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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이 박박 기던 무명검사 때, 조은석은 펄펄 날던 스타였다
카드 발행 일시2025.07.02
3개의 칼, 특검 150일
특검의 150일-윤석열과 조은석①
2003년 여름 대검찰청 후문 근처 한정식집에 성장(盛裝)한 중장년 사내들이 모여 앉았다. 하지만 상석을 차지한 건
남자가 아니었다. 그 자리의 유일한 여성, 강금실이었다. 그 판사 및 진보 변호사 출신이자 40대의 여성 최초 법무부
장관을 중심으로 두 개의 열이 구성됐다.
한쪽에는 강금실을 보좌하던 법무부 간부들이 자리했다. 정상명(전 검찰총장) 법무부 차관, 홍석조(현 BGF그룹 회장)
검찰국장, 최재경(현 삼성 고문) 검찰 2과장 등이 그 면면이었다. 맞은편에는 대검찰청의 고위 간부들이 좌정해 있었다.
안대희(전 대법관) 중수부장, 문효남(전 부산고검장) 중수부 수사기획관, 중수 1~3과장인 남기춘(전 서울서부지검장)·
유재만(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김수남(전 검찰총장)이었다.
그리고 또 한명의 검사가 말석에 있었다. 그 자리의 유일한 부부장 검사인 그는 오
지 말아야 할 곳에 온 것인양 좌불안석이었다.
2004년 1월 법무부 시무식에서 만난 강금실 법무부 장관(오른쪽)과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 중앙포토
일견 화기애애해 보인 그 자리에는 보이지 않는 칼이 종횡하고 있었다. 욱일승천의 기세로 막강한 힘을 과시하던 새
권력을 감히 검찰이 건드린 뒤끝이어서다. 검찰은 그 직전 ‘나라종금 퇴출 저지 로비 의혹 사건’ 재수사에서 겁 없이 새
정권의 실세들을 잡아넣었다.
복검(腹劍)일지언정 구밀(口蜜)했던 그 자리가 끝난 뒤 강금실은 대검 측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했다. 차례가
말석의 그 부부장 검사에게 이르렀을 때 강금실은 그의 손을 잡은 채 옅은 미소와 함께 말을 꺼냈다.
그 유명하신 조은석 검사님이시군요.
훗날 내란 특별검사팀의 수장으로 임명되는 그, 조은석은 몸 둘 바를 모른 채 그 유골(有骨)의 덕담을 받아안아야 했다.
대검 대변인 시절의 조은석 특검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중앙포토
그에게는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었다. 나라종금 사건 주임검사로 맹활약하면서 노무현 정권 실세들을 속속
구속하거나 재판에 넘긴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그렇게 대검 중수부에서 벼린 칼을 휘두르고 있을 무렵 중수부에 한 후배 검사가 전입해 왔다. 광주지검
특수부에서 넘어온 윤석열 검사였다. 먼 훗날 특별검사와 핵심 피의자라는 기구한 관계로 다시 만나게 되는 두
사람의 운명적 조우 순간이었다.
내란 특검팀에 출석한 윤석열 전 대통령이 6월 29일 새벽 조사를 마친 뒤 귀가하고 있다. 한때 특수부 선배 검사였고,
한때 소원한 사이였던 조은석 특검은 창밖으로 그의 출석 및 귀가 장면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뉴스1
들어가며
올 것이 왔습니다. 비상계엄 이후 7개월여 만에,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두 달여 만에 3대 특별검사팀이 일제히
돛을 올리고 출항을 시작했습니다. 이에 따라 윤 전 대통령은 물론이고 김건희 여사까지 특검의 칼끝을 정면으로
받아야 할 처지가 됐습니다.
또한 해소되지 않은 의문, 즉 국무위원들이나 대통령실 관계자들의 계엄 사전 인지 또는 공모 여부, 김 여사를 둘러싸고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각종 비리 의혹의 실체, 젊은 해병 죽음 이후 벌어진 권력의 이해하지 못할 행태들이 낱낱이 밝혀질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더중앙플러스는 올 하반기 최대 이슈인 특별검사팀의 일거수일투족을 더중앙플러스만의 시각과 형식으로 전해
드립니다. 기존 매체들이 다루지 않는 사안의 앞과 뒤, 그리고 속내를 짚어보면서 부르는 자와 불려오는 자들의
면면을 생생하고도 심층적으로 보도할 예정입니다.
수사력·친화력 양수겸장…조은석, ‘스타 검사’로 발돋움하다
조은석은 날카로운 칼이었다.
전남 장성 출신으로 광주 광덕고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그는 1987년 제29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 19기로
연수원을 수료했다. 이후 군법무관으로 3년의 병역을 마친 뒤 1993년 수원지검 성남지청에서 검사로 임관했다.
“쓸 만한 검사”라는 소문이 돌면서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에 입성한 건 1997년이었다. 강력부에서 깡패들을
잡으며 뛰어난 수사력을 발휘한 그는 뒤이어 모든 검사의 선망의 대상이던 특수1부에 합류했다.
