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 Ⅴ
사사기 18장 14-31절
영적적용:사단의 최후전략
요약
사단의 최후의 전략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던 것처럼 강압책이다. 이 사단의 역사는
세상의 모든 구조를 이용하여 일어난다. 신앙의 안일함과 소극적인 자세와 자만 그리고
성도의 교통 부재는 시험을 불러온다. 사단은 강압적으로 들어와 모든 것을 빼앗고 지배하고
위협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고자 한다. 더욱 사단이 인본주의로서 집을 짓게 되면 추방시키기
어렵게 된다. 이 강압책은 성도에게는 더 큰 영광을 사단에게는 스스로의 멸망을 불러온다.
강해
오늘은 미가강해 마지막 시간입니다. 그동안 사단의 계략에 관해서 말씀을 상고했습니
다. 사단의 계략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사단의 계략은 언제나 진리를 왜곡시키는 것이
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단을 이기는 길은 오직 진리에 서는 것입니다.
본문은 한 가정 미가의 우상이 어떻게 한 지파의 우상으로 발전하여 이스라엘 언약의
공동체를 파괴시켰는가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 본문에 깔린 영맥을 통한 영적비유는 사단의 최후의 전략입니다. 사
단의 최후의 전략은 강압적인 방법입니다. 마치 예수님을 온갖 미혹으로 넘어뜨리려고
했으나 성공하지 못하자 최후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그 방법입니다. 오늘은 이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말씀과 각각 거기에 대처하는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이 역사는 이 세상 전반에 걸쳐서 이루어집니다.
16절에 "단 자손 육백 명은 병기를 띠고 문 입구에 서니라" 했습니다.
여기 단 자손의 육백 명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 의미는 이 세상 전반적인 구조 전체
를 기리킵니다. 창49:17의 야곱의 예언대로 단 지파는 사단의 상징입니다. "단은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로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했습니다.
그런데 육백 명이라고 했습니다. 백도 아니고 삼백도 아니고 칠백도 육백입니다. 육백은
6 곱하기 백에서 나온 수입니다. 그 동안 숫자가 사용되는 의미를 많이 경험했기 때문에
육백이라면 그렇게 썩 좋은 내용은 아닐 것이라는 짐작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육
은 사람 혹은 짐승 혹은 세상의 수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엿새 되는 날에 사람과 짐
승들을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계13:17-18에 육을 사람의 수요 짐승의 수라고 했
습니다. 또 육은 천지를 창조하신 기간이므로 세상의 수입니다. 그러므로 6은 사람의 수
요 짐승의 수요 세상의 수입니다. 거기다 백은 전부, 전체, 모두, 모든 것을 상징하는 수
입니다.
또 육백 명은 병기를 띠고 있었습니다. 병기는 파괴하고 죽이는 도구입니다. 그러니까
여기 단 자손 육백 명의 군사는 사단이 예수 이름을 박해하기 위해 사용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단은 이 세상의 모든 것 즉 정치 경제 문화 종교 가정
사회 군사 제도 인간 교육 할 것 없이 온갖 것을 다 사용하여 이 땅의 주의 이름을 대적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육백의 의미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지은 찬송가 384장 1절에 "옛 원수 마귀는 이 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
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 고 했던 그 모략과 권세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단이 이 세상의 구조를 이용하여 공격을 편다면 우
리도 그 권세를 이용하여 역공을 펴면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단이 이 세상의 구조들
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지만 좁게는 하나님의 나라와 사단의 나라
라는 두 진영의 대립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진영이 이 세상을 주관하느냐 하는 것은 중
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사단이 이 세상을 주관하지 못하도록 성도들은 기도를 많이 해
야 합니다.
딤전2:1-2에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
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속 기
구들을 무조건 부정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도록 날마다 기도해야 할 것입니
다.
2.사단의 공격은 어떠한 때 이루어질까요?
27-28절에 "단 자손이 미가의 지은 것과 그 제사장을 취하고 라이스에 이르러 한가하
고 평안한 백성을 만나 칼날로 그들을 치며 불로 그 성읍을 사르되 그들을 구원할 자가
없었으니 그 성읍이 베드르홉 가까운 골짜기에 있어서 시돈과 상거가 멀고 상종하는 사
람도 없음이었더라" 했습니다. 이 말씀에는 중요한 네 가지의 사실이 숨어 있습니다.
