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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및 참고 문헌」
- 지도선집 ‘숙명을 사명으로’
- 법화경의 지혜 ‘견보탑품’
- 어의구전 ‘보탑품지사’ 강의
- 생사일대사혈맥초 ‘묘호렌게쿄의 생사’
『이와 같은 보탑(寶塔)도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 이외(以外)에는 없느니라.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를 보면 보탑즉일체중생(寶塔卽一切衆生) 일체중생즉(一切衆生卽)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전체(全體)이니라 운운(云云)』
아부쓰보 어서 1304에는,
『말법(末法)에 들어와서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하는 남녀(男女)의 모습 이외(以外)에 보탑(寶塔)은 없느니라.
만약 그렇다면 귀천상하(貴賤上下)를 가리지 않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자신(自身)이 보탑(寶塔)이고 자신(自身)이 또한 다보여래(多寶如來)이니라.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 이외(以外)에 보탑(寶塔)은 없으며,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이 보탑(寶塔)이고 보탑(寶塔)이 또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지금 아부쓰상인(阿佛上人) 의 일신(一身)은 지수화풍공(地水火風空)의 오대(五大)이며, 이 오대(五大)는 제목(題目)의 오자(五字)이니라.
그러므로 아부쓰보(阿佛房)가 바로 보탑(寶塔)이고 보탑(寶塔)이 바로 아부쓰보(阿佛房)이며 이것 이외(以外)의 재각(才覺)은 무익(無益)하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가장 존극한 당체이며 자신이 바로 보탑입니다.
보탑품 의식에 관해 도다 선생님께서는 우리 생명에는 불계라는 아주 불가사의한 생명이 명복(冥伏)해 있으며 이 생명의 힘과 상태는 상상도 할 수 없고 필설로도 다할 수 없지만 그러나 이 불계를 우리 생명체 상에 구현할 수 있다고 분명히 지도해 주셨습니다.
또한 ‘우리 생명 그 자체도 명복해 있는 불계를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다고 설한 것이 바로 이 보탑품 의식이다.’ 라고 명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대성인께서는 말법에 들어와서 묘법을 수지하고 신심에 힘쓰는 사람이 바로 장엄하고 거대한 보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김새나 처지는 모두 다릅니다.
그러나 어본존을 수지하고 제목을 부르고 광선유포를 위해 투쟁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모습을 고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칠보(七寶)로 장식된 장엄한 생명의 보탑으로 빛날 수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 모습 그대로 다보여래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묘법을 수지하고 신심에 힘쓰는 우리의 모습과 행동이 그대로 다보여래의 행동이 되는 것이며, 묘법을 수지한다는 이외의 조건은 전혀 없는 ‘있는 그대로’입니다.
그러므로 이케다 선생님께서는, ‘무리하게 지어내거나 잘 보이려 애쓰거나 남을 부러워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고민하고 있다면 그 모습 그대로 신심에 힘쓰면 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신심을 관철하고 절대 지지 않는 삶의 자세가 그대로 승리의 증거이자 법화경의 증명이 됩니다.’ 라고 지도해 주셨습니다.
우리 자신이 바로 남묘호렌게쿄라고 확실히 정해야 합니다.
자신의 가슴속에 끄떡도 하지 않는 묘법의 보탑을 엄연하게 세우기 위한 신심입니다.
강성한 기원으로 원품의 무명을 타파하고 용현한 불계의 생명이 보탑입니다.
어떤 고뇌와 절망도 딛고 일어나 승리할 수 있는 생명에 갖춰진 본원적인 힘입니다.
어본존을 수지하는 우리는 언제 어디에 있든 자신의 가슴속에 보탑을 세워 지금 있는 장소를 상적광토로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자기 생명의 보탑을 세울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명의 보탑도 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한 어본존이고 신심입니다.
그것을 이루어내는 것이 창가의 사제이고 이체동심의 단결입니다.
따라서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 신념이 중요합니다.
도키니부인답서 어서 976에,
『우리들은 부처임에 의심이 없노라고 생각하면 무슨 한탄이 있겠느뇨.
황비(皇妃)가 된다 한들 무엇하리요.
천(天)에 태어난다 할지라도 소용없느니라.』라고 반드시 행복해지는 신심입니다.
신심을 해서 받는 시련은 숙명전환, 일생성불의 길을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것은 절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무엇 하나 남부럽지 않은 황녀가 되거나 천계에 태어나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계에 태어난다 해도 그것은 결국 영원성이 없는 덧없는 기쁨입니다.
니치렌 대성인 불법은 현실을 떠나 행복을 찾는 종교가 아닙니다.
진흙탕에서 청정한 연꽃이 피어나듯 철저히 현실사회 한복판에서 고난에 지지 않는 강하고 깨끗한 생명을 용현해 이 일생에 무너지지 않는 행복을 쟁취하기 위한 종교입니다.
또한 이타(利他)의 일념이 경애혁명의 회전축이며 격려의 행동이 인간혁명을 전파시키는 힘입니다.
