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쁜꽃향 2001-10-21
추석 연휴 끝에 여동생이 친정에 다니러 왔다.
서울 사는 친구에게 '난 목포 하당에 간다'라고 했더니
'야~ 그 동네 물이 끝내 준대며'하더란다.
'어머나! 울 언니네 동넨데 그렇게 물이 좋대?'
전국적으로 수돗물값이 가장 비싸서 늘 말썽이 많은 이 동네가
물이 좋다니, 그것도 천리나 떨어진 서울에 소문이 나다니
이게 웬 사건인가 하여 알고본 즉슨 그 물이 그 물이 아니랜다.
그럼 그렇지.
요즘 세상에 수돗물 그냥 마시는 간 큰 사람 있음
한 번 나와보라 그래,
그랬다.
우리 동네가 언제부턴가 '뜨는 도시, 불야성의 신도심'이 되었다.
시내에서 유일하게 땅값이 오르는 동네.
난 그 물 좋은 도시의 가장 전망 좋은 곳에 산다.
눈 뜨면 영산강의 아스라한 안개가 시야에 가득 들어 오는 거실,
어느 호텔 스카이라운지의 풍경조차 부럽지않다.
야경은 어떠한가.
강변의 가로등과 어우러진 광경은 그야말로 한 폭의 절경이다.
눈이라도 내릴라치면 난 영화속의 우아한 여주인공이 된다.
원두 커피 향내에 취해 한껏 멋스럽게 찻잔을 기우리는.
사오년 전이던가, 남편이 처음 이 동네로 이사오자고 성화일 적에
난 이삿짐 싸는 게 귀찮아서 엄청 반대를 했었다.
전세라도 얻겠다던 남편이 의외로 전세값이 너무 비싸
그 돈에 더 보태서 사 버리자며 꼬드길 때에도
난 넘어가지 않았다.
바다가 거실 전체에 꽉 찬다며 전망이 너무 좋다고
조금만 대출 받으면 살 수 있겠다고 설득할 때엔
이미 그 사람 마음이 그쪽으로 잔뜩 기우러진 게 틀림없는 거 같아
결국 동의하고 프리미엄 얹어 좀 무리해서
가장 전망이 좋은 12층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정말 너무 멋진 전망에 취해
눈 뜨면 늘 행복한 마음이 되곤했는데,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동네 주변이 유흥가로 변해가고 있었다.
직원 회식이 있는 날은 집 근처 아무 곳에서나
취향대로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고
2차는 굳이 차를 움직이지 않아도 걸어서
블럭마다 노래방, 술집, 나이트 등등 아무데나 골라 갈 수 있고
3차엔 강변의 멋진 카페에 들어 가 주변 경관을 감상하며
즐길 수 있는 동네.
바로 내가 그 중심가에 살고 있다.
아, 정말 살기 편한 동네야, 특히 나처럼 직장 여성은
먹거리가 훌륭한 동네에 살수록 좋은 거지하며
나만의 행복감에 취해 살았는데
알고보니 내가 모르는 딴 세계가 함께 공존하고 있다니.
요즈음 식당에서는 아줌마를 구하기가 어려워
상당히 애를 먹는다고 한다.
그 원인이 많은 여인네들이 노래방 도우미로 가버리고
일손이 없기 때문이라나.
노래방도우미로 가면 시간당 최하 2만원인데
보통 한 번 가면 두세시간 놀게 되니 오륙만원 금방이고,
하루 다섯 시간만 노래하고 놀면 일당 십만원 벌이이니
누가 하루종일 밤까지 죽도록 고생하고
월 칠팔십만원을 받는 식당일을 하려 하겠는가.
그 돈을 벌려하는 원인이 아이들 학원비 때문이라니
세태가 변해도 너무 심하게 변질되고 말았단 느낌이다.
평소에 가무를 즐기는 편이라 노래방도우미가 딱 내 적성이다싶어
'야, 거참 내가 아르바이트 가면 딱이겠다.
하루 3시간씩만 야간에 뛰면 얼마야? 빨리 계산 좀 해 봐.'
농담 삼아 얘길 하며 숫자를 헤아리는데,
'선생님. 누가 얌전하게 노래만 시킨답디까?
술도 못 드시면서 , 따라 주는 술 마셔야죠,
또 온 몸을 더듬는다는데 그 성격에 견디실 수 있겠어요?'
뭐라~ 그냥 노래만하는 노래방도우미가 아니라 몸까지?
그렇다.
우리 동네, 물 조~ㅎ은 우리동네는 간판에 <~뱅크>니 <~ 타운>이니
하는 곳은 모두가 여자들이 도우미로 뛰는 곳이라나.
그리고 그 물이 아주아주 끝내주게 좋은 곳이랜다.
술을 뭘로 주문하느냐에 따라 아가씨나 아줌마를 골라 부를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누드 쇼도 함께 보여준다하니
이 어찌 기상천외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젠 룸살롱으로 부족해서 노래방까지
여자가 없으면 장사가 안된다니
도대체 남자란 동물들-물론 전부는 아니지만-은 언제까지 그런 작태에서 벗어날 것이며,
돈이면 별짓이라도 다 하는 그 업주들과 도우미들은 또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참으로 어이가 없어 '얘, 남자도우미 있는 곳은 없니? 우리도 한 번 벗겨보게.'했더니 '선배님, 그런데 있으면 저도 함께 데려가 주세요.'
분개한 마음에 내뱉은 말이었지만,
대도시엔 호스트 빠도 있다니 정말 세상 참 많이도 변했다.
하기야 남자들이 속 썩이지 않았음 여자들이 호스트 바를 찾을 이유가 있었을까,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여자라면.
'물 좋은 동네'에 사는 나는 요즈음
커 가는 아들녀석 땜에 시간시간 체크하느라 좀 피곤하다.
골목마다 PC방에다 성인 전자오락실,
그리고 무슨 경품 게임장이 불빛도 찬란하게 밤을 밝히고 있으니...
어찌 아들 뿐이랴.
귀가길에 한 잔술 남편의 전유물이요,
행여 밤 늦게 귀가할 적엔 은근히 몸이 사려지는 데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닌 듯 싶다.
그러나 어쩌랴.
당장 어떻게 이사갈 수도 없는 노릇인 것을.
세상엔 공짜란 없다지만
물 좋은 동네에 사는 값을 이렇게 치루어야만 할 것인가.
(출처 : 아줌마닷컴 - http://www.azoomm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