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인생의 주어를 바꿔라- 진정한 내 삶의 BTS는?
<아직 완성하지못한 습작입니다 죄송합니다...>
우리 딸은 BTS(방탄소년단)의 열렬한 팬이다. 소위 방탄소년단의 팬덤 ‘아미’(ARMY)' 회원까지는 아니지만 특히 “정국‘이를 너무나 좋아해 사진을 품고 다니고 스마트폰엔 온통 그의 사진뿐이다. 방 여기저기에도 붙여놓고 있다. 너무나 잘 생겼다나 조금은 질투가 나지만... 사춘기 시절 소녀의 감성을 어찌 폄하할 수 있으랴... 가끔 혼자 방에서 키득거리거나 흥분해 있는것 보면 스마트폰에서 방탄의 영상을 보거나 노래에 빠져 들어 있을 때가 많다.
비단 우리 딸만 아니라 전세계에 수백 수천 만명의 팬덤을 거느린 방탄 소년단을 무시할 수는 없다. 나라마다 아미들이 문화와 경제 정치까지도 영향을 미친다잖는가? 그 옛날 비틀즈의 인기를 넘어설 정도로 서구권 젊은이들에까지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아시아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과 유럽의 빌보드차트에서 수주간 1위를 달성하고 해외 콘서트에는 가는 곳마다 구름떼와 같은 팬들이 몰려든다. 온라인 상에서도 그들의 노래 영상 뷰가 1억이 넘어갈 정도 아닌가? 아직도 계속 신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팀이다. 이제는 아이돌 가수를 넘어서 일종의 문화 현상이요 시대 정신을 드러내는 신드롬이라 하겠다.
오늘날 왜 세계의 청춘들은 BTS에 열광하는가? 무엇이 그들에게서 치유와 용기를 얻었다고 하는가? 그들의 콘서트 실황을 시청해보니 흡사 열광적인 종교집회 수준이다. 오늘날 기독교의 대형 찬양 집회 못지 않다.
방탄의 노래는 자기애나 우울과 불안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계속 팬들과의 친밀감을 강조하며 자신들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페이크 러브’에서는 “내 모든 약점들은 다 숨겨지길. 이뤄지지 않는 꿈속에서 피울 수 없는 꽃을 키웠어”라며 현실과 꿈의 괴리를 말한다. ‘러브 유어셀프’에서는 “솔직히 인정할 건 인정하자. 니가 내린 잣대들은 너에게 더 엄격하단 걸”이라며 자책하는 10대들을 위로한다. 즉, 그들은 이시대 ‘꿈 고문’에 시달리는 10대들의 감성을 파고들고 있다. 그리고 10대들의 현실을 긍정하고 화려한 자신들도 너희와 다르지 않다고 말하며 손을 내민다. 방탄의 노래는 60-70년대 비틀즈의 ‘다른 세상을 향한 상상’이나 90년대 U2의 ‘반전주의’ 또는 2000년대 머라이어 캐리의 ‘사랑 노래’와는 뚜렷이 구별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10대들에게 ‘자기애’란 공통적인 감성을 만들어 부르고 있다
그런데 왜 이시대 10대들은 자기를 사랑하라는 메시지에 감동하는 것일까? 그러면 지금 10대들의 현실이 다른 세대와 다른 것은 무엇일까? 사실 이들의 현실은 기성세대 보다 치열하고, 미래 또한 더욱 불안하다. 어느 때보다도 경쟁을 강요받지만 아무도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 세상. 그 현실에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예수 대신 ‘자신을 사랑하라’, ‘자신을 방탄하라’는 방탄소년단의 울림은 이시대 10대들의 마음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백광훈 문화선교연구원장은 한 포럼에서 ‘방탄의 노래 가사들은 비단 한국 청년들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청년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정곡을 찌르는 내용으로, 바로 BTS가 많은 팬들에게 공감을 받을 수 있는 특징 중 하나다. 엄청난 파급효과이다. 이를 위해 백 원장은 BTS를 빅뱅, 트와이스의 가사와 비교하며, 빈출 어휘 횟수를 제시했다. 가령 “방탄소년단 가사에서 ‘나’는 1000번 정도 나오고, 인생, 노력, 부조리, 비판 등도 빈번히 등장 한다” 했다.
