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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사대부고 9회
 
 
 
카페 게시글
갤러리 스크랩 11일 두브로브닉에 도착했다.
임희중 추천 0 조회 133 15.10.21 00:35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두브로브닉의 다른 이름은 많다.

아드리아해의 보석, 지구상의 낙원 등으로 불리는 유럽문화의 상징으로,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전일 숙박지에서 두브로브닉으로 가는 도중이다.

스플리트에서 두브로브닉을 가려면 두번의 국경을 통과해야 한다. 보스니아의 유일한 해변 약 20km정도이지만, 그곳을 통과해야 한다.

크로아티아를 벗어나면서 크로아티아 경찰이 올라오고 뒤이어 보스니아 경찰이 올라와야 하는데, 그냥 가란다.

다시 크로아티아 두브르브닉주로 들어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출입국 수속이 대폭 완화되었다. 국제관계가 원만하면 통관이 쉽다.  


그리하여 버스는 기분좋게 달렸다. 그러다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볼 기회가 생겼다.




수경재배를 위한 관개시설인 모양이다. 그것도 이색적으로 보였다.




두브로브닉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주차를 하려면 그곳 호텔 투숙 증명이 필요하단다. 그래서 호텔부터 들렀다. 투숙은 저녁에 할 수 있단다.




여기도 호텔 시설은 상당히 좋아보였다.




호텔 주변이다.




다시 두브로브닉으로 향했다. 교량을 지나다가 옆의 주차공간에 세우고 구경하란다.




두브로브닉이 보인다. 주황색 지붕들이 보인다.




주변의 풀꽃과 크루즈 한척, 그리고, 멀리 두브로브닉... .




스르지산 전망대에 올랐다. 그리고 세로사진 8컷을 이었다.




바다섬(Lokrum) 과 성곽을 강조하려면  규격을 줄여야 했다.




줄이고 줄여 16:9의 규격을 만들었다.  그런데 전면의 케이블이 눈에 거슬렸다.




그래서... 바다와 섬(Lokrum), 구항을 포함한 두브로브닉 성곽, 로브리예나치(Lovrijenac)요새  하나의 화면에 담았다.




드브로브닉 성채로 내려왔다. 성문으로 들어가기 전 바다로 통하는 만이 펼쳐졌다..



  두브로브니크는 아드리아해(海)에 면한 달마티아 해안에 건설된 크로아티아의 작은 도시이다.

  두브로브니크는 중세의 자취가 남아 있는 아름다운 도시로, '아드리아해의 진주'라고 불린다. 이 요새의 도시를 작가 버나드 쇼는 이렇게 찬미하였다. '두브로브니크를 보지 않고 천국을 이야기하지 말라'. 구시가지는 유네스코에 의해 1979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되었으며, 그 후 1994년에 재지정 등록되어 문화유산 지역의 범위도 성벽 바깥쪽에 있는 역사 지구까지 확장되었다.

   아드리아해에서 두브로브니크를 바라보면, 해발 약 2,000m의 산들이 이어진 디나르알프스 산맥의 깎아지른 절벽이 해안선을 위협하듯이 우뚝 솟아 있다. 항구로 들어서면 방어탑이 있는 요새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그 장대한 모습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아드리아 해의 진주'라고 불리는 두브로브니크의 붉은 기와지붕들이 에메랄드빛 아드리아해 위로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풍경처럼 밝게 빛난다.

  햇빛을 받아 밝게 빛나는 기와지붕들의 물결 속에서 유난히 눈길을 끄는 건물들은 바로크 양식으로 세운 대성당의 돔과 프란시스코회 수도원의 종루 이다.

   두브로브니크 옛 시가를 둘러싼 약 2km의 성벽은 8세기경에 건설되기 시작해 시의 확장과 더불어 확대되어 16세기경까지 공사가 계속되었다. 성벽은 두께가 6m, 높이가 25m에 이르며, 곳곳에 방어탑이 건설되어 있다. 성벽의 서쪽 입구인 플로체 문에는 이 시의 수호성인인 성 블라호가 왼손에 두브로브니크의 모형을 들고 서있는 조각상이 있다.

