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지가미신사(宇治上神社)는 宇治神社(우지신사)의 동쪽, 쵸지츠산(朝日山)을 배경으로 한 한적한 산기슭에 위치한 시키나이샤(式内社)이다. 옛 사격(社格)은 손샤(村社)였으며, 주신(主神)으로 우지노와키이라쓰코 왕자(稚郎子皇子)를 모시며, 配祀神(배사신)으로 오진일왕(応神天皇)과 닌토쿠일왕(仁徳天皇)을 함께 모시는 옛 손샤(村社)로, 본래는 우지신사(宇治神社)와 함께 우지노고(宇治郷) 전역을 우지코(氏子)로 두었으나, 현재는 큐마기시마무라(旧槙島村)만이 그 관할 구역으로 남아 있다. 고도 교토의 문화재(古都京都の文化財)의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원래 후지와라 가문(藤原氏)의 우지데라(氏寺)인 뵤도인(平等院)에 대응하는 우지가미(氏神)였을 것으로 보이며, 당시에는 규모가 보다 컷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경내에는 텐코우세키(天降石)와 이와가미(岩神)이라 불리는 거석이 남아 있으며, 이는 이와사카(磐境) 신앙과 관련된 흔적으로 여겨진다. 오진일왕(応神天皇)의 우지리큐(宇治離宮)에 대한 정확한 유적은 현재 확인되지 않으나, 지형적으로 현재 우지신사(宇治神社)의 위치로 보이지만, 리큐(離宮)라는 표현과 달리, 이는 간소한 목조 이타부키(板葺)의 건물로, 별도의 초석, 기와 등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고지키(古事記)』와 니혼쇼키(日本書紀)에 의하면, 오진일왕(応神天皇)이 왕자 시절 야마토(大和)에서 오우미(近江)로 가다가 고와타쿠슈(木幡宮主) 야카와에히메(矢河枝比売)를 만나 아내로 삼았다고 하며,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는 지역 명칭을 따라 우지노와키이라쓰코(菟道稚郎子)라 불렸다. 이후, 이곳에 왕자의 미야이(宮居)가 지어져, 기리하라히케타노미야(桐原日桁宮)라 불렸다. 왕자가 죽고나서, 우지신사(宇治神社)로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혼덴(本殿)에 모셔져 있는 제신은, 좌전(左殿)에 우지노와키이라쓰코노미코토(菟道稚郎子命)이고, 니혼쇼키(日本書紀)에서 우지노와키이라쓰코(菟道稚郎子), 코지키(古事記)에서 우지노와키이라쓰코(宇遅之和紀郎子)로 표기되어 있다. 오진일왕(応神天皇)의 왕자로, 일왕의 총애를 받아 왕자로 책봉되었으나, 이복형인 오오사자키노미코토(大鷦鷯尊), 후의 닌토쿠일왕(仁徳天皇)에게 왕위를 양보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전해진다. 중전(中殿)에는 15대 일왕 오진일왕(応神天皇)이 모셔져 있으며, 우지노와키이라쓰코노미코토(菟道稚郎子命)의 부친이다. 우전(右殿)에는 16대 일왕 닌토쿠일왕(仁徳天皇)이 모셔져 있으며, 우지노와키이라쓰코노미코토(菟道稚郎子命)의 이복형이다.
