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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날
2012년 10월 11일 8명이 인천공항에서 9:20 진에어로 3시간을 날아 홋카이도 신치토세공항에 도착해 JR로 삿포로역으로 이동해 지하철로 숙소인 호수이스스키노역에서 나오니 바로 호텔이다. 짐을 풀고 근처 식당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고 다시 택시로 혼간사 삿포로 별원으로 이동해 채홍철대표를 만날 수 있었다. 몇 년만의 반가운 해후였다. 작은 회의실에서 홋카이의 강제노동에 관해 사진을 곁들인 설명을 듣는데 자료를 통해 좀더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별원 지하에 안치된 10기의 유골을 참배했다. 채대표의 설명에 이어 홍대봉스님의 독경과 염불이 이어졌다. 다시 채대표님의 안내로 사찰을 돌아보는데 참 화려하다. 그리고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치하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채대표는 다른 일정으로 함께 식사할 수 없어 우리만 숙소 근처로 이동해 맥주를 곁들인 식사를 하면서 참가자 각자를 소개하고 여행을 위한 공동노력을 서로 다짐했다.
둘째날
아침 일찍 일어나 혼자 숙소 가까운 작은 하천인 소우세이공원을 산책하고 니조시장도 돌아 보았다. 공원이 무척 잘 조성되어 있었고 흐르는 강이라 청계천 수변공간과는 차이가 느껴졌다. 수산시장에는 각종 해산물들이 가게마다 자리잡고 있어 눈길을 끌게 된다. 붉은 대게는 고무줄로 꽁꽁 묶인채 얼음 위에 놓여 있었다. 산책을 마친 후 호텔로 찾아온 채홍철대표의 안내로 렌트카 회사를 방문해 8인승 승합차를 인수해 호텔로 돌아와 함께 비바이 탄광으로 이동했다. 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 이상을 달려 미쓰비시가 건립한 탄광자료관에 도착했다. 당시의 자료와 연장을 비롯해 꽤 많은 전시물을 볼 수 있었다. 원래 오후개관인데 시청에 특별히 요청을 해서 오전 방문이 가능해 진 것이다. 다시 차를 타고 비바이탄광 현장 근처에 도착했으나 며칠전 곰이 출현해 현장접근을 포기하고 먼 발치에서 홍대봉스님의 추도식을 진행해 주셨고 우리 모두는 진지한 마음으로 역사의 상처와 고통당한 분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함께 새겼다.
다시 차를 몰아 유바리시로 향했다. 탄광지대 였다가 폐광 후 관광산업을 일으키겠다고 과잉투자를 하면서 엄청난 금액의 재정 적자에 시달리면서 도시가 파산한 유명한 사례지역이었다. 사민당출신 시장이었다고 하면서 별차이 없이 일이 저질러 졌다고 했다. 가는 길에 농산물 장터를 방문해 과일도 사고 사진도 찍었다. 비바이 탄광촌에 있는 카라멜 공장에 들러 채대표로부터 소개설명도 듣고 일부는 쇼핑도 했다. 아리랑고개처럼 꼬불꼬불한 산길을 돌아야 했다. 비바이 시청근처 눈에 띄는 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즐거운 식당내 풍경과 대화를 즐길 수 있었다. 여러 가게들이 공동으로 주택을 지어 홀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방식인데 젊은이들의 노력이 돋보였고 자신들의 생각과 규정을 문서로 정리해 내부 정문 벽에 붙여 두었는데 내용이 많이 와 닿았다.
채홍철 선생과 헤어져 8명이 시라오이 아이누 민속촌을 향했다. 고속도로와 국도 지방도를 이어 가면서 가는 길이었는데 차가 별로 없었다. 오후 4시경 도착해 들어가니 큰 추장상이 반겨준다. 박물관에 들어가 역사를 살펴보는데 그동안 오사카 민속박물관등 몇 곳에서 본 덕분에 낮익은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아이누족은 문자는 없지만 말로 구전해온 문화와 역사가 있고 홋카이도 대부분의 지명은 아이누어라고 한다. ‘포로’라는 말이 크다는 뜻이란다. 당시 살던 모습을 재현해 둔 짚과 목조로 지어진 높다른 단층건물인데 화로가 방 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호숫가에 자리잡은 마을인데 노을이 지는 모습이 참 평화로웠다. 매 시간마다 진행되는 춤과 노래 마지막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여러나라 말로 인사를 하며 멘트를 날리는 남성 사회자의 재치 있는 만담성 소개에 이어 여성들로 구성된 전통공연이 차례로 소개되었다. 공연을 마치고 나니 해가 기울어 곧 어두워져 버린다. 다시 고속도로를 달려 삿포로 시내로 돌아오니 6시가 조금 넘었다. 차를 주차하고서 함께 이자카야를 찾았다. 첫날보다 저렴하면서 푸짐한 식사와 제한된 시간내 마음껏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을 찾았다. 현지민과 교류가 이루어지지 못하다보니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만족스러운 저녁식사였다. 방으로 돌아와 함께 맥주를 마시며 뒷풀이와 이야기를 이어갔다.