   연대기에 따르면, 베네치아는 속주를 지키기 위해 요새 건설을 계획하였고 이를 위하여 베네치아인들을 파견하였으나, 이들이 도착하기 전에 두브로브니크 시민들이 먼저 공사를 시작해 놀라운 속도로 요새를 완성하고, 성벽 문 앞에 서서 쓴웃음짓는 베네치아인들을 맞아들였다고 한다. 성벽은 훗날 증축되었지만, 베네치아인들을 맞이했던 문 입구의 돌에 '전 세계의 황금을 다 가져도 자유를 얻을 수는 없다.'라고 새겨진 비문은 지금까지 남아 있다. 두브로브니크 시민들은 이 도시의 자유를 위하여 값 비싼 노력을 기울였으나, 이 땅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 또한 끝없이 이어졌다.



필레(Pile) 정문이다. 막 드브로브닉 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필레 성문에 들어서자 오로프리오 분수가 보였다. 분수라기보다 수돗물이 나오는 급수대로 보였다.. 지금도 수도꼭지엔 물이나오고 있다.

오른쪽 옆이 프란시스코 수도원으로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단다.




플란시스코 수도원 종탑이다.




루자광장의 옆에 서 있는 종탑이다.




중앙의 종탑은 지진으로 기울어진 것을 1920년대에 설계대로 다시 복원하였단다. 오른 쪽에 성 블라시우스성당도 보인다.





성 블라시우스 성당이다.




렉터궁전이다.




렉터궁전이다. 안의 기둥과 계단의 선이 아름다워 웨딩 촬영을 많아 하는 곳이란다.




구항구(Old Harbour) 선착장에 나왔다. 선착장에서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성의 최 동단에 위치한 성 요한 요새(St John Fortress)가 구항구를 지키고 있다.  다른말로 뮬로탑이라고도 불린단다.




중앙부두에서 주변을 잡아보았다. 중앙으로 보이는 종탑이 나중에 지붕을 중심으로 잡았던 도미니크 수도원이다.




유람선을 타고 구항을 나와 시계방향을 섬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성의 남쪽외곽이다.




성의 왼쪽 끝이 최 서단 보카루 성루다. 바닷쪽 얼굴이다. 멀리보이는 것이  로브리예나치(Lovrijenac)요새다.




또다른 성의 서쪽 얼굴이다.




두브로브닉 성을 돌아  로브리예나치(Lovrijenac)요새 사이의 민가풍경이다




왼편으로 보이는 성이 로브리예나치(Lovrijenac)요새와 오른쪽은 두브로브닉 성이다. 베네치아에서 욕심을 낼 만한 위치이다.




성앞의 섬(Lokrum)을  반시계방향으로 크게 한바퀴 돈단다.  섬(Lokrum)의 뒷편으로 왔다.

한적한 바닷가엔 자유분방한 남녀가 옷을 걸치지 않고 쉬고 있었다.




배들의 왕래가 적은 곳에 커다란 배 한척이... . 




구시가 80%가 파괴된 전화… 평화 소중함을 일깨운 전쟁박물관


  그러한 두브로브니크에 독립전쟁의 아픈 상흔은 곳곳에 남아있다.

  깨진 주황색 기와와 화염에 그을은 벽돌, 폐허로 방치된 집터들이 구시가지 안 골목 곳곳에 남아있다.

  대피소로 이용되었던 구시가 전쟁박물관에는 당시 참상을 증언하는 흑백사진들이 빼곡히 전시되어 관광객들에게 당시 참상을 알리고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1945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되었던 크로아티아는 1991년 크로아티아 분리독립 선언 후 세르비아 중심의 유고연방군의 공격을 받아 구도시 건물 80%가 피해입를 입었다. 종전한 1995년 이후 유네스코 지원을 받아 구도시 복원 에 들어가서 이젠 옛 명성을 되찾을 만큼 아름다운 해안 도시로 거듭났다.