927년에 쓰여진 엔기시키(延喜式) 신메에쵸(神名帳)에는 "우지신사(宇治神社) 이좌(二座) 쿠와유키(鍬靫) "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 중 하나가 우지가미신사(宇治上神社)로 추정된다. 우지노와키이라쓰코(菟道稚郎子)를 제신으로 하는 것은 확실하나, 나머지 한 자리에 대해서는 오진일왕(応神天皇), 닌토쿠일왕(仁徳天皇) 또는 모친 야카와에히메(矢河枝比売) 중 누구를 모신 것인지에 대한 여러 설이 존재한다. 쿠와유키(鍬靫)는 祈年祭(기년제) 때 조정으로부터 쟁기(鍬)와 화살통(靫)을 봉헌받았음을 의미한다. 일부 학설에서는 본래 우지가미신사(宇治上神社)의 본전이 좌우 두 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따라서 "宇治神社二座" 문구 자체가 우지가미신사(宇治上神社)만을 지칭한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이후, 뵤도인(平等院)이 창건되면서 우지가미신사(宇治上神社)와 우지신사((宇治神社)는 뵤도인(平等院)의 친쥬샤(鎮守社)로 삼았다. 메이지 시대 이전에는 우지가미신사(宇治上神社)가 가미샤(上社) 또는 혼구(本宮), 우지신사(宇治神社)가 시모샤(下社) 또는 와카미야(若宮)로 불렸으며, 두 신사를 합쳐 우지리큐묘진(宇治離宮明神) 또는 우지리큐하치만구(宇治離宮八幡宮)라고 칭하기도 하였다. 이후, 우지신사(宇治神社)와 분리되어 손샤(村社)로 지정되었다. 2004년 2월, 나라문화재연구소(奈良文化財研究所)와 우지시(宇治市) 등에 의해 실시된 연륜연대측정조사 결과, 혼덴(本殿)이 1060년경에 건립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를 통해 우지가미신사(宇治上神社)의 혼덴이 현존 최고(最古)의 신사 건축임이 입증되었으며, 1052년에 창건된 뵤도인(平等院)과의 깊은 연관성도 주목받고 있다. 우지가미신사(宇治上神社)의 창건 연대는 명확하지 않다. 근처에 우지신사(宇治神社)가 위치하고 있고, 두 신사는 본래 일체를 이루는 관계였던 것으로 보이고, 야마시로노쿠니 후도키(山城国風土記)에 따르면, 경내는 우지노와키이라쓰코(菟道稚郎子)의 리큐(離宮)였던 기리하라히케타노미야(桐原日桁宮)의 옛 터로 전해지며, 두 신사의 옛 명칭인 리큐묘진(離宮明神)도 이에 기인한다고 한다.
국보로 지정된 헤이안시대(平安時代) 후기 건축물인 혼덴(本殿)은 현존하는 신사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평가되며, 잇켄샤(一間社) 구조의 나가레즈쿠리(流造) 양식으로 세 개의 사당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현재 좌측에는 우지노와키이라쓰코 왕자(稚郎子皇子), 우측에는 닌토쿠일왕(仁徳天皇), 중앙에는 오진일왕(応神天皇)을 모시고 있다. 원래 좌측 사당 하나만 있었다가, 우측 사당이 추가되었고, 마지막으로 중앙 사당이 더해져 현재의 삼전(三殿) 구조를 이루게 되어 좌우의 사당에 비해 중앙의 사당이 현저히 작게 된 것으로 보이며, 이는 신사의 제신(祭神)과 신앙의 변천을 반영하는 특징적인 요소이다. 혼덴(本殿)을 보호하기 위해 외부에 설치된 오오이야(覆屋)는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에 건립된 국보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나가레즈쿠리(流造) 양식이며, 히와다부키(檜皮葺) 지붕을 갖추고 있다.
