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향기로 기억되는 건 그리움으로 남아 있기 때문일 게다.
문득, 어떤 음식 맛이 생각나는 것도
특별한 때, 특별히 해주던 그분의 맛이 그리워져서일까?
사람이 향기로 기억되는 건 그리움으로 남아 있기 때문일 게다.
2024년 4월 7일 일요일 화창한 날씨 낮 기온 23도
① 추억 한 다발`
-봄날 결혼식장에서-
‘사람이 향기로 기억되는 건 그리움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럴까?
오늘 승녀의 둘째 딸 결혼식 날이라 친척들이 모였다. 모여 얼굴 보자, 추억이 된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사람의 향기도 되살아났다. 이것도 그리움으로 남아 있던 향기였을까?
정작, 오늘 함께해서 축하해줘야 할 언니는 요양원에 있지만, 우리 형제는 이모 자격으로 다 모이자고 연락했다. 하필이면 대구에서 마라톤 대회를 하는 날이라 우리는 차 없이 지하철을 탔다. 12시 예식인데 동촌역에서 내리니 11시 25분! 지하철역을 나와 두리두리 살펴보니, 예식장으로 가는 듯한 봄꽃 차림새의 사람들이 길을 건너가고 있었다. 우리도 길을 건너가서 쳐다보니 바로 거기에 딱! ‘노비아갈라’ 예식장이 있었다. 십 년째 신지 않던 굽 높은 구두를 신고 온 터라 걸음걸이가 조심스러워 자분자분 걷는데, 바로 예식장이 코앞에 있으니 어찌나 반가운지!
발렌티 홀을 찾아 올라가다 순우 부부랑 언니를 만났다. 5층으로 가니 혼주 승녀는 환한 웃음으로 손님을 맞고 있다. 사돈집도 여 혼주 혼자 서 있었다. 신랑 아버지는 무릎 수술로 참석하지 못했단다. 두 집 모두 남편 없이 손님을 맞았지만 오히려 자연스럽고 씩씩해 보여서 좋았다. 승녀가 자기 사돈이라고 소개하자마자 나는 덥석 사돈을 안아주었다. 먼 싱가폴에서 아들과 함께 결혼식을 하려고 달려왔을 것이고, 그동안 우여곡절 있는 인생을 곱게 잘 살아오셨다 싶어서.
그리고 예식장 홀 한쪽 구석 의자에 앉아 있는 형부를 만났다. 91세인데 귀도 잘 들리고 눈도 잘 보이고 아직도 한약방 일을 하고 계신다니 건강에도 도움 되는 좋은 일이지! 오늘의 주인공 신랑. 신부는 싱가폴(싱가포르)에서 연봉이 꽤나 높은 회계사 일을 하고 있다니 그만하면 성공한 삶이겠다.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서울 사는 승아가 다가와 인사를 한다. 승아를 보자마자, 승아가 어릴 때, 내가 근무하는 시골 학교 교무실 난롯불에서 같이 고구마 구워 먹던 때가 떠올랐다.
“아, 승아 어릴 때 시골 우리 집에 왔다 갔었지?”
“아, 이모, 아직도 그 기억을 해요?”
“아니, 오랜만에 보니 그 생각이 나네. 헤헤!”
며칠 밤 자고 가자고 데려왔다가 집에 가고 싶다고 울어서 중간에 데려다준 기억이 나서다. 승아가 어른이 되어 우리 집 근처에서 피아노 교습소 할 때 기억도 났다. 광희를 보내 피아노를 배우게 했는데 광희가 장난만 친다고 해서 그만두었던 기억!
그리고 형부를 보니, 내 고등학생 시절이 생각났다. 방학을 맞아 어디 가서 혼자 공부 좀 하고 싶다고 부탁했더니 형부 친구, 청도 아저씨의 과수원집을 소개해주었다. 그 과수원 한가운데 움막집에서 방학 동안 혼자 잠자며, 그 아저씨 부인이 해주는 밥 얻어먹고. 그 집 초등학생 아들이 갖다주는 못난이 사과들도 실컷 얻어먹으며 공부했다. 언니는 아저씨 부인 아줌마에게 동생 맡겨둔 빚으로 스웨터를 짜서 갖다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시작 시간이 되어 예식장에 들어갔다. 우리가 둘러앉으니 여섯 명 테이블 좌석이 꽉 찼다. 둘러보니, 싱가폴에서 신랑 측 식구들과 예식을 치르고 와서, 이번에는 한국 신부 측 하객들만 모시는 예식이라 이백 석을 채우기 어렵다며 걱정하더니만 예식장이 가득 찼다. 테이블 위에는 손에 들고 흔들기에 딱 좋은 둥근 형광봉 여섯 개가 놓여있고, 가운데에 굵직한 황금 촛대가 불을 밝히는 형상으로 놓여 있었다. 천장에서부터 치렁치렁 드리워 놓은 형광 장식들도 휘황찬란하였다. 승영이가 다가오더니 인사를 한다. 오늘 자기 아들이 사촌 동생 자격으로 신부를 데리고 댄스를 선보인다며 자기 아들을 소개한다.
