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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8장 1-4절. 스데반의 장사와 사울의 핍박
구절 해설
1절.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aul was in hearty agreement with putting him to death. And on that day a great persecution began against the church in Jerusalem, and they were all scattered throughout the regions of Judea and Samaria, except the apostles.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Σαῦλος δὲ ἦν συνευδοκῶν τῇ ἀναιρέσει αὐτοῦ.
Saul now was there consenting to the killing him
직역하면 ‘사울은 이제 그를 죽이는 것을 동의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마땅히 여기더라’(ἦν συνευδοκῶν)에서 앞의 단어는 미완료 과거로서( was there) 계속 마땅히 여기고 있는 상태를 가리키고, 뒤의 동사는 현재분사로서(consenting) 동의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일시적인 흥분(momentary excitement)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계속 핍박하고 있는 사울의 모습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Haechen by Linguistic Key)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Ἐγένετο δὲ ἐν ἐκείνῃ τῇ ἡμέρᾳ, διωγμὸς μέγας ἐπὶ τὴν ἐκκλησίαν, τὴν ἐν Ἱεροσολύμοις·
arose then on that the day, persecution great against the church, which in Jerusalem
‘있어’(Ἐγένετο)는 부정과거로서(arose) 박해가 일어난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그 날에’라는 것은 스데반의 순교가 예루살렘 박해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즉 사울이 스데반 죽이는 것을 시작으로 예루살렘 교인들 전체를 핍박하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이 때 사울은 교회를 핍박하는 사람들을 움직이는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사울(바울) 자신이 이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행 26:9-10).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πάντες δὲ διεσπάρησαν κατὰ τὰς χώρας τῆς Ἰουδαίας καὶ Σαμαρίας,
all then were scattered through out the regions of Judea and Samaria,
직역하면 ‘모두 다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으로 흩어졌다’는 뜻입니다.
‘흩어지니라’(διεσπάρησαν)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ere scattered) 과거 확실한 사실을 표현하고, 원형(διασπείρω)은 ‘씨를 흩어 날리다, 흩어지다’(sow throughout, disperse)란 뜻입니다.
이 단어는 4절에도 쓰였습니다.
사도 외에는
πλὴν τῶν ἀποστόλων.
except the apostles
직역하면 ‘사도들 외에는’이란 뜻입니다.
사도들 외에 일곱 집사 중의 하나인 빌립조차도(행 8:5) 예루살렘을 떠나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이 때 사도들이 흩어지지 않은 이유는 유대교 지도자들이 정략적으로 사도들은 건들지 않았든지, 아니면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신 당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행 1:4).
실제로 고대 교부 중의 하나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 AD 150–c. 215. Origen의 스승)는 예수님이 사도들에게 몇 년간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Baker.
1. 사울은 스데반이 죽임당함을 마땅히 여겼습니다.
즉 사울은 스데반 살해를 신앙적으로 옳다고 확신했다는 것입니다.
요즘 말로 종교적 확신범입니다.
예컨대 어떤 이단자들은 집총거부와 수혈거부를 종교적 확신을 가지고 합니다.
그래서 반국가행위와 자녀 살인을 해도 확신을 가지고 범행을 합니다.
이처럼 사울은 스데반 죽이는 살인 행위에 대해서 종교적 확신을 가지고 했다는 것입니다.
2. 그 날에 예루살렘 교회에 큰 박해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물론 사울이 주동이 되어서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크게 박해했습니다.
나중에 바울 자신이 이 일에 대해서 증언했습니다.
사도행전 22:4.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본문 3절에서도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가두었다고 했습니다.
즉 사울이 성전 경비병 군대를 동원하여 교인들의 집에 들어가서 교인들을 때리고, 끌어다가 감옥에 집어넣고, 재산을 몰수하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니 예수 믿는 성도들은 예루살렘에 있지 못하고 다 흩어져 도망을 갔습니다.
3. 그런데 사도들은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습니다.
