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수 6장 1-7절
설교제목 : 순환하기
문을 통과하는 열쇠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우리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 한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이번 주 수요일이 되면 겨울의 문인 입동입니다. 가을을 느끼기가 무섭게 겨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때아닌 초여름 날씨에도 불구하고). 한 해동안 키우며 자랐던 모든 잎들을 떨구고 다시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옷을 갈아입는 자연에서 삶의 신비를 배우게 됩니다.
빈대가 외국의 대도시를 점령하고, 외국인 여행객들을 통하여 한국으로 빈대가 유입되었고, 서울시내를 점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바퀴도 아니고 피를 빠는 빈대의 출현은 자율적이고 본능적 요소인 빈대가 인간의 피를 빨기 위해 집단의식의 세계를 침입하는 듯이 보입니다. 집단적 의식이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균형을 잃어가고 있기에 자율적 충동과 무의식의 정동이 세계의 곳곳에서 야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카엘 마이어Michael Maier의 “달아나는 아탈란타Atalanta fugiens” 자연의 신비에 관한 도판 27에는 현자의 장미원에 들어가고자 굳게 빗장이 걸린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이 그려져 있습니다. 도판의 첫 경구는 “열쇠 없이 철학자의 장미원에 들어가려고 애쓰는 자는 발 없이 걸으려는 자와 같다 He that endeavors to enter into the Philosophers Rosary without a key, is like him that would walk without feet”입니다. 장미가 풍성한 정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잠긴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길은 커다란 문으로 잠겨져 있고, 그 길을 통과하는 유일한 방법은 열쇠로 자물쇠를 열고서 들어가는 것입니다. 현자의 장미원의 길은 열쇠를 필요로 합니다. 이어지는 담화에서 이 열쇠는 곧 두 다리이고, 그것은 경험과 이성이라고 언급합니다. 전체성과 자기실현의 길은 경험과 이성을 통하여 획득된 열쇠를 필요로 하며 그 열쇠가 그 길을 안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의 여정 또한 경험을 통하여 획득된 열쇠를 가진 자는 헤쳐가야 할 난관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씩씩하게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경험적 신뢰
이스라엘 백성은 기적적으로 요단강을 건넌 후 요단강에서 가져온 열두돌로 길갈에서 기념비를 세우고, 백성 전체의 할례를 시행합니다(5장). 할례는 인간의 생명력과 창조력을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 즉 더 높은 목적에 헌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 전체는 자신의 생명력을 더 높은 목적에 헌신하는 자로서 변환되는 의식을 거행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은 여리고성을 마주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막기 위해 성은 굳게 닫혀 있었고, 출입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전운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너의 손에 붙인다(2).”
‘손에 붙인다’는 말은 ‘권력이나 통치권을 넘겨준다’, ‘승리를 허락한다’를 뜻하는 말입니다. 이는 전쟁 시작 전 승리를 보증하는 선언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며 이후에 제시하는 하나님의 전투방법을 그대로 이행합니다. 하나님의 전술은 엿새 동안 성 주위를 한 바퀴 돌고, 이레째 되는 날에, 제사장이 나팔을 부는 동안 성을 일곱 번 돌고 일제히 제사장들의 나팔 소리에 일제히 함성을 질러서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이상한 전술을 이행하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그 지시를 온전히 따릅니다.
왜 이 말도 안되는 전술을 따르는 것일까요? 경험적 신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공간 속에서 쌓여진 경험은 삶의 불확실함과 난관을 뚫고 가는 힘입니다. 경험만큼 좋은 배움과 지혜가 없을 것입니다. 기적적인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한 여호수아는 그 경험적 신뢰를 바탕으로 용기있게 순수하게 여리고성과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주님과의 경험적 신뢰를 통하여 인생의 낯설고, 힘겨운 여리고성을 넘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순환하라
여리고성과의 전투를 위하여 주님은 ‘돌아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리고성은 내면의 무의식적 콤플렉스, 낡고 닳은 집단적 가치 체계이기도 하고, 외면의 넘기 힘든 장애물이기도 합니다. 여리고의 정복을 위한 처방은 바로 반복적으로 걸어서 도는 행위입니다. 주위를 빙빙도는 행위는 순환입니다. 반복적 순환 운동은 힘의 장을 한 곳으로 배정시킴으로써 에너지를 중심에 집중시키는 과정입니다. 이런 순환운동은 정신적 에너지인 리비도를 집중함으로써 심리적 효과를 가져옵니다. 이것은 인도에서 명상을 할 때 집중하여 가열시키는 타파스Tapas와 같은 것입니다. 융은 “황금꽃의 비밀에 대한 주석”에서 “빙빙도는 것은 순환이라는 사상으로,... 순환은 단지 원을 따라 움직이는 운동만이 아니라, 한편으로 거룩한 구역을 구별하는 것을 의미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 고정시키고 집중시키는 것을 의미한다”고 언급했니다.[Jung C.G, Alchemical Studies, C.W.13, para38.]