먼저, 신앙생활이 한가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신앙생활에 한가함은 시험을 불러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다윗도 한가할 때 시험이 왔음
을 기억하십시다.
다음에는, 신앙생활은 전투적이어야 합니다.
여기 평안한 백성은 민간인의 마음으로 이것은 완전한 무방비 상태를 묘사합니다. 지상
교회를 신학에서 일명 전투적인 교회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성도의 신앙생활의 특징은
전투적이어야 합니다. 이런 강함과 적극성의 결여는 곧 영적 죽음을 의미합니다.
다음에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여기 라이스 거민들이 살던 베드르홉 골짜기 평원은 자급자족이 되던 곳이었습니다. 모
든 것이 풍부하여 무역이 필요가 없었습니다. 예를 들면 식량 옷감 철기 과실 목재 석재
등등 모든 것이 풍족했습니다. 이것이 그들만의 사회를 이룰 수 있었던 요인이었습니다.
여기서 교훈해 주는 것은 우리는 결코 자아독립선언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다! 이 자만이 아주 위험한 것입니다. 거듭난 우리라 해도 옳다 옳다 아
니라 아니라 할 만큼의 능력밖에는 없습니다. 이에서 지나는 것은 스스로를 과신하고 신
격화하는 악한 소치입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주께서 깨닫게 해 주실 때만이 가능합니
다.
그리고, 성도의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시돈은 당시 강한 나라였고 무역이 발달했습니다. 그러나 라이스는 시돈과 멀었고 시돈
과 무역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외부의 도움없이 무참히 당한 원인이었습니
다.
이것은 성도와의 교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내가 약할 때 이웃이 나를 도와
주게 됩니다. 교회를 가까이 하고 성도들과의 교제에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히3:13에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됨을 면하라"고 했습니다.
3.사단의 최후의 수단은 강압정책입니다.
본문의 단지파의 행동을 연구해 보면 틀림없는 사단의 특징들을 발견합니다. 비교해 보
십시오. 어느 것 하나 사단과 틀리는 것이 있습니까?
먼저, 사단은 강제로 침투합니다.
17절에 "땅을 탐지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리로 들어가서" 했습니다. 밖에는 단 지파
의 군대들이 엄호를 하고 다섯 사람은 주인의 허락도 없이 침투합니다. 이처럼 사단의
특징은 강제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성령과 악령의 차이가 여기 있는데 성령은 인격적
인 영이시기 때문에 영접하지 않으면 오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악령은 비인격적이기 때
문에 사람들의 마음에 강압적으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악령을 이기려면 이 악령의 속성과 같이 강하게 대적해야 합니다. 악령에게는
비인격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단을 꾸짖고 몰아내야 합니다. 그러면 피하게 됩니다.
다음에, 사단은 강제로 빼앗습니다.
18절에 "그 다섯 사람이 미가의 집에 들어가서 그 새긴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
만든 신상을 취하여 내매" 했습니다. 이 다섯 사람은 허락도 없이 남의 물건들을 취했습
니다. 이것은 도적질입니다. 요10:10에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
려는 것뿐이요" 했는데 이는 사단을 겨냥하신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사단은 믿음을 빼앗고, 축복을 빼앗고, 건강을 빼앗고, 인격을 빼앗고, 기쁨도
행복도 자유도 다 빼앗아 사람의 영혼과 육체에 저주를 입혀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도리
어 사단에게 빼앗겼던 옛 주권을 예수의 이름으로 찾아야 합니다.
다음에, 사단은 강제로 일을 시킵니다.
19-20절에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잠잠하라 네 손을 입에 대라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
의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네가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이 되는 것과 이스라엘 한 지파,
한 가족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 어느 것이 낫겠느냐 제사장이 마음에 기뻐하여 에봇과 드
라빔과 새긴 우상을 취하고 그 백성 중으로 들어가니라" 했습니다.