셋째날
홋카이도 개척촌을 향했다. 개척촌과 개척기념관을 함께 볼 수 있는 티켓이 1천엔이다. 1년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티켓이 2천엔이라 내년에 다시 올 것을 고려해 2천엔짜리를 구입했다. 1800년대 중반 홋카이도 ‘개척’이라고 말하는 데 실상은 선주민인 아이누족이 살고 있던 홋카이도를 점령해 갔던 시기에 진출해 건축한 각종 건물들을 옮겨다 놓은 것이다. 입구를 통과해 개척촌에 들어서니 말이 끄는 작은 기차가 다니는 단선 철로 입구에서 사람들이 마차를 이용하기도 한다.
우측의 첫 건물인 작은 여관을 비롯해 각종 공공건물이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의원 우체국 양조장 양잠소 역마차 등 근대화 과정에서 설치된 건물들이 역사를 말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사람들이 있었다. 산촌을 거쳐 어촌의 커다란 어부집에 들어갔다. 계약에 따라 60명이 함께 일하며 지냈던 공간이다. 청어잡이 등 계절 수요에 따라 3개월 정도 일하는 방식이었다. 커다란 집 가운데 화로가 있고 그 화롯불에생선을 구워서 먹고 사케를 데워서 마시는 방식이다. 집에 들어서니 노인 두 분이 반겨 주면서 차를 대접해 주신다. 화롯가에 둘러 앉아 이야기하다가 홍대봉스님께서 단소로 감사를 표하고 노인 분들이 응답송을 해 주셨다. 참 즐거운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삿포로 시내로 돌아와 숙소에 들렀다가 간단한 요깃거리를 챙겨 ‘사요나라 원전 1만인 집회’가 열리는 오도리공원 시계탑에 도착해 채홍철대표를 만났다. 채대표의 안내로 홍스님과 나는 북해도 신구그리스도교와 불교 단체가 참여하는 홋카이도종교자평화협의회가 주최한 '원전도 핵무기도 없는 세계를' 공개심포지엄이 개최되는 삿포로 교회에 참석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탈원전 집회를 돌아보거나 참여하기도 했다. 프리랜서 기자 스님 등 4명의 발표자로 각자 발표하고 난후 우리를 소개해 주었다. 홍스님과 나를 소개하고 난후 일본의 탈원전 운동이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매우 중요한 일임을 제기하며 간단한 인사말을 했다. 지나 6월 시모키타반도 탈원발(핵) 스터디투어 중 하코다테에서 학생들과 함께 참여했던 후지이 하지메교수가 발표자로 나와서 다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종합토론하는 시간을 보낸 후 3시반 합류하니 집회 후 행진이 시작되고 있었다. 작년 11월 후쿠오카 오호리 공원에서 개최된 ‘사요나라 원전 1만인 집회’가 연상되었다. 여행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라 자유롭지 못해 행진에 동반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다시 삿포로 역 근처의 시민센터(시에서 세운 각종 NPO등 시민단체 활동용 공간) 회의실로 이동하니 홋카이도 생활클럽생협 후나하시 나오미 이사장과 그린펀드 고바야시 유미 사무차장 통역 곤도 사토코씨가 와 있었다. 가져간 선물을 전하고 서로 소개한 후 후나하시 이사장은 한글로 된 자료를 준비해와 생활클럽 생협활동과 그린펀드에 관해 소개했고 이어서 그린펀드와 시민풍차에 관해 좀더 자세하게 고바야시 사무차장이 설명해 주었다. 생활클럽 생협은 무점포 공동구매를 위주로 사업해 왔지만 최근에는 개별공급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모두 1만명이 넘은 조합원이 참여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조합원이 별로 증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홋카이도에서의 원전건설 반대운동을 하다가 시작하게 된 그린펀드는 홋카이도내에 3개의 시민풍차를 건립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일본 전역에 14개의 시민풍차가 건립되었고 그러한 시민풍차가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활동을 공유하고 있다니 일본 시민사회의 탈원전운동의 의지와 저력을 실감하게 되었다. 삿포로역 지하상가를 돌아보다 좀더 돌아보겠다는 네명의 여성들과 헤어져 숙소로 돌아와 방에서 맥주를 곁들인 대화시간을 가졌다.
