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어버이연합과 한미우호증진협의회 등 보수시민단체와 소속회원 200여 명은 현충원 정문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묘비 제막식 우상화 규탄 성명’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konas.net | |
보수시민단체 대한민국어버이연합(회장 이칠성)과 한미우호증진협의회는, 6일 오후 2시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비제막식이 열린 현충원(서울 동작동) 정문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묘비 제막식 우상화 규탄 성명’을 위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김대중 국장과 현충원 안치 취소”를 촉구했다.
이들은 “권력형비리와 이적행위로 한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한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과 현충원 안장은 북한의 6.25 무력남침을 저지하다 희생된 호국영령을 모독하고 조롱하는 만행”이라 규정하며, “국장을 취소하고 현충원에서 파묘 이장 하라”고 성명서를 통해 밝혔다.
또한, 이들은 “미국에 측근 대리인들이 3억 6천 달러 재산을 관리해 재산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의혹이 미국에서 발행되는 유에스인사이드월드와 뉴욕 뉴스메이커에 의해 보도되는 등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며 “유족들은 김대중이 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국가와 국민을 모독한다는 것을 깊이 통회해 국장 명예의 반납과 국장비용의 납부는 물론 조속히 현충원에서 이장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 "김대중의 우상화·영웅화하는 것은 대단히 부끄러운 일"이라고 비판하는 서석구 변호사ⓒkonas.net | |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과 현충원 안치 취소를 구하는 행정처분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한 서석구 변호사는 “일부 정부와 정치인, 종교지도자들이 김대중의 우상화·영웅화하는 것은 대단히 부끄러운 일”이라고 이날 DJ의 묘비제막식에 대해 비판했다.
이어 ‘미니 포크레인 장난감’을 이용해 퍼포먼스를 벌이려는 이들의 행동을 경찰은 저지했으며, 추선희(어버이연합) 사무총장 등 4명을 연행했다. 이들 시민단체들은 1시간 가량 경찰과 대치하며 추 총장 등 4명을 풀어줄 것을 요구했고, 경찰은 자진해산을 조건으로 연행자들의 귀가를 약속해 오후 4시께 이들은 자진 해산했다.
▲ 퍼포먼스를 벌일려고 준비했던 장난감 포크레인과 덤프트럭ⓒkonas.net | |
▲ 주요 직위자들을 연행하려는 경찰과 연행을 저지하는 보수시민단체 회원들ⓒkonas.net | |
▲ 경찰에 연행돼 승합차에 탑승되는 주요직위자(사진 중앙). 추선희 사무총장 등 3명은 이미 승합차에 탑승됐다.ⓒkonas.net | |
▲ 연행과정에서 부상당한 한 보수시민단체 회원을 치료하는 경찰ⓒkonas.net | |
▲ 추선희 총장 등 4명을 풀어줄 것을 요구하는 서석구 변호사(사진 중앙)와 보수시민단체회원들ⓒkonas.net | |
한편, 현충원 내 故 김대중 前 대통령 묘역에서는 이희호 여사 등 유가족과 정__관계인사 등 추모객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故 김대중 前 대통령 묘비, 추모비 제막식이 있었다. 현충원에 따르면, 묘비의 앞면에는 ‘제15대 대통령 김대중의 묘’라고 새겨 넣었으며, 뒷면에는 연보, 가족사항 및 일대기를 새겨 넣었다고 한다.
다음은 현충원이 제공한 故 김대중 前 대통령 묘비 뒷면에 새겨진 일대기 전문이다.(konas)
코나스 강치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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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후광(後廣) 김대중 선생은 본관이 김해(金海)이시다. 아버지는 김운식공이시고 어머니는 장수금여사이시며 1924년 1월 6일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도에서 태어나시었다. 1952년 정계에 입문하신 후 낙선을 거듭하다 1961년 인제에서 첫 국회의원에 당선되셨으나 5.16 군사정변에 의해 정치활동을 금지당하셨다. 이때부터 행동하는 양심의 정치인으로 민주주의, 인권, 평화통일을 위해 매진하셨고 일생 동안 5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셨다. 6년의 감옥생활과 수십년 동안의 망명, 연금, 감시를 당하는 고난 속에서도 의회주의 원칙에 충실하며 지방자치 실현과 국민통합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셨다. 1956년 토머스 모어 세례명으로 영세를 받으시고 깊은 신앙심으로 평생 가난한 이웃을 사랑하시었다. 숱한 박해를 받으면서도 정치보복을 하지 않고 용서와 화해를 몸소 실천하셨다. 1998년 첫 여야간 수평적 정권교체로 대통령에 취임한 후 경제위기의 국난을 극복하셨고 우리나라를 민주주의와 인권국가, 경제와 사회복지 선진국, 정보화 강국으로 이끄셨으며 자주 외교를 펼쳐 ! 물(國格)을 높이셨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반세기 동안의 적대감을 녹이고 지속적인 햇볕정책으로 남과 북이 화해와 협력하는 평화의 시대를 여셨다. 같은 해 12월에는 민주화와 인권 그리고 평화를 증진시킨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시었다. 2003년 2월 퇴임하신 후 세계 평화와 민족의 화해를 위해 헌신하시다가 2009년 8월 18일 향년 85세로 서거하셨다. 온 겨레와 세계지도자들의 애도 속에 8월 23일 국장의 예로 현충원에 드시어 하느님의 품에 안기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