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내용은 보도된 뉴스를 바탕으로 각색된 추리소설입니다.
2단지 관리사무소에 신고가 들어온 것은 오전 아홉 시였다. 풀밭 네모벽 근처에서 누군가 고양이 먹이통을 훼손하고 사료를 흩뿌려 놓았다는 내용이었다. 사소한 사건이었지만, 강민준은 신고서를 받아 들고 묘하게 마음이 끌렸다. 현장에 도착하니 갈흰냥이 세 마리가 아무 일 없다는 듯 담벼락 모서리마다 늘어져 잠들어 있었고, 네 번째 고양이만이 흩어진 사료 더미 옆에 앉아 앞발을 슬쩍 들어 올리고 있었다. 마치 "이건 내가 아니다"라고 항변하는 몸짓 같았다.
"동물 학대 사건 담당하러 강력계에서 여기까지 나오신 거예요?" 이수연이 커피를 건네며 물었다.
"학대는 아니야. 그냥… 이 동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요즘 죄다 심상치가 않아서." 민준은 사료가 흩어진 방향을 눈으로 좇았다. 바람이 분 흔적치고는 너무 규칙적이었다.
같은 날 오후,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사건 파일을 마주하고 있었다. 지역구 사무실에 접수된 협박성 메일 사건이었다. 발신인은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 법안을 강하게 비판해 온 한 무소속 의원의 보좌관이었다. 메일에는 "당신이 예전에 파헤쳤어야 할 일을 지금 와서 딴소리한다"는 식의 원색적인 비난이 담겨 있었고, 그 배경에는 오래전 탁자 위 태블릿 PC를 둘러싼 조작 의혹과 한 술자리를 둘러싼 뒷거래 소문이 다시 거론되고 있었다.
"결국 다 옛날 얘기예요." 수연이 파일을 넘기며 말했다. "누가 조작했는지, 누가 봐줬는지, 아무도 결론을 안 냈으니까 지금도 이렇게 튀어나오는 거죠."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늘 마주치는 사건들의 패턴이었다. 범인 한 명을 잡아넣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애초에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구조가 반복해서 문제를 토해내는 것. 협박 메일을 보낸 보좌관 개인을 처벌한다 해도, 그 뒤에 쌓인 해묵은 의혹은 그대로 남을 터였다.
수사는 뜻밖의 곳에서 갈래를 뻗었다. 협박 메일의 발신 IP를 추적하던 중, 민준과 수연은 그 근방 카페에서 낯선 인물과 마주쳤다. 이번 주 갓 부임했다는 신임 외교관이었다. 그는 정장 차림 그대로 커피 한 잔을 사 들고 나오는 길이었고, "이 땅에 다시 섰습니다"라는 말로 인사를 건넨 그 인물이 맞았다. 사건과는 무관해 보였지만, 그가 우연히 협박 메일 발신 시각에 같은 건물 와이파이를 이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
"이 사람 용의자예요?" 수연이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아니." 민준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같은 공간을 지나갔을 뿐이야. 하지만 이게 재밌는 지점이지. 소란스러운 사건 한복판에도,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은 그저 자기 할 일을 하며 지나간다는 거."
결국 사흘 뒤, 사건은 예상치 못한 결말로 향했다. 사료를 흩뜨린 것도, 협박 메일을 보낸 것도 특정한 악인의 소행이 아니었다. 사료통은 낡은 잠금장치가 오래전부터 헐거워져 바람에도 쉽게 열리는 구조였고, 협박 메일은 익명 게시판의 오래된 글을 복사해 붙여넣은 것에 불과해 실제 위해로 이어지지 않았다. 민준과 수연은 보고서에 이렇게 적었다.
"범인은 없다. 다만 오랫동안 방치된 허술함이 있을 뿐이다."
관리사무소는 잠금장치를 교체했고, 지역구 사무실은 메일 필터링 시스템을 손봤다. 하지만 민준은 알고 있었다. 진짜 문제, 그러니까 태블릿 조작이든 검찰 수사권이든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채 넘어간 오래된 의혹들은 이번에도 손대지 못한 채 남아 있으리라는 것을.
그날 저녁, 민준은 다시 담벼락 앞을 지나쳤다. 세 마리는 여전히 모서리마다 잠들어 있었고, 네 번째는 이제 사료통 옆에 앉아 평온하게 볕을 쬐고 있었다. 참새 몇 마리가 그 위를 스치듯 날아갔다.
"고양이들한테는 알리바이 같은 거 필요 없겠죠." 수연이 옆에서 중얼거렸다.
"필요 없지." 민준이 담벼락을 올려다보며 답했다. "누가 사료통을 열었는지 저것들은 신경도 안 써. 그냥 볕 좋은 자리에 눕는 것뿐이야."
그는 수첩을 덮었다. 사건은 종결되었지만, 그가 정말로 쫓고 있던 것 —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 그 오래된 헐거움 — 은 이번에도 다음 사건으로 넘어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