그래야 진정한 의미에서의 보탑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괴로움을 숙업이라고만 받아들이면 소극적이 됩니다.
‘그것을 사명을 위해 일부러 떠안은 고민이다.’
‘신심으로 이겨내겠다고 내가 서원했다.’
‘불법의 위대한 힘을 보여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다.’ 라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다시 받아들일 수 있는 강한 생명력이 솟구칩니다.
이것이 숙명을 사명으로 바꾸는 자세입니다.
사명에 눈뜨면 인간은 한없이 강해집니다.
스스로 이겨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승리 드라마로 만인성불의 길을 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정하면 자신의 괴로움에 잠겨 있던 어두운 마음에 용기와 희망의 빛이 쏟아집니다.
자기 한 사람의 승리가 자타 함께하는 승리로 크게 경애를 넓혀 인생의 의미를 풍요롭게 합니다.
도다 선생님께서는, “자신이 행복해지는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간단한 일이다.
남까지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신심의 근저이다.‘ 라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즉, 이타(利他)의 일념이 경애혁명의 회전축이 됩니다.
격려의 행동이 자타 함께 인간혁명을 전파시키는 힘이 됩니다.
그래야 진정한 의미에서 보탑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묘법 홍통은 금생 인계의 추억입니다.
지묘법화문답초에서, 『모름지기 마음을 하나로 하여 남묘호렌게쿄라고 나도 부르고 타인에게도 권하는 일만이 금생 인계의 추억이 되느니라.』라고 묘법(妙法)을 부르고 넓히는 실천은 상대방을 행복의 궤도로 이끄는 것은 물론 자신도 복덕에 감싸여 자타 함께 행복해지는 지름길입니다.
홍교를 위한 행동에는 불도수행의 일체를 포함한 신심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나날의 도전은 벗을 구제하고, 사회의 안온과 평화를 구축하는 확실한 자애의 원천이 됩니다.
우리의 도전이 벗을 구제하고 사회 안온과 평화를 구축하는 확실한 원천이 됩니다.
원대한 세계 광선유포라 해도 그 근본은 눈앞의 한 사람과 나누는 대화에서 시작됩니다.
이 세상에서 다하여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대지에서 솟아나온 우리이라면 이 세상에서 다하여야 할 사명이 있지 않겠습니까.'
’나이가 많아서 죽는 것이 아니라 사명을 다하면 죽는 것이다.‘ 라는 말씀을 심간에 새겨봅니다.
마지막으로 기회가 되어 오늘은 묘호렌게쿄의 생사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불법은 인간의 생사의 고뇌를 해결하는 방도를 명확히 설한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그 법화경의 진수를 말법에 전개하신 니치렌 대성인은 고뇌의 근본 원인인 무명을 제거하여 모든 사람이 삼세 영원히 행복한 경애를 체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불법이 해결해야 할 마지막 문제는 죽음입니다.‘ 라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생사 이법(二法)은 우주 근원의 묘법 자체에 본래 구비되어 있으며, 생과 사의 상(相)을 나타내는 십계의 중생이 모두 묘법의 당체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현실세계의 중생이 고민하는 생사는 본래의 생사가 아니고, 영원한 묘법의 리듬 자체의 생사가 본래의 생사라는 뜻으로 법화경 수량품에서 이것을 여래가 여실지견(如實知見)한 깨달음의 내용으로 설합니다.
부처의 눈으로 보면 본래 십계의 모든 중생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며, 묘법의 당체인 중생에게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인 미혹이나 고뇌 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처는 지견하셨습니다.
그러나 범부는 대부분 십계 중에 육도윤회(六道輪廻)할 뿐이고, 사성(四聖)의 경지(境地)를 멀리 바라볼 수밖에 없으며, 특히 참된 생사의 고뇌를 극복할 수 있는 불계는 아득한 저편의 이상향(理想鄕)에 지나지 않으며 꿈속의 꿈일 뿐입니다.
니치렌 대성인께서는 생사일대사 혈맥초에서 십계 중생의 생사에 대한 뜻을 더욱 깊이 밝히기 위해 당체연화(當體蓮華)를 말씀하셨습니다.
당체연화는 십계의 모든 중생이 묘법의 당체라는 의미로 우리 중생의 몸이 십계호구의 당체이고, 그 몸에 불계를 나타낼 수 있음을 밝힌 법리입니다.
연화는 인과구시(因果俱時)로 이를테면 지금 이 순간의 생명은 원인과 결과를 동시에 갖추고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결국 십계호구를 말하며, 지금 십계 중 어떤 일계의 모습을 나타내지만, 다음 순간에 십계의 또 다른 계로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며, 특히 순간적인 생명에 성불의 인(因)인 구계도 과(果)인 불계도 동시에 갖춰진 것을 비유합니다.
