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날이 좋습니다. 밭일하기 좋은 날씨입니다. 어르신들에게 좋은 기운 전달해 드리러 오늘도 출발해봅니다.
9시 15분,
오늘은 어르신들 모두 다 나오십니다. 끝에집 삼촌도 내려오십니다. 항상 주기적으로 사주시는 어르신들을 만나면 마음이 살짝 놓이곤 합니다. 그리고 주기적으로는 아니더라도 간헐적으로 얼굴을 보이시는 어르신들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이 더 듭니다. 물건 판매도 중요하지만, 어르신들을 만나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이동장터를 나올 기력이 있고, 구매할 수 있는 경제력이 있다는 것은 자립의 삶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9시 40분,
회관에도 마을 곳곳에도 사람들이 안계십니다. 아무래도 다음주 월요일날 비 소식이 있어서 그러는지 농부들의 손길이 바빠진 것 같습니다.
10시,
오늘도 집에 누워 계실 어르신을 위해 어르신이 사실만한 물건들을 챙겨서 방문합니다. 어르신 집에 도착하니 요양보호사가 와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오후에 오는데, 일정이 조율되서 오늘, 내일은 오전에 오신다고 합니다. 어르신과 8년 동안 만나오다보니 어르신 손짓만 봐도 어르신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어르신 상태는 조금 안좋아보였습니다.
"어제부턴가 갑자기 걷질 못하시네."
뭐때문인진 모르겠으나 일단 내부 복지팀에 상황을 전달하였습니다. 어르신의 보호자에게도 연락을 취할 수 있도록 전달하고, 어르신께서 필요하신 생필품을 전달해드리고 왔습니다.
10시 15분,
어르신의 친척분이 오셨나봅니다. 못보신 어르신입니다.
"두유 있지?"
외부 손님들이 어르신댁을 갈 때 많이 챙기는 것 중에 하나가 두유입니다. 두유 하나 고르시고, 옆에 있던 바나나 추가로 사십니다. 소화가 약하고 먹기 편하면서 많이 달지 않는 제품들. 어르신들이 고르는 물건들이 어르신들에게 맞는 물건들임을 체크합니다.
10시 20분,
시장 가방에 공병을 담아 기다리고 계시는 어르신. 가방 안에 병을 보니 4병이 있었습니다. 매주 2병 드시기로 하셨고, 지난주엔 1병만 드셨는데 나머지 3병은 어디서 났는지 여쭤보니 자녀들이 사줬다고합니다. 병원에서 퇴원하신지 얼마 되지 않으셨는데, 추가로 다른 곳에서 드시는 것이 괜찮은지 조금 걱정이 됩니다.
10시 30분, 운암마을 회관에 이동빨래차가 와 있었습니다. 작년에도 봤던 것 같았는데, 올해도 오네요. 어르신들은 소식 듣고 집에서 빨래를 모두 갖고와서 이불빨래를 진행합니다. 이동빨래는 주 3회 운영한다고하며 영광군 내 각 읍면에서 신청 접수 후, 군으로 취합하여 일정이 정해진다고 합니다. 어르신 댁에서 이불빨래를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무게도 있거니와 할 수 있는 기계, 장소가 없습니다. 그렇다보니 이렇게 이동빨래를 지원해주는 일은 매우 감사한 일입니다.
10시 45분,
"맥주 한 박스~"
밖에서 일하다보니 맥주가 필요한 때가 많으신가봅니다. 외부에서 인부를 불러서 할 때도 몸이 고될 때는 물과 간식보다는 술을 마시면서 일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간혹 다른 현장들 중 몸 쓰는 일이 많은 곳에서 술을 자주 마시는 모습을 보면 이와 비슷한 상황이겠구나 싶습니다. 농사 일이 기계화가 되었다 할지라도 사람의 몸이 직접 쓰이는 일이 아직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기계화가 적용되기엔 또 많은 자본을 요구하기에 모든 농가들이 기계를 갖다 놓을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아직은 기계보단 사람이 직접 하는 일이 더욱 많아 고단한 날들이 많습니다.
11시 10분,
오랜만에 윗집 어르신 댁에 방문하였습니다. 어르신 부부로 살고 계시며 아버님이 몸이 많이 안좋으셨습니다.
"일하러 나갈려고 준비중이지~" 하시는 어르신.
"오늘 놉 얻어서 내가 나가봐야해~" 하십니다.
밭에 약을 해야한다며, 인부에게 일을 알려주고 살피러 가신다고 합니다. 80넘은 연세에 몸이 안좋고 힘들어도, 내가 직접 못할지라도 내 두 눈으로 보고 해야 확실하시구나 싶습니다.
11시 25분,
어르신 댁에 제비가 오갑니다. 도시에선 만나기 힘든 제비.