각종 우상을 빼앗은 단 지파는 이제 레위 소년으로 돈과 명예를 약속하며 제사장까지
빼앗습니다. 이와 같이 사단은 이 세상에 자기들의 종교를 만들어 사람들을 강압적으로
잡아 자기들의 제사장으로 삼고 돈을 약속합니다. 이것이 세상 종교입니다. 그래서 이 세
상 종교는 돈벌이입니다. 사단은 돈벌이를 약속하면서 영혼을 인질로 잡고 있는 것입니
다. 여기서 벗어나는 길은 더 강하신 주님께 나오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다음에, 사단은 강제로 위협합니다.
25-26절에 "단 자손이 그에게 이르되 네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리게 말라 노한 자들이
너희를 쳐서 네 생명과 네 가족의 생명을 잃게 할까 하노라 하고 단 자손이 자기 길을
행한지라 미가가 단 자손이 자기보다 강한 것을 보고 돌이켜 집으로 돌아갔더라" 했습니
다.
본문은 정당방위를 하려는 미가를 위협하여 돌려보내는 내용입니다. 힘이 약한 미가는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사단의 수법입니다. 사단은 언제나 위협을 합니다.
미신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네 가족 차례로 다 잡으러 오겠다' 등의 위협을 하는데 조금
도 속거나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사단은 본래 거짓말장이고 믿는 자에게
그렇게 할 능력이 조금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우리의 머
리털 하나라도 손댈 수 없습니다.
다음에, 각종 세상의 세력을 사용하여 박해합니다.
27-28절에 "단 자손이 미가의 지은 것과 그 제사장을 취하고 라이스에 이르러 한가하
고 평안한 백성을 만나 칼날로 그들을 치며 불로 그 성읍을 사르되" 했습니다.
초대교회 때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박해를 받았습니다. 우리 조선시대에도 얼마나 정
치적인 박해가 심했습니까? 거기다 유교 봉건사상에 물든 가정의 틀 속에서 많은 신자들
이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다음에, 사단은 강제로 집을 짓습니다.
28절에 "단 자손이 성읍을 중건하고 거기 거하며" 했습니다. 사단의 일시적인 침투는
노력하면 쉽게 물리칠 수 있지만 집을 지으면 어렵습니다. 사단의 집짓는 재료는 온갖
인본주의 사상입니다. 여기에는 각종 비진리, 어떤 사상들, 인간의 욕망 등입니다. 이것
들이 깊이 침투하면 그 사회나 사람들은 완고해집니다.
귀신에 들린 사람 중에 귀신이 이미 그 인격에 집을 지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어떤 사상이나 욕망이나 원한에 깊이 사로잡혀 귀신이 들린 사람입니다. 이런 경우 그
사상이나 욕망이나 원한을 버리지 않는 한 나가지 않습니다. 쫓아내도 다시 들어옵니다.
이런 경우 칠 배나 강합니다(마12:45). 그것은 이미 사단이 그 인격에 집을 지었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이런 환자들은 말씀과 기도와 사랑으로 그 인격을 치료함과 귀신 추방을
병행해야 합니다.
이러한 사단의 박해를 이기는 길 중 하나는 기도요, 다른 하나는 목숨을 내 거는 것입
니다. 만약 박해가 온다면 자기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예수님처럼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계12:11에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했습니다.
4.사단의 강압적인 결과는 스스로의 멸망입니다.
30절에 "이 백성이 사로 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 했습니다.
여기 단지파의 멸망에 관한 학자들의 견해가 분분하나 블레셋에 법괘를 빼앗길 때 단
자손들이 사로잡혔을 것으로 보는 설이 유력합니다. 정복해야 할 정당성이 없는 라이스
백성들을 죽인 단은 결국 하나님이 공의로운 심판을 받았습니다.
마치 모르드게를 죽이려던 하만이 자기가 장대에 달려 죽었고, 예수님을 죽인 원수 사
단은 자신이 그곳에 못박히고 말았듯, 사단의 박해가 포악할수록 그것은 참된 하나님 백
성들에게 승리를 안겨다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단이 강압적인 시험을 줄 때는 기뻐
해야 합니다. 이것은 사단 스스로의 멸망을 자초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는 사단의 강압적인 시험을 십자가에 죽기
까지 참으사 승리하셨습니다. 우리도 세상의 온갖 구조를 통해서 역사하려는 사단에게
도리어 역공격을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말고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때까지 사단과 싸워서 승리해야 하겠습니다. 이 귀한 영광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