만일 커다란 문제 앞에 봉착할 때 그 문제 주위를 계속 돌면, 그것에 에너지가 집중되고, 무언가 새로운 실마리가 배정되기 시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콤플렉스를 의식화할 때도 적극적으로 콤플렉스 주위를 순환하다 보면, 그 콤플렉스의 강도는 줄어들고, 그것의 영향력이 감소하면서 콤플렉스를 동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무의식적 콤플렉스가 우리 자신을 돌기 시작하면 그것은 무의식에 사로잡히는 신경증이 될 수 있습니다. 주도적이고 적극적 순환운동을 하면서 자기를 활성화시키고 집중화시켜서 새로운 질서와 방향, 치유를 일으킵니다. 우리가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은 여리고를 넘기 위해 그 성을 도는 순환하기를 통하여 그 문제를 극복해 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순환의 법칙 - 일곱 번
주님은 순환하는 방식을 일러줍니다. 6일 동안은 하루에 한번씩, 그리고 7일째 되는 날은 일곱 번을 돌라고 하십니다. 매일의 일상의 삶의 전개, 창조적 일상을 위한 순환적 내디딤이 하루에 한번씩 여섯 번을 도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째날은 일곱을 돕니다. 결국 7일은 창조의 완성, 안식의 날입니다. 여성적 주기의 창조적 완성의 날에 일곱바퀴를 도는 것은 내부의 성장, 완성과 의식화를 위한 발달입니다. 일곱금속을 대변하는 일곱 행성의 발달, 일곱 단계의 변환국면은 더 나은 발전으로 나아가는 창조적인 숫자이자 마술적인 힘이 게재되는 행운의 숫자입니다. 정신 발달 또는 변환 가능성과 필요가 활성화된 것임을 시사합니다. 또한 총 13번의 순환은 모든 자연적 순환과 발달, 화해를 넘어서 새로운 정수의 출현, 연금술에서 12달의 아로서 새로운 태양이 태어나는 것에 비견된다.
우리가 흔히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삶의 어려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매일의 일상에서 변환을 위한 순환을 시행하고 궁극의 7번의 순환을 통하여 더 나은 발전과 창조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어찌 한 두 번 해보았다고 그것을 이해하고 극복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요! 가끔씩 융을 공부하는 분들에게 융의 전집을 보여드립니다. 어떤 것은 10번 이상 읽은 내용도 있습니다. 책 제본된 부분이 떨어지려고 할 정도입니다. 조급하게 한 두번, 하루 이틀 돌고서는 의심하고 포기한다면, 우리 앞에 놓인 여리성을 넘을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 앞에서 몇 번을 순환하고 있으신가요? 13번을 곡진하게 돌고 또 돌 수 있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무기도 없이
일곱 번째 날 일곱 번을 돌고 제사장의 나팔 소리에 맞추어 함성을 질러야 합니다. 그 사이에는 침묵으로 결연히 행군해야 합니다. 내적 침묵 속에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큰 소리로 외쳐야 합니다. 13번의 돌기가 마치자마자 일제히 ‘외치라’는 명령을 듣고 큰 소리로 외쳤을 때 성벽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어떤 물리적 힘이나 전쟁 무기로 여리고 성을 무너졌습니다. 어떤 무기도, 인간적 기술과 병법도 필요치 않았습니다. 인간의 무기는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에서 태동되는 종교적 태도 외에는 어떤 것도 요구되지 않았습니다.
이 장면을 생각하니 15세기 무사(사무라이)의 노래가 떠오릅니다.
“... 나에겐 집이 없다 / 깨어 있음이 나의 집 /
나에겐 특별한 수단이 없다 / 이해가 나의 수단 /
나에겐 힘이 없다 / 정직이 나의 힘 / 나에겐 비밀이 없다 /
인격이 나의 비밀 / 나에겐 몸이 없다 / 인내가 곧 나의 몸 /
... 나에겐 기적이 없다 / 바른 행동이 나의 기적 / ... 나에겐 전략이 없다 /
비움과 채움이 나의 전략 / 나에겐 적이 없다 /
부주의가 곧 나의 적 / 나에겐 굳건한 성이 없다 /
흔들림 없는 마음이 나의 성 / 나에겐 검이 없다 / 나를 버림이 곧 나의 검”
전쟁을 위해 훈련된 무사의 이런 태도, 마음가짐이야말로 비장의 무기였습니다. 어떤 무기도 없이 여리고성벽이 무너진 것은 종교적 태도로 무장하였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능력과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를 힘입은 결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13번의 순환을 곡진하게 실행해가는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적 태도가 여리고 성벽을 무너뜨릴 수 있었음을 마음에 새기며 우리 앞에 놓인 여리고성을 넘어서 가는 인생 길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