사도들이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로 사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에 남다른 체험적 신앙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둘째로 사도들은 도망간 성도들의 가족들과 재산을 돌봐주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사도들은 헬라파 유대인이 아니라 히브리파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스데반 같은 헬라파가 아니라서 비교적 핍박을 덜 받았습니다.
즉 이 때 핍박의 대상은 스데반이나 빌립 같은 헬라파 유대인들이 직접적인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4. 그리고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예루살렘 교인들이 사마리아로 흩어졌다는 것입니다.
원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꼭 붙어 있어서 유대 나라를 기독교 국가로 만들려는 생각뿐이었고, 사마리아와 땅끝으로 나가서 전도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성도들이 사마리아로 흩어진 것은 자발적인 신앙으로 흩어진 것이 아니라, 국가적인 핍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흩어진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행하지 않을 때는 하나님께서 불신자의 손을 통해서라도 강제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십니다.
예컨대 하나님은 이방나라 왕인 느브갓네살 왕이나 페르샤의 고레스 왕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백성을 다루십니다.
원래 루터도 독일을 기독교 국가로 만들려는 생각뿐이었고, 칼빈도 제네바를 기독교 도시로 만들려는 생각뿐이었지, 세계 선교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루터와 칼빈을 추종한 개신교 성도들은 전쟁과 종교적 핍박 때문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전쟁을 통해서 세계 선교가 이루어졌습니다.
이처럼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우리의 생활에 핍박과 어려움이 닥치면 하나님이 이 일을 통해서 어떤 다른 일을 이루시려고 하시는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예컨대 람브란트라는 화가는 원래 누드화를 그려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이때는 친구가 전도를 해도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병들고 아내를 치료하느라 돈을 다 써버리고 거지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친구의 전도를 받고 교회에 나가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 후로는 ‘엠마오로 가는 제자’ 같은 유명한 성화를 그렸고, 역사에 남는 화가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2절.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ome devout men buried Stephen, and made loud lamentation over him.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συνεκόμισαν δὲ τὸν Στέφανον ἄνδρες εὐλαβεῖς
buried now the Stephen men devout
‘장사하고’(συνεκόμισαν)는 부정과거로서(buried) 장사했다는 과거의 분명한 사실을 뜻하고, 원형(συγκομίζω)은 장사하기 위해서 시신을 떠메고 가는 것(bring together, specially to take up a body for burial)을 말합니다.
여기 ‘경건한 사람들’(ἄνδρες εὐλαβεῖς, men devout)이란 사도행전 2장 5절에 ‘경건한 유대인들’을 가리키는데, 이 사람들은 이방 헬라 지역에서 살면서 유대교 신앙을 지켜온 사람들로서,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경험하고, 헬라파 유대인인 스데반의 표적과 기사를 통해서 기독교로 전향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실상 예수님 당시의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도 경건한 유대인들로서 겉으로 드러내놓고 신앙생활을 한 것은 아니나, 분명히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요한복음 19:38-39.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Baker.
앞의 경건한 유대인인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시신을 빌라도에게서 찾아서 장사지냈던 것처럼, 본 절의 경건한 유대인들도 스데반의 시신을 산헤드린 공회에서 찾아다가 경건하게 장사지냈습니다.
그러므로 이 경건한 유대인들도 드러내놓고 기독교인인 것을 나타내지는 않았으나, 실제적으로는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이제는 열렬한 기독인들이 되어서, 스데반의 순교와 사울의 박해 이후에 안디옥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고, 이방인 교회의 중심교회인 안디옥 교회를 설립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11:19-21.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위하여 크게 울더라.
καὶ ἐποίησαν κοπετὸν μέγαν ἐπ’ αὐτῷ.
and made lamentation great over him
직역하면 ‘그를 위하여 큰 애통을 했다’는 뜻입니다.
여기 동사(ἐποίησαν)는 부정과거로서(made) 큰 애통을 한 과거의 확실한 사실을 말합니다.
1. 여기 <경건한 사람들>이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로서 기독교인 여부를 떠나서 고넬료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섬기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마치 아리마데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장사한 것처럼, 당시에 종교를 떠나서 장사지내줄 사람이 없는 시체를 장사지내주는 것은 크게 경건한 일로 높이 평가받았습니다.
