부모님 댁에 도착하니 5시가 좀 넘고 있었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어머니의 밝고 환한 소리가 우리를 반겼다.
"아이구, 얘들아! 이게 웬 일이니? 엄마가 텔레비전 타 왔다."
아내와 나는 영문을 몰라 하고 있는데 막내 동생이 옆방에서 나오며 말하였다.
"엄마가 물건 파는 매장에 가서 추첨을 했는데 뽑혔어. 그래서 텔레비전 타 왔다니까."
기분이 최고로 좋은 어머니를 보며 나도 기쁨을 느꼈다. 정말 텔레비전은 깔끔하고 예뻤다.
그 무렵 아버지께서 전화를 하셨다. 아버지는 집에 들르지 않고 바로 <아버지학교>가 열리는 천호동 성결교회로 가시겠다고 하셨다. 어머니가 전화를 받더니 그 기쁨을 전하였다. 아버지도 무척 기분이 좋으신 것 같다고 어머니는 말씀하시며 나에게 전화를 바꾸어 주었다.
"아버지, 어디세요.?"
이미 5시 <아버지학교> 시작 시간은 지났다. 더 늦으면 안되는 데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아! 지금 가는 길이다. 길동 사거리야."
아버지의 발걸음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신 하나님. 어머니는 할아버지 제삿날이라 좋은 일이 생겼다고 하지만, 아니었다. <아버지학교>에 아버지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기특하다고 주시는 선물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당장 안방의 텔레비전과 교체했다.
<아버지학교>의 아버지
6시 쯤 되었나보다. 친척 큰아저씨께서 술이 얼큰한 상태로 문안에 들어오셨다. 보통 제사를 지낼 때면 10시가 넘어야 시작하는데 이 날 따라 일찍 오신 것이다.
"어서 오세요, 아저씨. 어디 다녀 오시나 보죠?"
"응, 결혼식이 있어서. 집에 다녀오기도 하고 그래서 말야."
집이 일산이어서 들어갔다오기가 어중간한 시간이었다 하셨다.
"그런데 아버지는 어디 갔냐?"
"예, <아버지학교>에요. 아버지들만 모여서 강의도 듣고 영상도 보고 토론도 하는 그런 곳이에요. 오늘이 처음이거든요. 몇 시간 있어야 오실 겁니다."
전형적인 전통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이 분. 아버지의 6촌형이었다. 가정에 어려움이 많고 자식들이 완전하지 못한 삶을 사는 모습 때문에 마음에 근심이 많은 분이었다.
"그런데 간다고 뭐 좋아지냐?"
쓸데없는 일을 한다는 듯이 내뱉는 그 말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예, 이혼했던 가정이 변화되고 아버지가 제 역할을 하게 되는 놀라운 일들이 있습니다. 사실 아버지들이 문제가 많잖아요?"
아저씨는 즉각적인 나의 대답에 잠시 놀라는 듯한 눈치를 보이시더니 이내 입을 다물었다. 나는 슬며시 자리를 떠 아내에게만 아버지 계신 곳에 잠시 다녀오겠다 말하고 집을 나섰다.
천호동 성결교회. 대학시절을 이 동네에서 보냈던 나로서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교회였지만 이내 찾을 수 있었다. 아버지와 가급적 만나지 않고 조장 형제와 진행자 형제만 잠시 만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도착한 때는 식사시간이었다. 그 시간에 진행자 오용석 형제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와 밖에서 좀 기다렸다. 간증 시간을 빌어 올라가려는 마음이 있었다. 찬양 소리가 무르익어갈 무렵,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아버지와 눈이 딱 마주쳤다. 아버지는 약간 놀라는 듯 했다. 나는 목례를 하고 뒤에 서 있었다. 찬양을 하며.
간증자 형제의 간증을 들으며 이 공간에 아버지와 내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아버지가 저 앞에서 자신을 소개하고 조별 나눔을 하고 전체 나눔을 한다는 것만 떠올려도 신이 났다. 간증을 들으며 솟구치는 눈물은 단순히 간증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버지와 함께라는 생각, 그것이 나를 감동시켰다. '함께'. <아버지학교>를 통해 함께라는 공동의식을 갖게 허락하심에 감사드린다.
교회 다니는 집이니까 제사 안 지내지?
아버지보다 먼저 집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니 둘째 아저씨도 오셨다는데, 금방 가셨다고 했다. 두 분 다. 막내 동생의 얘기로는 난리가 났었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내가 나가고 약 10분 쯤 후, 둘째 아저씨가 오셨다. 방문하신 두 분은 친형제간이다. 그 시간이 7시 30분 정도. 그러면서 제사 빨리 안 지내냐고 야단을 쳤다 한다. 하면서 나가시며 하시는 말씀,
"교회 다니는 집이니까 제사 안 지내지?"
