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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15일 월요일 <반골기질, 별을 따오는 제자들>
[김용호] [오전 6:55] 굿모닝입니다~^^주님 안에서 상쾌한 스타트~!!
[정진호] [오전 9:30] 주님 안에서 모두들 화이팅합시다!
내가 처음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던 30대 초중반 때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이 "주님 안에서"였음을 고백합니다.^^ 그 이유는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이 도대체 어떤 의미로 그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고 내 생각에 그 말을 하는 사람들도 그 의미를 과연 알고 하는지 아니면 모르면서 앵무새처럼 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 승리하세요.” 이 말이 특히 듣기 싫었습니다. 도대체 누구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라는 건지도 모르겠고 주 안에서가 뭘 의미하는지 모르면서 왜들 그렇게 말하는지 그 말하는 사람들이 매우 얄미워 보였습니다. 왜 교회만 나가면 사람들의 말투가 이상해지고 행동이 이상해지는지가 싫었습니다. 아무데서나 기도하자고 하고 아무 때나 하나님 은혜를 이야기 하는 것도 싫었구요.
[김용호] [오전 9:40] 오~ 반골기질~ 저보다 더 심한 경우였네요. 매우 좋습니다. 루터의 95개조를 보면 반골기질의 정수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예비하심이지요. 그 반골기질이 자기 자신을 향하지 못하고 외부에 향해서만 작동한 것이 루터의 한계였지만요.
우리의 반골기질은 우리 자신의 싸르크스를 향해서까지 작동되고 있습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지요. 우리의 본능을 거스르는, 그래서 본능적인 자기합리화를 거부하는 반골기질이야말로 진정한 회개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이 주신 복입니다.
대개의 경우는 반골기질이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작동되지요. 그건 순종기질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발하든 순종하든 목적은 똑같은 거지요.
우리에게 반골기질을 주시고 그 반골기질이 우리의 싸르크스에 대해 작동할 수 있게 이끄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정진호] [오전 10:01] 전도사님이 "주님 안에서"를 먼저 하셨고 나도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받아 다시 "주님 안에서"를 말하면서
격세지감을 느껴서 과거를 잠시 회상했네요.
[김용호] [오전 10:02] ^^ 우리가 참 많이 달려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푯대가 점점 더 선명하게 보이게 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
라고 생각되네요.
[정진호] [오전 10:04] 그 당시 내 생각은 예수를 믿으면 왜 사람들이 이상하게 변하는가가 싫었던 거고 왜 더 인간다운 인간이 되지
않는가에 의문이 있었던 거지요.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도덕주의 기독교 쪽으로 옮겨 간 거구요.
그러다가 하나님의 기막힌 은혜로 예수 믿으면 인간다운 인간이 되는 게 아니라 거듭난 인간이 되는 거고 거듭난 인간은 사람들에게 더 인간다운 인간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았구요. (활용의 현장에서)
그러나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주 안에서"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면 과거의 거부감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 의미를 알고 사용하는 우리가 그 말을 하는 것은 아무런 거부감이 없네요.^^
[김용호] [오전 10:34] 주 밖에서는 자기 먹고 살 궁리로 뛰어다니게 되고 주 안에서는 하나님의 나라의 성장과 확산을 위해서 뛰어
다니게 되지요. 밥을 왜 먹느냐, 돈을 왜 버느냐의 문제입니다.
[정진호] [오전 10:40] 우리의 삶이 주 안에서 오로지 하나님 나라의 성장과 확장만을 생각하며 세상에 나가서도 사는 것만이 죽음과
결핍의 공포에서 벗어난 복 된 삶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월요일이네요.
[김용호] [오전 10:40] 예. 맞습니다. 집사님. 인간의 모든 문제의 해결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지요. 여기에 동의가 안 되면 첫 번째
믿음, 동의는 되는데 몸이 안 따라오면 두 번째 믿음,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으면 세 번째 믿음이지요.
