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계불학(Systematic Buddohology)
부제 : 신념체계로서의 불교학 -김성철 著 -
◆ 근대적 불교학의 형성과 그 문제점(2)
(p18~p23에서 요약 발췌)
서구적 불교학 방법론을 직수입하여 연구활동을 해 온 일본학자들의 견해 검토
♣타무라 요시로(田村芳朗, 1921~1989).......현대불교학은 불교에 대한 사상적, 사상사적 연구가 결여되어 있다.
<<불교에 대한 현대의 연구방법은 전적으로 언어학적, 문헌학적인 것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사실에 대한 역사학적 연구이며, 그런 연구방법들은 근대의 객관적 과학적 실증적 정신의 표출이며 특히 원전을 통한 연구는 근대 유럽 학자에 의해서 지지되던 것으로 어쨌든 근대적 불교연구로서 그 공적은 지대하다. 한편 망실된 연구방법이 있다.
그것은 불교에 대한 사상적 사상사적 연구이다. 망실된 원인으로는 일본의 불교학자들이 유럽 불교학자의 연구방법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점을 들 수 있겠다. 유럽의 학자는 온 정성을 기울여 불교를 사상사적으로 연구할 필요는 없었다. 그 이유는 기독교가 배경에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원전 사본의 거의 전부가 유럽학자의 손에 들어가 있었기에 그들은 불전에 대한 언어학적 문헌학적 연구에 몰두햇던 것이다.>>......중략....<<전통적인 교학을 현대에 재생시켜 우리들의 삶 속에서 유용하게 하기 위해서는 전통적 교학을 불교사상사 위에 올려 놓은 후 어떤 점이 문제가 되었고 논의 되었는지 허심탄회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타무라요시로의 논문에서 인용
♣히라카와아키라(平川彰, 1915~2002).....불교학은 '불교 중에 진리가 담겨 있다는 전제' 위에서 이루어지는 학문활동이라고 규정. 불교학자가 불교에 대해 사상사적으로 연구할 경우 원시불교에서 발달불교까지를 일관하는 불교사의 성립이 가능해야 한다고 말함. 즉,'불교의 진리성'에 대한 믿음과 '모든 불교사상을 일관하는 불교사상사가 성립한다.'라는 믿음 위에서 이루어지는 연구만이 불교학이라고 불릴 수 있다고 주장함. '깨달음을 얻지 못한 일반인'으로서 불교학자의 역할에 한계를 긋고 있다.
<< 불교학자는 불교에는 일반인의 이해를 넘어선 사상을 담고 있다는 점을 용인하면서 교리에 대해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불교에서는 불교에 대한 우리의 앎이 체화되는 단계를 문사수(聞思修) 삼혜로 구분한다. 어떤 수행도 하지 않은 채 단지 경전에 대한 연구를 통해 얻어진 이해가 문혜(聞慧)이며, 선정 중에 마음을 통일한 후 그런 마음으로 교리를 사색함으로써 얻어진 지혜가 사혜(思慧)이고, 사혜를 통한 이해가 완전히 자기의 것으로 된 것이 수혜(修慧)다. 그런데 불교학은 문혜의 단계의 불교이다. 즉, 불교학자는 불교에는 수행을 하지 않은 일반인의 이해를 넘어선 사상을 담고 있다는 점을 용인하면서 교리에 대해 연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문혜의 단계에서 얻어진 지혜는, 아직 목표에 도달하지는 않았어도 올바른 목표를 가리키는 지혜라고 볼 수 있다. 즉,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위치에 있다. 그러나 자기가 이해한 문혜가 과연 궁극의 목표를 가리키는 진리를 담고 있는지는 문제가 된다. 자기의 이성에는 이것에 대한 옳고 그름을 판정하는 힘은 없다고 봐야 한다>.>
........히라카와아키라의 저서에서 인용
히라카와의 논지를 종합하면 불교학자란 문사수 삼혜중 문혜를 제공하는 것을 임무로 삼으며, 그런 문혜는 물론이고 그에 토대를 두고 조직된 교리라고 해도 유일 절대의 것이 될 수 없다는 상대적 입장에서 학문활동을 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히라카와와 같이 불교학을 연구할 경우 현대 불교학의 문제가 모두 해결될 수 있을까???
