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은 유럽에서 통일문제와 관련 무엇을 보고, 배우고 왔을까.
귀국 뒤 역사학 교수 강만길과 가진 대담의 한 대목이 이를 압축한다.
유럽에 가서 5개월을 지내는 동안 느낀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독일 통일을 보고서 흡수통합식으로 해선 큰일 나겠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유럽통합의 추진은 독일통일과는 달리 매우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독일은 정치통합부터 먼저하고 그 다음 화폐통합을 하고 맨 나중에 경제통합을 했는데, 유럽은 경제 통합부터 하고 있습니다.
1955년 슈만이 슈만플랜을 발표해서 강철과 석탄통합을 실시한 이래 지금까지 점진적으로 통합을 해왔습니다. 밀고 가다 어려우면 좀 쉬고 더 어려우면 물러서고 기다리다가 쉬워지면 앞으로 가면서 40여 년을 이끌어 왔습니다. 이제 유럽은 다시는 분리될 수 없을 정도로 경제가 묶여 있습니다. 마스트리히 조약에 의해서 금세기 말까지 화폐통합을 하고 그 후 정치통합을 하기로 했는데 대개 30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나는 이러한 유럽통합식의 점진적이고 그리고 착실한 통일방식이 우리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석 7)
90년 9월, 문익환 목사의 모친 고 김신묵 여사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오랜 친구이자 동지인 문익환 목사를 위로하는 김대중 총재. (문익환 목사는 당시 방북사건으로 수감중에 장례관계로 가출소한 상태였다.)
1994년 1월 18일 오랫동안 민주화의 동지로서 고난의 길을 함께해 온 문익환 목사가 타계했다.
서울 도봉구 쌍문동 한일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22일의 영결식에서는 “가장 순수한 민족혼의 상징이자 행동하는 양심이며 위대한 업적은 역사 속에 길이 빛날 것”이라고 추모사를 하면서 오열했다. 이날 김대중이 추모사를 하면서 흐느끼는 모습은 영결식장을 더욱 숙연하게 만들었다.
도쿄에서 납치되어 왔을 때, 광주 망월동 묘소를 처음 방문했을 때에 이어 그가 대중 앞에서 눈물을 펑펑 쏟으며 오열하는 모습을 보였다. 2009년 6월 노무현 전대통령의 영결식장에서도 미망인의 손을 잡고 소리 없는 호곡을 하였다. 흔히들 사람들이 갖고 있는 김대중에 대한 선입견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실제로 그는 꽃과 새를 좋아하고 슬픈 드라마를 보면 눈물을 흘리는 감성적인 면이 유난히 강한 편이었다.
김대중이 영국에서 귀국할 무렵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를 선언하고 이에 대해 미국 클린턴 정부가 강경하게 대처하면서 한반도에 전쟁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전쟁을 막는 일이 시급한 과제였다.
1993년 아태평화재단 창립현판식
김대중은 정계를 은퇴하면서 연구재단을 구상하고 있었다. 한국통일과 민주주의, 아시아 평화를 위한 거점으로 추진된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아태재단)은 그가 영국에 체류중 일때부터 국내에서 측근, 연구자들에 의해 준비되었다. 해가 바뀐 1994년 1월 27일 재단 사무실이 있는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아륭빌딩에서 현판식이 거행되었다. 재단설립 비용은 이희호가 장기간 소유해온 서울 영등포역 근처의 땅을 팔아 충당했다. 설립에 앞서 연구원을 공채했는데 박사학위 소지자 107명이 지원하여 그 중에서 5명을 채용했다. 자문교수진도 위촉되었다.
김대중은 이사장으로 취임하여 열정적으로 재단의 육성과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주중에는 재단사무실에서 일하고 주말은 일산 서재에서 연구에 몰두했다. 재단은 연구팀과 교육팀 그리고 후원회도 구성하여 지지자들로부터 후원금을 받아 운영했다.
아태재단의 진용은 국제적 명사들이 망라된 국제수준급이었다. 해외고문은 미하일 고르바쵸프 전소련대통령, 코라손 아키노 전필리핀대통령, 한스 디트리히 겐셔 전독일외상, 국내 고문은 김수환 추기경, 서의현 조계종 총무원장, 이태영 가정법률상담소장, 강원룡 크리스찬아카데미원장이었다.
국내자문위원은 강문규 YMCA사무총장, 고은 시인, 김용운 한양대교수, 김종운 서울대총장, 김민하 중앙대총장,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 서영훈 전KBS사장, 송자 연세대총장, 안병무 전한신대교수, 이돈명 전조선대총장, 장을병 성균관대총장, 한승헌 변호사 등이 위촉되었다. 해외자문위원은 빅터 사도브니치 모스크바대총장, 세릭 헤리슨 카네기재단 선임연구위원, 제임스 릴리 전주한미대사, 제롬 코헨 뉴욕주립대교수, 와다 하루끼 일본 도쿄대교수 등 16명이 포진하였다.
아태재단은 창립선언문에서 세 가지의 목표와 계획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첫째, 한반도의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통일의 이념과 정책을 연구 개발한다.
우리는 독일 통일의 경험과 정책을 얻어 조속한 흡수통일의 부작용을 경계한다. 통일은 확고한 원칙과 정책에 의해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우리는 평화공존, 평화교류, 평화통일의 3원칙과, 공화국연합제ㆍ연방제ㆍ완전통일의 3단계 통일방안을 출발점으로 삼아 이를 내실화하는 데 관심을 가질 것이나 연구주제를 개방, 다양한 부문의 지혜를 모으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둘째, 동아시아 태평양시대를 맞이하여 아시아에 일고 있는 민주화의 실험이 아시아의 토양 위에 확고하게 정착할 수 있는 길을 연구개발한다.
