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부흥을 기도하라
(장호익목사의 웨일즈부흥의 자취를 찾아 01)
[ 2007년 5월 안식년을 맞아 막내를 데리고 영국을 방문했습니다. 웨일즈에서 로이드존스 목사님의 발자취와 웨일즈 부흥의 흔적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아래의 글은 그때의 여행기 입니다. ]
부흥의 날에는 기도하라
그러나
부흥이 없는 날에는 눈물로 기도하라
아, 웨스트민스터 채플
많은 기대 속에 웨스트민스터 채플을 찾아갔다. 세인트제임스파크 역을 나와 좌측으로 잠시 걸으니 웰링턴 바락스(아마도 가까이에 있는 버킹검 궁전 경비부대로 생각합니다. 시내에 있는 부대라 따로 담이 없고 건물로 주변을 감쌌더군요.). 반가웠다. 아, 이제 곧 웨스트민스터 채플이겠구나. 바락스 앞에서 사진을 찍고 돌아서니 순간 눈에 익은 건물이 시야에 가득 들어 온다. 웨스트민스터 채플! 사진으로만 보던 곳. 언제나 사진과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웨스트민스터였다. 갑자기 코끝이 시큰 해진다. 잠시 심호흡을 하고 웨스트민스터를 카메라에 담는다.
[웰링턴바락스는 웨스트민스터채플 현관에서 정면으로 100m가 채 안되는 거리에 있는 부대입니다. 2차세계대전 이 진행중이던 어느 주일, 주일오전 예배를 드릴 때 이곳에 독일군의 폭탄이 떨어져 많은 사람이 죽습니다. 그때 로 목사님의 예배 시작기도가 진행 중이었는데 - 웨스트민스터의 예배는 10여분간 이어지는 로 목사님의 기도로 시작했습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 목사님은 전혀 흔들림없이 기도를 계속 진행했다고 합니다. 잠시 동요하던 회중들은 이내 예배에 몰입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드디어 웨스트민스터채플입니다. 건물을 보는 순간 마음이 참 미묘하더군요. 선뜻 다가가기도 멀리 하기도 애매한 마음. 좀 더 주변을 맴돌며 천천히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이해하시겠죠?]
교회 앞에 윤수를 세우고 기념촬영. 윤수는 사진을 안 찍으려 한다. 그래도 기어이 카메라에 담는다. 그러면서 윤수가 로이드존스목사님의 말씀 사역의 뒤를 잇기를 소망해 본다.
[낯선 영국에 와서 제일 걱정이 누군가 말을 걸어오는 것이랍니다. 또한 어딘가 길을 잃고 왔다갔다 하는 것도 무서워 합니다. 그래도 얼마 지나면 관찮아지겠죠?]
교회 안으로 들어서니 작은 현관 로비다. 생각보다 너무 작았다. 전도지 대에는 세계 각국의 언어로 각종전도지가 구비되어 있었다. 윤수가 갑자기 탄성을 지르며 전도지 한 장을 꺼내 든다. 한글 전도지였다. 반갑고 신기했다. 안내를 받아 2층으로 올라오니 많이 보던 예배실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정면에 원형의 대가 있었다. 강단이다. 그러나 그 위에는 강대상이 없었다. 오히려 각종 전자악기 장비들이 들어서 있었다. 스텝들이 장비를 설치하고 있었다. 가벼운 실망. 사진을 몇 장 찍고 자리에 앉아 기도하니 눈물이 흐른다. 그토록 사모하던 곳에 와 기도하니 마치 로목사님이 나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것만 같아 한없이 눈물이 흐른다. "오, 주님, 부족한 종이 로 목사님과 같이 말씀의 종으로 쓰임 받기를 원하나이다."
