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노숙자]를 나는 세 번 만났다. 20대 , 40대, 50대였다. 그들은 나의 시의 소재가 된 이들이다.
20대 홈리스를 만난 것은 몇 전 옛날 내가 살던 서울 성북동 장위동에서였다. 어느 여름 밤 거리에서였다. 한 손에 찌개거리를 들고, 또 한손에 딱지가 붙은 새 냄비를 든 건장한 청년이 반바지로 서성대는 품이 어디에선가 끓여먹고 싶어하는 눈치인지라 말을 건네 보았더니, 우린 이네 한 마음이 되었다. 번개탄과 술과 담배는 내 부담으로 하기로 하고. 우린 어느 주택가 골목의 전보선대 전등 밑에 자리잡고 벽돌과 돌을 모아 전을 벌이고 번개탄을 피웠다. 다리 밑을 찾던 그에게 내가 살던 동네에 없음을 설득해서다. '물이 없군, 숟가락이, 젓가락이 없군'. 하더니 구멍 가게에, 식당에 가서 간단히 구해왔다. 거구의 젊은 잔발잔과 같은 얼굴의 거침없는 행동이 두려워서 달라는 대로 군말 없이 주고 있었다. 내 보기에는 그것은 구걸이 아니라 약탈이었다. 그렇게 냄비와 찌개도 구했으리라. 아까 슈퍼에 들렀을 때 내가 갖고 있는 돈 5,000원 중 차비 1,000원을 남겨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 잘했다는 생각이 은연중 든다. 얼마 전 그 무섭다는 청송 보호소에서 나왔다는 말을 들으니 갑자기 그의 어제가 궁금해진다. 그러나 이름을 묻는 말에, 고향을 묻는 말에는 귀찮아하며, 술잔을 건네며 찌개 맛과 분위기를 되묻고 있다. 그에게 자기 아버지뻘 되는 나의 나이와 직업상 익혀 온 나의 젊잔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구멍 가게 주인이 우리를 맴돌기에 무슨 할 말이 있는가 해서 가보니, 두려운 얼굴을 하고 어서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 달란다. 나도 은근히 겁이 나서 귀가 길의 멂을 핑계하고 그 자리를 서둘러 떴다. 돌아온 밤 그날 밤 시 한 수를 얻었다.
고아원을 달아난 건 뿌리를 찾아서 이름 하나만이라도 확실히 건지고자 버리고 꼭꼭 숨어버린 비정을 찾은 거고
잃어버린 체면 대신 증오에 칼을 갈며 똑 같은 나에게서나 위로를 구하다가 파출소 단골 되어 청송에 갔던 거고
그 어린 나를 버린 나이가 되었을 땐 세상은 교도소라, 부랑아로 배회하며 이름을 찾을 필요 없는 나로 사는 때였고. -부랑자
두 번째 만난 이는 50세 후반의 이가 홀랑 빠져버린 이성배씨였다. 보기에는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홀아비다. 아내의 마지막 소원이었던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어주자 아내는 훨훨 날아가 버렸고, 가난한 자식에게는 곁을 떠나 주는 것이 유산이라 생각되었다고…. 유난히 추웠던 그해 섣달 그믐날 일산 평야 수로 낚시터를 구경갔더니, 강은 벌써 꽁꽁 얼어붙었는데 논 두덩 저 편에서 연기가 홀홀 피어난다. 가보았더니 누추한 차림의 할아버지가 모닥불 앞에서 무언가를 맛있게 빨아먹고 있다. 길에서 주운 개고기란다. 차에 치어 죽었거나 쥐약 먹고 죽은 개인 모양이다. 뚝 위에는 불 탄 농막이 있는데, 아궁이와 온돌 비슷한 게 있고 그릇 깨진 것이 사방에 흩어져있느 것을 보면, 여름이나 가을에 농사짓다가 사람이 유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모양이다. 그걸 개고기를 굽다가 불태웠다는 것이다. '주민등록증을 맡기고 예서 겨울을 보내고 내년 봄부터 농사 일로 도와주기로 팔순의 노인에게 빌린 집이었는데….' 하며 지구가 무너지듯이 한숨을 쉬고 있었다. 막걸리 한 잔 사주기로 하고 들에서 멀리 떨어진 구멍가게를 향했다. 우릴 보고 동네 아주머니가 며칠 전 우리 비닐 하우스에서 자고 간 노인이라고 쑤군거린다. 달걀을 안주로 막걸리를 마시고 남은 6,000원을 주고 무얼 사나 살펴보았다. 그는 청자 담배 2,000원 짜리 1보루를 사더니, 나머지는 나면을 달라 한다. 담배까지야 어디 구걸할 수 있겠는가. 끓여먹을 그릇을 찾기에 아줌마에게 얻어주고 집에 돌아와 옷과 함께 나머지를 챙겨 주고 돌아왔다. 마침 섣달 그믐날이어서 우리 식구들도 각자 1,000원씩을 갹출한 것도 전했다. 그해 설 연휴는 유난히 추웠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얼어죽지나 않았는지 궁금했는데 몇 달 후 우리 아파트를 거니는 그를 우연히 발견했다. - 어제 밤은요, 길가 맨홀 열고 들어가 잤어요. 그제 밤은요, 얼어죽지 않으려구요 밤새도록 걸었구요. . 늙고 가난하면요, 건강이 웬수에요 웬수. 나는 지금도 그가 원수라는 건강을 안고 얼어죽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다.