2. ‘크게 울었다’는 것은 비록 종교가 일치하지는 않았더라도, 하나님을 위한 신앙적인 순교에 대해서 크게 울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다가 핍박당하는 엘리야 선지자 같은 선지자들에 대해서 오바댜 같이 경건한 사람들은 크게 동정했습니다.
3절.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Saul began ravaging the church, entering house after house, and dragging off men and women, he would put them in prison.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Σαῦλος δὲ ἐλυμαίνετο τὴν ἐκκλησίαν,
Saul but was destroying the church,
직역하면 ‘그러나 사울은 교회를 계속 파멸시키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잔멸할새’(ἐλυμαίνετο)는 미완료 과거로서(was destroying) 계속 잔멸시키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이 동사의 원형(λυμαίνομαι)는 ‘폭행을 가하다, 학대하다, 파괴하다’(outrage, maltreat, destroy)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λυμαίνομαι)는 야수가 먹이를 이빨로 발기발기 찢는데 사용하는 단어(mangling by the wild beast)를 뜻합니다. (LC by Linguistic Key)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κατὰ τοὺς οἴκους εἰσπορευόμενος, σύρων τε ἄνδρας καὶ γυναῖκας
(houses) after the houses entering, dragging off then men and women
직역하면 ‘집집마다 들어가서, 남자들과 여자들을 끌어내면서’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전치사(κατὰ)는 분배적인 의미로(in a distributive sense) ‘집집마다’(from house to house)란 뜻입니다. Linguistic Key. 278.
‘들어가’(εἰσπορευόμενος)는 현재분사로서(entering) 계속 집집마다 들락거리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끌어다가’(σύρων)도 현재분사로서(dragging off) 계속 끌어가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옥에 넘기니라.
παρεδίδου εἰς φυλακήν.
he was delivering [them] to prison
‘넘기니라’(παρεδίδου)는 미완료 과거로서(he was delivering) 계속 감옥에 처넣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1. 사울은 종교적인 확신을 가지고 기독교회를 유대 나라에서 없애버리려고 했습니다.
즉 뿌리째 근절해버리려고 작정했습니다.
2. 그래서 사울은 기독교인 가정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면서, 남자고 여자고 다 잡아다가 감옥에 넣어버렸습니다.
무슨 재판이고 변명이고 소용없었습니다.
3. 이처럼 사울은 당시에 유대교의 최고 권력자로서 나라의 통치자인 대제사장에게 전권을 위임 받아 가지고,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까지 가서 기독교인들은 근본적으로 완전히 말살하려는 악행을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정말 사울은 악인이고 죄인 괴수이고, 악질 인간이었습니다.
4절.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refore, those who had been scattered went about preaching the word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Οἱ μὲν οὖν διασπαρέντες, διῆλθον,
those indeed therefore having been scattered, went through
직역하면 ‘그러므로 흩어진 자들이 두루 다녔다’란 뜻입니다.
‘흩어진’(διασπαρέντες)은 부정과거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scattered) 과거에 계속 흩어지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διασπείρω)은 ‘씨를 흩어 뿌리다, 흩어지다’(sow throughout, disperse)란 뜻입니다.
1절에서도 쓰였습니다.
‘두루 다니면서’(διῆλθον)는 부정과거로서(went through) 두루 다녔다는 뜻이고, 두루 다닌 과거의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εὐαγγελιζόμενοι τὸν λόγον.
preaching the word
직역하면 ‘그 말씀을 복음 전파하면서’란 뜻입니다.
‘전할새’(εὐαγγελιζόμενοι)는 현재분사이고(preaching), 원형(εὐαγγελίζω)은 복음을 전하다(announce good news)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한글 성경은 ‘그 말씀’이란 명사와 ‘복음을 전하다’란 동사를 합하여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라고 번역했습니다.
1. 사울의 핍박 때문에 예루살렘에 있지 못하고 도망간 성도들이 할 일도 없고 재산도 없었지만,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것은 순수한 복음 전도였습니다.