황당무계(荒唐無稽)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닌가. 제사는 10시쯤 지내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두 분. 그리고 남의 제사에 와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아버지께서 9시가 좀 넘어 돌아오셨다. 자초지종을 들으신 후 하시는 말씀.
"참 웃기는 사람들이군. 아니 초저녁부터 제사를 지내란 말야. 볼 일 있어 간 사람들이야. 신경 쓰지 말어."
아버지께서는 이내 제사 준비를 하셨다. 나는 제사를 지내지 않으니 막내와 둘이 지냈다. 이것만해도 고마운 일이었다. 간단히 제사를 마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아버지학교>의 얘기가 자연스레 나왔다. 나는 아버지의 첫인상을 궁금해하고 있었다.
"간증하는 사람 처음에는 뭔가 오는 듯했는데 너무 길었어.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울던데, 참, 뭐 그리 울게 있나?"
"아버지, 그래도 재미있었죠? 남자들만 있으니까 말예요. 그리고 아버지. 일찍 나오셨으니까 못 받았겠는데 <아버지학교>는 숙제가 있어요. 조장에게서 얘기 못들었지요?"
"무슨 숙제?"
하면서 웃는 아버지.
"안하면 안돼요. 그곳도 학교니까 숙제는 꼭 해야 돼요."
"아, 그럼 나 안 갈란다."
"아버지도, 그러면 조장하고 진행자 하고 가정방문 올텐데요? 아버지, 5주 수료만 하세요. 제가 양복 한 벌 해 드릴 테니까요. 선물로요"
웃으며 전개되는 대화 속에서 아버지가 <아버지학교>에서의 그 몇 시간을 잘 지내고 오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주차 때 더욱 하나님께서 아버지에게 역사하시길 원하는 마음 간절하다.
모든 정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아내가 얘기한다
"여보, 너무 감사하다. 아버님이 저 정도로 빨리 변화되시다니, <아버지학교>는 정말 대단해. 그리고 오늘 아저씨들 사건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신 것 같아. 제사 관계를 정리하게 하시는."
"나 역시 동감이야. 분명히 하나님께서 이루실 계획이 있으셔. 우리 더 기도하자. 오늘 너무 감사한 날이야."
강북강변로를 달리며 나누는 대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솜이 다빈이 두 딸은 서로의 다리를 겹쳐 베개 삼아 잠을 자고 있었다.
형제님! 아버님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아버지가 첫 주차의 <아버지학교>를 다녀오셨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쁨이 넘친 나는 월요일을 반갑게 맞이했다. 조장 형제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제님. 아버님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10월 3일 개천절에요."
"그래요? 아버지께서 허락하셨나요?"
바쁘신 가운데에서도 열정적으로 섬기시는 조장 형제. 이 분은 사실 나의 아버지가 제일 부담스럽지 않으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연장자에다가 신앙도 없으시고, 그렇다고 적극적이지 않으시니 말이다. 그러나 <아버지학교>를 통해 은혜 체험을 했다는 조장 형제를 또한 하나님께서 사용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은 성령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이루시는 것 아닌가. 그저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밖에. 나는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나의 아버지를 섬기시는 이 조장 형제와 진행자, 그리고 강동7기 스탭 형제들을 놓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래요. 형제님. 일부러 쉬시는 날 시간을 내주시고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야기 많이 나누시고 좋은 기회가 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네, 형제님. 기도해주십시오. 과제물 이야기도 따로 드려야겠구요. 좋은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에게는 따로 전화를 드리지 않았다. 다만 학교에서 집에서 시간이 나는 대로 기도를 드렸다. 개천절 아침. 나는 이메일을 이용해 조장 형제에게 편지를 썼다.
"형제님, 오늘의 만남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만남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메일을 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가장 바라는 소망은 아버지의 예수님 영접입니다. 아버지가 <아버지학교>를 통하여 갑자기 변화되는 것, 물론 그것도 원합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사실은 아버지의 영적 구원이 더 급한 마음입니다. 그러할 때 영적인 아버지로 거듭나지 않겠습니까? 형제님. 기도하는 심정으로 제 아버지를 만나주십시오."
대강 이런 내용의 글이었다.
내가 미쳤냐? 그 사람을 만나게?
다음 날, 학교에 출근 후 바로 전화를 받았다. 조장 형제였다. 나는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물었다.
"형제님. 아버지 만나셨나요?"
"아뇨. 못 만났습니다. 집 근처로 가서 전화를 드려도 되지가 않고 약속 장소에도 나오시지 않아 좀 기다리다가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전화를 먼저 하셨더라구요. 미안하다고 하면서 일이 너무 늦게 끝났고, 핸드폰 배터리가 다 되어서 연락을 못했다고 하시면서요."
"예, 그러셨군요. 형제님 제가 미안합니다."
"아녜요, 형제님. 제가 좀 성급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이 주차 정도 지난 다음에 만날 걸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전화로 과제에 대해서 말씀 드렸습니다. 아버지와 자녀에게 편지 쓰는 것인데 부담되지 않게 꼭 쓰고 싶은 사람에게 쓰시도록 편하게 얘기했습니다."