타무라나 히라카와가 제안하는 불교학이 정립된다고 해도 불교 신앙인의 입장에서 볼 때 현대 불교학에는 무언가가 결렬되어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단적으로 말해, 그것은 현대 불교학의 성과들 중 가장 타당하고 신뢰할 수 있는 내용들을 취합한 후 하나의 통일된 불교신앙 체계로 수렴시키려는 노력일 것이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계속하겠습니다....
_((()))_
첫댓글 우리나라 보다 먼저 근대학문을 수입한 일본의 불교학자들 중에는
불교학 방법론을 고민한 분들이 있었네요.
기독교 신자인 유럽학자가 하는 불교 연구의 한계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김교수님께서는 한 발 더 나아가 불교 신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수미일관한 신앙 체계의 필요성을
역설하시고 당신의 모든 연구를 체계불학에 집중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수님께서 불교공부를 시작하신 동기가 순수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것 같습니다.
다시금 교수님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회원님들 종다리 피해는 없으신지요. 10호 태풍 산산 발생했다고 합니다...모두 무탈하시고 평안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_((()))_
도반님, 잘 읽었습니다.^^
저는 글을 읽고, 다시금 문사수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문사수의 삼혜가 불교학자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관점이라는 것입니다.
문헌연구에서,
문헌에 담긴 진의를 연구하는데로 나아감이 당연한 귀결이고,
문헌에 담긴 진의를 알았으면 실천수행함으로 나아감도 당연한 귀결이라는 생각입니다.
결국 실천수행하기 위해 진의를 알고자 한 것이고,
진의를 알고자하기에 문헌에 대한 정확안 해독이 필요한 것이겠지요.
지금 문헌만 연구함은 그냥 무슨 사물을 연구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으니,
목적은 그만두고 배우려는 마음도 없는 차원이라,
그냥 자연과학적 관점의 사물(문헌이라는 사물)연구라 할 것입니다.
목적이 딴데 있는 연구자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니 진의를 파악할 이유가 전혀 없지요. 이런 이들은 불교학자가 아니라 문헌연구가라 할 것입니다.
다음 진의를 파악하려 함은 두가지 유형의 학자로 나눠진다 할 것입니다.
한 유형은 실천수행하려고 진의를 파악하는 학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목적이 체득에 있기에, 진의를 파악함에 말보다 뜻을 잡으려 합니다.
그러면 말은 저절로 따라오게 됩니다.
바람직한 불교학자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한 유형은 실천수행하려고 하는 학자가 아닙니다.
이런 사람은 목적이 체득에 있지 않기에(신행의 종교인을 염두에 두지 않음), 진의를 파악함에 뜻보다 말에 치중합니다.
그러면 뜻은 저절로 분명해지지 않습니다.
바로 심한 말로 말장난 현학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바람직하지 않은 지양되어야할 불교학자라고 할 것입니다.
지금 일본의 불교학자 두 분을 보면,
두 분 모두 문헌연구에서는 벗어났으나 체득을 전제로 한 불학자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한분은 그저 문헌연구의 비판에 그치고,
한분은 실천할 수 있는 앎에 도달하지 못하여 스스로 정직하게 문혜라 하면서 이게 맞는지 모르겠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체득을 전제로 연구하는 불학자는 실천가능한 앎에 이릅니다.
그리고 해볼 수 있기에 그 진위를 검증할 수 있습니다.
바로 사혜의 불학에 까지 이른 것입니다.
실천 가능한 앎에 이르지 못한다면, 불가능한 일이니 하지 말아야겠지요,
달리말해, 문혜에서 사혜까지 이르는 불학이 가능하지 않으면 하지 말아야겠지요,
하지만 모든 역대의 교학이 실천 가능함을 말해줍니다.
모든 론장이 바로 교학인 것입니다.
학으로 말하면 부파교학 중관학 유식학 여래장불교학 삼론학 천태학 화엄학 정토학 밀교학들은 모두 경과 율 내지 논을 연구하여 이룩된 교학입니다.
모두 실천을 전제로, 실천을 위해 연구한 교학이라 생각합니다.
