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일:8월27일(화)
4:30 기상하여 정진하고 요가하다. 6:30 아침공양하다.
8시 출발. 礁溪市자오시 법고산사를 향하여 달리다.
9시 바다가 보인다. 基隆키룽의 東海다. 基隆은 타이페이 외곽 도시다. 여기서 북쪽을 향해 곧바로 가면 제주도가 있다. 통일신라시대 해상왕 장보고(張保皐,780 후반~841)가 경영했던 해양제국이 대만까지 다다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제주에서 대만까지 바닷길로 연결되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키룽 앞 바다는 해저가 현무암으로 되어 있는 까닭에 해수욕을 할 수 없다. 대만에서 해수욕을 할 수 있는 해변은 몇 곳이 안된다. 한치, 꽃게, 등등의 해산물이 풍부하여 대만 해산물의 80%가 이곳에서 수확된다고 한다.
가이드의 車 이야기: 대만 거리에서 제일 많이 보이는 차는 일제차이다. 한국 차는 7%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차에 대한 관세가 높아서 가격경쟁에서 밀린다. 한국차는 부품을 한국에서 들여와야 하므로 유지비가 비싼 편이다. 대만 내에 대만산 자동차공장은 없다. 넥서스는 직수입되고 토요타는 대만에서 조립하여 생산된다. 예전에 SM5가 잘 팔렸는데, 그건 대만 니싼Nissan에서 조립하여 한국으로 수출한 것이었다고 한다. 요즘 한국제 자동차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법고산사 참관>
法鼓山寺 법고산사: Dharma Drum Mountain Monastery
절에 당도하자 우리 가이드가 당부한다: 묵언할 것과 사진 촬영을 금함. 법고산은 트래킹 코스가 개발되어 있기에 등산하러 오는 사람들도 있다.
법고산사를 참관을 시작하기 전에 안내 비디오를 틀어주면서 성엄스님의 가르침과 도량에 대해 안내를 한다. 법고산사는 성엄선사가 창건했다.
성엄(聖嚴, 1930~2009)선사: 스님은 대만 역사 400년 이래 가장 영향력 있는 50인 가운데 한 분이다. 생활고로 인하 방랑과 시련, 시대의 전환기를 살았던 그의 파란만장한 삶은 불법을 실천하는 역정이었다. 몸이 허약했던 스님은 14세에 출가하여 사미시절을 거치며 교학을 공부했다. 1949년 대만으로 건너와 10년간 군복무를 했다. 전역 후 재출가하여 6년간 산속에서 무문관 수행을 했다. 다시 불혹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릿쇼(立正)대학에 입학하여 불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땄다. 대학교수, 연구소 소장, 미국불교학회 부회장, 역경원 원장 등을 역임했다. 중화불교대학, 승가대학 및 법고대학을 세워 불교인재를 육성했다. 스님은 임제종과 조동종의 법맥을 이었다. 1975년 미국 뉴욕에서 서양인들에게 참선을 가르치고 서양인 제자들을 받아드렸다. 1989년 법고산을 개산하여 <세계불교 교육단지>를 설립하여 [心靈環保심령환보]로써 인간 품격을 향상시켜 세계정토를 실현한다는 취지 아래 홍법, 선수행, 문화, 교육, 사회적 실천을 조직을 결성하고 확장하여 명실상부한 대승불교의 이념을 실현하고 있다. 스님은 언어문자로 가르침을 전달하는 기술이 뛰어나며, 그의 저서는 일본어, 중국어, 영어, 한국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로 전파되고 있다.
*성엄스님의 말씀: 인간이 자기 존재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불행감과 상실감을 가지고 인생을 방황하거나 시간을 허비한다. 인간의 가치는 자기 인품을 향상하고 내적 자질을 양생하여 평화와 건강, 즐거움과 타인에게 봉사하는 데 있다. 心靈環保심령환보-마음 환경을 보호하자. 자기 마음에 일어나는 감정과 기분을 알아차려 자기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대신에 자비와 연민, 따뜻한 마음과 다정함을 개발하여 타인과 자연환경을 대하면 청정하고 자비로운 세계를 만들 수 있다.
*초심자는 찰랑거릴 정도로 물이 가득 담긴 사발을 들고 걷기 명상을 시킨다.
*大普化運動-마음의 부유함을 표현하는 활동을 한다.
大關懷運動-자원봉사활동 및 물질보시를 실천한다.
