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진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칭찬과 비방, 명예와 불명예 따위는 마음에 담아둘 가치가 없는 헛된 것일 뿐입니다. 수행자에게 있어 오직 도(道)를 향해 한마음으로 정진하고, 윤회에서 벗어나 정토(淨土)에 왕생하기를 발원하는 것만이 궁극적이고 완전한 실재입니다.
◎ 불교 수행은 평범한 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큰 공덕과 복덕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한 공덕의 토대는 청정하고 온화한 마음에 있습니다. 진실하고 선한 마음을 지닌 사람은 자연스럽게 정직하고 소탈합니다. 반면 우리 범부들은 끊임없이 망상에 빠져 지내는데, 이는 공덕이 부족함을 보여주는 습관입니다.
◎ 현대인의 잘못은 자신을 드러내거나 남의 이목을 끌기를 좋아하는 데 있습니다. 이는 미혹함과 지혜가 부족하다는 증거입니다.
◎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끊임없이 중생을 이롭게 하고 불법(佛法)을 널리 알리는 것을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보리심(菩提心)을 닦는 일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범부들은 오직 자신만을 생각하며 명예와 물질적 이익을 탐하고 불법을 위해 헌신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끊임없이 악업을 쌓게 됩니다. 마음가짐이 다르면 생각과 행동 또한 자연히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오직 대자비로 충만한 마음만이 타인의 안녕을 끊임없이 추구하게 합니다.
◎ 차분히 관찰해 보면 자신의 습관적인 성향을 파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타고나길 선한 반면, 어떤 사람은 전생에서 이어진 강하고 부정적인 습관을 지니고 태어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불교는 악을 멈추고 선을 닦으며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라고 가르칩니다. 즉, 유익한 습관은 기르고 해로운 습관은 없애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수행의 근본 원칙이며, 염불 수행을 하는 이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 인간의 삶은 무상(無常)합니다. 수행자에게 시간은 가장 소중한 자산입니다. 이 생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면 진실하고 부지런한 마음으로 염불 수행에 임해야 합니다.
◎ 경전에서는 흔히 "사람 몸 얻기 어렵고, 불법을 만나기 어렵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번 생에 사람의 몸을 받게 된 것은 전생에 오계(五戒)를 잘 지켰기 때문입니다. 오계를 지키는 것은 인간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업의 원인이 됩니다. 이제 사람의 몸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수행에 정진하여 생사(生死)의 중대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오욕(五欲)과 육경(六境), 그리고 탐욕·분노·어리석음이라는 번뇌에 빠져 지낸다면, 훗날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질 원인을 짓게 됩니다. 우리는 신중해야 하며 항상 경각심을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 마음속에 분별과 집착을 품고 있다면 가는 곳마다 업장(業障)이 따를 것입니다. 깊은 산속에 은둔하며 산다 해도 번뇌를 마주하게 될 것이며, 몸과 마음의 편안함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 불교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념으로 정진하는 것'입니다. 어떤 경전을 공부하든 첫 번째 단계는 경전의 내용을 철저히 익히는 것이고, 두 번째는 '원만한 이해(원해, 圓解)'를 구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가르침을 진지하게 실천하는 것입니다. '원만한 이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모든 현상이 평등하며 본질적으로 하나"임을 깨닫는 능력입니다. 하나의 경전에 집중하면 그 경전이 모든 경전을 포괄하고 있으며, 모든 경전 또한 그 하나의 경전을 완벽하게 담고 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것이 하나이고 하나가 모든 것"이라는 원리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참으로 포괄적이고 조화롭습니다. 이러한 원만한 이해를 얻은 후에는 '원만한 실천(원행, 圓行)'에 임해야 합니다. 즉, 경전의 원리와 가르침을 자신의 일상적인 생각, 견해, 말, 행동과 하나로 통합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불법(佛法)이 절대 평등의 가르침임을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 사람들은 왜 정법(正法)을 믿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의 견해에 조화와 완전함이 결여되어 있고, 번뇌를 끊어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공부와 토론의 목적은 무엇보다도 모든 사람이 경전의 원리를 진정으로 이해하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이해'란 곧 길을 아는 것과 같습니다. 길을 모른 채 나아가는 것은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격으로, 맹목적인 수행이 될 뿐입니다. 따라서 올바른 견해를 갖추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나아가 '포괄적인 이해'를 위해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없다면 아무리 올바른 견해를 지녔더라도 수행 과정에서 장애에 부딪히게 될 것입니다.
◎ 오늘날 많은 이들이 선한 마음으로 불교를 공부하러 오지만, 그 방법이 잘못된 경우가 많습니다. 도반들을 돕고자 한다면 먼저 "모든 법문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의 구분이 없다"는 점을 설명하여 평등한 마음을 길러주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수행의 단계와 방법, 구체적으로는 '사홍서원(四弘誓願)'을 안내해야 합니다. 즉, 끝없는 중생을 구제하고, 다함없는 번뇌를 끊으며, 한량없는 법문을 배우고, 최상의 불도를 성취하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먼저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큰 서원을 세운 뒤 '번뇌를 끊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는 하나의 법문이나 경전을 깊이 파고들어 청정한 마음을 닦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이 청정해지면 지혜가 생겨납니다. 그때 비로소 한량없는 법문을 배우고 걸림 없는 통달의 경지에 이르러, 널리 중생을 구제하고 원만하게 성불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가 깨어난 뒤라면 대장경을 공부하는 데 3년이면 충분합니다. "하나의 경전을 통달하면 모든 경전을 통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옛사람들은 9년 만에 세간과 출세간의 가르침을 모두 완전히 이해하여 통달의 경지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은 삼매(깊은 집중)와 지혜를 갖추어 모든 것을 걸림 없이 이해할 수 있었던 반면, 삼매와 지혜가 부족한 우리는 모든 법문은커녕 단 하나의 법문조차 제대로 통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