아시아의 진정한 평화와 행복을 위해 민주주의는 불가결하다. 시장경제 역시 민주제도의 토대 위에서 비로소 제대로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자세로 우리는 민주주의 착근과 공고화에 도움이 되는 제도적ㆍ사회적ㆍ문화적 요소를 아시아로부터 발굴하는데 관심을 가질 것이다. 또한 인간의 복지만이 아니라 동물ㆍ식물ㆍ공기ㆍ물ㆍ흙과 같은 존재들의 생존권을 담아내는 지구공동체적 민주주의 개념을 정립하는데 아시아 문화의 유용성을 검토할 것이다.
셋째, 우리가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적극 연구개발한다.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과 아시아의 민주화가 곧 세계평화의 길임은 재언의 필요가 없다. 이와 함께 우리는 아시아 지역내의 경제협력과 다자간 안보체계의 필요성에 관해서도 적절한 관심을 유지할 것이다. 우리는 또한 핵없는 세계의 실현에도 관심을 가진다. (주석 8) 아태재단은 3원칙 3단계 통일방안을 마련했다. 이것은 물론 김대중의 통일방안이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3원칙
1. 평화공존
① 적대관계 해소와 군축 및 상호감시로 완전한 평화정착.
② 한반도의 평화에 대한 미ㆍ일ㆍ중ㆍ러 4대국의 협력체제.
2. 평화교류
①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그리고 인도적 차원의 전면 교류로 민족동질성 회복.
② 특히 경제교류를 통해 상호공동이익을 증진하고 급속한 경제발전.
3. 평화통일
① 흡수ㆍ무력통일 그리고 인위적 공작 통일 배제, 평화적이고 단계적으로 추진.
② 통일의 시작은 빨리, 그러나 통일의 진행은 단계적으로.
△ 3단계 통일방안
제1단계 ‘공화국연합제’ (1연합 2독립국가)
① 현존 남북 양 공화국은 현재의 독립국가로서의 권한, 즉 외교ㆍ국방 내정의 권한을 그대로 유지한다.
② 양 공화국에서 동수대표의 파견으로 공화국연합기구를 구성한다.(예 : 정부와 의회 혹은 기타방법)
③ 공화국연합기구의 임무는 평화공존ㆍ평화교류ㆍ평화통일 (2단계인 연방제로의 진입) 등 3원칙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④ 일방적 의사를 강요할 수 없는 안전판을 마련하기 위하여 연합에서의 모든 결정은 만장일치제로 채택한다.
⑤ 존속기간은 제2단계 연방제 진입까지 약 10년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한다.
⑥ 이 시기에 북한의 체제는 남한 및 서방과의 외교ㆍ경제ㆍ문화 등의 교류로 인하여 크게 변화되어 시장경제 체제로 바뀜은 물론 정치적 자유화도 진전되어 다당제와 자유선거까지 수용할 수 있도록 스스로가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동시에 남한도 민족자주성 확립과 사회정의ㅡ 실현의 주장에 대하여 열린 마음으로 대응한다.
⑦ 이 단계는 제2단계인 연방제 통일을 위한 예비적 단계로 볼 수 있다.
제2단계 ‘연방제’ (1연방 2지방자치정부)
① 10년쯤 진행된 공화국연합제 단계를 거쳐서 북한 내에 시장경제와 다당제 그리고 자유선거가 스스로의 변화에 의해서 상당수준 실현되면 자주적인 연방제로 이행한다.
② 연방제 아래서는 외교와 국방은 연방이 완전 장악하고 연방제 운영과 관련된 중요한 내정도 연방이 관여한다. (현재의 미국식 연방제와 유사)
③ 연방제 아래 독립국가의 형태로 존재하던 양 공화국은 해소되고 지역자치정부로 새출발하게 된다.
④ 연방정부 아래서는 연방대통령을 선출하고 연방국회를 구성한다. 따라서 유엔도 단일 회원국으로 변하고 각국과의 국교도 단일화된다.
⑤ 이 단계가 되면 상당 부분 통일이 실현된 단계로 볼 수 있음으로 완전 통일단계까지는 수년의 단기간밖에 소요되지 않을 것이다.
제3단계 ‘완전통일’ (1민족 1국가 1정부)
① 연방단계 아래서의 지방자치정부는 해소되고 남북이 분단전과 같이 단일정부체제로 전환하여 1민족 1국가 1정부의 완전 통일국가를 이룩하게 된다.
② 통일국가의 이념과 체제는 21세기의 세계적 조류에 따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사회복지를 구현할 체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 국민투표의 실시
3원칙 3단계 통일방안의 전체 또는 적어도 1단계의 연합제는 단일안 또는 복수안을 국민투표에 부쳐서 국민들로부터 이 문제에 국한된 평가를 받을 필요가 있다. 이렇게 국민적 동의를 받아야 우리는 북한에 권위를 가지고 대할 수 있고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지지도 요구할 수 있다. (주석 9) 주석
7) 김대중, <나의 길 나의 사상>, 23~24쪽, 한길사, 1994.
8) <재단법인 아시아ㆍ태평양평화재단>, 팜플렛, 1993년 12월 31일.
9) 앞과 같음.
첫댓글 이토록 뜻 깊은 하나 하나의 증거물이 고인들의 업적을 후대에 알려 통일한국을 여는데 크게 기여하리라 확신합니다. 많이 " 올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