넷째날
아침에 오타루항으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이용하니 1시간 거리였는데 달리는 가운데 바닷가를 보면서 달릴 수 있어 좋았다. 오타루 역을 거쳐 바닷가 항구에 도착하니 바다 냄새가 난다. 그리고 관광지에서 곧잘 볼 수 있는 인력거도 보이고 운하가까운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나서 운하와 역사지구내 건축물들을 돌아보는데 1백년을 훌쩍 넘기 초기 건물들이 볼만했다. 각종 유리공예품들이 눈길을 끌었고 한국인 관광객도 적지 않았다. 은행 건물을 개조해 만든 금융박물관을 돌아보는데 일본의 화폐 역사를 볼 수 있었다. 휴일이라 그런지 많은 인파를 느낄 수 있었고 관광안내센터에는 한국어로 안내를 해 주는 젊은 근무자도 볼 수 있었다. 그로부터 좀더 자세한 역사와 이야기를 들었다. 점심은 창고를 개조해 만든 운하식당에서 각자 원하는 대로 먹었는데 홍대봉스님 이숙근님과 함께 생선덥밥을 먹었다.
식사후 습지을 향해 가다가 너무 먼 거리임을 우려해 방향을 돌려 조젠카이 온천지구로 향했다. 차가 밀려 조금 늦어지기도 했는데 거대한 온천호텔에 도착하니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동창회와 회사 행사 등 각종 모임으로 북적대고 있었고 숙박하는 고객만 받는다는 말을 듣고 소개받은 관광협회에서 안내를 받아 배선생의 수고로 로손 편의점에서 기계 발권으로 하니 반값인 7백엔에 끊을 수 있었다. 어렵게 찾은 온천호텔에 주차를 하고서 들어가니 벌써 어둑해 지기 시작한다. 널찍한 온천에는 각종 휴게시설과 식당 술집 등이 자리잡고 있었다. 1시간을 이용하는데 7층의 노천온천에서는 산을 바라볼 수 있었고 비가오는 가운데서도 가을 풍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산을 보면서 인생의 가을을 느끼게 되는 시간이었다.
시간이 부족한 것을 아쉬워하면서 발길을 돌려 1시간을 달려 숙소로 돌아왔다. 혼자 차를 몰아 렌트카 사무실로 가서 점검하다보니 뒷 범퍼우측 신호등이 조금 손상되어 있었다. 온천호텔에서 주차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후진하다 약간 부딪혔는데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는데 랜트카 회사 직원들이 점검하다 발견한 것이다. 결국 2만엔을 물어주고서야 마무리 하고 호텔로 돌아와 함께 이자카야를 찾아 저녁 식사를 했다. 식당을 찾았는데 자리가 없어 직원이 근처의 다른 식당으로 안내해 주었다. 가장 비싼 식사를 하고서 박선용씨의 제안으로 가라오케를 찾았다. 작은 방에 한국어 노래가 가능하도록 되어 있어서 1시간을 맥주까지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가진 후 호텔로 돌아왔다.
다섯째날
아침 일찍 5명이 택시를 나눠타고 홋카이도 대학을 향했다. 남문에 내려 대학내를 걸어 들어가 클라크 동상에 도착해 농학교 시절부터 교감을 역임하면서 대학을 이끌어 온 교육자로서의 윌리엄 클라크 교수에 관해 그리고 그 유명한 '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하는 문구를 설명하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그의 흉상을 담은 작은 깃발이 홋카이도 대학의 상징처럼 교내 곳곳에 걸려 있다. 잔디와 숲으로 그리고 연못까지 조성된 넓은 캠퍼스 그리고 종합 박물관등이 학교의 규모와 수준을 보여주었다. 높은 빌딩과 화려한 치장으로 가득차고 있는 한국의 토건적인 캠퍼스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품격을 느끼게 해 주었다. 다시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와 체크아웃하고서 삿포로역으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JR기차를 타고 신치토세 공항에서 추가비용에 관해 상황을 설명하니 모두 이해하면서 협력해 주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라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첫댓글 여행자생협 동행에서 퍼옴..이대수님 작성. 전체 8명중 여행생협 가족등 4명이 참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