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의 작가 '하퍼 리'가 별세했다는 뉴스가 떴군요. 우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앵무새 죽이기’는 1960년 출간되자마자 큰 인기를 얻었고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 아닌가 합니다.
이 소설은 편견에 관한 소설이 아닌가 합니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공기총을 사주며 앵무새는 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면 앵무새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노래를 선물해 주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그 앵무새가 바로 편견의 희생자들을 상징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단지 나와 다르게
생활하기 때문에, 또 나와 피부색이 다르기 때문에 박해를 받고 온갖 근거 없는 악소문에 시달리는 편견의 희생자들을 상징하는 것이지요.
저는 이 소설을 보며 우리 사회에는 이런 편견과 그 희생자들이 없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특히 지식인,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사람들 조차 별 고민 없이 이런
편견에 의한 몰매에 가담하는 일은 없는지 저 자신부터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소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흑인과 관련된 문제만 생기면 왜 이성을 가진 사람들도 갑자기 미친 것처럼 날뛰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단 말이야…
Why reasonable people go stark raving mad
when anything involving a negro comes up, is something I don’t pretend to
understand… (9장)
.. 선생님이 스테파니 아줌마랑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어. 누군가 그들(흑인)에게
본때를 보여줄 때기 되었다. 점점 분수도 모르고 주제넘게 군다.…. 오빠, 히틀러를 그렇게 끔찍하게 미워하면서도 돌아서서는 어떻게 바로 자기나라 사람에게 비열하게 대할 수 있냔 말이야.
‘How can you Hitler so bad an’ then turn
around be ugly about folks right at home –‘ (26장)
문득 하이젠베르크의 책이 생각났습니다.
하이젠베르크는 이름이 알려진 학자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독일의 본성, 유대인
신문의 과대평가와 관련시켜 비난하는 전단을 보고 충격을 받아 그의 책 ‘부분과 전체’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정견은 큰소리로 선전하거나 실제로 달성하려고 노력하는
그 목표에 의해서 판단할 것이 아니라 다만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한 수단에 의해 판단되어야 한다. 부당한
수단은 이미 그 수단을 사용하고 있는 장본인부터 그 명제의 설득력을 스스로 믿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저 역시 동의합니다. 무슨 주장을 하더라도 그 주장의 옳고 그름에
앞서, 그 주장을 펴며 사용하는 언어와 태도, 수단이 먼저인 것입니다.
첫댓글 선생님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 합니다.
어떻게든 결과가 과정을 정당화 할 수도 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제가 살고 있는 나라를 떠나 돌아보면
우리나라 제도나 관리들은
자국민을 식민지 백성 대하듯 하던 버릇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이 들 때가 더러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올려주시는 댓글이 제겐 늘 힘이 됩니다. 고맙습니다.
저 역시 선생님의 의견에 공감하고 동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