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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축의 나라 뉴질랜드에 가다
내가 뉴질랜드에 관심을 갖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목양과 낙농이 발달한 국가라는 것이다. 일찍이 박정희 대통령이 뉴질랜드를 방문했을 때 지형이 산악국가 이면서 경제적으로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 이유가 산지를 이용하여 목축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였다. 귀국 후 우리나라에도 산지를 개발하여 축산을 장려토록 정책을 펴나갔다. 그 시범사업으로 전북 운봉의 지리산자락과 강원도 대관령에 뉴질랜드로부터 도입된 면양을 사육토록 하였다. 이러한 사연으로 내가 대관령에 근무할 때 면양을 시험사육하며 여러 가지 보람과 애환을 겪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내가 해외 파견 명령을 받고 출국준비를 하고 있을 때 뉴질랜드 매시대학으로부터 호의적인 초청장을 받았다. 그런데 이를 완곡히 거절하고 독일 쪽을 택하였다. 독일에 채류하면서 예기치 않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매시대학에 대한 아련한 미련과 호감을 갖게 되었다.
마침 지난 해 대구 경북지역 「삼락회」 소속 선생님들의 호주 뉴질랜드로 문화 탐방을 간다고 하여 그 여행단에 같이 참여하였다. 10여 시간의 긴 비행 끝에 호주의 시드니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3일 간의 호주여행을 마쳤다. 다시 시드니 공항을 출발하여 3시간 후에 뉴질랜드 남섬의 크라이스트처치 공항에 도착하였다. 크라이스트처치는 남섬 최대의 도시로 영국 정치범들에 의하여 개척된 도시였다. 미국의 독립으로 식민지를 잃게 되자 영국은 호주와 뉴질랜드로 죄인들을 이주시켰다. 별칭이 “정원의 도시“라고 불리 울 만큼 잘 정돈된 도시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는 6월 말 한창 무더울 시기였지만 이곳은 한 겨울이었다. 그러나 날씨는 초겨울처럼 별로 춥지 않았다. 북섬의 오클랜드를 기준으로 가장 무더운 1~2월 최고기온이 25℃, 가장추운 7~8월 최저기온이 5℃라 하니, 목초들이 연 중 자랄 수 있는 기후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뉴질랜드는 두 개의 섬 즉 「남섬과 북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이다. 남섬은 지각이 변동할 때 남극 대륙에서 분리되어 형성되었으며, 북섬은 화산의 폭발에 의하여 용암이 솟아올라 형성되었다. 전 국토면적은 268,680천㎢, 그 중 57%가 남섬에 속하여 북섬 보다 더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인구는 전체 437만 명 중 112만 명이 남섬에 거주하고, 북 섬에 325만 명이 거주하고 있어서 정치, 경제, 산업 등이 북섬을 중심으로 발전한다고 생각되었다.
남섬의 서부지역은 서던 알프스(Southern Alps)라 불리는 산맥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려 480km에 이르는 긴 산맥이다. 여기에 뉴질랜드에서 가장 높은 산인 쿡산(Mountain Cook; 3,754m)이 있고 그 외에 높이 3000m 이상 되는 산 22개가 산재해 있다. 산 전체가 온통 눈으로 덮인 아름다운 설경을 배경으로 산기슭에는 대단위 목장이 조성되어 있고, 주로 양떼들을 방목하고 있었다. 반면 남섬의 동부지역은 대 평원을 이루고 있다. 특히 남북길이 307km, 동서길이 20~40km의 켄터베리 평원에는 푸른 초원이 드넓게 펼쳐져 있고 젖소와 양떼들이 방목하는 모습이 관찰되었다. 산과 들이 온통 초지와 양떼, 젖소들로 목축의 나라임을 실감케 하였다.