[2층 왼쪽방향 앞 좌석에 앉아 사진을 한 장 찍었습니다. 그리고는 기도하는데 한없이 눈물이 흐르더군요. 윤수가 손수건을 주어 눈물과 콧물을 닦을 수 있었습니다. 예배실 중앙에 강단이 보입니다. 그러나 강대상은 없고 찬양집회를 위한 악기들만 보입니다. 1층 오른쪽 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스텝들과 코러스하는 사람들입니다. 예배가 시작되면 촬영 금지라고 해서 더 이상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기도하는 사이 찬양 스텝들이 자리를 잡고있다. 잠시 후 케주얼 복장의 사람이 등장하면서 음악이 흐르고 노래가 시작된다. 찬양 인도자인가? 아닌 것 같다. 교회 담임목사 같은 데. 여러 곡의 노래를 부르는 동안 분위기는 고조되어 간다.앞 자리의 아이들은 한 자매와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아 간다. 많이 보던 장면인데? 아, ''''''''경배와 찬양.''''''''
노래가 이어지는 중간중간 인도자의 멘트가 있었고 몇 사람의 간증이 있었다. 연출된 듯한 느낌. 출연자들은 능숙했다. 아마도 스텝들일 듯. 그래도 사람들은 집중하고 반응을 보인다. 이것이 요새 유행하는 예배 형식이구나. 웨스트민스터는 변한 것이었다. 웨스트민스터는 미국의 선도하는 교회들을 따라 가고 있었다. 전통적인 예배 형식을 버리고 소위 찬양으로만 예배하는 곳으로 변한 것이다. 강단에서 강대상이 사라지고 각종 악기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로 목사님의 권위있는 기도와 말씀선포의 자취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제 높은 천정에서 달아내린 스크린에는 멋진 사진들과 함께 교회 소식이 뜨고 있었다. 다시 노래, 이어 오늘의 연사 소개, preacher가 아니라 speaker다. 오늘의 speaker는 센트럴런던의 어느 교회에서 사역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강단 위에서 화려한 동작과 재치있는 말솜씨로 사람들을 웃기기 시작했다. 다음 주에는 또 다른 초청 speaker가 말씀을 전한댄다. 담임목사는 언제 말씀을 전하지?
가슴이 답답해지고 안타까움이 밀려 온다. 예배에 모인 회중은 2백명이 될까? 안 될 것 같다. 예배당을 가득 채우던 2천명의 회중들은 다 어디로 간걸까? 아니 예배의 시작과 함께 장엄하게 기도하던 로 목사님, 불을 뿜는 메세지를 선포하던 로 목사님은 어디로 간걸까? 사람들은 Sovereign Lord와 Most High를 노래하지만 거기에는 경박함만이 가득하다. 이들은 모른다.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이 어떻게 임하는지. 그냥 그렇게 노래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왜 그토록 위대한 Peacher의 사역이 계속 이어지게 하지 않으실까? 그리 되면 아마 사람들이 설교자에게 모든 영광을 돌리게 될까봐 그러실 것 같다. 하나님은 사람을 불러 사용 하시지 그 사람이 행한 일을 영속시키지 않으시는 것 같다. 그가 행한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면 더욱 그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사람의 일의 영속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의 계속성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일이 계속되는가를 찾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 계속 되는가를 찾아야 할 것이다. 말씀 사역의 영광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각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과 경륜 속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일을 감당하는 것이다. 자신의 생애와 시대 속에서 그만큼 사역하고 하나님께로 가는 것이다. 아쉬움? 그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했는가에 대한 것이지 나의 일의 영속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로 목사님은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을 다한 것이다. 사역했던 교회에 그의 뜻이 계속되는지는 하나님의 또 다른 계획인 것이다. 그래도 안타깝다. 이 깊은 밤에도 가슴속에는 눈물이 흐른다. 계속 가슴이 아프다. 글을쓰는 동안 눈물이 앞을 가린다. 마음이 메어지는 같다.
로이드존스의 하나님, 웨스트민스터에 또다른 주님의 뜻을 시행하셔서 말씀의 영광을 나타내소서.
[웨스트민스터를 떠나며 뒤돌아보며 사진을 한 장 찍었습니다. 뭉클한 마음이 들더군요. 언제 또 찾을 수 있을지, 그때는 영광스러운 말씀의 선포를 보고 들을 수 있을지 착잡한 마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