이 성 배씨
질긴 가난 때문에 자기마저 지키기가 너무 힘겨워서. 마지막 부탁이 이혼이었던 아내처럼 뿌려 논 자식에게서 훨훨 멀리 떠나 주는 것이 마지막 던지고 온 부정. 고진고래의 역사로는 이성배씨, 그는 너무 부자다. 길에서 주운 그래도 제 집 갖고 살다 죽은 개고기를 굽다 불낸 농막에 얼음 조각을 던지다가 막다른 농로에 앉아 불에 그슬린 개고기를 잇몸으로 빤다. 신도시가 바라보다 잠든 벌판에서 깨어나는 겨울 바람에 웅크리고 지샌 제야는 저승 가는 길보다 더 춥고 길었다. 기다리던 낮처럼 봄이 오면 농사 일로 보답해야 하는 단 하나의 재산인 주민등록을 걸고 한 약속에 한겨울 벌판이라고 떠날 수 없다. 잠들다 개처럼 얼어죽는 것보다 지금 더욱 두려운 것은 불조심 하라시던 농막주인 할아버지 얼굴. 깨어나는 이마에다 주름살 하나 더 긋는 환과고독의 이 성배 할아버지. -1996년 새해에 장항 슈퍼에서
40대의 노숙자 문효희씨의 숙소는 우리 아파트 밖 정자다. IMF 한파 이후에 나타난 사람이다. 그 옆의 공중변소가 그의 부엌이요, 세면대요, 샤워실이요, 세탁소다. 세 번 사우디에 다녀온 고교 졸업생으로 왼쪽 이마가 함몰되어 쑥 들어가 있고, 오른쪽 다리를 전다. 틀니를 해서 그의 말은 열심히 들어도 20%이상 이해할 수가 없다. IMF로 직장을 잃자 이혼서에 도장을 꾹 찍어 주었더니 아내가 12살 먹은 딸을 대리고 호적을 파갔다. 그는 초연한 듯하면서도 그 이야기를 몇 번씩 되풀이하는 것을 보면 그게 가장 괴로운 일이었던 모양이다. 그의 누워있는 모습을 보면 불쌍하기도 하지만, 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여간 신경이 가는 것이 아니다. 아파트 주민 중에는 밥을 갖다주는 사람, 버너 코펠을 주는 사람, 돈을 주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출근길에 그를 볼 때마다 누워 자는 그를 깨워 1000 씩을 주곤 했다. 담배 값, 나면 값 하면서. 그러나 불쾌하게도 그는 누워 받는다. 오늘도 1,000원을 챙겨가지고 가다보니 야단을 맞고 있는 모양인지 부지런히 주민이 지켜보는 데서 이불을 개고 있기에 그냥 지나쳤다. 남의 아파트 수많은 사람이 지나 다니는 길목에서 이불까지 덮고 자고 있으니 아파트값 떨어지라고 그냥 두겠는가? 1,000원이면 담배를 살 수도 있고, 나면을 살 수도 있는 그의 소중한 하루일 텐데, 지금은 어떻게 배를 채웠는지 궁금하다. 돈을 주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덕담도 통할 수 없는 그에게 나의 마지막 남은 정이 걱정을 더하게 한다.
1,000원이 손에 쥐어지면 똥이 된다. 연기가 된다. 하루가 된다. 구겨지지 않는 자존심이 된다. 잃어버릴 것도 없이 다 잃고 정자에 누워 있으면 하늘을 보지 않아도 눈을 노크하는 세상은 가진 자보다 더 넓었고 닫아야 하는 하루는 주린 창자보다 더 길었고 한 달은 하루보다 더 짧더란다. 시원하게 아내가 버리고 간 것은 그로서는 헤어날 수 없는 두터운 가난. 고독은 버렸다는 것을 버리지 못한 생각이 모기 밥에 맡긴 밤보다 채워 주지 못한 창자보다 더 외롭지만 그 밤도 살 속을 파고드는 추위가 익어지면 그리워 질 거다. 지난여름 월드컵이 한창이던 날 가난한 나라 선수들처럼 오늘의 홈리스는 못난 탓인가. 쓰레기처럼 딩굴고 있는 그 못난 위정자 탓인가. 병든 우리들 때문인가. 아무런 충고나 덕담도 통할 수 없는 처지와 허물어져 가는 육신 앞에서 1,000원 투자는 한둔을 빛나게 하는 의미다, 우리들은 모두 부자 홈리스요, 거지 홈리스다. IMF에 떨고 있는. - 홈리스
나는 홈리스를 세 사람 만났다. 그들은 한결같이 부모가, 아내가, 자식이, 그 알량한 위정자들과 사회가 버린 사람들이었다. 모두가 책임을 외면한 지금 그 책임을 홈리스가 스스로 지고, 내일보다 오늘을 걱정하며 생존해 있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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