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주의(기억+체험) 기반의 우연적이고 개별적인 것들이 중첩되어 쌓여가는 현대예술의 면모를 드러낸 3군데 전시를 소개한다.
1)아마도 예술공간 <홀로 작동하지 않는 것들>, 2)나인원 한남 가나아트센터 <엔트로피>, 3)갤러리바톤 <Her Sides of Us>
첫 번째 방문지는 Amado Art(아마도 예술공간)이다. 2013년 개관한 ‘과정과 담론 중시, 비평의 활성화’ 에 포커스하는 문화 공간이다.
이곳이 맘에 드는 첫번째 이유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처음엔 입구가 어디인지도 잘 몰랐다. 스스로 이름을 기입하고 그냥 돌아다니면 된다. 그래서 어디 CC TV가 설치되어 있나 하는 생각도 했었다는^^
전시 타이틀은 <홀로 작동하지 않는 것들> (2020.8.28~9.27)으로, 한 가지와 다른 한 가지가 만나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모습을 담았다.
최모민 작 <양배추와 곤충1>(2020)
양배추와 곤충은 각기 존재하지 않고 결합되었을 때 우리에게 어떠한 생각을 가지게 하는가?
최모민 작 <양배추와 곤충2>(2020) & 최모민 작 <양배추와 곤충3>(2020)
큐레이터 왈, "연필과 카세트 테이프가 있다. 연필은 무언가를 기록하고 카세트 테이프는 저장된 내용을 재생시키는 데 그 존재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 두가지 사물이 같은 곳에 위치할 때 관찰자의 체험적 요소가 개입하며 연필은 늘어진 카세트 테이프를 감는 용도로 사용된다는 이미지를 촉발시킨다. 이렇듯 관계없는 두 가지 이상의 정보가 한 곳에 있을 때 의도와 상관없이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을 특수관계로 정의한다."
작가 의도, 세상은 이렇다고 정의하는 것에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닌, 각자의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의도는 다양화된다. 세상은 그걸 인정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다.
최모민 작<구멍 The Hole>(2020)
전시관 공간은 날 것 그대로다. 벽에서 세월의 흔적, 시간의 흔적이 느껴진다. 요즘은 전시관들이 너무나 깔끔해서 이런 공간이 오히려 새로워 보인다. 이러한 것이 세상의 아이러니이다.
"도래하고 있는 시간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설명서에는 거창하게 표현되어 있지만, 이런 저런 설명을 떠나 화폭에서 뭔가 억압되어 있다는 느낌을 강렬하게 받았다. 나의 얼굴을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 혹은 가면을 쓴 얼굴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같은.
최모민 작 <태우다 Burnig>(2020) & <계단의 사람들 The People on the stair>(2020)
강나영 임노식 최모민 작 <홀로 작동하지 않는 것들>(2020)
강나영 임노식 최모민 작 <홀로 작동하지 않는 것들>(2020)
지하로 내려간다. "안쪽에 전시가 이어집니다" 라는 글자가 보인다. 포기하지 말고 저 공간 안 쪽으로 들어가 보자.
"도래할 시간이 멈추고 시선이 이동한다"
강나영 작 <기다리는 조각들 They are waiting for :^)>(2020)
계속 화살표를 따라 더 들어가 보자. 지하1층 복도이며, 오른쪽에 방들이 병렬식으로 이어져 있는 주택 구조이다.
이 방에 들어섰다. 관람객 참여 공간이다. 의자 아래쪽에 "앉아서 관람하는 작품입니다" 라고 쓰여있다. 의자에 앉으니, 센서가 작동하는지 선풍기가 돌고 눈 앞에서 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른쪽에는 감자칩이 있다. 진짜였으면 극사실주의로 치부했겠으나, 세라믹으로 만든 칩이었다^^
의자에 앉으면 정면에 이러한 activity가 펼쳐진다. 오른쪽 살바퀴가 돌아가고 왼쪽 땅바닥에 있던 별이 흔들흔들하며 천장까지 올라간다.
강나영 작 <별(똥)별을 보기 위해 만든 의자 Until you see a shooting star>(2020)
"도래한 시간은 시간과 공간을 압축한다."
임노식 잘 <드로잉 1, 2, 3>(2020)
임노식 작 <Sand sleding slope 05>(2020)
모래에 돌진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인데, 아래의 문 밖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었던 창문에 붙어 있는 4점도 전시 작품 일부였다.
