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 1

[융제]

왕건의 어린 시절

고려 태조 왕건은 개성 근처의 예성강 부근에서 태어났습니다.

때는 887년 정월 14일, 동이 틀 무렵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왕융이며, 그 지방의 호족으로 덕망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왕건이 태어나기 한 해 전 일입니다.

왕융이 집터를 닦고 있을 때, 웬 스님이 지나가다가 보고는

"기장 심을 자리에 삼을 심고 있군."

하고 중얼거렸습니다. 왕융은 그 말을 듣고는 이상히 여겼습니다.

왕융은 떠나가는 스님에게 쫓아가서 물어보았습니다.

“스님, 아까 기장 심을 자리에 삼을 심는다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그저 그냥 지껄인 말입니다.”

“스님, 저는 새 집을 지으려고 터를 닦고 있는 중입니다.

집 짓는 일처럼 중요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스님은 왕융에게 바싹 다가서서 소곤거리듯이 말했습니다.

“집터를 좀 널찍하게 닦고, 36채의 큰 집을 지으십시오."

“아니, 그렇게 큰 집을 지어서 무엇합니까?”

왕융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야 가난한 사람들을 힘써 도울 게 아닙니까? 그러시면 큰 인물을 얻게 될 것입니다."

스님은 말을 마치고 빠른 걸음으로 멀어져갔습니다. 마을 사람이 다가와서 왕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자네, 도선 대사님하고 무슨 이야기를 했나?"

"뭐, 뭐라고? 저기 가는 저 스님이 도선 대사님이라고?"

왕은 누구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도선 스님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였습니다. 

당나라에 건너가 '풍수지리설'을 배워 가지고 온 그는 전국의 산천을 누비며 돌아다녔습니다.

"하하하, 아들을 낳으시면 '건'이라고 지으시오. 세울건(建) !"

언덕 위에서 그 도선 스님이 손을 번쩍 들어보이며 외쳤습니다.

왕융은 그 쪽을 향해 땅바닥에 넙죽 엎드려 절을 올렸습니다.

도선 대사가 사라지자, 왕은 집터를 닦는 곳으로 돌아가서 일꾼들에게 신명나게 말했습니다.

“우리 집터를 닦으려면 이것 가지고는 안 되네! 기와집 서른 여섯 채를 질 만큼 널찍하게 닦게.'

왕읍은 돈을 아낄 생각이 싹 없어졌습니다.

조상들이 황해를 중심으로 해상 무역을 하여 모은 많은 재산을 마음껏 풀 작정이었습니다.

왕의 아버지 작제건도 청년 시절에 당나라로 건너가서 장사를 하여 많은 재산을 모았습니다.

송악 고을에 돌아온 작제건은 많은 땅을 사들이고는, 평주 지방의 세력가인 각간 두은점의

딸과 결혼했습니다.

작제건의 재산은 점점 불어나서 지방 세력가인 호족이 되었습니다. 

왕읍은 그의 맏아들이었습니다.

왕읍은 대궐 같은 집을 지은 그 이듬해 정원에 왕건을 얻은 것입니다.

"아기 이름은 '건'이라고 하겠소."

왕융은 도선 대사가 한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왕건을 낳은 뒤로 재산이 더욱더 늘어났습니다.

왕건은 무럭무럭 자라서 어릴 때부터 글과 무예를 닦아, 10살도 안 되었을 때 날아가는 새를 

활로 쏘아 맞힐 만큼 뛰어난 아이가 되었습니다.

이 무렵, 신라 조정에는 여왕이 들어앉았습니다.

헌강왕이 죽은 뒤, 아우인 정강왕이 왕위에 올랐으나 즉위한 이듬해에 병으로 죽자 두 왕의 누이인 

진성 여왕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진성 여왕은 사치한 놀이로 세월을 보내었습니다.

백성들은 무거운 세금에 허덕이고, 귀족들은 한 뼘의 토지라도 더 가지려고 싸움을 일삼았습니다. 

때문에 나라가 매우 어지러웠습니다.

호족들은 군사를 기르고 성을 쌓기도 하였습니다.

세금을 내지 못한 백성들은 호족들의 부하가 되거나 도적의 무리에 휩쓸렸습니다.

도적 떼들이 곳곳에 들끓었습니다. 도적들은 반란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노예들도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상주에서 일어난 '애노의 난'은 노예 반란 중 유명한 것이었습니다.

북원 지방에서 일어난 양길의 반란은 도적 무리의 반란 중 궁예는 바로 양길의 부하로 들어간 자였습니다.

왕건이 점점 자라서 20살이 되었을 때는 궁예는 세력이 강해져서 송악 부근까지 세력을 떨쳤습니다.

그 때, 왕건은 아버지 왕융과 함께 궁예의 부하로 들어가서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였습니다.

금은보화와 수백 석의 쌀을 싣고 온 왕읍 부자를 맞은 궁예는 입이 함박만하게 벌어졌습니다.

청솔 간, ‘이야기 한국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