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기] - 이팔청춘 큐
고2 여름 방학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나보다 부모님에게 더 큰 관심사였다.
아마도 공부에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내가 방학 보충수업과 긴 자습시간에 졸고 있을
모습을 미리 상상 하셨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부모님을 머리로 하는 공부보다 몸으로 하는 공부를 선택 하셨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기로 결정할 무렵 티비에서는 유해진과 차승원이 순례길 길목에
알베르게를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다. 티비에서 보는 순례길은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모여 걷고 이야기 하고 서로의 문화를 나누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매우 즐거워 보였다.
이쯤이야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고민도 하지 않고 순례길을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인천공항에서 당당 선생님을 만나고 친구들을 볼 때까지만 해도 45킬로의 배낭은 전혀 무겁지 않았다. 드디어 프랑스에 도착해 하루 이틀 몸을 풀고 순례가 시작되었다.
첫 출발지는 프랑스 국경을 지나 스페인 이룬에서 세바스타인 시내로 들어가기 전 산속
캠핑장 알베르게였다. 추웠다는 기억과 벌레가 많았다는 점, 첫 날이라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그것을 시작으로 사라우츠, 데바, 마르키나, 게르니카의 도시를 하루에 약 20킬로씩 걸었다. 초반 걸을 때는 다리에 알이 베이고 감각이 없어져 갔다. 내가 걷는 건지 발이 저절로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건지 모른 체 순례는 계속 되었다.
알베르게 대부분은 남, 녀가 한방에서 잤다. 외국인도 섞여 있었다. 생각과 다르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어려움을 같이 한다는 건 가족이 되는 느낌이고 당연히 돌봐 주어야하고 이해해 주어야 하고 이해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 적응해 가고 있었다.
빌바오에서 쉬는 일정에 구겐하임미술관을 갔다. 그 미술관에서는 조형물과 각기 다른 도형들로 만든 모형이 많아서 신기했다. 어떻게 사람이 저런 것을 만들 생각을 했는지 멋진 곳이었다. 나도 나중에 그런 조형물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잠시 했다. 특히 그 앞 숙소에서 잠을 잤을 때 보여진 밤 풍경 미술관은 정말 장관이었다.
포르투갈레테로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걸으면서 처음으로 해변가를 보았다.
라 아레나라는 절벽과 아름다운 경치가 보이는 카미노 풍경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해변가를 걷는 것은 평지를 걷는 것보다 상쾌했다. 절벽을 넘어 다이빙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잠시 해 보았다.
라레도를 갈 때 잠시 들른 우르디에세에서 우리는 6명의 인원이 잘 자리가 부족했다.
결국 더 걸어가서 망한 알베르게까지 가게 되었다. 가는 도중에 당당선생님께서는 계속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자라고 하셨고 우리는 지쳐갔다.
힘들긴 했지만 도착해본 그곳은 우리밖에 없어서 음악도 틀고 12시까지 놀고 떠들 수 있어서 좋기는 했다. 살짝 쌀쌀해서 자다 깨긴 했지만 자다가 웃긴 모습도 많이 보았다.
서현이는 자다 떨어질 듯 말 듯하고, 수찬이는 추워서 덜덜 떨고, 혜림이는 맨바닥에 자서 좀 걱정되기 했다. 예원이는 자다 추워서 내려가 당당선생님 옆에서 잤다. 난 자다가 모기와 사투를 버렸다. 무척 웃긴 비박 추억이 된것이다.
우리는 히혼까지 버스를 타고가기로 했는데 버스가 별로 없어서 루고까지 걸어 넘어가기로 결정했다. 밤새 넘어가서 잘 곳도 마땅치 않아서 한 시간을 더 가서 6km 더 떨어진 곳에서 새벽 2시에 도착해 벤치에 단체로 노숙을 하게 되었다. 가는데 힘들고 잠 잘 곳이 없어서 화가 나기도하고 주변에 외국인들이 떠들어서 잠도 다 깨어 잠을 설쳤다.
잘 때 애들은 추워서 3명이서 안고 자는 애들도 있었고 내 침낭과 바꿔간 애도 있고 자다가 스프링쿨러에 맞아서 감기 걸린 애들도 있었다. 자는 곳이 춥고 이슬도 맺혀서 감기가 걸렸을만한 노숙이었지만 모두 단체로 노숙해서 재밌고 힘든 추억이기도 했다. 서로 각자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여자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친목을 다지기로 했다. 나는 잠이 안와서 폰을 꺼내어 새벽까지 하기도 했다.