이 당체연화의 관점에서 보면 생사를 반복하는 생명 자체는 본래 선도 악도 아니며, 연(緣)에 따라 미혹의 상태 혹은 깨달음의 상태가 되는 것으로, 십계에서 말하면 지옥계에서 불계까지 모든 경애를 체현(體現)하는 것이 생명 본연의 모습인 것입니다.
연화의 법, 즉 인과구시의 묘법은 생명이 본래부터 지닌 무한한 잠재적 기능성을 열고 삼세에 걸쳐 자유자재로운 경애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만물의 생사와 그 변화는 즉 묘호렌게쿄의 생사입니다.
『생사(生死) 이법(二法)은 일심(一心)의 묘용(妙用)이요, 유무(有無)의 이도(二道)는 본각(本覺)의 진덕(眞德)』입니다.
이것은 모든 변화가 인과구시의 묘법이라는 근본적인 일법이 만든 변화임을 명백히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일심의 묘용이란 일념삼천의 법리라고 설명하는 것이 이해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일심, 일념의 변혁이 경애를 크게 바꾸고 세계를 엽니다.
그것은 생명 자체가 십계호구이므로, 삼천제법으로 열어 변혁할 수 있습니다.
대성인은 천지도, 그 기본인 음양도, 일월도, 오행도 결국 묘호렌게쿄의 생사를 표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만물의 생사는 생사의 이법이 아님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듯이 묘호렌게쿄의 생사입니다.
우리의 생명도 의정과 함께 묘호렌게쿄의 당체이고, 만물도 묘호렌게쿄의 당체입니다.
석가와 다보 이불(二佛)도 생사이법입니다.
이것은 부처의 생명 당체가 근본적으로 영원한 묘법이면서 현상적인 면에서는 생에서 사로 양상을 전환하는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다보불은 아득한 옛날에 성불해서 입멸한 고불(古佛)로서 법화경을 설법하는 회좌에 나타나서 법화경이 진실이라고 증명하였고, 이것은 묘법의 당체가 사에서 생으로 전환하는 양상을 상징합니다.
즉 어느 것이나 묘법을 가르쳐 나타내기 위한 생사입니다.
그러기 위해 묘법의 당체인 생명이 본래 갖춘 생사를 이용하므로 석가와 다보 이불의 생사는 묘법의 생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생사는 묘호렌게쿄의 생사로, 사후(死後)의 생명은 대우주에 융화되는 것입니다.
이 대우주의 생명 자체가 십계호구의 생명이므로 대우주에 지옥도 아귀도 있으며 불계도 있습니다.
우리도 또한 대우주의 지옥계, 아귀계, 보살계 그리고 불계 등, 각각의 경계에 융화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의 생명은 융화해도 본디 우주의 생명 그 자체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어느 의미에서 우주는 생명의 바다이며, 이 우주의 바다는 시시각각 변화를 일으키고 항상 움직이며 변하면서 생과 사의 리듬을 연주합니다.
일차원적인 비유에서 말하면, 우리 개개의 생명은 우주라는 대해에 생겨난 물마루와 같습니다.
파도가 일어나는 것이 우리 개개의 생명의 생(生). 또 바다와 하나가 되면 우리 생명의 사(死)입니다.
우주에 융화한 사후의 생명은 바다의 큰 물결과 같으며 결코 한 곳에 뭉쳐 있지 않습니다.
우주의 생사 리듬에 맞추어 우주에 편만하여 움직입니다.
도다 선생님께서는, ’그것이 연에 따라 우주 속에서 가장 어울리는 색심(色心)과 환경을 선택해서 하나의 생명으로 태어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불계의 생사는 자유자재로 자기가 태어나고 싶은 곳에, 태어나고 싶을 때, 태어나고 싶은 모습으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묘호렌게쿄의 생사입니다.
그러므로 묘호렌게쿄의 생사에서는 사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광대하고 자비의 행업에 넘치는 우주와 하나가 되는 것이 불계의 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주의 자비와 생명력을 몸으로 나타내고, 발랄하게 활동하며 부처와 똑같이 행동, 즉 사람을 존경하고 만인을 구제하는 행동을 무상의 기쁨으로 실천하며 살아갑니다.
살아 있을 때는 생명 속에 광대한 불계를 나타내고 그 생명력으로 이 세상의 사명을 완수합니다.
대성인께서는 삼세제불총감문교상폐립에서 574에서,
『상상품(上上品)이 적광의 왕생을 이루어 수유간(須臾間)에 구계생사의 꿈속에 돌아와서 몸을 시방법계의 국토에 편만하고 마음을 일체유정의 신중에 넣어서 내로 부터는 권발(勸發)하고 외로부터는 인도(引導)하여 내외상응하고 인연 화합하여 자재신통의 자비의 힘을 베풀어 널리 중생을 이익케 함에 막힘 없을지어다.』라는 어서 말씀대로 사람을 구제하려고 태어나기를 원하는 생명은 자유롭게, 막힘없이 바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사명 있는 구원의 본진에 바로 다시 합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깊이 깊이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매일매일 의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