심령이 빈곤하면 생명력이 위축되어 선업 짓기에 게으르거나 소홀히 하거나 심하면 오히려 불선업을 짓게 된다. 예절을 지키고 계를 가지면서 심령을 부유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중화불학연구원, 법고산 승가대학, 법고불교학 연수원에서 불교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있다. 특히 Dharma Drum Institute of Liberal Arts 법고 인문 학원은 博雅敎育이라 하여 평생교육을 지향한다.
*성엄대사의 가르침 3요는 入流亡所➝ 大悲心起➝觀世自在
1.입류망소는 見道에 들어 能所(주관과 객관)를 잊어버림
2.대비심기는 능소를 잊은 대안심지(열반)에 들었지만 거기에 머물지 아니하고(대승보살의 원력) 자비와 연민을 일으킨다.
3.관세자재는 자기분상에서는 열반을 수용하면서도 중생을 버리거나 떠나지 않고 사바세계에 함께 머물면서 중생의 고통을 觀(차별지를 굴리면서)하여 제도함에 자재롭다.
관음전 앞 마당에는 祈願池기원지라는 네모 난 연못에 물이 담겨 있는데 못 바닥에는 둥글납작하고 까만 돌들이 놓여 있다. 이 돌들은 일년에 두 번씩 씻어 말려야 하는데 洗石세석을 원하는 불자들은 추첨을 통해 선정되며, 洗石하는 과정이 곧 삼독심을 씻어내는 洗心수행이다. 성엄스님의 꿈속에 나타난 해수관음 및 연못과 자갈 돌을 형상화한 것이라 하니 과연 昨夜普陀觀自在작야보타관자재의 碧波深處現神通벽파심처현신통이다. 어제 밤 관음정토(보타낙가산)에 계셨던 관세음보살이 고해의 파도 넘실거리는 욕계의 한 가운데 '지금 여기' 나타나셨네!
우리 팀의 가이드를 맡은 보살님은 廖玉梅료옥매 님인데 절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한 지 7년이 되었다 한다. 어느 날 TV에서 성엄스님의 설법을 듣고 발심이 되어 불교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불학원에 다녀서 논문을 써서 석사학위를 땄다고 하니 만학도의 열정이다. 그리고 지금은 마음정화의 수행으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고 하니 如說修行供養(여설수행공양, 설법을 들은 대로 수행하는 것으로 삼보께 공양 올리는)하는 보현행자다. 계단을 올라 7층으로 오르니 開山殿개산전이 나온다.
개산전의 편액이 앞면에는 本來面目본래면목이라 써졌고 안쪽 뒷면에는 대웅보전이라 되어있다. 大雄殿대웅전이라, 부처님을 모신 전각이지만 사람사람마다 불성이 있는지라, 사람의 본래모습이 곧바로 부처님이니 대웅이란 곧 자신의 본래면목이다. 자! 여기에 들어오는 자, 본래면목을 보는가, 느끼는가? 우물쭈물하면 십만팔천리라. 眼橫鼻直안행비직 當下分明! 당하분명 눈은 가로로 나 있고, 코는 세로로 뻗어 있어, 자명하지 않은가!
전각 앞에서 바라본 경치는 일망무제, 활연청정이다. 전망되는 도시가 金山市 萬里區 금산시 만리구 라 한다. 과연 金山萬里다!
경내를 참관하는 도중에 우연히 한국에서 오신 철산스님과 법우스님 등 일행 4분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성엄선사가 무문관 수행을 하시던 모습을 꾸며 놓은 것과 근대 중국의 고승들을 소개하는 코너를 둘러보다. 중국 근대 불교의 초석을 놓았던 고승으로는 태허대사(1889~1947), 영원선사(1902~1988), 허운선사(1840~1959), 동초선사(1907~1978), 인순대사(1906~2005) 등이 계신다.
11시에 법고산사 참관을 마치고 야류해상지질공원으로 달린다. 야류해상공원 앞에 있는 薆悅酒店에서 점심 공양하다.
태양이 작열하는 바닷가 해상공원은 찬란한 빛의 공간인 동시에 풍화작용으로 오묘한 형상화를 이룩한 용암이 춤추는 무대이다.
특히 이집트 왕비였던 네페르티티의 머리 모양을 닮아서 이름이 붙여진 ‘여왕바위’는 인상적이다. 근처에 산재한 촛대바위, 벌집바위, 바둑판 바위, 생강 바위 등등은 지질시대의 용암이 굳어진 것에 바람과 파도가 깎아서 만든 天工 조각품이다.
