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별을 찾아서
影園 김인희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토요일 오전이다. 침대에서 내려오지 않고 늦장을 부리다가 갑자기 서두르기 시작했다. 새벽녘에 잠든 소녀를 차마 깨울 수 없어서 가만가만히 서재에 들어와서 학과 공부를 했다. 그토록 고대했던 공부를 시작했건만 코로나-19의 얄궂은 방해로 학교에 가지 않고 비대면 수업 중이다. 고작 노트북을 열고 PC 화면으로 스승님을 만나는 수업이 못내 불만이다. 폭발 일보직전이다.
동영상 강의 삼매경에 들었다가 소녀에게 특별한 이벤트를 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우선 소음으로 간접적이나마 잠을 깨우려고 거실 창문을 활짝 열어 새로운 공기를 맞이했다. 머리를 감고 드라이어로 시끄럽게 머리를 말리고 음악을 크게 틀었다. 한참 ‘옷소매 붉은 끝동’ 드라마에 빠졌던 터라 드라마 배경음악으로 잠자는 공주를 깨울 참이었다.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눈을 비비면서 소녀가 내 품으로 안겨온다. 새벽녘에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고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가슴에 안고 토닥토닥 등을 두드리면서 비가 내리고 있는 날에 시외로 드라이브 가면 어떨까 달콤하게 유혹했더니 금세 환한 미소를 짓는다.
예쁜 소녀가 외출 준비를 하는 동안 1차시 동영상 강의를 마쳤다. 내산면 미암사 근처에 있는 소담 돈가스에 전화해서 점심식사를 예약했다. 점심식사 시간 후에 외산을 경유하여 청양군 남양을 돌아서 부여로 돌아올 참이었다. 어림잡아 세 시간 이상의 데이트 코스다.
모녀는 예약시간 30분 전에 집에서 출발했다. 소녀는 아직 잠이 덜 깨었을 텐데 활짝 웃는 얼굴이다. 자동차가 출발하면서 소녀는 블루투스를 연결하여 클래식 음악을 잔잔하게 흐르게 한다. 소녀는 차창을 내려서 환호성을 지르고 물개 박수를 치면서 좋다고 난리다. 내가 계획한 일정을 브리핑하니 행복하다고 하면서 콧노래를 부른다.
차창으로 스쳐가는 먼 산이 가깝게 다가온다. 가로수 나목이 가지마다 방울방울 물방울이 맺혀있다. 궁남지를 스쳐갈 때 버드나무 실가지마다 연초록의 작은 잎을 꽃처럼 피워낸 모습을 발견했다. 낮은 산자락 양지쪽에 한 무리의 노란색 개나리를 보았다. 논두렁마다 초록색 실루엣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산비탈 밭에는 부지런한 농부 부부가 흙을 일구고 있었다. 모녀는 잠시 침묵하고 봄의 소묘를 감상했다.
소담 돈가스는 작은 시골집을 리모델링한 음식점이다. 공간이 협소하다.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할 때가 종종 있었다. 우리는 예약된 자리에 앉아서 치즈 돈가스와 피자를 맛있게 먹었다. 작은 공간을 예쁘게 꾸며놓은 사장님의 솜씨를 감상하면서 속닥속닥 대화를 나누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미리 예약하지 않은 손님들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모녀는 음료와 커피를 차 안에서 마시자고 눈짓으로 대화한 후 일찍 자리를 비웠다. 자동차 안에서 커피와 음료를 마신 후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자동차 안에는 클래식 음악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고 모녀 수다가 한창이다.
“엄마, 고마워요. 요즘 책상에 앉아 옴짝달싹 않고 공부하는 것이 따분했어요. 한 번쯤 드라이브를 부탁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엄마가 너무 바쁘잖아요. 그래서 이래저래 눈치를 보고 있었어요. 엄마가 아침에 소담 돈가스에 가자고 했을 때 내 마음을 들킨 줄 알고 깜짝 놀랐어요. 사실은 어제 공부하다가 소담 돈가스 먹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랬구나. 우리는 텔레파시가 통하는 모녀구나. 엄마가 바빠서 미안해. 평생교육사 공부와 대학원 박사과정을 병행하느라 정신없이 바쁘구나. 여기저기 문학회 일과 행사를 챙기는 것도 긴장해야 해. 그러나 늘 너와 우리 가족이 우선이야. 오늘도 다른 일정 모두 미루고 너를 챙기는 거야.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주면 고맙겠는데.”
“알지요. 엄마가 늘 나를 우선으로 여기는 것에 감사하고 있어요. 엄마, 나는 나중에 정말 엄마에게 잘할 거예요. 엄마가 나에게 해준 것처럼 엄마에게 그대로 돌려줄 거예요. 엄마가 늘 그랬잖아요. 사람과 사람 사이 Give and Take라고. 사랑을 주면 사랑을 받고 은혜를 받으면 은혜를 돌려주는 거라고 했어요. 엄마는 내가 가장 힘든 터널을 지나는 동안 가장 밝은 미소를 주었고 마르지 않는 옹달샘 같은 사랑을 주었어요. 내가 그 은혜를 어떻게 잊어요. 잘할게요.”