뉴질랜드가 목축지로서 적합한 이유는 지형이 평평하고 기후가 온화하다는 조건 외에 맹수들이 없다는 것이다. 뉴질랜드에 원래부터 서식하던 육상동물은 도마뱀, 개구리 박쥐 정도 였다. 날지 못하는 새인 키위는 야행성이며 희생의 상징으로 뉴질랜드의 국조이다. 천적이 없기 때문에 날개와 꼬리가 퇴화되어 날 수 없는 새가 되어버렸다. 한 때 1,200만 마리가 서식 하고 있었지만 현재 700만 마리로 감소하여 특별히 보호되고 있다고 한다. 생명체가 진화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생존경쟁이 불가피한 것이다. 불모지의 국토를 개발하면서 토끼, 사슴, 면양, 젖소 등의 가축은 유럽에서 들여왔다. 이와 같은 천혜적인 자연환경을 이용하여 목양과 낙농업이 크게 발달하였다. 특이한 것은 한 겨울인 데도 면양들이 눈 속에 방사되고 있었다. 드넓은 벌판에 축사라고는 보이지 않았고, 목초관리를 위한 스프링클러 시설들만 육중하게 드러나 보였다. 가끔 씩 보이는 집들은 목부들이 양털을 깎거나 사료를 주기 위하여 들렸을 때 잠간 씩 머무는 장소라 한다. 한겨울에는 가축들을 축사에 수용하여 관리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육체계이다. 이러한 기술체계에 익숙해 있는 나에게 뉴질랜드 식 축산은 하나의 충격으로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
뉴질랜드에서 산업적으로 목양과 낙농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가 되는지는 모르지만 주요산업 임에는 틀림없었다. 현재 4,800만 마리 면양이 사육되며 이들로부터 양모와 모피를 생산하고 가공하여 시장에 출하하고 있었다. 양모와 가죽을 이용한 카펫, 침구, 신발, 의류 등이 관광객의 눈길을 끌었다. 특히 양태반 크림, 초유분말, 마누카 꿀 등이 주요 관광 상품으로 권장되고 있었다. 양의 태반에서 콜라겐 성분을 추출하여 만든 태반크림은 피부의 탄력성 유지와 주름살을 제거해 준다고 하였다. 초유분말은 가축이 분만 후 3일 간 분비되는 젖을 분유로 만든 것이다. 초유에는 단백질 함량이 높고 면연물질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새끼가 초유를 먹으면 어미의 면역성이 새끼에게 전달된다. 이러한 성분을 분말로 만들어 어린이들의 건강식품으로 개발하였다. 마누카 꿀은 마누카 나무에서 생산된 꿀이다. 마누카 나무는 화산지대에서 발생하는 지열을 견뎌내며 자라는 강인한 식물이다. 이 식물에서 생산된 꿀은 소화기 계통에 치료효과를 준다고 한다. 효과의 진위여부를 떠나서 부존자원을 활용하여 고부가 가치의 상품을 개발하는 노력에 찬사를 보내고 싶었다. 원료생산과 기술개발 그리고 제품생산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업체계에서 역시 목축의 나라다운 면모를 과시하고 있는 듯하여, 축산학도의 한사람으로서 부러움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목양과 관련하여 관광객의 관심을 끄는 또 하나의 볼거리는 양털 깎기와 양몰이 쇼였다. 이것은 오랜 세월 양들과 생활했던 목동들이 일궈낸 축산문화의 일면이다. 양들은 여름철을 앞두고 매년 한번 씩 털을 깎아주어야 한다. 수많은 양들의 털을 가위를 이용하여 깎아야 했던 목동들의 노고가 얼마나 컸을까를 생각해보게 한다. 오늘날은 털깎기가 자동화되어 목동들은 양털 깎기 노동에서 해방 되었지만 그 흔적은 하나의 민속 문화로 남겨진 것이리라. 잘 훈련된 양들은 한 마리씩 호명할 때마다 무대 위로 올라와 제 위치에 정렬하였다. 품종이 각각 다른 19마리 양들의 모습을 비교하며 외모와 털 품질의 특징들을 설명하고 털깎기 시범을 보였다. 또한 옛날 양치기 목동들은 너른 초원에서의 하늘을 지붕 삼아 외로운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한 외로움을 달래 줄 친구가 바로 개였다. 개와 함께 생활하며 개를 이용하여 양을 이동시키는 기술을 터득시켜 탄생한 것이 목양견이다. 목양견들은 주인의 휘파람 소리에 맞추어 좌우로 양몰이를 하고, 목책 안으로 양들을 몰아넣는 시범을 보였다. 개가 충직하고 영리한 동물임을 뉴질랜드에 와서 실감할 줄이야!
