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참나무
참나무는 상수리 나무입니다. 우리나라에 많지만 이스라엘에서도 잘 자랍니다. 이스라엘에서 공부하던 시절, 도토리가 주렁주렁 달린 참나무를 발견할 때면 고향에서 먹던 묵이 생각나곤 하였습니다. 참나무라 명명된 건 예부터 진목(眞木) 곧 ‘진짜 나무’라 하여 귀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목재로도 좋고 구황식량이 되는 도토리도 제공해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참나무는 여러모로 유용하였습니다. 참나무 잎에 붙어사는 벌레(Coccus ilicis)는 진홍색 염료(2사무 1,24)로 쓰였고, 도토리는 무두질에 사용되었습니다. 목재는 도구와 연장을 제작하고 배를 건조하는 데 쓰이기도 하였습니다.
참나무는 히브리어로 [엘론]이라고 합니다. 그 이름에 ‘엘’(하느님)이 있듯이, 고대에는 신성한 힘을 가진 나무로 여겨졌습니다. 상수리처럼 키가 큰 나무는 하늘과 땅을 잇는 다리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참나무의 신성함은 창세 12,6-7에 처음 암시되는데요, 칼데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들어온 아브람은 스켐의 성소, 모레의 참나무가 있는 곳에 다다릅니다.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많은 후손을 약속하셨고, 아브람은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았습니다. 아브람의 이름이 “아브라함”으로 바뀐 뒤(창세 17장), 그가 헤브론 마므레의 참나무 밑에서 살 때는 천사 셋이 그를 방문하였지요(18,1). 거기서 사라의 잉태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다윗 왕조에서 떨어져 나가 북왕국 이스라엘을 세운 태조 예로보암은 단과 베텔이라는 곳에 금송아지 제단을 만들었는데(1열왕 12,26-29), 단 유적지에서 발굴된 제단 옆에는 참나무가 자라고 있어 매우 흥미롭습니다.
성경에서 참나무는 힘과 교만의 상징이기도 하였습니다: “아모리인들은 (…) 참나무처럼 강하였지만 (…)”(아모 2,9). 특히 바산 지방이 참나무로 유명했습니다. 바산은 현 이스라엘의 최북단에 자리한 골란 고원과 그 동쪽 주변입니다. 이사 2,12-17에서는 바산의 참나무가 오만한 이의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주님의 날이 오리라. 오만하고 교만한 모든 것 (…) 위로 그날이 닥치리라. 높고 우뚝 솟은 (…) 향백나무들과 바산의 모든 참나무들 위로 (…)”
참나무는 생명력이 강해 줄기가 잘려도 그루터기에서 싹이 돋아납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이 벌을 받아 망한 뒤에도 생존자가 있어 참나무 그루터기처럼 후대를 이어 가리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십분의 일이 남아 있다 하여도 그들마저 다시 뜯어 먹히리라. 향엽 나무와 참나무가 잘릴 때 거기에 남는 그루터기와 같으리라. 그 그루터기는 거룩한 씨앗이다”(이사 6,13). 하지만 참나무는 그것이 지닌 상징성 때문에 우상숭배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예언서에 참나무 밑에서 행해진 우상숭배 꾸짖음이 자주 나옵니다: “너희는 참나무들 사이에서, 온갖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정욕을 불태우고 (…)”(이사 57,5). 말하자면, 어떤 이는 참나무의 상징성에 힘입어 참 하느님을 만났고, 다른 어떤 이는 그 나무 밑에서 어리석은 우상숭배에 빠지기도 한 셈입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2년 7월 31일(다해) 연중 제18주일 의정부주보 6면, 김명숙 소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