첫 번째 믿음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이 내버려두는 대상입니다. 그런데 첫 번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제일 믿음이 좋아 보이는 경우가 많지요. ㅋㅋ 새벽 예배 주일 예배 철야 예배 죽어라고 나갑니다. 잘 먹고 잘 살아야 하니까요.^^ 윤리도덕적인 삶에 목숨을 걸기도 합니다. 그것도 바벨탑을 꽤 멋지게 만들어주니까요. 열성적인 휴머니스트가 되기도 합니다. 왜? 멋있으니까!
이처럼 무수한 유혹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언제나 내가 지금 나 먹을 것을 구하려고 뛰어다니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의 성장과 확산을 구하려고 뛰어다니고 있는가를 확인하며 움직이는 우리로 성장해 가기를 소망합니다. 좀 더 포괄적으로 표현하자면 지금 내가 나 좋자고 뛰어다니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뛰어다니고 있는가의 문제인 것이지요.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 한 몸 공동체에 속해 있지 않으면,
1. 나 먹을 것을 위해 뛰어다니는 기복적 기독교
2. 나를 잘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뛰어다니는 도덕적 기독교와 휴머니즘적 기독교
3. 종교적 탐욕을 추구하며 뛰어다니는 교회우상주의 기독교
등의 오류에서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임지웅] [오전 11:19] 반골기질이라는 단어를 보면서 ... 세상 사람들에게는 피곤하고 귀찮은 자로 인식되는 게 제게는 축복이라는
감사한 생각이 드네요. 요즘은 정말 어머니랑도 기존의 믿음이 옳은 지에 대해 많은 다툼이 있습니다. 칼을 던져주러 왔다는 말씀을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제가 변해가야 어머니든 동생이든 동의를 시작할 텐데 아직 부족합니다. 사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으니까요.
[김용호] [오전 11:20] 정확한 방향인식이로군. 감사한 일이야.
[임지웅] [오전 11:21] 제 동기 중에 저만큼이나 반골기질이 있는 친구가 있는데... 교회다니는... 이 친구에게도 제가 느끼고 깨달은
바를 전하고 싶은데 쉽지 않네요. 전도사님의 조언이 필요합니다. 이 친구는 장애도 있어서 그게 마음의 큰 상처 또는 걸림돌이 되고 있어서요.
[김용호] [오전 11:23] 그 반골기질이 자기를 위한 반골기질이냐, 아니면 자기를 향한 반골기질이냐에서 결판이 나게 되지. 그리고
자기를 향한 반골기질일 경우 그것이 누구를 위한 반골기질이냐는 문제가 따라오게 되지. 여기서 교리에 세뇌된 서구 기독교인들에게서 거의 자동으로 나오는 대답이 바로 "하나님을 위한 반골기질입니다"~
그러나 여기엔 심각한 함정이 있어. 하나님을 위한 반골기질이란 것이 말장난으로 끝나게 된다는 함정이야. 하나님을 위한 반골기질이 실체가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오류야. 왜냐하면 하나님을 위한 반골기질이 사실은 현실적으로는 자기를 위한 반골기질이 되어버리고 말거든. 회개를 예로 들자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회개가 결국 자기를 위한 회개가 되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야. 자기를 위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서구 기독교인들이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함정이지.
이것은 현실에서 종노릇을 할 대상이 없기 때문에 일어나게 되는 딜레마야. 그래서 기껏 찾아낸다는 것이 교회우상주의 또는 도덕주의나 휴머니즘이 되고 마는 거지. 다시 원점~^^ 그래서 서구 기독교가 버린 하나님의 나라 한 몸 공동체가 유일한 답이야.
그 친구에게 이렇게 물어보게나.