또한 그는 “누군가는 방탄소년단의 가사가 너무 니체적, 즉 탈 기독교적이라고 비판한다”고 전했다. 다시 말해 그는 “BTS는 나만의 세계, 고립된 자아만을 주장하며, 나아가 인본주의적이고 자기애적 메시지가 가득하다”는 일각의 비판과 아울러 그는 “니체의 초인 사상에 영향 받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적 세계관에 우려하는 기독교 진영도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BTS가 결국 진정성 얘기를 하지만 이 조차도 소비주의의 일환 아닌가라는 일각의 비판도 있고, 자기애적 인본주의 메시지가 기독교와 과연 공존 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의식 또한 분명 있다”고 밝혔다‘
오늘날 BTS 에 열광하는 젊은이 뿐만 아니라 현대 세계는 어느 시대보다 자기에적 성향이 강하다. BTS의 '자기애'는 욜로주의부터 혼밥주의, 비혼주의등 문화적으로 자신에게 집중하는게 하나의 코드가 됐다. 영국의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를 봐도 지금 국가들도 '내가 먼저' ’내가 주인‘임을 외치고 있다.
이기주의 자기 중심성을 넘어서 나르시즘적으로 자기를 높이라고 사랑하라고 끊임없이 광고하고 소비를 부추기고 있다. 나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고 있고 또 돌아가야 한다는 전지적 1인칭 ’나‘ 시점인 시대이다. 그야 말로 온통 ’나‘가 주어인 시대이다. 지나친 자기애의 폐해가 지구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신약 성경의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 (눅 12:16-20)도 주어가 온통 나, 내가, 나의 것이다.
자기애가 넘친다. 그러나 20절 하나님은 그 ‘나’는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고 선언하신다.
반면 인생의 주어가 철저히 하나님인 사람은 구약의 요셉이 있다. 창 45:5-8에서 요셉은 내가 아닌 하나님으로 주어를 바꾸었다. 파란 만장한 요셉의 인생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야기’가 되었다. ‘내가’ 가 아닌 ‘하나님이’주어였기에 가능했다! 내 힘과 노력이 아닌 하나님이 하셨다. 잘되고 풀릴 때 뿐만 아니라 고난과 어두운 길에서도 하나님이 주인이요 인생 주어이셨다.
거기에 타인에 대한 용서와 사랑, 배려와 용납이 가능하다. 형통이란 내가 주인인 곳에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다. 형통한 삶이란 내가 주어였던 삶을 하나님이 주어가 되도록 내어 드리는 삶일 것이다.
인생은 자기 자신이 인생의 주어인 사람과 하나님이 인생의 주어인 사람으로 극명하게 나뉘인다.
내 인생의 주어를 하나님으로 바꾸어보라. 우리의 과거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나님을 주어로 삼을 때 비로소 우리를 향한 빅피쳐가 보이기 시작하고 실타래 풀리듯 삶의 매듭이 풀린다. 또한 우리는 미래에 어떤 일이 있을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누가 미래를 붙잡고 계시는지는 안다.
오늘 우리 삶에 진정으로 열광해야 될 BTS는 하나님이시다. 나는 하나님의 영원한 '아미'이다.
나는 묻는다. 과연 우리 교회의 주어는 하나님인가? 목사인 나의 삶의 주어는 하나님인가?
내가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 15:10)
2020년 9월 17일 사랑나무 정영석 씀
첫댓글 BTS에 대하여 많이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을 알면서 자신을 알아가는 글의 여정이 참 좋습니다.
감사합니다..목사님을 통해 많이 배웁니다.
인생은 내안에 우상이 있어야 살아갈 힘이 생긴다.
딸이 있는 부모라면 겪어야 할 관문이다, BTS에 대해 공부를 하게 되었어요. 이분법적인 선택과 우리의 히어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