"똥을 퍼질러싸니 꼴도 보기 싫어" 하십니다.
작년에도 와서 밑에 상자를 뒀다고 하시는데, 올해는 없나 싶었더니 어르새 둥지를 저렇게 텄다고 합니다. 안에 새끼도 있다고 하니 어르신은 골치아프다고 합니다. 제비가 좋은 소식이 되어야하는데, 똥싸는 골치덩어리로 되고 있으니 웃픈이야기입니다. 그래도 아직까진 시골집에 제비가 드나드는 일은 제게는 정겨워보이는 모습 중에 하나 입니다.
13시 45분,
"자네 입에 염증 계속 올라온다했지? 이거 한 번 먹어봐" 하시는 어르신.
"이게 내가 대마에서 매번 사오는 건데, 효과가 좋아. 먹으면 똥도 누렇게 잘 나오고, 아주 좋아"
제가 입이 자주 말라서 어르신들에게 갈 때마다 텀블러를 들고 다녔는데, 그게 안쓰러우셨나봅니다. 하루에 3g씩 2번, 총 10일치 양입니다. 효과는 잘 모르겠으나 어르신이 챙겨주신 약만으로도 입 마름이 벌써 사라지는 듯 싶습니다. 주신 약 잘 받아서 잘 먹어보겠습니다.
14시,
오늘도 요양보호사분께서 필요한 물건 배달 요청해주셨습니다. 어르신 댁에가서 문 두들기고 물건 놔드렸습니다.
늘 쇠약해보이시는 어르신, 물건 갖다 드릴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있는 표정이 가득하십니다. 어서 회복하시고 일상 생활 하실 그 날 오길 바래봅니다.
14시 10분,
어르신 댁에 아무도 안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매주 2병씩 사시는 어르신이기에 집 토방에 올려두고 옵니다.
믿음으로 거래하니 말입니다.
14시 15분,
"왤케 늦게 온대~ 저 웃동네서 누가 산디?"
이 동네에서 물건은 이 어르신이 다 사시는걸로 기억하시나봅니다. 윗동네에 살 사람이 없다고 이야기하시는 어르신. 어르신께서는 점빵을 빨리 보고 싶으셨나봅니다. 이런저런 이야기하며 필요하신 물건 사십니다. 어르신께서는 점빵 매출을 올려주는데 본인이 기여도가 큼을 또 하나의 자부심으로 갖고 계신가 싶기도 합니다.
14시 30분,
회관에가니 어르신들 두 분이 계십니다.
"사람이 없어~ 나갈려던 참인데, 커피 한 잔 하실텨?"
그냥갈까하다가 어르신들께서 커피 한 잔 마시고 가라하셔서 한 잔 마십니다. 안마시고 가는 것도 어르신들에게는 서운함입니다. 포트에 물 올려주시면서 둘째 딸 안부도 물어봐주십니다. 커피 한 잔에 사는 이야기 나누는 그 시간이 어르신들에겐 여유였습니다.
14시 45분,
지난번에 말씀하신 제로콜라, 제로콜라 있어요~ 하니
"한 박스 얼마에요?" 하십니다.
박스 단위로 사시는지 몰라서, 낱개로 갖고 갔는데 너무 적다고 하셨습니다. 평상시 거래가 많지 않아 잘 몰랐는데, 다음번에 다시 사오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다시 서울 올라간다는 어머님. 1달 뒤에 오신다고 합니다. 그래도 또 언제 오실지 모르니 한 박스 사와야겠다 싶었습니다.
14시 50분,
매주 두부 한 모를 정기적으로 받는 어르신. 점빵차를 마주칠 때면 늘 주전부리를 고르시곤 합니다. 이번에는 고르시더니
"그... 국희? 에서 나온거 있지~ 샌드류~그거 있으면 좋겠는데..." 하십니다.
일단 접수 확인하고, 매장에 있으면 추가로 챙겨오기로 합니다.
15시 10분,
밑반찬 나간 어르신 댁들 들리면서 통 수거를 합니다. 집에가니 어르신 문은 잠겨있고, 어디에 있는지 안보여서 전화드리고 옵니다.
어르신께선,
"거... 수도 있는데 거기 뒀는데~" 하십니다.
못봤던 것 같았는데, 다시 한 번 돌아가니 박스 안에 숨겨놓으셨습니다. 작년에도 밑반찬 받다가 누군가 가방을 갖고갔다고 하셔서 분실하셨었는데, 그 때 이후로 이렇게 하실려고 하시나 싶었습니다. 어르신께 회수 연락 드리고 장터 복귀를 하였습니다.
한창 농사철에는 어르신들 만나기가 어려운 상황을 마주하곤 합니다. 어르신들과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 고민 되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