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운사(開運寺) /전통사찰
- 서울시 성북구 안암동
1396년(태조 5) 왕사인 무학대사가 동대문 5리 밖, 안암산 기슭(현재 고려대 이공대 부근)에 창건하여 영도사(永導寺)라 함.
1779년(정조 3) 정조 후궁 홍빈의 묘 명인원이 절 옆에 오자 인파당 축홍이 동쪽으로 몇 리 떨어진 곳에 절을 옮겼다고 하지만,
사기(寺記)엔 1730년(영조 6) 영도사가 옮긴 것으로 나온다. 이 시기에 절이름을 개운사로 고쳤다고 한다.
다른 전언은 고종이 어릴 때 영도사 벽담께서 돌봤다고 한다.
왕위에 오른 후 '운명을 여는 사찰'이란 뜻으로 사명을 바꾸었다 한다.
뚜렷이 연혁에 대한 기록은 없고, 19세기 후반 <봉은본말사지>에 자세한 기록이 나온다.
1873년 명부전, 1880년 대웅전 중건.
1712년 만든 범종이 아산에서 1885년 개운사로 왔지만, 1935년 일제가 약탈하였다.
1921년 대방을 중창하고 종각을 세웠다. 1926년 강원, 1929년 독성전, 1935년 칠성각을 세움.
1926년 근대불교 석학인 승려 박한영께서 머물렀고 산내 암자인 대원암에 탄허께서 머물면서 역경 사업을 하셨다.
1981년 중앙승가대학이 옮겨 왔고, 2001년 김포로 옮겨 갔다.
(개운사 안내문 정리)
돈암동에서 버스를 타고 안암동에 내렸다. 고려대학교 기숙사인 모양이다. 이곳을 지나 개운사로 갔다.
안암동은 고려대학교이고 고려대학교가 안암동이란 느낌이 들었다. 교정은 한 곳이 아니다.
개운사 또한 고려대에 싸여 있다. 중앙승가대학이 있었던 건물은 헐고 있는 것인지 보기엔 그렇다.
산지 사찰과는 거리가 먼 사찰이다.
일주문, 일주문 지나면 주차장, 유료이다.
담장과 나란히 많은 비석이 있다.
종루 겸 누각인가? 대각루란 현판이 보인다.
관음전
대웅전
대단하다. 한 시간 넘게 북을 치면서 경전을 읊는다. 대웅전 안은 밖에서 봤다.
사진 오른편 벽에 붙은 불화가 개운사 신중도, 불당 사진으로 봉안한 불상이 목조 아미타여래좌상(보물).
이 불상은 불교중앙박물관으로 나들이 나갔다. 3월 15일~6월 25일 간 불교중앙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다.
나는 이 불상을 4월 21일(금) 박물관에서 봤다. 개운사 방문 시에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절을 찾아서'에 사진을 올렸다.
개운사 팔상도
사진 왼편 불화 개운사 감로도
명부전
불상 뒤편 불화 개운사 지장 시왕도
산령각, 금륜전, 천태각 / 한 건물에 있다.
금륜전 앞에서
대각루 뒤편, 편액 두 점.
개운사 담장
개운사엔 서울시 유형문화재인 불화가 있다.
지장 시왕도/제215호
1870년에 서울 지역의 대표적 화승인 경선 응석(慶船 應釋), 그리고 봉감(奉鑑), 자한(自閒), 체훈(軆訓)
신중도/제213호
그린 시기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지장 시왕도를 그린 화승과 그림 형식이 일치, 1870년 지장 시왕도와 같이 그린 것으로 추정.
팔상도/제214호
1883년에 화승 대허 체운(大虛 軆訓), 금곡 영환(金谷 永煥), 한봉 창엽(漢峰 蒼曄)
감로도/제212호
1883년에 화승 대허 체훈(大虛 軆訓), 천기(天機), 수일(守一), 태삼(台三)
목조 아미타여래좌상 및 발원문 /보물 제1649호, 목조 아이타여래좌상 복장전적 /보물 제1650호
높이 118cm, 대좌와 광배는 없고 불신만 있으며 고려 중기 불상이다.
복장에서 발원문과 여러 책(전적)이 나왔다. 이 보물은 불교중앙박물관에서 관리하고 있는 것 같다.
보타사(普陀寺) /전통사찰이 아님
- 서울시 성북구 안암동
보타사는 개운사에서 300m 떨어진 곳에 있다. 예전 개운사 부속 암자인 대원암이었다.
이곳엔 보물인 불상과 마애불이 있다. 이곳에 대한 사전 정보는 없었다. 개운사를 방문하면서 알게 되었다.
꽤 괜찮은 마애불을 보았다. 주위 옥천암(서대문구 홍은동, 전통사찰) 마애불과 비교한 설명이 있다.
오른편 건물은 에전엔 '중앙승가대학교 보육교사교육원'으로 썼던 모양이다.
눈에 익은 건물이다. 고려대학교 교정과 중앙승각대학교 보육교사교육원 건물 사이엔 철조망을 두고 있다.
여러 전각을 근래 불사를 한 모양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관음전
보타사 금동 보살좌상 /보물 제1818호, 사진 오른편
오른쪽 무릎을 세우고, 왼쪽 다리는 아래로 내리고 있는 독특한 자세로 앉아 있다. 이런 좌세를 '유희좌'
송나라과 요나라에서 찾아볼 수 있는 보살상이며, 우리나라는 고려후기에 유행하였다.
(크, 오른편 불상이 보물인지도 모르고 가운데 불상만 찍었다)
보타사 마애보살좌상 /보물 제1828호
불상 높이 503.3㎝, 무릎 폭 341㎝. 보타사 대웅전 뒤쪽 병풍처럼 둘러쳐진 암벽에는 높이 약 5m의 보살상이 새겨져 있다.
바위는 앞으로 ‘ㄱ’자로 돌출해 자연스럽게 지붕을 이루고 머리의 좌우 측면에는 직사각형의 홈을 파낸 흔적이 남았다.
불상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이 설치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바위의 곡면을 따라 자연스럽게 새겼고, 자연과 조화를 중시한 우리 미술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삼면 절첩식 보관과 뿔 모양의 관대, 타원형의 보관 장식, 천의식 착의법 등은 인근 옥천암 마애보살좌상과 거의 같은 형식.
옥천암 마애불보다는 세부 표현에서 소략, 도식화되었다.
보타사 마애보살상은 옥천암 마애보살상을 토대로 같은 시기 또는 약간 늦은 시기에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마애좌상의 오른쪽 원패 모양 각석에 ‘남무금강회상불보살(南無金剛會上佛菩薩)(중), 도리회상성현중(忉利會上聖賢衆)(좌),
옹호회상신지등(擁護會上神祗等)(우)’ 등 명문이 남아 있어 마애보살상의 성격과 신앙을 알 수 있다.
이런 마애불은 처음 본다. 옆에서 보면 목이 꺾여있지만 앞에서 보면 전혀 눈치를 챌 수 없다.
양각으로 몸체가 뚜렷하게 드러나서 보기에 좋다. 얼굴도 부드럽고 원만하다.
사진 왼편, 원패 모양 각석.
삼성각
종무소, 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