  반질반질하게 닳아버린 돌길을 걸으면 찰나의 시간들에 얽매인 우리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두브로브닉 성의 약도이다. 3번으로 성곽을 올라가서 1번으로 내려오던지,

1번으로 내려와서 4번 해안의 Lovrijenac성을 관람하던지,

아니면, 성곽을 한바퀴 돌아 2번으로 내려오던지 각자에게 맡기고 자유시간을 주었다.

우리는 한바퀴 일주를 택하기로 했다.   




성곽에 오르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장면을 촬영했다.

도미니크 수도원과 종탑과 지붕이다. 성의 북쪽 플로체성문 옆에 있었다.




도미니크수도원에서 몇걸음 진행하여 가로로 잡아보았다.




열심히 찍다보니 시간관념이 없어졌다. 시간은 10분쯤 흘렀는데 조금전 도미니크수도원 지붕을 촬영한 곳에서 불과 몇미터 간 곳이었다. 




멀리 대성당의 돔이 보인다.




여기서부터 어안렌즈를 끼고 몇컷 찍어보았다.  




내가 어안렌즈 사용에 서툰 모양이다. 현장분위기 표현이 부족하다.




요즈믐 파노라마 기법에 열중하다보니 어안렌즈의 필성을 느끼지 못하고, 그만큼 표현력이 부족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지붕 색깔이 차이가 있다.

퇴색한 지붕이 오리지날 지붕이고, 선명한 주황색 지붕은 유고내전에 손상된 것을 복원한 것이란다. 




성의 가장 높은 곳 민세타 요새에 올라가서 촬영했다.





1번 출구 부근이다.

플란시스코 수도원의 지붕이다.




1번 출구 위이다. 플라차(Placa) 거리이다. 역시 사람이 북적인다. 거리의 모습과 오로프리오 분수를 살려서 촬영했다.




이 거리의 이름은 원래 플라차(Placa)이지만 흔히 스트라둔(Stradun)으로 불린다고 한다. 우리는 그냥 중앙로라고 불러본다 

관광객이 참 많다. 분수가 조금 잘리지만 거리의 모습을 살렸다.




1번 출구를 지나쳤다. 고성을 카페 등으로 활용하고 있나보다. 마당에 탁자들이 줄지어 있고 웨이터들이 분주하다.




바다로 나아가는 곳이다. 맞은편에 베네치아왕국이 탐냈던  로브리예나치(Lovrijenac)요새가 보인다.

그런데 이 요새는 착공 3개월만에 완공했단다. 그래도 괜찬은 건지...... ..




바다를 향해 포가 한문 대기하고 있다.. 아드리아해의 요새였던 것이 실감이 났다.




성벽에서 바라본 바다로 향한 성의 문이였다. 맞은편이 로브리예나치(Lovrijenac)요새다.




조그마한 구멍으로 보이는 곳이 로브리예나치(Lovrijenac)요새다.




바닷가로 나 있는 카페는 부자카페이다. 무슨 부자?

크로아티아 말로 부자는 구멍을 뜻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개구멍처럼 비하된 표현은 아니다.




여기도... . 그런데 성벽이 두꺼워서 성밖의 모습을 촬영하기 힘들었다.




내려오기 직전에 발견한  성곽 구석의 반원 둥근 지붕이다. 고색(古色) 창연(蒼然)하다.

그리고 지붕의 모양이 둥글지만은 않고 약간 변형을 했다.

옛부터 둥근지붕이 아렵다는데, 우리나라에선 보지못했고, 중국의 기년전(祈年殿)이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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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10.22 16:34

    첫댓글 나 오늘부로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다녀왔네...
    사진과 곁들여 기행문 읽어보니 풍광이 눈앞에 선하네 그려.
    두브로브닉은 노르웨이 베르겐해안가하고도 정취가 비슷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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