너의 불만은 무엇을 위한 불만이냐고~
불만의 목적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냐고~
불만의 이유 말고 목적~^^
그 목적이 만약 유토피아 건설이라면 망상에 젖어있는 것이고, 그 목적이 만약 바람직한 서구 교회 건설이라면 미망에 빠져있는 것이지. 그러나 그 목적이 만약 하나님의 나라 한 몸 공동체의 건설이라면 정답이야. 이론적으로는 말이야. 그 다음엔 그래서 나의 손발이 실제로 하나님의 나라 한 몸 공동체의 건설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가를 확인해야 하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손발로~
따라서 반골기질은 그 목적을 위해 현실의 삶에서 내 손발이 움직이는 데에까지 진전되어야 유의미한 반골기질로 입증될 수 있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그냥 아이들 투정에 불과할 뿐이지. 손발로까지 가긴 갔는데 유토피아 건설을 위해 손발이 움직이고 있다면 그 손발은 잘라버리는 게 낫 났겠지만 말이야.^^ 정집사님이 말씀하신 비장한 헛발질에 해당하는 일이니까.^^ 그보단 차라리 투정이나 하고 있는 게 더 나을지도 몰라.^^
바람직한 서구 교회를 세우겠다는 행동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겠지. 소위 교회개혁운동 따위~^^ 그 둘의 공통점은 멋진 우상 세우기야. 전자는 세속적 우상, 후자는 종교적 우상~
[연동흠] [오후 12:44] 솔직히 숙 자매를 우리 교회로 인도하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숙 자매 같은 경우 가풍이 윤리주의 기
독교거든요. 장모님, 처형이 다 그렇습니다. 숙 자매는 직업적 특성상 많은 경험을 한터라 그나마 사고의 유연성이 있지만요.
팔복 칼럼을 서로 읽으면서 밤새 뜬눈으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이제 저희 둘이 거의 이론적으로 합일되고 있는! 한 가족이 하나의 푯대를 향한 동지가 되기는 정말 험난하고 어려운 일인 것을 요즘 실전으로 깨닫네요!
[김용호] [오후 12:53] 반가운 소식이군요. 출발을 했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진도는 평생 조금씩 나가는 거지요.
이성적 변화 - 지적으로 동의하게 됨
감성적 변화 - 상사병에 걸림
의지적 변화 - 별을 따러 다님
세 과정 모두가 기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 같이 인간의 본능이 목숨을 걸고 저항하는 일이니까요.
그리스도의 제자됨은 위 지정의의 변화 중 어떤 것에서 검증되어야 할까요. 마지막 의지적 변화, 즉 그리스도의 신실함(피스티스)으로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으로 최종 검증되어야 합니다. 하늘에서 별을 따서 그 별을 필요로 하는 공동체의 지체의 손에 쥐어주는 것으로 제자됨이 검증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마음이 중요하다고 하고 “머리에서 가슴으로~”를 외치는 설교자들도 많지만 성경은 마지막 단계인 행위로 검증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약 2:17-18)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제자들에게 성령의 은사를 주시는 이유도 인간이 딸 수 없는 하늘의 별을 딸 수 있게 해주기 위함입니다. 그 별을 필요로 하는 지체에게 가져다줄 수 있게 만드시는 성령의 역사지요.
그리스도의 마음을 받고도 몸이 따르지 않아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된다면 이는 비극입니다. 본인을 위해서도 안타까운 일이고 공동체를 위해서도 안타까운 일이고 이 모든 일을 위해 십자가에서 몸이 찟겨 죽으신 예수님을 위해서는 참극이 되는 것이지요.
여기서 자신 있는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다만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워 이기는 우리로 만드시고야 말 것이라는 소망을 우리가 굳게 붙들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실함과 성령의 은사까지 우리에게 주시마고 약속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더욱 간절히 회개하며 간구합시다~!!
성령의 열매와 성령의 은사에 중복되는 항목이 딱 하나 있지요. 바로 피스티스입니다. 성령의 열매에서는 충성으로, 성령의 은사에서는 믿음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스티스, 즉 신실함이 우리의 몸까지 움직여 최종적으로 실제로 열매를 맺게 하는 참으로 중요한 항목이기에 양 쪽에 중복되게 들어간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해봅니다.
(이렇게 중요한 그리스도의 피스티스를 인간의 공포와 탐욕에서 나오는 얄팍한 종교적 신념으로 이해한 어거스틴, 번역까지 그렇게 해버린 루터, 그 두 사람을 열심히 추종하는 서구 기독교....)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산에 올라가 따게 되는 별은 무수히 종류가 많지만 세 범주로 분류됩니다. 공동체 안으로 가져오는 별은 양육에 쓰이는 별과 구제에 쓰이는 별의 두 가지이고 세상으로 가져가는 별은 전도에 쓰이는 별입니다.