그의 이름이 언론 지상에 본격적으로 회자한 건 특수1부에서 맡은 경성 비리 재수사였다. 전임 수사팀이 외압으로
마무리하지 못한 사건을 넘겨받은 그는 주임검사로 활약하면서 특유의 저돌적인 수사력을 발휘해 정·관계 거물들을
무더기로 잡아냈다.
검찰은 ‘믿을맨’이라는 사실이 입증된 그에게 곧이어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이라는 거물을 맡겼다. 재벌 총수의
배임과 재산 국외 도피 등 절대 만만치 않은 혐의들을 그는 제대로 입증해 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최순영의 입에서
정·관계 로비 자백을 받아내는 개가를 올리기까지 했다.
구속영장이 발부된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이 구치소로 이동하고 있다. 중앙포토
그의 입을 연 데는 수사력뿐만 아니라 특유의 친화력도 한몫 단단히 했다. 최순영은 조은석에게 수사를 받다가 그만
그에게 동화됐고 오래지 않아 ‘절친’이 됐다. 다음은 이와 관련된 당시 언론 기사 중 한 대목이다.
검찰은 최순영 회장의 이런 심경 변화에 대해 ‘검사와 피의자의 마음이 통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단순히
친해진다는 차원이 아니라 서로 흉금 없이 대화할 정도로 믿는 사이가 됐다는 것. 최 회장을 직접 수사한 서울지검
특수1부 조은석 검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점에서 최 회장은 여타 기업인과 달랐다”며 “최 회장 외화 밀반출 사건은
그가 부하 직원을 잘못 만났기 때문에 빚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국민일보 1999년 5월 12일자)
그건 오보가 아니었다.
조은석 검사 불러주세요.
네?
우리 남편 수사한 그분요. 그 검사한테 조사받고 싶어요.
최순영의 부인 이형자가 검찰에 출석하자마자 요구한 건 조은석이었다. 검찰은 난감했다. 이형자는 이른바 ‘옷 로비
사건’과 관련해 조사받기 위해 출석한 참이었다. 옷 로비 사건은 최순영이 실력자들의 부인에게 고급 옷을 선물하면서
구명 로비를 했다는 의혹에서 출발했다. 최순영에서 출발한 사건이긴 했지만 수사 주체는 달랐다.
1999년 8월 국회 법사위의 옷 로비 의혹 청문회에 출석한 이형자(왼쪽 둘째)씨가 정일순(맨 왼쪽)씨의 증언을 듣고
있다. 중앙포토
조은석이 담당했던 최순영 ‘본안’은 특수1부, 거기서 파생된 옷 로비 의혹은 특수2부의 몫이었다. 이형자는 왜 옆 부서
특수1부 검사인 조은석을 요구했을까. 다음은 관련 내용을 다룬 당시 중앙일보 기사다.
조은석 검사는 지난 2월 1년 가까이 지루한 공방을 거듭했던 최순영 회장 사건을 구속으로 마무리한 주인공. 어떻게
보면 ‘원수’라고 생각될 조 검사를 이씨가 지목한 것은 최 회장과 조 검사 간에 맺어진 인간적 유대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검찰 주변의 분석이다. 조 검사와 최 회장이 검사·피고인 신분을 넘어 인간적으로 가깝게 지낸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 (중략) 조 검사는 지난 설날에도 집 대신 검찰청사에서 최 회장, 이씨 등과 함께 이씨가 싸 온 떡국을
먹으며 담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중앙일보 1999년 6월 2일자)
조은석 활약상 지켜봐야 했던 무명 검사 윤석열
검찰은 난감했지만 원활한 수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조은석을 특수2부로 특별 차출해 ‘참관인’ 자격으로 이형자의
조사에 입회시켰다. 특수2부 검사들은 심기가 편할 수 없었다. 씁쓸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봐야 했던 특수2부 검사
중에 윤석열이 있었다. 이때가 적어도 공적인 자리에서 두 사람이 처음 접점을 가졌던 때다.
이쯤에서 조은석과 윤석열의 검사 이력을 비교해 보자. 검사 생활 초기만 해도 조은석과 윤석열의 격차는 컸다.
조은석이 ‘스타 검사’였던 데 반해 윤석열은 무명의 존재에 불과했다.
조은석이 사시 합격은 4년이 빨랐지만, 사실 두 사람의 검사 경력은 1년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윤석열이 군 면제라
연수원 수료 직후인 1994년 곧바로 임관했기 때문이다. 1993년 임관한 조은석은 일찌감치 낭중지추로 자리매김한
덕에 세 번째 임지로 서울지검에 입성했고 중앙 무대에서도 맹활약했다, 그리하여 윤석열이 검사 생활 5년 만인
1999년 네 번째 임지로 서울지검에 발령받으면서 천신만고 끝에 특수2부에 입성했을 때 조은석은 이미 펄펄 날고
있었다. 어쩌면 윤석열의 몫이었을지도 모를 이형자 조사까지 본의 아니게 빼앗아갈 정도였다.
