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던 얼굴
온갖 꽃 덤불 속에 담박하고 곱던 얼굴
갑자기 광풍 맞아 붉은 빛 시들었네.
달수(獺髓)로도 고운 뺨은 되살리지 못하여
오릉의 공자님네 안타까움 한이 없네.
百花叢裏淡丯容 忽被狂風減却紅
백화총리담풍용 홀피광풍감각홍
獺髓未能醫玉頰 五陵公子恨無窮
달수미능의옥협 오릉공자한무궁
-정습명(鄭襲明, 고려 의종), 〈기녀에게 주다(贈妓)〉
총리(叢裏): 덤불 속. 여기서는 수많은 아름다운 여인들 가운데의 뜻.
/ 풍용(丯容): 풍성하여 고운 용모. / 감각홍(減却紅): 문득 어여쁨이 시들다.
/ 달수(獺髓): 수달의 골수. 이것을 옥가루와 호박(琥珀)에 섞으면
주름살을 펴주는 약물을 만들 수 있다.
/ 의옥협(醫玉頰): 옥같은 뺨을 치료하다.
/ 오릉공자(五陵公子): 오릉은 당나라 때 유곽이 있던 거리.
오릉공자는 술집을 들락거리는 귀가집 한량들을 가리킴.
늙은 기생에게 장난 삼아 써준 시다. 자네 한때는 참 예뻤겠네.
기품 있는 아름다움이 단연 눈에 띄었겠군.
어느 날 미친 바람에 곱던 자태 이울고 보니,
지난 날의 곱던 자태는 다시 찾을 길이 없네그려.
한 시절 뭇 남정네들 마음을 온통 설레게 하던 그 모습 볼 길 없으니,
안타깝기 그지 없네. 딱하기 짝이 없네.
정습명(鄭襲明)
연일 사람. 벼슬이 추밀원사에 이르렀다. 늘 바른 말로 간쟁하여 의종이 그를 몹시 꺼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