뉴질랜드 남섬의 자랑은 스위스가 갖고 있는 알프스 산의 위용과 캐나다가 지니고 있는 아름다운 호수들, 그리고 노르웨이가 자랑하는 피오르드(Piord)를 다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의 지붕인 알프스의 몽블랑과 융푸라우 같은 높은 산의 위용을 쿡산이 대신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서던 알프스라 부르는 자체가 알프스와 비견된다는 의미이다. 남섬에는 과거 빙하기에 형성된 장대한 계곡과 많은 호수들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남섬 관광의 최종 목적지인 밀포드사운드로 이동하는 노정에서 푸카키 호수, 테카포 호수 그리고 거울 호수 등 크고 아름다운 호수들을 만났다. 산과 호수 그리고 구름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관들은 탄성을 자아낼 만하였다. 밀포드사운드는 노르웨이의 송네 피오르드에 비견 될 만큼 뉴질랜드의 자랑거리로 보였다. 1만2천 년 전 빙하에 의하여 산들이 수직으로 깎여서 만들어진 형형색색의 진귀한 모습들을 배를 타고 크르즈 여행을 즐기며 주변 경관을 감상하는 것이 남섬에서 여행의 최고 하이라이트라고 생각되었다.
뉴질랜드 북섬의 지형은 남섬 보다 훨씬 완만하여 60%이상이 산지와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다. 북섬에는 특히 화산이 많아서 남섬을 얼음 섬이라하는 것에 빗대어 불 섬이라고 불렀다. 화산이 폭발하여 만들어진 북섬은 그 영항으로 아직도 지열이 분출되고, 온천이 솟아나고 있었다. 북섬 중부의 로토루아 시 지역은 마오로족의 고향이다. 현재 인구 7만 명이 살고 있는 이 도시는 지열지대의 중심부이며, 마오리 문화의 중심지로 그 전통을 유지 보존하고 있다. 이곳에 "테푸이야"라는 마오리 민속촌은 땅에서 분출되는 증기와 함께 관광객들에게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화산의 뜨거운 열기에 의하여 솟아오르는 증기와 끓는 듯 부글거리는 진흙 늪의 모습은 마치 지옥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그러나 땅 표면 암반이 뜨거운 열기로 데워져 마치 온돌방에 앉은 느낌이었다. 마오리족 원주민들이 이곳에 안착하여 대대손손 이어온 이유를 알만 하였다. 온천과 열천이 끓어 올라와 이를 유효하게 생활에 접목시키며 살아왔다. 이곳에서 우리 일행은 호수가 내다보이는 야외 온천장에서 남녀 혼탕의 온천욕을 즐길 수 있었다. 또 열천의 지열을 이용하여 만든 항이(Hangi)라는 마오리족 전통음식을 먹으며 마오리 전통 콘서트를 즐기는 것도 이번 여행의 묘미였다. 얼굴에 문신을 한 남자들은 빠른 율동의 격렬한 춤으로, 여자들은 섬세한 춤으로 관람객들을 매료 시켰다. 우리 일행 중 여러 사람들이 무대로 불려나가 마오리족들이 벽력같이 고함지르고 혀를 내미는 동작을 흉내 내며 함께 공연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하였다.
뉴질랜드의 원주민은 폴리네시아계의 해양족인 마오리(Maori) 족이다. 이들은 유럽인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뉴질랜드에 도착해 있었다. 10세기 이전부터 이곳에 살아오면서 섬 이름을 “아오데아로이”(흰 구름 떠다니는 나라)라 불렀다 한다. 그러나 마오리 족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없다. 1642년 네덜란드의 아벨타즈만(Abel Tasman)이 남섬을 발견하여 소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뉴질랜드라는 이름도 자기 나라의 한 아름다운 지방 ”젤란드”를 모방하여 새로운 젤란드라는 뜻으로 뉴젤란드라 부른데서“ 비롯되었다. 이 내용은 뉴질랜드를 탐험했던 영국인 제임스 쿡의 ”대양 일지“에 수록된 내용이라 한다.