다시 버스를 타고 九分스펀이란 마을에 도착하다. 여기는 風燈을 띄우는 곳으로 유명한 관광 명소다. 옛날에 석탄을 캐어 먹고 살던 탄광촌이었는데, 현재는 폐광이 되어 먹고 살길이 막막하던 차에 풍등 띄우기를 개발하여 운영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하니 잘 된 일이다. 원래는 마을에 도적떼가 출몰하면 풍등을 띄워 피하라는 신호였다고 한다. 마을 가운데로 석탄을 실어 나르던 열차가 다니는 데, 그 기차길 가운데서 풍등에 불을 붙여 하늘로 날린다. 네 사람이 한조가 되어 풍등의 사방면에서 한 사람씩 붓으로 소원을 적은 다음, 다 함께 소리치면서 불이 켜진 풍등을 하늘로 날려 보낸다. “일체중생이여, 모두 보리심을 일으켜 바라밀을 완성하고 구경에 성불하소서!” 오후 3시에 행사를 마치고 버스는 출발한다.
가이드 이야기: 일제가 대만을 통치할 때 숲 속에 사는 토착원주민들의 저항이 심했다. 원주민들은 몸에 문신을 하고 활 싸움에 능했다. 원주민들의 성인식에는 사람의 목을 베어 오는 일을 伐草벌초하는 것이라 하니 상당히 호전적인 면이 있었다. 그래서 일제가 원주민을 숲에서 몰아내고 제 마음대로 벌목을 하기위해서 묘책을 꾀했는데, 그게 인도네시아에서 뱀을 수입하여 숲에다 풀어놓는 것이었다. 원주민들은 뱀을 수호신으로 생각했기에 뱀을 죽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들은 맨발로 걸어 다니니까 물려 죽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가 90년대 한국에서 뱀술이나 뱀탕의 수요가 늘어나자 대만 뱀들이 거의 전량 한국으로 수출되었다. 우습구나, 세상만사가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業因果報가 상속된다.
가이드의 茶 이야기: 대만을 영어로 포모사Formosa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는 대항해시대의 선두주자 포르투갈인들이 동방 항해로에 위치한 고구마 모양의 섬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초록색 평원이 아름답게 펼쳐진 섬을 보고 "와, 아름답다(Ilha Formosa)"고 감탄한데에서 유래했다. 포모사란 '아름다운 섬'이란 뜻이다. 그래서 그런지 푸른 숲과 나무, 화초와 차가 풍요롭다. 대표적인 대만 차는 오룡차(혹은 울롱차)는 25~30%를 발효시켜 만든 차이기에 카페인이 순화된다. 원래 복건성 무이산에서 많이 생산되는데 포장지가 없었던 시절에 한약재 포장지에 포장해서 수출했다. 그렇게 포장한 것을 包種포종이라 한다. 운산포종도 그런 茶이다. 홍차, 홍옥, 홍윤, 아샘차(인도 아샘지역에서 나는 개량된 차)가 있다. 동정오룡차는 찻잎이 반구슬형으로 만들어진다. 보통차는 해발 800~1000m에서 생산되며, 1000m이상에서 생산되면 고산차라 한다. 아리산차, 이산차(1800~2000m)가 있다. 대우령차는 단맛이 나며, 한국인 선호하는 최고급 차이다. 2000~2600m에서 나는 법수산차는 사과꽃 향이 난다고 해서 유명하다. 珠淚茶주루차는 찻잎이 아침이슬 모양이라 해서 이름이 그렇게 붙여졌는데, 워낙 귀해서 후원회 회원에게만 공급된다고 한다. 金銀茶금은차라는 게 있는데 밀크, 버터 향이 나는 차이다. 동방미인 차는 과일향이 나며 전 세계로 수출된다. 오룡차는 법제하는 데 72시간 걸리며, 10번까지 우려 마실 수 있다. 홍차는 법제하는데 24시간 걸린다. 해마다 차 품질대회를 개최하여 등급을 매기는데 이를 投茶大會라 한다. 최상품은 1편에 3~4천만 元 한다고 한다. 아리산 차1통을 3~4만 元에 사서 한국에 가지고 가면 10만元 받을 수 있다하니 차수입상을 해볼만하다.
화렌 남쪽에서 생산되는 紅오룡이 유명하다. 철관음 차는 생산량이 적어도 품질이 좋다.
山多利大飯店에서 저녁 공양하다. 오후 5:30분이다.
다시 버스를 타고 밤길을 나선다.
쟈오시 호텔1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