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이원하
유월의 제주
종달리에 핀 수국이 살이 찌면
그리고 밤이 오면 수국 한 알을 따서
착즙기에 넣고 즙을 짜서 마실 거예요
수국의 즙 같은 말투를 가지고 싶거든요
그러기 위해서 매일 수국을 감시합니다
나에게 바짝 다가오세요
혼자 살면서 나를 빼곡히 알게 되었어요
화가의 기질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매일 큰 그림을 그리거든요
그래서 애인이 없나봐요
나의 정체는 끝이 없어요
제주에 온 많은 여행자들을 볼 때면
내 뒤에 놓인 물그릇이 자꾸 쏟아져요
이게 다 등껍질이 얇고 연약해서 그래요
그들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사랑 같은 거 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제주에 부는 바람 때문에 깃털이 다 뽑혔어요
발전에 끝이 없죠
매일 김포로 도망가는 상상을 해요
김포를 훔치는 상상해요
그렇다고 도망가진 않을 거예요
그렇다고 훔치진 않을 거예요
나는 제주에 사는 웃기고 이상한 사람입니다
남을 웃기기도 하고 혼자서 웃기도 많이 좋죠
제주에는 웃을 일이 참 많아요
현상 수배범이라면 살기 힘든 곳이죠
웃음소리 때문에 바로 눈에 뜨일 테니깐요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문학동네, 2020.
<시 읽기>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이원하
혼자 살기의 어려움
혼잣말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한때는 너무 많이 해서 제가 이상한 사람이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어요. 다행이 저만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해서, 요즘은 비교적 안심하고 혼잣말을 합니다.
보통 이런 식이에요. 누군가와 나눴던 대화를 저 혼자 계속 이어가기도 하고, 혹은 어떤 상황을 상상하며 그 상황에 대해 계속 말을 덧붙이는 거죠. 그 혼잣말에는 제가 일종의 공격을 받아 자기방어를 해야 하거나, 방어적 공격을 먼저 해야 하는 상황 속의 말이 많았어요. 일어날 일도 없고 일어난 적도 없는 위기 상황을 계속 상상하며 저를 지킬 수 있는 논리를 떠올리는 거예요. 아마 제 안에 있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상당히 크긴 큰 모양입니다. 이 경우 혼잣말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겠죠.
농담을 계속 떠올릴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이런 말이 나온다면 참 재미있겠다. 혹은 그때 그런 농담이 정말 재미있었지. 이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사실 그래서 10년도 전 농담을 떠올리기도 해요. 그때 상황을 생각하며 다시 혼자 웃는 거죠. 말하자면 10년 동안 제가 했던 같은 농담으로 웃는 건데요……. 어, 계속 말할수록 제가 이상하게 느껴지는데, 다시 말하지만 이게 저만 그러는 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세상의 많은 사람이 그러고 있다고 하니까요. 너무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혼잣말을 하는 버릇은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한층 더 강력해졌어요. 샤워하거나 설거지할 때도, 청소하거나 혼자 가만히 있을 때도 혼잣말을 하는 거예요. 코로나 이후로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죠. 혼자 시간을 보내며 이런저런 집안일을 하다 보면 여러 생각이 떠오르게 되잖아요. 그 생각들을 말로 해보기도 하고, 그 생각들에 혼자 대답하며 생각을 이어가는 거죠. 그러다 문득 갑자기 또 혼자 민망함을 느끼고 조용해질 때도 있고요.
저에게 시 쓰기는 때로 이런 혼잣말이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자신과 타인에게 말을 하고, 또 어떤 상황들을 상상하며 거기에 대응해보면서, 저 자신의 불안을 상대하는 거죠. 그게 저를 위로하는 일이 되기도 하고요. 시는 혼잣말이 혼잣말로 그치지 않고, 혼잣말하면서 더 많은 사람과 대화를 하게 된다는, 그런 이상한 소통을 성립한다는 저에서 참 재미있는 양식입니다. 혼잣말이 많은 저에게 잘 어울리기도 하고요.
이원하 시인의 <제주에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는 이런 흥미로운 혼잣말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부드럽게 말을 걸고 있어서, 누구나 편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시이기도 하죠.
가만 보면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 혼자 살고, 술도 약해요. 그러니까 나한테 다가오세요. 그렇게 말하는 것 같죠. 하지만 잘 살펴보면 이 시는 단지 외로움에 대한 시는 아닙니다.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도 아니에요. 애당초 그 당신이라는 존재 자체가 특정되어 있지도 않은 시죠.
오히려 이 시는 나 자신에게 말을 해주는 시에 가깝습니다. 나는 지금 혼자 있지만, 사실 괜찮아. 다른 사람에게 이리로 오라고할 만큼, 그런 여유도 있어. 괜찮아, 나는 그만큼 괜찮은 거야. 그렇게 계속 스스로 확인하는 시처럼 읽혀요. 이 귀여운 시가 어딘가 쓸쓸해 보이고, 또 한편으로는 낯설어 보이는 건 이런 까닭일 거예요.
자신을 향한 확인과 긍정의 말들은 독자에게 또 다른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참 이상하죠. 타인의 혼잣말을 보면서 위로가 된다니 말이에요. 역시 잘 생각해보니 시는 혼잣말은 아닙니다. 혼잣말인 척하면서 타인에게 말을 거는 행위이죠. 부끄러움을 숨기고, 어쩐지 조금 더 용기를 내서 발할 수 있는 방식이 아마 시일 거예요. 혼잣말이라고 생각하고 말을 하면, 얼마든지 말을 할 수 있잖아요.
여러분은 언제 어떨 때 혼잣말을 하시나요. 그리고 그걸 누구에게 들려주시나요. 이렇게 말하듯이 건네는 저의 이 글도 사실은 혼잣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요. 하지만 저는 이 혼잣말로 나름 깊은 소통을 하고 있다고, 그렇게 믿고 있기도 합니다.
―황인찬, 『읽는 슬픔 말하는 사랑』, 안온북스, 2026.
첫댓글 이 시는 2018년 한국일보신춘문예 당선작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맞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