그 이후에도 조은석은 계속 잘나갔다. 이형자 조사로부터 불과 한 달 뒤 이른바 조폐공사 파업 유도 의혹 사건
특별수사본부가 발족했을 때도 발탁됐다. 그 사건의 진원지는 진형구 대검 공안부장(검사장)이었다. 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 무용담처럼 “조폐공사 파업은 사실 검찰이 유도했던 것”이라고 실언한 게 화근이었다.
조은석은 특수본부에서 진 검사장을 소환조사한 뒤 구속기소한 주역이었다. 진 검사장은 잘 알려져 있듯 훗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의 장인이 된다. 조은석이 한동훈의 장인을 구속했다는 이야기가 나온 건 이 때문이다.
국회 조폐공사 파업 유도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진형구 전 대검 공안부장. 중앙포토
이후 수원지검 특수부 등에서 벤처 신화 이민화, 김방림 의원 등을 구속하면서 녹슬지 않은 실력을 과시하던
조은석은 노무현 정권이 출범하면서 수사 이력의 절정기를 구가하게 된다.
정권과 맞짱 뜬 안대희, 조은석을 선봉에 세우다
대검 중수부에 불려와 나라종금 사건 주임검사를 맡게 된 것이다. 의혹의 대강은 김호준 전 보성그룹 회장과 안상태
전 나라종금 사장이 1999년과 2000년 초 나라종금 퇴출 저지를 위해 정·관계에 로비 자금을 뿌렸다는 것이었다.
김대중 정권 시절 이미 어느 정도 수사가 진척돼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사법처리를 하지 않아 부실수사 논란이 일던
사안이었다.
당시 검찰은 노무현 대통령의 비토로 김각영 검찰총장이 물러나고 송광수 총장이 새로 취임한 직후였다. 다시 말해
나라종금 사건은 노무현 정권 검찰의 스탠스와 중립 의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시금석과도 같은 사안이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검찰의 가장 큰 업적으로 칭송받는 불법 대선자금 수사의 시발점이었다. 아무에게나 수사를 맡길 수는
없었다. 그 중책을 조은석이 맡았다.
당시 대검 중수부장이던 안대희는 3년 전 더중앙플러스 ‘특수부 비망록’팀과의 인터뷰에서 조은석 발탁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송광수 총장이 취임하자마자 ‘털고 가야 한다’며 나라종금 사건을 재검토하라고 했어. 옛날 진술이 몇 개 있었는데
흐지부지된 사안이지. 그런데 그 사건과 관련해 안희정씨가 돈을 받았다는 보도가 나왔어. 그래서 강력한 검사들을
데려왔지. 김수남 중수3과장과 조은석 검사였어. 수원지검 특수부에 근무하던 조 검사는 최재경 검사가 추천했는데
난관 돌파를 많이 했어. 특수부 검사는 창의력과 돌파력을 갖춰야 하거든. 조 검사가 그랬어.
서슬 퍼런 정권 초기였지만 조은석은 수뇌부의 기대대로 난관을 잇따라 돌파했다. 한광옥·염동연 등 참여정부 실세들을
연달아 구속하면서 칼을 예열한 그의 다음 차례는 무려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좌희정, 우광재’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왼쪽)씨와 염동연씨가 나라종금 퇴출 저지 로비 의혹과 관련해 2003년 4월 28일
검찰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희정이 선순위였다. 그와 대면한 조은석은 그가 나라종금에서 2억원, 노무현과 친분이 두터운 이상호
우리들병원장이 대주주인 창투사에서 1억900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을 밝혀내고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이 영장을 기각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조은석은 어쩔 수 없이 그를 불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안희정은 몇 달 뒤 또다시 조은석과 대면해야 했다. 이번에는 썬앤문 사건이었다. 썬앤문그룹이 노무현 캠프에
거액을 제공하면서 반대급부로 국세청에 감세 청탁을 했다는 게 핵심이었다. 이 사건 역시 서울중앙지검 조사부의
1차 수사가 부실로 판명 나면서 재수사가 이뤄졌다. 주임검사는 역시 조은석이었다.
그는 이광재부터 공략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썬앤문의 돈 1억원을 받아 안희정에게 넘겨줬다”는 자백을 받아낸 뒤
안희정을 재차 겨냥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판이 커졌다. 서울지검 형사9부의 SK 분식회계 사건 때 포착된 불법
대선자금 의혹이 중수부로 넘어온 게 그때였다. 안희정은 노무현 캠프의 자금 조달책이었고 그를 둘러싼 불법 자금
거래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검찰은 대대적으로 전국의 검사들을 중수부에 불러모아 불법 대선자금 수사 채비를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광주지검
특수부의 윤석열 검사가 발탁돼 중수부에 합류한 게 그때였다. 1999년 서울지검 특수부에 이어 두 번째로 조은석과
조우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조은석의 활약상을 지켜보기만 한 게 아니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안희정을
조준하게 된다.(계속)
박진석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4817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