“아, 동인초등학교 다닐 때 본 그 아이냐?”
지금은 25살이지만 내가 동인초등학교에 강의 갔을 때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세월 한번 빠르다. 예식을 시작하겠다고 사회자석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기가 오늘의 사회자 아나운서라며 소개하더니 딱 부러지게 진행을 잘했다. ‘신랑 입장’을 알리자 싱가폴 신랑 ‘탄진 택’이 온화하고 밝은 성격이 묻어나는 얼굴로 입장하였다. 통상 통례대로 다소곳하게 걸어 나오지 않고, 무슨 행사장에 온 연예인처럼 양쪽 손님석을 번갈아 보며 답례하듯 손을 흔들어대니, 손님들도 스타를 환호하듯 축하 봉을 흔들어대었다. 축하 봉 불빛이 예식장 안을 훤하게 밝히는 가운데 탄진 택과 박강희는 주례자 없이 오로지 자기 둘만으로 예식을 치러나갔다. 둘이 주고받는 언약도 신선했고 사회자가 낭독하는 선언문도 신선했다. 두 혼주도 한 곳에 함께 앉아 있다가 신랑, 신부랑 하이파이브를 하더니 한 번씩 껴안아 주는 인사 답례도 보기 좋았다. 아버지가 딸을 사위에게 데려다주는 형식을 쏙 빼니, 아버지의 빈자리에 대한 허전함이나 부족함 없이, 더 진솔하게 보이고 완벽해 보여 좋았다.
예식 후 식당으로 이동했는데 음식도 ‘이게 산해진미지!’ 하는 말이 절로 나오는 차림이었다. 맛있는 것이 너무 많아서 둘러보기만 해도 바빴다. 해물, 회 위주로 한 두 개씩 쟁반에 들고 와 먹었다.
“그런데 잡채가 안 보이네. 잔칫날에는 잡채가 있어야지.”
이 고급스러운 음식 앞에서 잡채 좋아하는 언니의 푸념은 뭐람. 옛 음식을 잊지 못하는 그리움의 맛일까? 언젠가 누군가가 해준 잡채 맛을 잊을 수 없단다. 나중에 고령 시골집에 오면 내가 잡채 요리쯤은 해줄 수 있지. 나는 김치 국밥 이야기를 했다. 순우는 김치 국밥 끓일 때 김칫국물을 안 넣는단다. 인터넷에도 김치 국물 넣는 레시피가 많던데 각자 취향이겠지만, 나는 우리 어릴 때 먹던 김치 국밥 맛이 가끔 그립다. 그 맛은 김치랑 김칫국물에 콩나물 한 줌 넣어 밥알 푹 퍼지게 익힌 죽처럼 한 그릇씩 안겨주던 엄마의 김치 국밥 맛! 고급 음식을 먹으면서, 과거 허기를 채우기 위해 먹던 음식 맛을 소환하는 것은 어떤 그리움의 맛일까? 어쩌면 ‘우리 그래도 행복했지?’ 하며 어린 날 행복했던 추억을 한 다발씩 껴안는 맛일까?
돌아오는 길에 영천(자양)댐에 들렀다. 백 리 길 둘레는 벚꽃 만발한 꽃잎들이 봄축제 전령사인 듯, 분주히 꽃잎을 휘날리고 있었다. 벚꽃 향기에 취해 돌아와서 청첩장의 인사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신랑이 싱가폴(싱가포르) 남자라 하더니 영어와 한글로 써둔 인사말이 정겹다.