임노식 작 <Sand sleding slope 01~04>(2020)
임노식 작 <Disappearing Time>(2020)
세월의 때가 덕지덕지한 '아마도 예술공간'을 떠나 5~6분을 걸어오면 이번엔 신상 동네 나인원한남 상가에 위치한 '가나아트센터(아래 사진 가운데)'에 들렀다. 스타벅스와 또 다른 커피숍 '블루 보틀'이 옆에 있다.
브루클린 기반의 현대예술가 호세 팔라(Jose Pala 1973~)의 한국 첫 개인전 <엔트로피즈(Entropies)>(2020.9.10~10.4)이다. 코로나19 전염병 확산에 불안감과 격변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그림이라는 설명이 있는데, 솔직이 이러한 추상화 기법은 뭔가 새롭지는 않았다.
<A better chance for clear skies>(2020)
창조성이 결한 느낌이 들었지만, 어떻게 변할 지 모르는 우연으로 점철된 세상, 특히 2020년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변하는 세계환경의 공감은 충분했다. 엔트로피는 물질이 변형되면 다시 원래 그 상태로 되돌아가기 불가능한 것인데, 그런 면에서 이제 우리는 코로나19 이전 사회로 돌아갈 수 없음이리라.
<Infinite Steps Towards a Better World>(2020)
호세 팔라의 작품보다 아래 사진의 안쪽 사무실에 걸려 있는 루이 뷔통 옷 그림이 더욱 눈이 띄었다는^^
<The Names of Solidarity>(2020) by Jose Pala
다음 여정은 '갤러리 바톤'이다. 화창한 가을날씨를 만끽하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갤러리 바톤'은 이집트대사관 바로 옆 건물에 위치한다. 아래 입구 왼쪽 벽면에 설치된 파란색 널판지 같은 것도 작품이다. 지니 서(Jinnie Seo) 작가의 <Her Sides of Us>(2020.8.27~9.29) 전시이다.
지니 서<Into the Blue Yonder>(2020) - 나무판에 한지를 덮고 아크릴로 칠한 작품이다.
지니 서 작<Perchance>(2020) - 생소한 영어단어라 찾아보니 '아마 어쩌면'이라는 뜻이다.
지니 서 작<Perchance>(2020) - Dtail - 동일한 패턴의 나열 같지만, 자세히 보면 다른 조합의 3면으로 이루어진 설치작품이다. 현대의 기워드는 '우연'이다. 그리고 '불확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아마도'를 걸치고 인생을 산다. 불안해서 아마도(?) 누군가 확실하다고 해주면 따라하는 노예근성이 편하기도 하다.
지니 서 작 <Her Sides of Us 4,7,2>(2020) - 위의 작품 3개는 더 위의 copper glance 3면으로 된 설치물의 밑그림이다. 각각 다르게 생겼다. 그런데 멀리서 보면 유사해 보이지 않은가. 그것이 인간이 아닐까 싶다. 인간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 너, 그, 그녀 다 다르다.
지니 서 작 <Cornerstone>(2020)
지니 서 작<Roundabout>(2020)
지니 서 작 <Our Sides Illuminated (for my father>(2020)
지니 서 작 <Her Sides Pulsating>(2020) - 특이하게도 작품 설명서에 따르면 작품 전체가 하나가 아니다. 각각이 Her Sides Pulsating-Anterior to Love 1~11로 번호가 매겨져 있다. 개별성, 즉 각각의 체험과 경험을 중시하는 듯했다.
설치미술의 특징은 360회전할 수 있고, 따라서 관점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녀의 작업은 "자신의 의식에 기억의 형태로 자리 잡고 있는 특정 순간의 포괄적 감정에서 출발한다." 미니멀리스트 댄 플래빈의 "체계의 개별 부분은 그 자체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을 둘러싼 논리에서 타당하게 쓰이는지가 중요하다" 라는 말은 지니서 창작론 이해에 유용하다고 한다.
갤러치 바톤(파사르디 건물) 옆 건물이 이집트 대사관이다. 벽에 '이집트는 지식의 땅이다(Egypt is the land of knowledge)'가 상형문자로 새겨져 있다.
아래 사진의 건물 위에도 동일한 상형문자가 어슴푸레 보인다. '지식'은 '인간 이성(reason)'에 기반한다. 이집트가 인간 이성의 땅이었던 것은 맞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