[연동흠] [오후 5:26] 전도사님께서 전해주시는 오늘 주님의 뜻과 방향에 반성하게 됩니다. 양육, 구제, 전도의 별! 어느 것 하나 제대
로 하고 있지 않은 제 모습에 저 스스로 반성하게 됩니다. 직장을 옮기면서 얻은 이번 휴식 기간을 주님께서 오늘 전도사님께서 전달해주신 세 가지 별을 되새기며 행하라는 명령과 준비의 시간을 주신 것이 아닌가하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김용호] [오후 5:37] 열심히 별을 따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이 장차 별을 잘 따는 자가 되기 위해 철저히 준비하는 것입니
다. 형제님은 별을 잘 따기 위한 준비과정, 훈련 과정에 지금 있다고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연동흠] [오후 5:39] 예. 오늘 엄 숙자매도 직장에서 엄청난 당짓기 공격을 받아서 무척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겸허히 받아들이고 순응하고 올바른 판단과 소 쿨을 유지하고 있는 점!
[김용호] [오후 5:42] 오~ 하나님께서 예비부부를 동시에 훈련시키시나봅니다.^^
[연동흠] [오후 5:43] 예. 하하하! 이미 올해 5월 9일에 큰 홍역을 치루어 저희 둘이 더 돈독해 졌는지도!
[김용호] [오후 5:43] 인간이란 존재에 치를 떨게 되어야 하지요. 미련조차 없어질 때까지요. 물론 자신을 포함해서입니다.
1. 자신을 포함한 인간 존재에 치를 떨고
2. 인간들이 개발한 생존과 번영의 방법론의 허무함에 치를 떨고
3. 인간이 가진 온갖 고결하고 숭고한 꿈의 어리석음과 교활함에 치를 떨게 되어야 하지요.
성숙한 그리스도의 제자는 열심히 별을 따오는 자이고 어린 그리스도의 제자는 자신도 별을 잘 따오게 되는 날을 소망하며 열심히 준비하는 자입니다. 어떤 상황도 그와 연결해 생각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다는 증거지요.
[연동흠] [오후 6:00] 예. 군에 있을 때 항상 앞서가는 동료가 있었습니다. 군대라는 것만 보고 살 때는 그 친구에 대한 시기 질투에
고통스러웠는데 지금은 그 친구가 가엽게 보입니다.
[김용호] [오후 6:03] 그렇습니다. 결말도 뻔하고 그 과정도 뻔한 거지요. 허무한 종착점을 향해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기어가는 삶입
니다.
[연동흠] [오후 6:04] 그 당시에는 정적, 애증, 경쟁... 그 친구를 능가하는 군인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소대원들까지 경쟁에 몰아넣은!
[김용호] [오후 6:06] 지옥이지요.
[연동흠] [오후 6:07]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한심했던 것은 그 친구가 보직을 변경하는 바람에 다음 보직을 제가 받아서 육체적 정
신적으로 힘들어 그 친구를 원망한 것!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 당시에는 정말 증오가 불타올랐습니다.
[김용호] [오후 6:31] 사람들은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자신에게 돌아올 피해 때문에 근심 걱정하거나 분노하게 되지만 그리스도의 제
자들은 그 일로 인해 어떤 별을 따게 될지 흥미진진해 하게 됩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자이지요.
혹자는 그런 우리들에게 죽음이 코앞에 와도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지 두고 보자고 하겠지만 죽으면 주님 품이지요, 뭐,^^ 나에게 주신 사명이 여기까지구나~ 하면서 잠들면 되지요. 깨어나면 주님 품일 테니까요.^^
오랜만에 동흠 형제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되어 참 기쁩니다. 이번 휴식 기간을 귀하게 사용하시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동흠 형제님 화이팅~!!
[연동흠] [오후 6:51] 전도사님 감사합니다! 마음이 편하다는 점과 엄 숙- 새로운 동지가 생긴 일을 주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