We have met someone who brings happiness to each other
we have met someone whose smiling face is so beautiful
we have met someone whose with a warm and caring heart
both of us from different timed,
born in different countries, met in different places,
yet, becoming ‘one’, on a warm spring day
we promise each other’s eternity
we would be grateful for your blessings
for a future live in warmth and beauty
싱가폴에서 결혼식을 하고, 신부를 위해 한국으로 와 한 번 더 결혼식을 하는 신랑의 깊은 배려가 잔잔한 감동으로 담긴다. 가장 잘한 일은 신랑, 신부가 주례 앞에서 뒤통수만 보이며 오래 서있는 주례사를 듣는 일을 하지 않은 일이다. 내가 우리 학교 선생님을 주례할 때는 주인공인 신랑, 신부가 하객들을 보고 서서, 뒤에 서있는 주례자의 말만 들으라고 했다. 주례사도 짧게, 축복하는 말만 몇 마디 했다.
그런데 오늘 결혼식에서는 아예 그런 형식을 빼버리고 오롯이 둘만의 이야기를 하고 둘만의 언약을 했다. 부모도 신랑, 신부랑 하이파이브를 하고 서로 껴안아 주는 답례가 신선해 보였다. 신랑, 신부가 팔짱을 끼고 양쪽에 앉은 하객들을 번갈아 보며 손 흔들고 걸을 때, 형식을 거부한 멋진 매력이 좔좔 흘러내렸다. 이때껏 겪어본 결혼 예식 중, 최고 현명한 젊은이의 세련되고 멋있는 결혼식이었다. 축하객들에게도 신선한 충격과 유쾌한 추억을 나눠주었으리라.
긴 세월을 두고 보면, 이처럼, 앞으로의 결혼 예식문화는 겉치레 형식을 쏙 빼고, 신랑, 신부가 주인공이 되는 오롯한 결혼식으로 더 진솔되게 변해가리라.
어쨌든, 오늘은 오롯이 두 사람을 축복해 주고 싶은, 벚꽃 활짝 핀 봄날이다. 돌아오는 발길에도 벚꽃 한 다발씩 선물 받아 품에 안고 오는 기분이었다. 벚꽃 향기 그윽한 추억 한 다발!
② <벚꽃놀이 환한 날>
제부가 차를 가져왔다며 꽃놀이를 가자고 했다.
“좋지!”
제부는 경주 보문 벚꽃단지를 추천했지만, 우리가 구두를 신어서 걷기 불편하다 하자, 자양 댐 벚꽃을 보러 가자며 영천으로 차를 몰았다. 자양 댐 둘레를 한 바퀴 돌자면 백리길이란다. 나는 구두를 벗어버리고 제부 차에서 슬리퍼를 빌려 신고 벚꽃 잎 흐드러진 댐을 돌았다.
삼 형제는 꽃, 남편은 찍새! 걷다가 벚꽃 어우러져 보기 좋은 곳마다 멈춰 서서 벚꽃과 어우러져 추억을 저장하였다.
자양댐 수몰지구의 전시관에도 들렀다. 남아 있는 분들의 명단이 동네별로 한 벽을 채우고 있었다. 이사해서 어딘가에 살고 계실 분들의 명단이었다. 전시관 안에는 전시관을 채울 자료가 별로 없는 듯, 수몰되기 전 자양초등학교에 다녔던 아이들의 사진이 주를 이루며 벽을 채우고 있었다. 학교가 물에 잠겨 사라진 흔적이라도 남길 수 있으니 다행이라 해야 할까? 앞에는 이들이 살았던 시절에 쓰던 풍구, 뒤주, 라디오. 옷, 주산, 나무절구 등이 진열되어 있었다.
전시관을 돌아 나와 앞에 있는 정자에 잠시 올라가 앉았다. 사방이 벚꽃이라 봄날의 따스함을 맞으며 여유를 즐겼다.
“오늘이 7일이지? 오늘이 영천 장날이네요.”
제부 말에 우리는 온 김에 장날 구경을 가자고 나섰다. 장날이라도 상설 매장은 천막 아래 매장이라 어둡고 한산했다. 반면, 난전에는 햇빛도 내려앉고 사람도 들락거려 장날 맛이 났다. 우리는 둘러보며 오이, 도라지, 부추 들을 사서 나누고, 어디 분위기 좋은데 가서 차 마시자고했는데 마땅한 찻집이 없었다. 오다가 편의점에 들러 마시는 것 하나씩 들고나왔다. 제부는 언니와 우리를 반야월역에 데려다 주고 갔다. 오늘 우리 소풍은 제부의 운전 공로가 다대하여 이루어질 수 있는 소풍이었다. 늘 든든한 제부가 고맙다. (25매)
|
첫댓글 한폭의 그림을 보듯이 잔잔하게 써 내려가시는 아름다운 글 잘읽었습니다
선생님, 제 글에 관심 가져주셔 고맙습니다. 그런데 누구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