나는 대화를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한참을 셍각했다.
'아버지는 쉽게 약속을 하고 깰 분은 아니다. 정말 바빠서였을까. 아니면......"
아버지에게 전화를 드렸다.
"아버지, 저예요. 통화 괜찮으신가요?"
"그래. 어디냐?"
"학교에요, 아버지. 그런데 조장 형제 못 만나셨다면서요?"
나의 이 말에 아버지는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지르셨다.
"내가 미쳤냐? 그 사람을 왜 만나?"
"아버지 그럼 바빠서가 아니라 일부러 안 만나신 거예요?"
"그럼. 왜 만나자 말자 그러냐고? 거기에서 보면 됐지? 아, 나 귀찮게 하면 다음 번에 안갈란다."
그랬다. 아버지가 <아버지학교>에 가신 것만 해도 대단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말씀에 나는 내가 얼마나 태만하게 기도하고 있었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심한 영적 싸움이 있을 것이며, 그것은 내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전개될 수 있는 것인데, 아버지가 <아버지학교>에 등록하신 사실만으로, 또 중간에 나오기는 하셨지만 첫 주차를 다녀오신 것으로 너무 편안하게만 생각하고 있었다는 마음이 들었다.
형제가 뭐냐? 형님도 아니고
아버지는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아니, 그리고 뭐냐. 형제가 뭐냐? 응? 내가 나이가 많아도 한참 많은데 형님도 아니고 형제가 뭐야, 형제가?"
이 대목에서 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웃어야 할 상황이 아닌데 나는 그래도 쉽게 말을 이었다.
"하하, 아버지. 그건 <아버지학교>에서 사용하는 호칭이잖아요. 아, 아버지는 첫 주차에 늦게 가셔서 그 의미를 잘 모르시는 거예요. <아버지학교>에서는 남자는 형제, 여자는 자매라고 부르거든요."
"안 그러면 그 안에서나 그렇게 부르면 됐지. 전화에다 대고 형제님, 형제님 하는데 참 나."
나는 아버지의 이 마음을 순수하게 받아들였다.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 자매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시는 나의 아버지. 얼마나 감사한 말인지 알지 못하시는 나의 아버지. 그래, 나의 아버지였다. 이 분을 하나님께서 손대고 계신다. <아버지학교>를 통해 하나님을 알고 형제, 자매의 의미를 알게 되실 것이다. 조장 형제와 강동 7기 스탭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분들은 우리 아버지를 놓고 얼마나 기도하고 계실 것인가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러나 바로 내 아버지와 같은 분들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아버지학교>를 허락하신 것이고, 또 스탭들은 그 귀한 주말의 시간을 헌신하고 섬기시는 것 아닌가.
"아니, 그럼 아버지. 혹시 이번 주에 안 가시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렇지도 모르겠다. 혹시 나중에라도 조장하고 연락이 되면 그냥 내버려두라고 해라. 아니면 정말 안 나갈 지도 몰라."
나는 목청을 가다듬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버지, 그러면 안되지요. 저희 부부가 아버지에게 부탁한 게 있잖아요. 좀 늦게 가시거나 일찍 나오시는 것 다 좋아요. 하지만 아버지. 5주차 수료는 꼭 하셔야 해요. 저와 제 아내의 부탁입니다. 그리고 조장 형제와 그곳에 있는 분들은 아버지를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거잖아요. 아버지. 그건 아시죠? 꼭 수료는 하세요. 아버지, 저도 매일 기도하고 있어요. 하나님께서 아버지를 꼭 축복하실 거예요."
언젠가부터 아버지는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계셨다. 지난 8월 집에서 아버지와 이야기 할 때도 붙잡고 기도할 때도, 그리고 그 후에 전화를 할 때도 말씀은 다 듣고 계셨다. 아버지에게는 지금까지 살아오신 세상과는 좀더 다른 세상을 맛보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소모되는 삶이 아닌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삶. 그것이었다. 그렇다면 아버지에게는 어떤 삶이 해당될까. 지금 연세에 부귀영화를 꿈꾸며 돈을 많이 버는 것. 아니, 아니었다. 자신을 돌아보는 삶이었다. 가정을 돌아보는 삶이었다. 남에게 돌려주는 봉사의 삶, 헌신의 삶이었다. 사랑의 실천자로 살아나가는 삶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아버지학교>를 가신 후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감동을 맛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아버지학교>의 그 얼룩 무늬 티를 아버지와 같이 입고 함께 섬기는 모습. 그 모습을 연상하며 기뻐하고 꼭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해왔고 또한 지금도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가 수료하시면 다음 차례는 바로 막내 남동생이다. 이미 몇 차례 남동생도 권면한 상태다. 동생은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보고 있다가 아버지가 <아버지학교>에 가시는 것을 보고 무엇에 씌었다고 하면서 신기한 듯이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