애들이 상태가 안 좋아 걱정되기도 했고 그럼에도 밤을 버티고 걷는 친구들 모두 대단하게 생각되었다.
다른 나라의 음식을 한달동안 먹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는 포르투칼 에그타르트
그리고 스페인 피자 스파게티들이 맛있었다. 애들도 다 잘 맞았고 잘 안 맞는 애들도 있었지만 걸어야하니 먹었다. 평소에 빵을 좋아하는 나였지만 빵이 밥이 되니 엄마의 밥 생각이 절로 났다. 고기만 좋아하고 야채를 잘 안 먹으며 학교급식은 나 몰라라 하는 내가 급식은 떠 올린 적도 있었다.
그러던 중 한국의 말복에 맞추워 삼계탕을 여기서도 먹어보게 되었다. 물론 대박이었다.
역시 선생님의 노련미는 인정해야한다. 무슨 레시피인지는 모르겠으나 최고로 맛있는 음식이었다. 선생님은 맛 집을 차리셔도 잘 될 것 같다.
순례길 전체의 밤하늘은 별들이 잔치다. 진짜 멋있었다. 11시에 불이 다 꺼지고 애들과 보는 별은 진짜 이쁘고 아름다웠다. 노숙은 추웠지만 두 번다 재밌었고 좋은 추억이었다.
축구도 했는데 당당선생님이 작년보다 더 빨라지신 것 같다. 따라 잡는라 힘들고 죽을 뻔 했다. 순례 끝나고 밤마다의 일들은 걷다 힘든 일들은 다 잊게 해 줄만큼 이었다.
일출과 일몰을 둘 다 매일 같이 볼 수 있는 것도 행운이었다.
무엇보다 비슷한 나이의 학생들이 먼 곳에와서 같이 움직이고 힘들고 함께하며 쌓이는 것들은 하나하나가 추억이고 소중했다. 끝나고 애들과 수다 떨고 카드놀이와 야식 먹는 것도, 게임하는 것도 좋았다.
진실게임과 당연하지게임이 좀 더러웠지만, 웃긴 질문도 많이 나왔고, 혜림가 화가날 질문이 몇 개 있었고, 좀 많이 질문이 웃기고 재밌었다.
우리는 225km 강행군을 이어가 산티아고 대 콤포스텔라 100km 전방부터 열심히 걸어
모두들 완주했다. 가는 도중 길은 늘 좋은 것이 아니었다. 험했고 미끄러웠고 가파르고.
평소에 걷기 운동을 꾸준히 하지 않았던 우리들한테는 어쩌면 태어나서 제일 힘든 일이었을지 모른다. 애들도 많이 다치고 물집도 많이 터져 못 걷고 버스를 타는 아이들도 있었고 몸이 안 좋아 버스를 타는 아이들도 있었다.
모두들 힘들었을텐데 웃음과 재밌는 얘기들로 극복하고 서로 서로 도와가면서 물론 돕지 않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노력하고 다 같이 완주한 게 뿌듯하고 기특하고 대견했다.
그때 그 순간만큼은 다시 이 맴버로 다른 더 험한 곳을 간다 해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님 관광이나 놀러오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해변가를 걸으며 물놀이도 하고 다음엔
준하, 예원, 혜림이 수영도 가르쳐 주고 싶긴 하다.
맛있는 맥주도 와인도 먹고 포루토에서 먹었던 문어도 다시 먹고 여행으로 외서 해 보고 싶고 것이 점점 늘어간다.
지금 생각하면 빨래할 때 제때 안내고 돌리려 할 때 추가하던 친구들, 손빨래하고 힘없던 친구들 빨래 짜주는 건 힘들면서 재밌었다. 빨래와 설거지는 힘들면서도 재밌는 것이었다.집에 와서는 엄마 세탁기라도 돌려 들여야겠다.
드디어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오면서 그동안 힘들었던 일들, 즐거웠던 일들을 떠올려보았다. 마중나와 계실 부모님보다 헤어질 친구들이 더 아쉬웠다. 좋게 타협하고 맞춰가면서 끝까지 큰 사고 없고 다툼 없어서 다행이었던 친구들.
모두가 고맙고 소중했다.
그리고 매일 속만 썩이고 말 안 들었던 나, 잘해야겠다하는 말만 한 나를 반성했다.
욱하는 나쁜 습관들을 스페인에 다 버리고 오고 싶었다. 돌아가기 아쉬워하며 이번 33박 34일을 마쳤다.
우리를 끝까지 돌보아주신 당당선생님과 친구 같았던 리우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모든 날을 교훈 삼아 열심히 생활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