교수님 말씀대로하면 신앙과 수행을 위해 연구한 교학인 것이지요.
그리고 대표적으로는 교학을 망라하여 이룩한 보리도차제론이 바로 사혜의 교학인 것입니다.
수혜는 담아낼 수 없습니다.
그것은 현장에서 실천하여 체득하는 것이라서 수혜라고는 해도 교학이라 할 수 없습니다.
체득하면 문자로 나타낼 수는 있어도 문자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마치 물맛을 보면, 물맛은 얼마든지 얘기할 수 있어도, 물맛에 대한 얘기는 저절로 사라짐과 같은 것이지요.
또 말이 길어졋네요.^^ 병이라는 생각입니다.
도반님, 태풍이 온다니,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코로나도 그렇고 오시는 도반님들께서도 모두 조심하시고, 보람되고 좋은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_((()))_
청정님의 말씀에 저도 공감합니다.
학자라고 해도 수행을 하고 체득하는 단계로 나가는 분도 있을 수 있고
출가자도 문헌학적 공부를 하는 학승도 있으니까요.
히라카와는 “불교학자가 자신의 연구를 조직하여 절대라고 주장하면 새로운 종학의 탄생이된다고 비판”했다고 했으며,
일본 불교에 정토종 정토진종 조동종 임제종 일련종 등 종파가 많아 새로운 종조의 출현을 경계한 것이고 종학의 가치를 전적으로 부정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문사수에 대한 청정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러나 교수님께서도 불교학 방법론에 해당되는 범위에서만 두 학자를 인용하셨고, 또 제가 요약해서 옮긴 부분이 있어서 제가 옮긴 글만 보고 두 학자를 판단하기는 좀 무리같습니다.
일본인 불교학자로서 일본의 불교적 상황과 일본인의 성향을 염두에두고 불교학 방법론을 제시한 것일 수 있고, 개인적으로는 문사수를 겸한 학자일 수도 있겠습니다.
제가 찾아본 바로는 히라카와아키라는 '계와율' 분야의 저명한 학자이신 것 같습니다.
교수님께서 우리나라에는 체계불학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하신 것을 보아 거의 조계종 단일 종단인 우리나라와 일본은 상황이 좀 다른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일본에서는 최근 종학(일본에서는 종승宗乘이라고 명명했던 것으로 일본 내 다양한 종파에서 불교신행 지침으로 삼아 온 각 종조의 가르침)의 연구자 수가 점차 감소하고 있다고 우려하면서 앞으로 종학은 종조의 저작을 현대인에게 이해되도록 해석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라고 히라카와는 말한다......라는 대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와 일본은 불교적 신행 풍토 등이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학자들이 종학을 연구한다는 소리는 못 들어본 것 같습니다.
청정님께서 좋은 댓글 주셔서, 책을 뒤져 보충 설명 올립니다.
_((()))_
도반님, 그랬군요.^^
제가 그런 상황이나 여건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글만 보고 썼기에, 좋은 학자분을 바람직하지 못한 학자분이라고 매도한 것 같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전부터 느꼈던 부분입니다.
인격적인 측면에서 학자분들을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니고요,
오직 불학자로서의 바람직한 불학자와 바람직하지 못한 불학자를 말한 것입니다.
그래도 좀 지나치긴 했지요.
문혜의 불학자와 문혜에서 나아가 사혜까지 나아간 불학자라고 해야 옳았습니다.
그리고 도반님처럼 보다 더 겸허하게 바라보는 것이 저에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도반님 글을 읽다보니 제가 심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반님, 저를 위한 좋은 지적과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저녁시간 되시고, 오늘도 귀한 하루입니다._((()))_
청정님 일본 학자에 대한 소개는 저도 인터넷에서 찾아 본 것이 전부라서 좀더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분이 가르쳐 주시길 기대해봅니다.^^
청정님께서 문사수 삼혜를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것이 저에게는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나태해질 때 울리는 알람처럼 말이지요.
좋은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저녁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
도반님, 우리가 함께 공부하는 것은 이런 좋은 점이 있습니다.
좋고도 좋습니다.^^_((()))_
@청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