“엄마가 새벽에 TV를 켰다가 이어령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어. 선생님은 학생 같은 젊은이들에게 말씀하셨어. 사람이 태어날 때 혼자 울고 주변 모든 사람들이 웃고 죽을 때 본인은 웃고 주변 사람들이 울어주는 삶을 살라고 하시더라.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촬영한 작품이라는 자막이 있는 영상 안에서 선생님께서는 하얀 순백의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손을 흔들면서 잘 있으라고 인사하시더라. 엄마는 TV를 보면서 울었단다.”
“아! 알겠어요. 엄마가 무슨 말씀을 하고 싶은지. 엄마는 이어령 선생님처럼 훌륭한 어른이 되고 싶은 거예요. 그 선생님처럼 젊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후배들이 우리나라의 일꾼이 되도록 이끌어 주고 싶은 꿈을 간직했을 거예요. 엄마는 이미 그런 경지에 다다르고 있어요. 지금까지 열심히 공부하면서 자신을 가을 서리처럼 채찍질하고 있잖아요. 저는 엄마가 자랑스러워요. 저도 훌륭한 엄마에게 어울리는 훌륭한 딸이 될 거예요. 엄마 힘내세요.”
자동차가 남양면을 지나갈 때 불현듯이 모교 동영 중학교에 가고 싶었다. 엄마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소녀는 카메라 우먼을 자처했다. 나를 교문 앞에 세우고 하나, 둘, 셋 찰칵. 다시 나를 운동장에 세우고 학교 건물과 나를 카메라에 담았다.
나는 잠시 중학생 소녀가 되었다. 중학교 정문을 향하여 실개천 위에 놓여있는 다리를 건너는 찰나의 시간이 37년 전 중학생이었던 소녀의 시절로 가는 타임머신에 탑승하는 시간이 될 줄이야. 다리를 건너 교문에 이르렀을 때 열다섯 살 소녀가 되어 나의 문학의 하늘에 뜬 최초의 별을 찾고 있었다.
국어 선생님!
나는 선도부로서 교문 앞의 다리 끝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을 맞이하여 복장과 소지품을 점검하곤 했다. 그때마다 출근하는 선생님을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행운은 내 차지였다. 얼음조각처럼 날카로운 카리스마의 소유자 국어 선생님. 그러나 내 앞에서는 언제나 환하게 웃는 해바라기였다.
교무실 복도에는 ‘동영의 꽃들’이라는 보드가 걸려 있었다. 1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성적과 2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성적이 전교 1등부터 10등까지 등수와 사진과 이름이 붙어 있었다. 그때 상위권에서 내려오지 않으려고 열심히 공부했다. 내가 교무실 복도를 지나칠 때 국어 선생님께서 내 이름을 부르시고 잘했다고 칭찬해 주셨다. 그때 선생님께서 주신 칭찬은 마법과 같은 효력이 있었다. 나를 맨 상위권으로 올려놓았다.
운동장에 서서 한참 동안 중학생 시절로 돌아간 듯 황홀했다. 나는 교무실 쪽을 바라보고 서서 국어 선생님을 생각하고 공부했던 교실 쪽을 바라보았다. 내가 중학생이었던 37년 전의 단층 교실은 없어지고 새로운 2층 건물이 낯설게 서있었다.
나는 비로소 지천명에 이른 현실의 나를 발견했다. 국어 선생님께서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 한 번쯤 나를 생각하셨을까. 나는 이토록 선생님을 향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그렁그렁 눈물을 달고 있는데...
선생님께서는 내 문학의 하늘에 뜬 최초의 별이다. 나를 문학으로 가는 길에 들어설 수 있도록 길안내를 하셨다. 선생님께서 소나기의 두 주인공의 순수한 마음을 열어 보여주었고, 황진이의 詩에 담긴 절절한 그리움을 해석해 주셨다. 선생님께서 주신 마지막 당부 수불석권(手不釋卷)의 메시지는 지금의 나를 만든 일등공신이다.
비가 내리는 운동장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소녀가 바람이 차갑다고 성화다. 부여로 돌아오는 자동차 안에서 소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잠시나마 중학교 시절로 돌아간 듯 행복한 시간이었다. 자동차 안에는 클래식 음악의 선율을 타고 열다섯 살 소녀의 사랑이야기가 흐르고 있었다. - 끝 -
중학교 앞에 실개천이 흐르고 다리 건너 학교로 갔다.
다리 이름이 동영교였다.
동영교를 건너 등교하던 소녀가 있었다
정문 앞에서 선생님을 맞이하던 중학생 소녀가 있었다.
커다란 학교 운동장보다 더 큰 꿈을 꾸었던 소녀가 있었다
동영 중학교에 나의 최초의 별이 있었다
첫댓글 최초의 별이 큰별로 거듭나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감사합니다. 교수님.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
저도 누군가의 별이 될 수 있도록. . . .
넵 이미 잘하고 계십니다
나도 최초의 별이 있었답니다.
고교시절 국어선생님
빼앗긴 땅에서 태어나 가난을 즐기며 살았기에
애틋한 정서적 친근함이 없이 키운 자식들이
거의 60에 이르는 그들을 바라보며 미안한 생각이 자주 들더군요.
지온님
따님에게는 하루 멋있는 추억의 날로 각인될 것입니다.
잘 하셨습니다.
네, 선생님.
선생님께도 최초의 별이 있었네요.
선생님께서 지내온 시절을 어찌 감히 헤아리겠나이까.
제가 새삼 호강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