각 사당은 모두 헤이안시대(平安時代)의 건축물이며, 특히 좌우 사당의 카에루마타(蟇股)는 간결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멋을 지니고 있다. 이는 츄손지(中尊寺) 콘지키도(金色堂), 가미고다이고(上醍醐) 야쿠시도(薬師堂)의 카에루마타와 함께 후지와라시대(藤原時代)의 산카에루마타(三蟇股)로 불리며 귀중한 문화재로 평가된다. 나라시대(奈良時代)의 카에루마타는 판형(板狀)이었으나, 헤이안시대(平安時代) 후기에는 도려낸 쿠리누키시키(繰抜式)로 변화하였다. 또한, 좌우 사당의 문에는 도지(童子) 및 즈이신조(随身像) 네 점이 그려져 있다. 이는 후지와라 시대 세속화의 중요한 연구 자료로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좌전과 우전은 구조적으로 유사하며, 가에루마타(蟇股)가 배치되어 있다. 양쪽의 전각은 규모나 형식이 대체로 동일하지만, 세부 양식에서 좌전이 우전보다 연대가 앞선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중전은 규모가 작고, 공포가 후나히지키(舟肘木)로 되어 있으며, 가에루마타를 사용하지 않는 등 좌우 전각과 차이가 있다. 내전과 오오이야(覆屋)는 구조적으로 일체화되어 있는데, 좌전과 우전의 측면부 및 지붕 일부는 오오이야(覆屋)와 공용 구조를 이룬다. 1902년 4월 17일, 고사사보존법(古社寺保存法)에 따라 특별보호건조물(特別保護建造物)로 지정되었으며, 1950년 문화재보호법(文化財保護法) 시행 이후 중요문화재(重要文化財)로 지정되었다. 이후 1952년 3월 29일, 국보(國寶)로 지정되었다.
좌전과 우전의 내진(內陣) 문 내부에는 색채화가 그려져 있으며, 건축물과는 별도로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좌전의 문 그림에는 동자상(童子像) 2매에 당나라 의상을 입은 동자(童子) 두 명이 그려져 있고, 우전의 문 그림에는 수신상(随身像) 2매에 속새(束帯)를 두르고 홀(笏)을 든 수진(随身) 두 명이 묘사되어 있다. 비록 많은 부분이 박락되었으나, 헤이안 시대의 수적화(垂迹画) 사례로서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1977년 6월 11일에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하이덴(拝殿)은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 전기의 국보로, 경내 중앙에 위치하며 남서쪽을 향해 있다. 정면 6칸, 측면 3칸의 단층 구조이다. 지붕은 키리즈마즈쿠리(切妻造)로 되어 있으며, 좌우에 히사시(庇)를 덧붙여 외관상 이리모야즈쿠리(入母屋造)처럼 보이도록 설계되었다. 정면에는 잇켄(一間)의 코하이(向拝)가 설치되어 있으며, 중앙부에는 이타카라토(板唐戸)를 두고, 시토미도(蔀戸)를 배치하였다. 내부는 바닥이 낮고 전체적으로 주택과 같은 구조를 보이며, 우지리큐(宇治離宮)의 유구로 전해지는 신덴즈쿠리(寝殿造) 양식을 따른 주거형 건축물이다. 건물의 주된 구조는 가로 6칸, 세로 3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좌우에 각각 1칸의 히사시(庇)가 부가되어 있다. 가로 6칸 중 좌측 끝 1칸은 기둥 간격이 좁고, 인접한 히사시(庇) 부분과 함께 폐쇄된 공간을 형성한다. 건물 우측 끝의 히사시(庇) 부분 또한 하나의 방을 이루며, 그 사이 중앙부는 개방된 넓은 공간으로 되어 있다. 지붕은 양측 끝에 카타나가레(片流れ)의 히사시(庇) 지붕이 덧붙여져 있다. 지붕과 히사시(庇) 지붕의 접합부에서 처마 선이 굽어져 있으며, 이러한 형식을 스가루하후(縋破風)라고 한다. 주변에는 구레엔(榑縁)이 둘러져 있으며, 내부는 널바닥과 천장이 갖춰져 있고, 시토미도(蔀戸)를 다수 사용하여 주택과 같은 형태이다. 1902년 7월 31일, 고사사보존법(古社寺保存法)에 따라 특별보호건조물로 지정되었으며, 1950년 문화재보호법 시행 이후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후 1952년 11월 22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경내에는 셋샤(攝社)인 카스카신사(春日神社)가 자리하고 있으며, 혼덴(本殿)의 우측에 위치한다. 본전은 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 잇켄샤(一間社)로 나가레즈쿠리(流造) 양식의 히와다부키(檜皮葺) 지붕이 얹혀 있다. 1912년 2월 8일, 고사사보존법(古社寺保存法)에 따라 특별보호건조물로 지정되었으며, 1950년 문화재보호법 시행 이후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