뉴질랜드는 국가성립과정에서 원주민인 마오리 족과 전쟁을 치렀지만 그 후 원주민을 보호하고 공존하는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대표적인 조치로 국회의석 120개 중 5석을 마오리족에게 할당하고, 국민 중 마오리족의 피가 1/16이 섞이면 원주민으로 인정해 준다고 한다. 마오리 족들이 백인과 결혼하여 혼혈이 이루어지는 데 따른 조처이다. 약자를 보호하고 배려하는 제도에 깊은 공감과 신뢰를 보내고 싶다.
여행은 즐거운 것이다. 새로운 체험과 지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을 통하여 얻어 들이는 새로운 삶의 모습과 생태적 특성들 그리고 자연경관의 아름다움 등은 닫혀있던 마음을 여는 계기가 된다. 이를 통하여 견문을 넓히고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다가갈 수도 있다. 오랫동안 동경해 오던 목축의 나라를 찾아가서 여러 가지를 체험 하고 관찰하였다. 뉴질랜드는 우리나라와 전혀 다른 자연환경과 자원을 갖고 있다. 이를 활용하여 뉴질랜드 여건에 적합한 목축산업을 개발하였다. 우리가 추진했던 면양사육 시범사업은 큰 성과를 보지 못하였다. 쇠고기 돼지고기에 익숙한 국민들에게 양고기는 크게 각광을 받지 못하였다. 우리나라 면양사업은 대관령에서 “양목장“이라는 이름으로 어린이들의 학습 체험 장으로써 크게 인기를 얻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된다.
이번 여행에서 관심을 두었던 뉴질랜드의 대학에 대한 정보는 별로 얻은 수 없었다. 매시대학을 포함하여 전국에 8개의 대학이 있다는 정도였다. 남섬에 3개 대학, 북섬에 5개 대학이 있고, 매시대학은 북섬의 팔마스톤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국내 유일하게 수의학과가 있으며 입학당시 학생이 300명이 되지만 한학기가 끝나면 상당수가 탈락하고 100명 정도만 남게 된다고 한다. 엘리트를 지향하는 이 나라의 교육제도에 관심이 끌린다. 여행 뒤에는 항상 새로운 과제를 안겨준다. 이러한 과제를 뒤로한 채 오클랜드 공항을 출발하였다. 13시간의 비행 끝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오랜 숙원은 풀었지만 더 많은 미련과 숙제를 안겨 준 여행이었다.(2014. 8.16)
첫댓글 글쓰기 연습삼아 기행문을 써 보았습니다. 뉴질랜드 여행기록을 바탕으로 기억을 되 살리며 정리해 보고 싶은 마음에서 입니다. 처음에는 수필형식으로 쓴다고 했는 데 쓰다보니 스토리가 장황하고 체계가 산만하여 여행 보고서가 되고 말았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듣기만 하던 뉴질랜드를 소개를 잘 주셔서 여행을 하는 기분을 느끼면서 재밌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지난날 기행문은 대개 수필문학의 범주에 넣었습니다만 지금은 수필문학에 넣지않는 다고 합니다. 단 여행중에 본 것을 단순히 나열하지 않고 본 것 가운데 특이하게 느낀점이나 삶의 감동을 줄 수있는 것,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기발한 일등을 문학적으로 잘 표현할 경우 수필이 될수 있다고 합니다. 지난날 우리가 배웠던 정비석선생의 '산정무한'은 기행문이지만 그 문학적 가치로 지금도 빼어난 수필작품으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또한 독자로 하여금 감동을 많이 줍니다. 저도 10여년전 호주 뉴질랜드에 10박 11일 기간으로 연수를 갔다 온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당시에 보고 느낀 점을 그때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수필의 성격과 범위를 잘 파악치 못하고 있습니다. 글의 소재가 주로 지나온 삶의 경험이 되다 보니 창작보다는 사실의 기록에 맞춰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행문도 내 삶의 기록이 한 부분입니다. 글쓰기를 통하여 지나온 흔적들을 정리해보는 기회로 삼고자 합니다. 좋은 가르침 감사합니다.
뉴질랜드 잘그려주어 가본것 같이 알게되어 감사드립니다 .수필이 삶의 흔적을 정리하고 느낀바를 쉽게 표현하면 되지 어렵게 선을 끄어서야 되겠습니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