2. 간혹 보면 이렇게 평안할 때는 같은 복음을 전하더라도 복음이 조금 퇴색을 합니다.
그런데 핍박과 환난 속에 전해지는 복음은 순 복음입니다.
‘예수 믿고 천당 가시오’ 그런 말씀입니다.
남한 성도들은 편지 인사가 "목사님 은혜 가운데 평안하시고, 교회는 부흥하십니까?"라고 하지만, 북한에서 오는 편지에는 "예수님 재림하실 날이 가까이 왔는데 목사님 안녕하십니까?"라고 아주 종말론적입니다.
십자가의 복음과 재림하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깨끗한 마음입니다.
이것이 바로 핍박 속에서 전한 복음입니다.
종말론적인 신앙입니다.
3. 그리고 이렇게 순수한 복음을 전할 때, 주님께서 표적을 주셨습니다.
이런 순수한 복음 전도에 하나님의 기적과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빌립 집사님의 전도가 그 대표적인 경우였습니다.
4. 결론적 교훈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우리가 당한 많은 시련, 엄청난 사건의 의미를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런 핍박이 일어났는가’라고 묻지 말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라고 물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미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계 안에서 우리가 왜 이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 하나님은 이것을 통해서 무엇을 이루시려고 하는지, 한국교회에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지, 우리 개개인에게 주님은 지금 무엇을 요구하고 계시는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과 계획을 이루시기까지는 핍박을 통해서도 계속 일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살이 속에서 핍박과 환난을 당하면,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기도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시고,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설교
1.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핍박이라는 최고의 악이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의 복음 전도라는 최고의 선을 이루어놓았습니다.
나아가 스데반의 순교와 예루살렘 교회의 핍박은 이방인 지역의 복음 전도를 가져와서, 결국 이방인 전도의 전초기지인 안디옥 교회를 설립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도행전 11:19-21.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우리 예수님은 무릇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는다고 하셨고(마 10:24), 이 동네에서 핍박하면 저 동네로 피하라고도 하셨습니다(마 10:23).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런 무서운 핍박도 바꾸어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셨습니다(로마서 8:28).
왜냐하면 이 핍박으로 복음이 이방인에게도 전파되었으며, 사울도 다메섹에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러 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이방인의 사도로 급변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스데반의 순교의 피는 유대와 사마리아 교회 뿐만 아니라, 이방인 교회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Tertullianus)
2. 사울은 교회를 핍박하는데 열심이 특심했는데, 그가 회심하고 나서는 교회를 설립하는데 열심이 특심했습니다.
그는 몰라서 교회를 핍박했다고 했는데(딤전 1:13), 일단 예수님이 그리스도시고, 기독교가 참 교회인 것을 알고 난 후에는(빌 3:8) 예수님을 위해서 죽기를 각오하고, 교회를 위해서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했습니다(고전 15:31).
그리고 바울이 유대교인으로 있을 때는 율법에 대한 열심으로 구원받는 줄 알았으나, 기독교인이 된 후로는 오직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놀라운 복음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로마서 3:20, 24.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그래서 초대 교회가 이방인 성도들에게 유대교의 율법(할례)을 적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 문제로 AD 50년에 예루살렘 총회가 열렸을 때, 율법주의파와 은혜주의파가 크게 싸웠으나, 결국 바울과 베드로의 주장대로 은혜파가 승리하여, 이방인 성도들에게 유대교의 율법이나 할례를 강요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행 15장)
갈라디아서 5:3-4.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나중에 바울은 이방인 성도와 유대인 성도 간의 식사 문제로 이방인과의 식사를 꺼려하는 베드로와 바나바도 책망했습니다.
갈리다아서 2:12-14.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이처럼 바울은 기독교를 핍박하는데도 앞장을 섰지만, 교회 안에서 기독교를 올바로 세우는데도 최고의 업적을 이룩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처럼 확신을 가지고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복음 진리를 높이 드러내고, 교회를 부흥시키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